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201)
침묵의 숲 대혈전
세렌의 공격이 계속 댔다. 날렵한 몸놀림으로 불사왕의 주변을 어지럽게 돌았다. 그리고 대시. 불사왕은 간단하게 세렌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리고는 무지막지하게 검을 휘둘렀다.
주변의 초목과 땅거죽이 모두 들고 일어나며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단지 검 한번 휘두른 것에 비해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세렌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보통의 기사들은 불사왕의 위력을 경험하게 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전투 의지를 상실해 버린다.
칠무신은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경지를 이미 넘어선 자들이다. 인간의 입장으로 보면 이미 전신의 경지에 다다른 인물이다.
불사왕의 표정도 덤덤했다. 확실히 세렌의 공격은 가공했다. 평범한 기사의 움직임은 이미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이것뿐이 아님을 안다. 진정한 힘을 사용해라. 시간이 많지 않다."
세렌의 정보는 이미 누구를 통해 전해져도 전해졌을 것이다. 마족을 간단히 제압하는 실력이며 메흘린이나 레베카는 이미 세렌이 성력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그러한 사실은 어반마르스에 보고되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불사왕은 세렌의 공격에 적지 않게 기분이 상해 버린 상태였다.
"멈춰라. 우리 싸움에 괜한 내 애매가 다치는 것은 원치 않아."
세렌은 검을 멈추고 물러났다.
불사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서 내렸다. 그가 말 엉덩이를 툭 치자 투레질을 한번 하더니 그대로 달려 나갔다.
"나를 막아서 시간을 벌겠다는 것은 아니군. 그들은 이미 탈출 했겠지···. 네가 남은 것은 오롯이 자신의 검을 시험해 보고 싶은 하찮은 욕구 때문이 아니냐?"
세렌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한가지 빠뜨린 것이 있습니다. 그분의 명령이 없었다면 당연히 할수 없는 일이지요."
"말 잘 듣는 개가 되었구나."
"개는 개끼리 통하는 법이죠. 둘 다 주인을 위해 싸우는 투견이 아닙니까?"
세렌의 말에 처음으로 불사왕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태자 전하에 밑에 있다고 건방까지 늘었구나."
"조심하십시오. 옛날의 강아지가 아닐 겁니다."
"이빨을 얼마나 갈았는지 한번 보자."
-팟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렌은 천마비행으로 바닥을 찼다. 조금 전 대시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순간 불사왕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사성의 내공에 이미 자하 신공까지 끌어 올린 상태였다.
불사왕은 급히 검을 비스듬히 세워 방어 자세를 취했다.
눈앞에서 세렌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불사왕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면 방어가 비약적으로 허술해진다. 허공에서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이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불사왕의 검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검에 성력을 담았다는 증거다. 세렌 또한 불사왕의 검이 불꽃을 일으키며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세렌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흘렀다.
불사왕은 아래에서 위로 검을 치켜들었다. 매우 간단한 동작. 그 동작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적수가 없었다.
세렌의 바이올렛이 긴 검음을 토해 냈다. 천마수라검의 일식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불사왕의 검기를 뱀처럼 휘감았다.
-촤라라락
바이올렛의 그림자가 수십, 수백이 되어 꽃이 만개하듯 잎사귀를 활짝 펼쳤다. 단순하게 검을 휘두른 불사왕의 검과는 사뭇 다른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검이었다.
-파파팍
-캉
불사왕의 발치 주변의 흙더미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단 한 번의 격돌.
불사왕의 상체에 붉은 실선이 여러 군데 그어졌다.
"한때 모셨던 분이라 예를 다한 것으로 알아주십시오."
불사왕 모건의 눈에서 불길이 확 일었다. 그의 파이어 소드가 왜 파이어 소드인지 알 정도로 불길이 뿜어졌다. 주변의 식물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좋은 검술이다. 대단했다. 대단했어. 늘 궁금하게 생각했다. 도대체 태자 전하는 어디서 그런 검술을 배우고 또 어떻게 가르칠 수가 있는지를···."
"이것은 검술이 아닙니다. 검의 법. 검법이라고 합니다. 술의 차원을 넘어선 경지에 오른 검의 진정한 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내가 펼치는 것은 검술이고 네가 펼치는 것은 검법이라는 말이냐?"
"바로 그렇습니다. 술은 법의 예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불사왕 모건의 입꼬리가 실룩했다.
"그 말은 내가 너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냐?"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너를 죽일 마음은 없다. 태자 전하가 슬퍼할 일은 되도록 하지 말라는 성황의 명령이 있으셨다."
"후후, 그럼 한결 마음이 놓이는군요."
"하지만 검에는 눈이 없으니···. 그 건방진 입만큼 실력을 보인다면 네 목은 당분간 붙여 두마."
세렌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불사왕 모건이 정말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검이 더는 타오를 수 없을 만큼 벌겋게 변했다. 용광로에서 갓 꺼낸 검처럼 샛노랗게 변했다. 그 열기가 그대로 전해질 만큼 뜨거웠다.
