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공모전참가작 최종보스가 말이 많음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by아말하
작품등록일 :
2019.04.03 15:37
최근연재일 :
2019.10.08 19:31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326,826
추천수 :
9,696
글자수 :
189,183

작성
19.08.19 10:44
조회
1,102
추천
70
글자
11쪽

10화. 수행자(9)

DUMMY

두 차원포식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작은 달렸다. 애당초 도망칠 곳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이미 그에게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스멀스멀―.


순전한 본능의 영역.

생명체라면 응당 가지고 있는 생존에 대한 욕구가 지금 그에게 당장 이곳에서 달아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끝냈다고 생각했다.」


음울하게 울려 퍼진 그것은 이미 목소리라고 부를 수 없었다. 행성을 둘러싼 모든 어둠이, 그리고 행성 전체가 그렇게 들썩이고 있었다.


「매일 같이 찾아오는 악몽도, 비명도. 더 이상은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는 목소리가 바뀌었다. 음울하기 짝이 없던 그 울림은 어느새 천둥이 치는 것처럼 거대하게 울려 퍼졌다.


「나의 영혼은 마침내 안식을 얻었으며.」


만약 행성에도, 그리고 우주에도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면 감히 그것을 분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행성이, 그리고 이 행성을 둘러싼 우주 전체가 지금 분노하고 있었다. 오직 단 한 존재의 분노로 인해서.


「비로소 영원한 잠에 빠질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뭉쳐 있던 검은 연기는 이내 검고 불타는 눈동자로 변했다. 우주조차도 한낱 먹잇감으로 보는 눈동자는 이제 한낱 먼지보다도 작을 터인 아이작을 또렷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랬거늘.」


그 눈동자를 바라보아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아이작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꿈을 꾸었다.」


당장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작은 차원포식자의 말을 외면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너를 보았고.」


어느새 멈춘 그의 발걸음의 뒤편에서 또 다른 차원포식자의 외침이 들려왔으나, 그는 결국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네 존재는 나의 모든 것을 한낱 꿈이라 말하고 있구나.」


그것은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차원포식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째서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야! 뭐해!]


아이작은 당장 등을 돌려 이 자리에서 달아나는 대신, 귓가에서 울린 또 다른 차원포식자의 외침에 조용히 대답했다.


너 때문이잖아.

이 망할 거대 촉수 바퀴벌레야.


그렇기에 어느새 발걸음을 완전히 멈춘 아이작은 자연스럽게 눈앞의 어둠을 마주했다.

단순히 마주한 것뿐이건만, 아이작은 마치 깊고 깊은 심해에 홀로 잠겨버린 것처럼 온몸이 찌그러질 것 같은 압력을 느꼈다.


“흐읍······!”


그제야 아이작의 머릿속에 냉정함이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도망칠 곳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으며, 이제 눈앞에 있는 신과 결판 아닌 결판을 지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이작 아시모프.」


단순히 마주 보며 이름을 불렀을 뿐이건만, 아이작은 자신의 폐부 깊숙이 누멘이라는 신(神)이 가진 거대한 격이 일부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비록 아주 미약한 격의 편린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아이작에게 있어서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어마어마한 힘을 가져다주었다.


“······나를 알고 있군.”


그 덕분일까, 간신히 조금이나마 여유를 되찾은 아이작이 토해내듯이 말하자 어둠이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는 너를 보고 있었다.」


보고 있었다라······.

실제로 항상 차원포식자의 시선 속에서 지내왔던 아이작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기묘한 말이었다.


“지독한 관음증 환자로군.”


평소였다면 이쯤에서 차원포식자가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라며 딴죽이라도 걸었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그런 딴죽을 걸 존재는 침묵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라는 듯이.


「보지 않아도 되었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토록 깊은 절망을 맛보지는 않았을 테니.」


아이작은 조금 말 섞었다고 그새 말꼬리가 길어지려는 차원포식자의 모습을 보며 역시는 역시라고 생각하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만약 눈앞에 있는 존재가 그가 알고 있던 차원포식자라면, 비록 작게나마 희망의 끈이 존재할 터이기 때문에.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뭐지?”


「원하는 것이라······ 마치 나와 협상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감히.」


그와 함께 순식간에 뻗어온 어둠이 아이작의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마치 나무를 타는 뱀처럼 스멀스멀 기어오른 어둠은 이내 완전히 아이작의 몸을 붙들었다.

이러한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애석하게도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에 아이작은 아무런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잘못 생각했나.’


아이작은 그럴듯한 반항조차 한번 해보지 못하고 잡혀버린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했다. 만약 그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면, 지금 이 상황은 단순한 죽음으로 끝날 상황이 아니었다.


