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 잡기
메흘린은 탁자 위에 여러 장의 서신을 펼쳐 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로만 울프가의 정규군 5만이 아칸 시티 외곽에 진을 폈다는 보고입니다."
"세이렌의 추종자들이 대거 시몰레이크 후작 쪽으로 돌아섰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아칸의 시민들은 두 왕자의 구출을 멈추고 오크와 전면전을 해야 한다고 성토하고 있습니다."
메흘린은 보고서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엘빈 장로가 오크의 숲에서 대승을 거두고 남하 준비를 한다는 보고입니다."
"테드버드 장로가 일천의 테일리아드 마법사를 호위하고 여정에 올랐다는 보고입니다."
테츠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메흘린의 보고가 끝나자 말을 이었다.
"나는 세이렌이 좀 더 팬텀 가드너의 사람을 이끌 줄 알았더니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문제는 역시 두 왕자 때문이겠지요. 오크는 점점 아칸 시티로 몰려오니 아칸 시티 주민의 불안이 가중되고 오크와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과 어떻게든 두 왕자를 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런 일을 유도한 것은 시몰레이크 후작이 분명합니다. 시몰레이크는 두 왕자를 이용하여 팬텀 가드너를 압박하여 혼란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세이렌은 두 왕자를 구하는 데 너무 집중해서 주변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남편을 구하려는 아내의 심정을 모를 리는 없지만, 그것은 정치와 별개지. 아칸 시민의 목소리를 새겨들을 줄도 알아야 하거늘. 큰 그릇될 여지는 없어 보이는군."
"아직입니까?"
"물론 우리가 나설 이유는 없어. 지금 우리는 세력을 불리는 것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지. 그들의 일에 끼여들 시점은 아니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엠버스피어를 탈환하고 마교의 기반을 다져야 할 시기입니다."
"음, 많은 장로가 잘 해주고 있지 않소? 메흘린 군사도 잠을 아껴 가며 일을 하고 있으니 나라도 손을 걷어붙이고 뭔가 해 줘야 하지 않겠소?"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팬텀 가드너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들은 수백 년을 이어 솔라리스를 다스려온 핏줄입니다. 그들만큼 솔라리스를 잘 아는 가문도 없을뿐더러 훌륭한 치세는 아니더라도 그들 나름대로 백성을 잘 이끌어 왔습니다."
"성황은 충분한 능력이 있으면서 왜 나라를 네 개로 놔두었는지 아시오?"
"제가 어찌 그분의 뜻을 알겠습니까?"
"내가 성황이라면 당장이라도 군사를 아니 칠무신만 보내도 왕가 하나는 그냥 주저 앉힐 수 있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오. 뭔가 이 주신 제국에는 커다란 비밀이 있는 것 같소."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교주님."
"당분간 손을 대지 않기로 합시다. 우리의 목표는 엠버스피어의 탈환이니 일단 그것에만 신경을 써주시오."
"알겠습니다. 교주님."
***
"제시어스 왕자의 시체가 없다고?"
"그렇습니다. 마지막 갱굴 안까지 조사해 봤지만, 왕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썩어 부패하여 잘못 보진 않았고?"
"그곳에서 총 열 여섯 구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모두 성인입니다. 아이는 없습니다."
"분명해졌군. 밤의 자매단을 습격한 놈들은 제시어스 왕자를 노리고 그곳을 습격한 것이다. 그들이 누굴까? 세이렌의 측근들? 아니야 아니야 그녀 곁에 붙어 있는 원숭이들은 그러한 행동을 할 정도의 인재가 없어. 심지어 그곳에 제시어스 왕자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설마? 성황의 끄나풀이?"
프로이시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칸의 모든 주민은 통제되고 있습니다. 흘러들어오는 용병들이나 모험가에 섞여 올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흔적도 없이 일을 치를 만한 존재는 없습니다. 칠무신 중 하나면 모를까. 하지만 어반마르스의 소식통에 의하면 칠무신 모두가 어반마르스에 있는 것은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성황은 우리 일에 절대 개입하지 못해. 신성불가침 조약으로 그는 감옥 안에 갇힌 드래곤이나 마찬가지야."
"한가지 신경 쓰이는 것이 있긴 있습니다."
"그게 뭐지?"
"마교라는 신진 세력에 관한 것입니다."
"마교? 엘드리치를 탈환하고 오크와 싸우고 있다고 알려진 용병 단체가 아니냐?"
"그들의 숨겨진 힘이 조금 이상합니다. 페리신과 암살자들이 엘드리치로 넘어간 것 같은데 엠버스피어 이후로 그들 종적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보원을 파견해라. 엘드리치를 샅샅이 조사해서 그들이 무엇을 벌이고 있는지 알아내라."
