안개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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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19.04.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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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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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 베일의 이야기 (15)

.




DUMMY

멘티스의 불호령에 병사들이 들개 떼처럼 달려들었다. 가드와 베일도 일제히 몸을 날려 그들과 뒤섞였다. 칸의 생각보다 제법 훈련을 잘 받아온 병사들은 의외로 그들 상대로 호전했다. 오히려 병사들을 얕봤던 나머지 그들에게 뺨을 세 대 정도 내어주고 말았다. 그제야 그들이 보통 병사들이 아님을 깨닫고, 서로가 두 눈을 까뒤집어 미친놈처럼 덤벼들기 시작했다.

페푸는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그저 몸을 웅크린 채 구석에 처박혀 있을 뿐이었다.


“여기······ 여길, 어떡해?”


페푸가 흔들리는 초점을 최대한 멘티스에게 맞춰 놓으려고 애썼다. 멘티스의 사악하고 음흉하게 찢어지는 아가리가 흔들리는 초점 속에 선명히 들어왔다. 자신을 단번에 삼키기 위해 잔뜩 찢어지고 있는 그 아가리가 두려워 두 눈을 감으려 했다. 그때, 눈앞에 세 명이 등을 맞대며 마치 수호자들처럼 앞을 막아 주었다.

페푸의 눈은 자신이 그리워했던 시절 속 사건을 그들과 겹쳐 보았다. 밝은 동쪽의 태양빛처럼 자신을 위험 속에서 지켜주고 늘 즐겁게 얘기를 나누던 그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야, 일어나!”


칸이 전방에 성게처럼 돋아있는 적의 검들을 막아내며 소리쳤다. 그 소리는 페푸를 현실로 끌어오기에 충분했다.


“너무 상황이 별로야, 입구가 하나라 도망칠 수도 없고.”

“양날의 검.”

“그래, 저 문이 지켜주는 듯해도 결국엔 우리도 나가지 못하게 하는 거니까. 녀석이 일부러 이곳으로 들이닥친 건 분명 그걸 노린 것이겠지.”


달려오는 병사의 목구멍이 장창의 끝에 꿰뚫렸다. 베일은 그 끝을 더욱 억지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병사의 목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와 그녀의 장창을 적셨다. 피가 튄 팔뚝은 이미 옷소매가 날아가 맨살이 드러났고, 새롭게 상처라는 옷을 입어가는 중이었다. 그건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둘도 마찬가지였다. 셋 모두 생각보다 깊은 상처들이 몸에 새겨져 있는데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활기를 띤 눈빛이었다. 아무래도 오랜만의 전투가 그들의 몸속에 잠재돼 있던 근육들을 자극시키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만, 페푸는 오랫동안 도서관 사서로 지내느라 그러한 쪽으로는 근육을 전혀 발달시킨 적이 없었다. 그는 그저 혼란스러움과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 셋이 지켜줄 거라는 묘한 안도감 사이에서, 구석에 처박혀 몸을 떨어댈 뿐이었다.

페푸는 스스로 그러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고 미웠다.


“근데······, 참 편하다.”


페푸는 서둘러 자신의 입을 막았다. 입으로 새어 나온 말이, 정말 자신이 뱉은 말인지 의심이 갈 정도의 충격의 반동이었다. 그건 숨김없이 그대로 그의 얼굴에 드러났다. 다행히도 셋은 싸우느라 바빠 그의 중얼거림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 중얼거림은 안타깝게도 멘티스의 더듬이에 감지된 게 분명했다.

베일의 창에 목이 뚫려 쓰러져가는 병사의 뒤로 멘티스가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형세를 한 그들을 보며, 만족한 듯 미소 짓고 있었다. 그중, 특히나 페푸의 얼굴을 보며 그 입꼬리를 더욱 찢어가고 있었다. 맛좋은 사냥감을 발견한 사냥꾼처럼.


“훌륭합니다. 아주, 훌륭해요. 좀 더 제 바람을 만족시켜 주시길······. 그리고, 페푸. 기억의 쪼가리여······. 너는 이렇게 또 살아남겠구나.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또 그 편안함에 취한 채 너를 믿는 모두를 피 웅덩이에 버려둔 채. 다시 저 사서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다시 네 일을 시작하겠지.”


