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말
책 머리에……
가끔씩 나는 일탈(逸脫)을 꿈꾼다.
나를 구속하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어디까지나 나는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내 일탈은 오직 글 위에 존재하는 것이리라.
***
어렸을 적 무협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워하고 나 또한 가지고 싶어했던 것은, 눈빛 하나만으로 천하의 모든 여인들을 옭아맬 수 있는 색공(色功)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시절의 무협소설 주인공치고 색마(色魔)가 아닌 자가 없었다. 다만 그들은 영웅이었으며, 영웅호색 혹은 영웅은 삼처사첩을 거느린다는 말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을 뿐이었다.
이른 바 주인공은 색마가 될 수 있어도 색마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라는 식의 논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색마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자신의 뜻에 상관없이 색마가 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색마가 되고자 한 사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글은 前作 <취생몽사>를 집필하면서 머리를 식힐 겸 틈틈이 써왔던 작품이다. 그래서 단순하고 가벼우며 유쾌하다. 복잡하게 머리 굴리는 일도 없고 심각하거나 진지한 구석도 그리 많지 않다. 오로지 재미만을 이야기하고자 쓴 글이다.
여러분들 또한 그렇게 읽어 주시면 고맙겠다. 전혀 부담 느끼지 말고 가볍게, 한 편의 만화를 보듯 그렇게 말이다.
이미 무협 시장은 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볼거리가 유혹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글을 읽어주시는 당신이 있기에, 또 나날이 무협 독자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끝까지 내 책만은 가져다 두는 동네 대여점 아주머니가 있기에, 그리고 아직 무협에 대한 내 열정이 식지 않았기에, 무협은 앞으로도 건재하리라 믿는다.
오로지 열심히 쓰겠다는 말로 모든 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대신한다.
2000년 山河集에서 白夜 拜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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