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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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19.04.02 19:27
최근연재일 :
2019.12.2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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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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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4-3. 이단

.




DUMMY

랜턴의 불길이 일렁인다. 한 명의 발레리나처럼 움직이는 불길은 주변을 은은하게 밝혔다. 랜턴을 중심으로 모두가 둘러앉아 있다. 그리고 핀이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한가운데에 서 있다. 랜턴을 발아래에 둔 그가 주변을 향해 입을 뗐다.

그는 기억의 방에서 사가와 나눴던 대화를 그들에게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자, 잠깐······.”


그의 말을 칸이 중간에서 자르며 말했다.


“······그럼 내 아버지가. 내가 잡아먹은 녀석들이랑 똑같다는 말이야?”


핀이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왜 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던 거지? 단 한 번도?”

“그 전에 우린 황제와 말할 시간도 없었어.”


가드가 칸의 말에 답을 내렸다.


“그래도!”

“당신을 이렇게 방치 해 놓은 이유가 그것일지도.”


칸의 손이 분노로 떨린다.


“직접 물어봐야겠어. 직접 만나서, 반드시 이 손으로 죽여 버리겠어·········.”


칸이 표출하는 분노가 너무 강해,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가드는 그런 칸에게서 고개를 돌려 핀에게 계속 얘기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핀은 잠시 이들과 모여 얘기를 하기 전을 떠올린다. 두 눈이 일렁이는 랜턴과 같이 약간 아른아른하다. 그건 핀이 막 일어나서 주변을 살피고 잠시 막사 앞으로 바람을 쐬고 있을 때였다.


“······핀···!”


그렇게 부른 건, 눈을 비비며 다가오는 아벨라 이온이었다. 핀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이 잠시 집착에 머물다가, 얼굴로 이동했다. 아벨라 이온은 괜히 집착을 뒤로 숨겼다. 그렇다고 숨겨질 건 아니지만.


“일어나셨어요?”


핀이 물었다.


“······일어났네?”


그녀는 속으로 “다행이다.”라는 말을 삼켰다.


“네. 생각할 게 많아서요. 걱정하셨어요?”

“걱정은 무슨! 너라면 안 죽을 걸 아니까, 별로?”


아벨라 이온이 조심조심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걸 믿고 가셨던 거죠?”

“······응.”


아벨라 이온이 고개를 숙이고 낮게 속삭였다.


“처음에는 조금 슬펐어요.”

“······미안.”

“그래서 강해지셨어요?”


아벨라 이온이 고개를 들었다.


“당연하지. 그게 아니었으면, 아직도 넌 내 얼굴도 못 봤을걸?”

“그건······.”


핀이 잠시 고민에 빠진 얼굴로 안개를 올려다보더니, 다시 그녀와 눈을 맞췄다.


“더 슬플 것 같네요.”

“그렇지?”


아벨라 이온이 마른 침을 삼켰다. 자신의 감정 변화에 익수지 않은 그녀에겐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었다.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잠시 둘은 말없이 있었다. 둘은 다른 감정으로 서 있었지만, 아주 잠깐 공통분모의 감정이 스쳤다. 바로 편안함이다. 그 편안함이 핀의 등을 떠밀었다.

핀이 입을 뗐다


“한 가지 고민이 있어요.”

“뭔데?”


아벨라 이온이 고개를 그의 쪽으로 틀었다.

핀은 가드의 신호를 받아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어간다.


“저는 황성으로 갑니다.”


사방으로 핀을 바라보는 눈이 반짝이고 있다. 랜턴의 빛을 받은 그들의 면면이 무척이나 든든해 보인다.


“왜 저는, 이야? 우리가 아니라.”


레올프가 나긋나긋한 말투로 그의 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핀이 그녀를 바라본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부터 여러분들을 가급적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서요. 너무 많은 피해를 입기도 했고요.”

“그게 무슨 말이죠?”


루미너스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러분들의 의지를 다시 묻고 싶어요. 보셨잖아요. 신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그 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실제로도, 지금 생각해도 그러했으니까. 신의 손짓 하나에 대전쟁은 끝났고, 그들은 패했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칸이 그답게 거리낌 없이 말한다.