멘티스, 그 뱀의 혓바닥과 같은 말이 페푸의 온몸을 핥아 내려갔다. 자신이 숨기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불쾌감. 그리고 모멸감과 자괴감. 페푸는 더욱더 몸을 웅크렸고, 간신히 그를 바라보고 있던 흔들리는 초점을 거둬 양팔 안으로 숨겼다. 이젠 마주할 용기조차 빼앗겨 버린 모습을 보며 멘티스는 유쾌하다는 표정으로 폭소를 터뜨렸다.


“그게 당신이 제일 잘하는 일이지.”

“페푸, 정신 차려!”


베일의 다급한 외침을 시발점으로, 병사와 셋은 다시 뒤엉켜 맞부딪쳤다. 누가 누굴 걱정하고 보호해줄 시간은 그저 사치에 불과했다. 다른 자를 신경 쓸 시간에 자신의 몸을 걱정해야 하는 것. 그게 지금 현 실태였다. 그렇기에 병사와 뒤엉켜 투귀처럼 싸우고 있는 셋은 페푸가 적어도 자신의 몸을 보호하거나 도망이라도 치길 바랐다. 그를 신경 쓰기 위해 그들은 더 상처 입었고, 더 많은 움직임으로 땀을 흘려야 했다.

칸의 두 눈이 시리도록 차갑게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자신들의 처지를 냉철히 파악하고 빠르게 정답을 내놓아야 했다. 지금 이렇게 머리를 굴리는 집중력조차 아까웠다. 그래서 그는 간단하게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본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고, 무엇보다 최선의 선택이었다.


“버리고 갑니다 ”


칸이 베일의 뒤를 노리고 달려오는 병사의 가슴팍에 왕가의 보검을 꽂아 넣으며 말했다. 그 말은 그의 검만큼 날카롭고 차가웠다. 사실 그 제안은 다른 둘 모두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던 제안이었다. 현시점에서 가장 최선책임은 틀림없었으니까.

다만. 가드는 그 말을 꺼낼 용기와 기운이 없었을 뿐이었고, 이미 수많은 동료를 잃어온 오랜 전사인 베일은 더 이상 누군가를 두고 떠나는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전투경험은 계속해서 이 장소를 고수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칸!”

“이의 없음.”


베일이 가드를 돌아봤다. 그러다 끊임없이 치고 들어오는 병사를 피해 다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검과 창을 받아내고 그 주인들을 베어 넘기며 하려던 말을 이었다.


“정신 차려! 누군가를 버리는 지도자를 따를 멍청이들은 없어. 넌 지도자야 칸. 너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너 자신만을 생각하면 안 돼. 너를 따르고 있는 모든 자들을 떠올려. 하나, 둘. 방해된다고 버리고 가는 지도자는······ 그 자신도 버려지고 만다는 걸 난 수없이 봐왔어.”

“하지만 스승님!”


가드가 방이 부서져라 포효를 하며, 우악스러운 손아귀로 집어들은 병사를 벽 쪽으로 던졌다. 벽에 꽂혀있던 온갖 골동품들이 요란하게 깨지고 바스러지는 소리가 병사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가 토해낸 기염과 방금 공중으로 날아간 병사의 몰골을 보고나서야 병사들은 약간씩 주춤거리고 있었다.


“여기 남는 것 또한. 이의 없음.”


가드가 병사들을 위협하며 말했다. 그는 약간 신나보였다.


“가드, 어째 신나 보이는데?”


접근을 멈추는 병사들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가드 쪽으로 붙은 칸이 물었다. 가드는 정말로 얼굴 한가득 웃음을 채우고 있었다. 민머리에 험악한 몸으로 너무 해맑게 웃는 게 조금 우스워 칸은 그의 얼굴은 보지 않은 채였다.


“스승님 말은 절대적.”

“나의 말은?”

“오히려 힘 낭비.”

“쳇. 누가 스승님 광신도 아니랄까 봐.”