「으음······ 느껴지는구나. 너의 안에 있는 무언가가.」


그제야 아이작의 귓가에서 그와 늘 함께 해왔던 차원포식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에 있는 것과 같지만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오호······ 대단한걸? 역시 나야.]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한 그 여유로운 목소리에, 아이작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지금 감탄할 때가 아닐 텐데?’


그런 그를 향해서 차원포식자가 쯧쯧 혀를 찼다. 동정과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였다.


[멍청하긴.]


차원포식자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이내 속사포처럼 아이작을 향해서 한껏 말을 쏟아냈다.


[지금이니까 이런 여유도 부릴 수 있는 거야. 만약 저 녀석이, 그러니까 내가 너를 잡아먹을 거였다면 진즉 했을 거야. 그런데도 아직까지 너를 살려두고 있다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뜻이겠지.]


‘이유?’


[예전부터 느끼는데, 너 진짜 하나를 알려주면 딱 하나만 아는 타입이구나? 아니지. 하나라도 제대로 알면 다행인가?]


‘······시끄럽고, 대답이나 해라.’


[뭐 굳이 예를 들어 보자면, 알고 싶은 것 혹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다든지?]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작을 죄고 있던 어둠이 일제히 그의 몸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목소리. 목소리가 들린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그와 함께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고통이 아이작의 전신에 엄습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입을 뻥긋할 수조차 없었다. 어느새 육체에 대한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 것이다.


‘빌어······ 먹을.’


아이작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이미 상황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조금 전, 그는 자살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놓쳤고, 이제 그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었다.


「말하라.」


이미 육체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아이작은 그에 대해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신(神)이라 불리며 칭송받는 그 거대한 존재는 대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나는 무엇이지? 누군가가 꾼 한낱 꿈인가? 아니면 그저 무수한 가능성의 잔가지 중 하나에 불과한가?」


아이작의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전혀 필요 없었는지, 육체에 대한 통제권을 앗아간 어둠은 이제 그의 의식마저도 가져가려 하고 있었다.


「아니다. 나는 그중 무엇도 아니다.」


이제 아이작의 귓가에 울리는 것은 그저 끔찍한 어둠이 주는 적막과 이명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원포식자의 목소리는 그의 청각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이 더욱더 그의 의식에 또렷하게 새겨졌다.


「나는 지금 이곳에 오롯이 존재하고 있으며.」


콰직―.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콰직,

콰드득―!


「내가 있는 곳이 곧 현재이며.」


까드득―!!


「내가 지나온 곳만이 과거이고.」


츠, 츠츳!


「내가 나아갈 곳만이 미래이다.」


츳!


아이작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 공허한 외침이 누구를 향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누멘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콰직―!

콰드득!!


아이작은 지금 일어나려 하는 이 현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언젠가, 차원포식자가 그의 ‘역사’를 바꿨을 때 보았던 현상.

아카식레코드에 쓰인 한낱 기록에 불과한 역사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현재로서 군림하려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역사를,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


‘끝난······ 건가.’


그렇게 아이작이 절대적인 어둠이 주는 절망 속에 빠지려던 찰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귓가에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자냐?]


이미 질리도록 들어온 탓에 무척이나 익숙한, 그런 목소리가.


[아직 안 자지? 그러면 미안한데, 쟤보고 잠깐만 좀 닥쳐 달라고 해줄래? 듣는 내가 다 부끄럽네. 무슨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 일기장 들춰 보는 것도 아니고······.]


그와 함께 아이작의 눈이 떠지며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진심으로 차원포식자의 말이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을 뿐.


“큭······.”


그래, 아직 늦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도 한 가지 남아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아이작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


“······이봐.”


이미 육체에 대한 통제권은 모두 잃었건만, 어째서인지 그 잘난 입만큼은 지금 순순히 그의 의지에 따르고 있었다.

마치 이 말만큼은 해야겠다는 듯이.


“얘가 너보고 좀 닥쳐 달라는데?”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이레귤러에 대한 놀람일까, 아니면 그 입에서 튀어나온 문장에 대한 놀람일까.

확실한 것은 지금 신(神)이라 불리는 존재가 명백히 당황함과 황당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뭐?」


그제야 그의 뒤에 선 차원포식자가 흡족하게 웃었다.


[잘했어. 이제야 조용하네.]


그 덕분일까.

아이작은 마침내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누멘.”


아마 평소였다면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아마 다시는 이렇게 부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불러야만 했다.


[말해 봐.]


그에 호응하듯이 들려온 차원포식자의 목소리에 아이작은 가볍게 웃었다. 다시 생각해도, 지금 자신이 하려는 일은 미친 짓에 가까웠으니까.