“승산은 있는 거겠지?”


핀이 그와 눈을 맞춘다. 여전히 거짓이 없는 붉은 눈이 또렷하게 반짝이고 있다.


“우리 아버지를 죽이고 얻어낸 열쇠로, 신을 죽일 수 있는 거겠지? 이번엔.”

“네. 이번에는 확신해요. 그리고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핀도 그의 눈에 확실히 답했다. 핀의 검은 눈동자가 거짓 없이 반짝였다.

칸이 몸을 일으켜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검을 뽑아 핀의 앞으로 던졌다. 검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핀의 발아래에 나뒹군다. 모두가 그 의미를 몰라 의아하게 버려진 검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요란하게 움직이는 검이 소리를 멈추자 칸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때가 돼서야 칸은 자신의 의도를 확실하게 표한다.


“나는 너를 따라가겠어. 어차피 나는 신 따위 상관없으니까. 하지만 그 전에 나보다 네가 선택해야겠지.”

“선택이요?”

“그래. 나는 그 검으로 네 스승을 죽였고, 네 조직의 우두머리를 죽였어. 그리고 그 검은 이제 나의 아버지를 죽이겠지. 그리고 나는 절대 그것에 대한 사과를 네게 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너는 그 검을 붙잡고 나를 데려갈 수 있겠어?”


핀과 칸의 시선이 매섭게 교차한다.


“저는 당신을 용서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저는 당신이 필요해요. 그것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핀이 바닥에 놓인 그의 검을 집어 단단히 쥔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그의 쪽으로 검을 내민다.


“부탁드릴게요. 당신과는 어떤 유대도. 좋은 감정도 없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니까요.”


칸이 미소를 짓는다.


“솔직하네, 너도. 좋아. 나는 그 검을 네게 전적으로 맡기겠어. 앞으로 내 검은 네가 베라는 것만 베도록 하지. 그게 내 검으로 죽어간 자들에게 내가 최소한 해줄 수 있는 예의라고 생각하니까.”

“당신의 생각이 그렇다면요.”


칸이 성큼성큼 걸어와 핀이 내민 자신의 검을 낚아챘다. 그리고 가드는 몸을 돌려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외친다.


“자, 다음은 누구야!”


그의 말에 하나, 둘 모두가 무기를 핀의 앞에 던지기 시작한다. 레올프의 활이며, 루미너스의 지팡이며, 모두의 무기가 기다렸다는 듯, 그의 발 앞에 모인다. 아벨라 이온은 무기가 붙어있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몸을 일으켜 그의 앞에 가만히 주저앉는다.


“내가 뭐랬어, 핀! 네가 한 걱정은 다 부질없는 거라고 했지?”


핀이 감동에 벅찬 얼굴로 웃는다. 그는 다시 회상을 이어간다.


“저는 패했어요. 그렇게 믿어달라고 했고, 자신감 넘쳤는데······. 수많은 피해만 낳고 결국 신은 잡아내지도 못 했죠. 저는 그들의 믿음을 짓밟았어요.”

“누구한테 들은 건데?”

“······네?”

“그런 말 누구한테 들은 거냐고.”

“······들은 건 아니에요.”

“그럼 뭘 걱정하는 거야?”

“저는,”

“다들 네가 자고 있을 때, 멍청하게 있던 것도 아니거든?”


아벨라 이온이 붉어졌던 얼굴이 어느새 그녀다운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왼손으로 이리저리 헝클어트렸다.


“아아아! 그렇게 걱정되면 한 번 물어보던가!!”


회상은 매듭이 지어지고, 핀은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아벨라 이온이 그런 그의 볼을 단단히 꼬집으며 그와 똑같이 웃는다.


“내가 말했어, 안 했어?”

“했어여!”


볼이 당겨진 그의 말투가 꼭 루미너스를 닮았다.


“제가 고친 말투를 이제야 따라 하다뇨! 핀, 재미없어요!”


루미너스가 벌떡 일어나 외친다. 잠깐 그런 분위기가 온풍이 돼 주변을 훑는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거기에 멈춘다. 따뜻한 온풍을 담은 채로 멈춰있다.