칸과 가드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병사들이 주춤거리는 사이에 서둘러 몸을 뒤로 물렸다. 그들이 물려 달려간 곳은 페푸의 앞이었다. 가드가 커다란 대검으로, 칸이 노련한 왕가의 검으로, 단단히 겁에 빠진 페푸의 앞을 보호하는 형태가 됐다. 베일은 그저 그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뿐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참을 수는 없어서 옅은 미소를 품었다. 그녀도 몸을 물려 그들의 방어태세에 가담했다.


“여기서 죽으면 지도자건 뭐건 다 말짱 도루묵인 거는 아시죠?”

“걱정하지 마. 남을 버리지 않는 지도자가 죽는 일은 없으니까.”


병사들은 그들과 대치하며, 아까 본 경악할만한 괴력에 유린당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그게 워낙 아찔한 것이어서, 언제 다시 덤벼들지 간을 보아야 했다.


“왜 멈춘 거지? 내가 그런 명령을 내렸나?”

“아······, 아닙니다!”


멘티스가 가만히 그들에게 압박을 줬다. 병사들은 그제야 조금씩, 조금씩 발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시 덤벼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베일은 그 시간을 이용해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좁은 공간 자체는 버티기에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반대로 돌파가 유용한 장소는 아님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페푸를 버려봤자, 오히려 상황이 나아질 것도 없었고 오히려 전의만 상실할 뿐이었다. 그래서 칸이 말을 꺼냈을 때, 그녀의 전투경험이 그렇게 이곳을 고수하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


‘저 문 뒤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괜히 돌파를 시도해 기세가 꺾이게 된다면 오히려 더 큰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버티기만으론 한계가 있어. 어떻게 해야 하지? 도대체······.’


베일은 노련하게 수많은 경우의 수와 그 수의 앞을 모두 고려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초조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수를 써도 이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할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베일은 이를 악물고 뒤를 돌아봤다.

완전히 그림자에 숨어 몸을 웅크린 겁쟁이가 몸을 떨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글쎄······.”


이건 바위로 계란을 치는 격이었다. 계란은 버티는 게 아니라 바위가 잘못 날라 와 피해질 뿐, 결국에는 깨지는 것이 운명이다. 장창을 쥔 베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달려들 것이라는 것을, 몸이 먼저 느끼고 있던 것이다. 칸도, 가드도 똑같이 자신들의 검에 힘을 실었다. 그 어떠한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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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15-3. 드리워지는 빛 19.12.23 44 1 15쪽
194 15-2. 절망 19.12.22 36 1 18쪽
193 15-1. 대결 19.12.19 37 1 16쪽
192 14-11. 신 19.12.17 35 1 17쪽
191 14-10. 승천 19.12.16 29 1 15쪽
190 14-9. 대면 19.12.15 29 2 13쪽
189 14-8. 마지막 순례 19.12.12 31 1 14쪽
188 14-7. 알현 19.12.11 29 1 15쪽
187 14-6. 격돌(2) 19.12.10 31 1 15쪽
186 14-5. 격돌 19.12.09 32 1 16쪽
185 14-4. 황성으로 19.12.08 33 1 15쪽
184 14-3. 이단 19.12.05 34 1 17쪽
183 14-2. 기억 19.12.04 33 1 13쪽
182 14-1. 종전 19.12.03 32 1 15쪽
181 13-11. 대전쟁 19.12.02 60 1 14쪽
180 13-10. 대전쟁 19.11.30 33 1 13쪽
179 13-9. 대전쟁 19.11.29 42 1 12쪽
178 13-8. 대전쟁 19.11.28 35 1 15쪽
177 13-7. 대전쟁 19.11.27 30 1 13쪽
176 13-6. 대전쟁 19.11.26 37 1 14쪽
175 13-5. 대전쟁 19.11.25 50 1 14쪽
174 13-4. 대전쟁 19.11.23 59 1 12쪽
173 13-3. 대전쟁 19.11.22 42 1 10쪽
172 13-2. 대전쟁 19.11.21 44 1 13쪽
171 13-1. 대전쟁 19.11.20 42 1 17쪽
170 12-13. 집결 19.11.19 64 1 25쪽
169 12-12.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19.11.18 76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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