"날랜 놈으로 열 명의 인커전을 보내 놨습니다."
"밤의 자매단에서 연락이 온 것이 없느냐? 내 생각에는 그쪽이 우리보다 더 빨리 움직였을 텐데?"
"별다른 소식은 없습니다."
"이상하군 솔라리스 지부가 완전히 괴멸되었는데 조사조차 하지 않을 놈들은 아닐 테고. 혹시 모르니 어반마르스에 연락해서 밤의 자매단 본거지를 직접 방문해 사실 여부를 파악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 그 참에 의뢰하나를 넣어라. 썩은 이가 귀찮으니 이제 좀 뽑아 버려야겠다."
"그녀를 말합니까?"
"그래, 혹시라도 그녀가 제시어스 왕자의 행방을 알고 있으면 그 정보는 덤으로 챙길 수 있으니."
"그럼 지시하신 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선동꾼은 더 동원해서 불안을 더 조장해. 두 왕자를 무시하고 오크와 전면전을 치러야 한다고 아칸 시민들을 자극하고 몰레이그에 전달해 오크를 10km 더 전진시키라 이르고."
"알겠습니다."
"좋은 저녁이 차려 지려 하는데 누가 밥상을 엎어 버리면 곤란해. 그가 오기 전까지 완전히 일을 마무리 지어 놔야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가 있을 거야."
***
엘드리치 성이 내려다보이는 숲 언덕에 다섯 명의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날렵한 차림새에 단단한 신체를 가진 전문 헌터였다. 오랜 행군으로 지쳐 있었지만, 목적지에 이르러 며칠 탐색을 했다.
언덕아랫자리에 있는 성은 손바닥 크기만큼 작아 보였다.
"며칠째 감시하였지만 큰 움직임은 없습니다. 역시 어제 논의했던 바 제일 취약한 부분이 북쪽 언덕을 등지고 있는 성벽입니다. 이곳은 지형이 높이 다른 곳보다 성벽이 훨씬 낮습니다."
"음, 녀석들도 그곳이 취약하다는 것을 알 것인데 왜 다른 곳과 같이 경비를 설까? 나라면 취약한 부분은 더욱 신경 써서 감시할 것인데?"
"이곳에는 오크도 없고 따로 감시할 병력도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원래 머물던 주요 병력은 오크를 토벌하러 오크의 숲으로 갔다는 보고가 있지 않았습니까?"
"이번 명령은 후작님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입을 거치지 않고 우리에게 바로 내려온 지시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지. 우리가 누군가? 최고의 염탐꾼이 아닌가? 의구심이 일이라도 들면 그 의구심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정보를 모은다. 알지?"
"확실히 그 의도를 파악하기 전까지 성안 잠입은 보류다. 성안에 누가 있는지 몇 명이 있는지 무얼 먹고 마시고 싸는지 모든 것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다섯 명의 사내가 그들 뒤 숲에서 나왔다.
"보고해."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비는 해 뜰 녘에 교대하고 저녁에 한 번 교대 그리고 야간 경비가 순찰하고 이렇게 삼 교대로 돌아갑니다. 북쪽 언덕 지역도 똑같습니다. 사흘을 감시했는데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새로운 사람은 파악한 것이 없고?"
"성주는 에미르슨 백작으로 파악되었고 그는 늘 허수아비를 치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한 사람과 소년 한 명이 반대편 연무장에서 훈련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가끔 경비들을 모아 놓고 훈련하는 귀족이 한 명, 성안을 훈시하듯 돌아다니는 한 명이 더 포착됐는데 성주인 에미르슨 까지 그 사람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마교 내에서 서열이 높은 사람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여 시종은 삼십여 명 정도로 파악되고 따로 성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는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리고 오늘 식당 앞뜰에서 뛰어노는 열 살짜리 아이와 다섯 살 정도의 여아가 한 명 목격됐습니다."
"대충 추론해 보면 검술을 연습할 때 모이는 인원이 백 명이 조금 넘습니다. 그들은 항상 2교대로 모이고 경비를 포함하면 대략 추측할 때 성내 인원은 오백 명 정로 예상됩니다."
"좋아, 좀 더 감시의 눈을 높이자. 더 많은 정보를 모아야 해. 스벤 오늘 비둘기는 몇 마리 오고 갔지?"
"성안으로 날아든 놈은 다섯, 다시 날아간 녀석은 일곱"
"잠깐. 너희들 들어올 때 다섯이 오지 않았나?"
"왜 그래? 조금 전에 다섯이 왔잖아?"
"아니야, 내 눈에는 지금 네 명으로 보이는데?"
"어라?"
"어? 정말 아홉인데 한 명 어디로 간 거야?"
"누구지?"