핀은 그들의 무기를 하나하나 다시 돌려준다. 그리고 자신을 끝까지 믿어줄 자들의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도장을 찍듯 그들의 얼굴과 품고 있는 표정을 가슴 속에 새긴다.

마지막으로 아벨라 이온의 집착을 두 손으로 들어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이미 저희는 많은 소중한 이들을 잃었어요. 그건 돌이킬 수 없고, 다시 돌아오지도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핀이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저희는 그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예요. 저도 다신 여러분의 마음을 묻지 않겠습니다.”


모두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핀은 랜턴을 집어 든다.


“제가 안내할게요. 길잡이로서, 여러분들을 끝까지 안내할게요.”


핀이 앞장서서 막사의 밖으로 나간다. 이미 그들의 대화를 몰래 엿듣고 있던 이들이 무기를 단단히 걸치고 그들이 지나갈 길을 만들고 사열해 있다. 핀은 그들의 얼굴도 하나, 하나 새겨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의 뒤로 아벨라 이온, 레올프, 루미너스, 칸, 가드, 이롤그, 유, 호텐토타, 스티그머러스, 곤이 뒤따른다. 그들의 끝을 다시 사열해 있던 이들이 따라붙는다.

안개길잡이들이 중간중간 섞여 길을 밝히고, 그들은 진검다리를 건넌다. 아무 말 없이 결연한 표정으로 수백의 인원이 통곡의 벽 앞에 도달한다.

곤과 아벨라 이온이 앞으로 나와 성벽 위를 바라본다. 위에는 조용히 까마귀들이 울고 있는 게,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든다. 성벽의 꼭대기에는 두 명의 병사가 보인다. 한 명은 앉아있고, 다른 한 명은 당당히 서 있다.

아벨라 이온과 곤이 핀의 랜턴 빛에 의지한 채로 눈을 가늘게 떠 보았지만, 그 둘의 모습은 핀에게도 그림자만 언뜻 보이는 터였다.


“누가 있긴 해?”

“두 명··· 있어요.”

“그래?”


그 말을 듣고 아벨라 이온이 크게 외쳤다.


“문을 열어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안개를 뚫고 그들을 향해 솟아올랐다.

하지만 통곡의 벽 위에서는 아무 소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벨라 이온과 곤이 얼굴에 의문을 띄운다. 이번엔 곤이 다시 성벽 꼭대기를 향해 외친다.


“누구 없나! 문을 열어라! 기사단장 곤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용했다. 돌아오는 건 까마귀들의 불길한 울음뿐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기분에 아벨라 이온이 문 쪽으로 좀 더 다가가 본다. 핀이 랜턴을 들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랜턴의 빛이 통곡의 벽의 문을 비추자, 어째서인지 조금 낡고 부서진 문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원래 이랬나요?”


핀이 그녀에게 물었다.

아벨라 이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나 본데?”


그녀의 손이 조심스럽게 성벽의 문을 건드리자, 단단히 닫혀있어야 할 성벽의 문이 그대로 부서지고 만다. 워낙 큰 문이 무너진 터라 그 소리가 사방을 울린다. 아벨라 이온은 물론 핀도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고, 그 뒤에 있던 무리도 놀란 눈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핀과 아벨라 이온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서로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천천히 무너진 문을 넘어 성벽의 안으로 들어선다. 그들의 모습이 성벽의 안으로 사라지려 하자, 곤이 뒤를 돌아 신호를 주었다. 둘의 뒤를 따라 무리가 움직인다.


“아무래도 이상한데요?”


핀이 주변을 잔뜩 경계하며 물었다. 그의 랜턴이 불안함을 품은 채로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 냄새 알고 있지?”

“피 냄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안개를 뚫고 누군가가 검을 휘둘렀다. 아벨라 이온이 번개와 같은 반사 신경으로 집착을 들어 검을 막아낸다.


“핀!”