두 존재의 차원포식자가 아이작을 응시했다.


「아이작 아시모프.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 존재는 그의 앞에서,

나머지 한 존재는 그의 뒤에서.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네가 지금 하려는 말이 죽기 전 최후의 사랑 고백 같은 건 아니지?]


취한 모습은 같지만, 전혀 다른 두 존재.

아이작은 바로 그런 두 존재 앞에서 선언했다.


“나는 이 과거를, ‘세이브’하겠다.”


네가 그토록 이 ‘역사’가 마음에 든다면,

어디 한번 실컷 구경해주겠다고.


작가의말

드디어 수행자 편이 끝났습니다 짝짝짝.

다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최종보스가 말이 많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자유 연재 전환 안내. +14 19.05.09 3,232 0 -
44 11화. 신의 삶(1) +12 19.10.08 636 46 13쪽
» 10화. 수행자(9) +17 19.08.19 1,103 70 11쪽
42 10화. 수행자(8) +26 19.07.29 1,367 69 12쪽
41 10화. 수행자(7) +26 19.06.08 2,224 118 12쪽
40 10화. 수행자(6) +31 19.05.24 2,745 124 13쪽
39 10화. 수행자(5) +18 19.05.17 2,835 132 9쪽
38 10화. 수행자(4) +16 19.05.12 3,109 145 11쪽
37 10화. 수행자(3) +18 19.05.10 3,415 161 10쪽
36 10화. 수행자(2) +27 19.05.09 3,834 186 12쪽
35 10화. 수행자(1) +13 19.05.08 4,066 168 12쪽
34 9화. 배척자의 삶(6) +16 19.05.07 4,240 184 11쪽
33 9화. 배척자의 삶(5) +23 19.05.05 4,344 186 13쪽
32 9화. 배척자의 삶(4) +5 19.05.05 4,373 167 11쪽
31 9화. 배척자의 삶(3) +12 19.05.04 4,728 183 12쪽
30 9화. 배척자의 삶(2) +8 19.05.03 5,040 187 8쪽
29 9화. 배척자의 삶(1) +13 19.05.02 5,428 196 9쪽
28 8화. 누멘의 왕(4) +43 19.05.01 5,620 221 11쪽
27 8화. 누멘의 왕(3) +38 19.04.30 5,751 238 12쪽
26 8화. 누멘의 왕(2) +23 19.04.29 6,229 234 13쪽
25 8화. 누멘의 왕(1) +37 19.04.28 6,953 280 11쪽
24 7화. 복수자의 삶(3) +19 19.04.27 7,154 227 9쪽
23 7화. 복수자의 삶(2) +11 19.04.23 6,822 233 10쪽
22 7화. 복수자의 삶(1) +9 19.04.22 6,924 216 8쪽
21 6화. 아이작 아시모프(5) +5 19.04.20 7,015 230 8쪽
20 6화. 아이작 아시모프(4) +5 19.04.20 6,866 212 9쪽
19 6화. 아이작 아시모프(3) +3 19.04.19 7,097 208 9쪽
18 6화. 아이작 아시모프(2) +5 19.04.18 7,400 231 14쪽
17 6화. 아이작 아시모프(1) +8 19.04.16 7,798 248 8쪽
16 5화. 누멘의 삶(4) +7 19.04.15 7,664 220 8쪽
15 5화. 누멘의 삶(3) +7 19.04.13 7,672 224 10쪽
14 5화. 누멘의 삶(2) +7 19.04.12 7,739 215 9쪽
13 5화. 누멘의 삶(1) +8 19.04.11 7,961 202 8쪽
12 4화. 행성포식자의 삶(3) +10 19.04.10 8,213 240 7쪽
11 4화. 행성포식자의 삶(2) +5 19.04.09 8,212 229 8쪽
10 4화. 행성포식자의 삶(1) +7 19.04.09 8,666 242 8쪽
9 3화. 하층민(2) +11 19.04.08 9,004 230 16쪽
8 3화. 하층민(1) +15 19.04.06 13,080 289 15쪽
7 2화. 행성의 삶(3) +10 19.04.06 13,342 361 8쪽
6 2화. 행성의 삶(2) +9 19.04.05 13,639 336 7쪽
5 2화. 행성의 삶(1) +17 19.04.04 14,250 353 7쪽
4 1화. 수호신의 삶(3) +16 19.04.04 14,805 358 7쪽
3 1화. 수호신의 삶(2) +9 19.04.03 16,384 357 8쪽
2 1화. 수호신의 삶(1) +11 19.04.03 19,604 352 7쪽
1 프롤로그 +19 19.04.03 21,305 388 3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by아말하'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