"펠럼? 펠럼이구나. 펠럼이 안 보이는데?"
"이놈 또 똥 싸러 갔나? 항상 이놈이 말썽이네."
"가서 펠럼을 찾아."
그들은 풀숲으로 들어갔다가 한 참 뒤 다시 나왔다.
"너도 못 봤어?"
"이 근처는 죄다 살폈어. 이상하군. 일을 보러 갔다고 해도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을 텐데."
하나둘 헌터가 다시 모였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왔다.
"무슨 일이야? 펠렘 하나를 못 찾아? 놈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거야?"
"가만 이상해 여덟? 또 한 명 누구야? 이우렌, 이우렌은 왜 오지 않는 거지?"
"이우렌은 서쪽 숲으로 가던데?"
"조금만 기다려 보자."
그러나 그들이 한 시간 이상 기다려도 이우렌은 물론 펠렘도 나타나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그들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인커전으로 오랫동안 추적과 암살을 해온 급습대다. 돈보다 사냥과 추적을 더 좋아하는 정보의 귀재들 그들이 인커전이다.
"흩어지지 마라. 절대 흩어지지 마. 뭔가 이상해. 모두 같이 움직인다. 절대 떨어지지 마라. 이우렌이 서쪽 숲으로 갔다고? 같이 뭉쳐 먼저 서쪽 숲으로 간다. 이우렌이 움직이면서 흔적을 만들어 놓았을 테니 그것을 따라간다."
인커전은 특화된 그룹이다. 암살자와는 다르다. 암살자는 말 그대로 대상을 죽이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지만 인커전은 암살이 아니라 정보 수집이 그 목적이다. 대상이 정해지면 그 대상이 무엇을 하고 어떤 인과관계를 맺고 있는지 대상이 접하고 있는 모든 주변 환경을 완벽할 정도로 철저하게 분석해 내는 정보의 대가들이다.
그들은 이우렌이 만들어 놓은 흔적을 따라 숲을 헤집었다.
"여기까지군. 잘 들어 주변을 잘 살펴 어떤 흔적이라도 좋으니 찾아내. 이우렌의 흔적은 여기서 끊어졌어."
"어이, 시렌체 이상해 마우린이 보이지 않아."
"뭐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게 내 뒤에 마지막으로 따라 왔는데 이곳에 도착하고 뒤를 돌아보니 그가 없어져 버렸어."
"뭉쳐 빨리 뭉쳐. 등을 맞대고 뭉쳐."
그들은 검을 뽑아 들고 등을 맞대고 뭉쳤다. 일곱.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세 명.
"이 숲에 뭔가 있어. 제길 우리가 사냥감이 된 거야. 놈은 우리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는 거야."
"그럴 리가? 나는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했어. 인간이라면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어. 내 뒤에 바짝 붙어 왔던 마우린이 소리도 없이 사라질 이유가 없잖아? 우리는 무엇에 홀린 거야. 이 숲에 저주가 내린 것이?"
"헛소리 집어치워. 우리는 고립됐다. 놈은 분명 우리를 보고 있을 거야."
"시렌체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 있을 수는 없잖아?"
"내 말 잘 들어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들킨 이상 이곳에서 암약은 불가능하다. 이 숲을 빠져나와 후퇴한다. 절대 서로에게 눈을 떼지 말고 움직인다. 알겠지?"
시렌체는 선두에 서서 자신의 키보다 큰 잡목 숲속으로 일부러 몸을 숨겼다.
"상대의 등에서 눈을 떼지 말고 맨 마지막은 얀 네가 맡아. 빨리 이곳을 벗어난다."
한동안 움직이던 시렌체는 잠시 멈추고 말했다.
"하나."
"둘"
"셋"
그러나 넷이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네 번째 누구야? 요튼! 요튼!"
"제기랄 요튼이 보이지 않는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렇게 지척으로 붙어 움직이는데도 사람이 사라질 수가 있다니 그것도 인커전인 자신들의 눈앞에서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여섯이다.
"이 숲은 저주받았다니까? 사람이 하는 짓이 아니지 이건."
인커전의 리더 시렌체도 당황스러웠다. 눈 깜짝할 사이 동료가 증발해 버리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서로의 허리띠를 풀어 연결해. 손에 감고 나간다. 알겠지? 움직이면서 줄을 당겨 신호해 가며 전진한다. 수풀이 우거져서 잠시 틈을 놓칠 수 있으니 조심해."
울창한 숲은 대낮이라도 그늘이 져 어둡다.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이곳은 사냥꾼이나 벌목꾼도 숲의 한가운데까지는 거의 오지 않는다.
다시 인원 점검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기겁했다. 둘째와 네 번째 줄이 묶여 있는 상태였고 세 번째 사람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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