아벨라 이온의 외침에 핀은 서둘러 그녀가 붙잡고 있는 자를 랜턴을 휘둘렀다. 이빨 몇 개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전혀 제압하거나, 상대가 쓰러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핀은 섬뜩한 기분에 아벨라 이온의 뒷덜미를 붙잡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난다.


“왜 그래?”

“아무래도 이상해요.”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핀에게 외쳤다.


“불을 밝혀!”


그 말에 핀은 반사적으로 랜턴을 높게 치켜들고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랜턴의 불이 주변이 안개를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아주 잠시지만, 불길이 집어먹은 공간이 안개가 아닌 제 색으로 반짝였다. 그리고 랜턴이 안개를 다시 뱉어내는 것과 동시에 다시 잿빛으로 변한다. 랜턴의 불길이 하늘에 솟구쳐 타오르고, 주변 반경을 크게 밝힌다. 그건 뒤에 따라오던 무리의 끝까지 닿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들의 상황을 더욱 잘 알려주는 것이라, 심장이 약한 자는 순간 겁을 집어먹고 만다.


“으, 으아악! 이게 뭐야!!”

“전열을 가다듬어라!”


두려움에 찬 기사단 한 명이 비명을 치며 도망가는 걸 곤이 막아 세우며 외쳤다. 그녀의 말을 듣고 순식간에 다른 이들이 전열을 가다듬었지만, 맨 처음 비명을 지른 자와 다를 바 없는 얼굴이다.

핀이 밝힌 불길에 드러난 존재들은 통곡의 벽을 지키던 수호자들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가슴 한복판에 크게 자리 잡은 그들을 상징인 명예로운 까마귀의 표시가 피로 얼룩져 있다. 분명 살아 있는 얼굴이지만, 눈이 뒤집혀 있고 미간과 관자놀이에는 핏줄을 세우고 있다. 이미 어떤 전투를 치르고 난 이후인지, 얼굴은 지쳐 보이고 피와 땀이 섞여 얼굴을 타고 흐르고 있다. 심한 자들 중에는, 팔이 하나 없거나 다리가 돌아가 있거나, 얼굴이 찢어져 있거나, 목이 덜렁이는 자들도 보인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신이······신이 우리를 배신했다.”

“······영광이 무너진다.”

“믿음을······되찾아야 한다······.”


그들의 코가 벌렁 인다. 무엇인가의 냄새에 반응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눈이 전열을 가다듬고 뭉쳐있는 핀과 그 무리에게 향한다. 동공을 잃은 새하얀 눈. 믿을 잃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는 두 눈에 섬뜩한 핏발이 서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만 통하는 어떠한 신호와 동시에 그들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막아!”


곤이 거대한 대검을 들고 앞장섰다. 그 모습을 보자, 두려움을 품었던 기사단이 먼저 용기를 냈다. 그녀를 따라 기사단이 전열에 서서 무기를 뽑아들고 그들과 최초로 맞붙는다.


“기사단의 명예를 위하여!”


용기를 돋우는 명예로운 기사단의 규율을 외치며 그들은 당당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들과 맞부딪혔다.


“우리도 전진이다!”


이에 질세라 호텐토타가 검을 들고 앞으로 치고 나간다. 스티그머러스가 거대한 집게와 단단히 쥔 검을 휘두르며 그의 뒤를 따른다. 전갈의 강력한 힘과 파괴력은 기사단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는다.


“길을 밝혀주어라!”


가드의 명령 아래에 안개길잡이들도 그들을 따른다. 유도 망령들을 이끌고 적의 영혼을 끄집어내 파괴하려 한다. 하지만 유는 그들에게서 어떠한 영혼의 틈도 보지 못 한다.


“이, 이건······!”


유는 다급하게 이롤그를 불렀다. 이롤그가 그의 부름에 자신도 깨닫는 게 있는지 공간 마법을 이용해 핀의 옆으로 단숨에 이동했다.


“이롤그?”

“핀. 아무래도 이 녀석들 이단들인 거 같아!”

“이단이요?”


핀이 앞서 나아가는 아벨라 이온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앞으로 달려갔다. 이롤그가 마법을 써 둘에게 엘라눔의 가호를 내려준다.

그는 상당히 당황한 투였다.


“강한 믿음이 단번에 무너진 신도들이야. 비어버린 신앙을 옳지 못한 감정으로 채워 넣은 신도. 그게 이단이야. 과거에도 있었어.”


이롤그가 마법을 걸어 핀을 옆에서 위협하고 있는 이단을 제압하며, 아벨라 이온을 흘끗 바라본다.


“그건 기사가 불명예의 기사가 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돼.”


그의 말에 아벨라 이온의 표정이 굳었다.

기사에게 채워진 한계를 깨고 극한까지 힘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상태. 불명예의 기사에게만 허락된 마지막 발악과 지금 상대하고 있는 이들의 힘이 같다면, 그건 아무래도 위험했다.


“기사보다야 힘이 약하겠지만, 그들은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해. 고통도, 괴로움도 없어. 오로지 배신감과 분노만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야. 그리고 그건 그들에겐 적어도 일반 기사와 필적한 힘을 주지.”


팔이 잘려나간다. 하지만 그들은 잘린 팔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든다. 완전히 잘려나가지 않은 팔을 덜렁이며 그 팔을 그대로 상대에게 내리친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자들에게 그것은 가히 공포였다. 팔 뿐만이 아니다. 다리가 잘리면 그대로 몸을 날리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머리가 잘려도 닭처럼 비척이며 달려와 검을 휘두른다. 몸에 수십의 검 날이 꽂혀도 굴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간다. 끔찍한 것을 넘어서는 그들의 공세가 차곡차곡 쌓인 용기를 갉아먹어 간다.


“얼마나 걸릴까요, 삭?”


통곡의 벽 가장 꼭대기에서 두 다리를 벽돌에 일정한 박자로 치며 그믐이 물었다. 복슬복슬하고 아담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건장한 몸에 딱 달라붙어 날렵한 느낌을 주는 검은 갑옷이 빈틈없이 감싸고 있다. 검은 갑옷은 은은한 은색의 빛이 가장자리에서 반짝여 특이한 분위기를 띤다. 유일하게 복슬복슬해 보이는 부분이라면, 흩날리고 있는 긴 새까만 머리카락 정도이다. 그믐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은 새하얀 빛이 왼쪽 가에만 도신처럼 머물고 있는 그의 새까만 안경뿐이었다.

그런 그믐의 옆. 그의 질문을 받은 삭은 조용히 안갯속에 녹아든 채로 답했다.


“아마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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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15-2. 절망 19.12.22 36 1 18쪽
193 15-1. 대결 19.12.19 37 1 16쪽
192 14-11. 신 19.12.17 35 1 17쪽
191 14-10. 승천 19.12.16 29 1 15쪽
190 14-9. 대면 19.12.15 29 2 13쪽
189 14-8. 마지막 순례 19.12.12 31 1 14쪽
188 14-7. 알현 19.12.11 29 1 15쪽
187 14-6. 격돌(2) 19.12.10 31 1 15쪽
186 14-5. 격돌 19.12.09 32 1 16쪽
185 14-4. 황성으로 19.12.08 33 1 15쪽
» 14-3. 이단 19.12.05 35 1 17쪽
183 14-2. 기억 19.12.04 33 1 13쪽
182 14-1. 종전 19.12.03 32 1 15쪽
181 13-11. 대전쟁 19.12.02 60 1 14쪽
180 13-10. 대전쟁 19.11.30 33 1 13쪽
179 13-9. 대전쟁 19.11.29 42 1 12쪽
178 13-8. 대전쟁 19.11.28 35 1 15쪽
177 13-7. 대전쟁 19.11.27 30 1 13쪽
176 13-6. 대전쟁 19.11.26 37 1 14쪽
175 13-5. 대전쟁 19.11.25 50 1 14쪽
174 13-4. 대전쟁 19.11.23 59 1 12쪽
173 13-3. 대전쟁 19.11.22 42 1 10쪽
172 13-2. 대전쟁 19.11.21 44 1 13쪽
171 13-1. 대전쟁 19.11.20 42 1 17쪽
170 12-13. 집결 19.11.19 64 1 25쪽
169 12-12.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19.11.18 76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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