주변의 공기가 데워지며 아지랑이를 일으켰다.
방금 천마수라검으로 불사왕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불사왕이 제힘을 다하지 않았기에 세렌은 손에 사정을 두었다.
불사왕도 세렌의 검법에 적지 않게 놀랐다. 아무리 찰나의 순간이라고 하나 자신은 칠무신이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세렌의 검식에 순간 당황하여 어떻게 방어를 해야 할지 감조차 잡기 못했기 때문이다.
불사왕은 세렌의 검법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수많은 나비 떼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비를 잡으려면 단번에 불태워 버리면 간단히 끝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세렌이 이미 성력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성력의 사용자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었다. 세렌은 자신의 부하로 1분대 돌격대 소속이었다.
그때만 해도 세렌의 검은 평범한 기사 중에서 최상급에 속할지는 몰라도 소드 마스터 정도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금의 움직임과 검법은 확실히 이전의 세렌과는 비교 대상이 아님을 직감했다.
대충 기분 맞춰 놀아주는 것이 아닌 같은 칠무신과 죽음을 놓고 대결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후아!"
불사왕 모건은 크게 심호흡하며 과한 양의 공기를 흡입했다.
세렌은 그 장면을 수도 없이 봐왔다. 오크와의 전투 때도 선두에 선 불사왕의 근처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그것에 휘말리면 적도 아군도 끝이다. 불사왕의 검은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오직 잿더미가 된 알수 없는 무엇일 뿐.
"크흡"
세렌의 입에서 단내가 토해졌다. 주변은 뜨거운 열기가 갇힌 가마솥 안 같았다. 아무리 천마비행이 빠르고 날렵해도 전방위를 폭풍처럼 휘감아 도는 불사왕의 화기는 두려울 정도였다.
스치기만 해도 연약한 피부는 비명과 함께 금방 쪼그라들 것이다. 불사왕의 공격은 광범위 화염 공격이었다. 어중간한 경공으로는 그에게 접근조차 하기 힘들었다.
세렌은 불사왕이 성력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은 딱 두 번뿐이었다. 수백의 오크를 일 검 한꺼번에 불태울 때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처럼 영웅 한 명이 절정의 무력을 선보이면 아군의 사기를 하늘을 찔렀고 반대로 적군은 두려움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자하 신공의 자색 기류는 불사왕의 화기를 차단했다. 뜨겁게 데워진 공기도 자하 신공의 자기에 닿으면 금세 차갑게 식었다. 자하 기류 속의 공기는 오히려 차가웠다.
불사왕의 화기가 다시 덮쳐 왔을 때 세렌은 허공으로 다시 신형을 솟구쳤다. 전방위 불길을 뿜어내더라도 하늘 위로는 불길을 뿜어 낼 수 없었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천마수라검을 펼쳤다. 4성 내공의 천마수라검이 무자비하게 불사왕을 덮쳤다.
"비켯!"
불사왕의 검붉은 화염이 화산이 폭발하듯 분출되었다. 불기둥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고 떨어져 내리던 세렌의 몸을 집어삼켰다.
"큿."
격전 속에서 짧은 신음이 잠깐 터졌다가 바람에 실려 가듯 사라져갔다.
두 사람의 대결로 이미 커다란 공터가 생겼고 때아닌 바람결은 바짝 마른 부엽토를 태우며 거대한 불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초봄의 건조함은 최고의 장작이었다.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주변을 용광로처럼 달구었다.
세렌은 옷자락에 붙은 불을 끌 생각도 못 하고 한 곳을 주시했다.
불사왕 모건의 왼 팔뚝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불사왕의 불길을 뚫고 검기를 찔러 넣은 것이다.
"불부터 꺼라."
그 말에 세렌은 몸에 붙은 불을 껐다.
불사왕은 아주 차분한 음성이었다.
"근래 내 놈에 상처를 입힌 사람은 성황 다음으로 네가 처음이군."
팔뚝은 생각보다 깊게 베였고 살점이 입을 쩍 벌리고 붉은 피를 계속 토해냈다.
그의 검은 식어 있었고 더는 불길을 토해내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만 하지. 재미있게 놀지 않았나?"
불사왕은 길게 휘파람을 불었고 불길을 뚫고 흰 백마 한 마리가 날 듯이 뛰어 들어왔다. 불사왕은 천천히 백마에 올라 세렌을 한번 힐긋 보고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짓고는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세렌은 불사왕이 완전히 사라지자 휘청거리며 검붉은 피를 한 사발 토해냈다.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이다.
주변은 불길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세렌은 내공을 추스르고 포탈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포탈이 있는 곳에 왔을 때 이미 이곳도 난장판이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말 한 마리 그리고 그 말 옆에는 거인 한 명이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상대는 리치와 해골들
세렌은 보통 말의 두 배나 되는 크기의 말을 보면서 그가 야생왕임을 직감했다. 칠무신이 솔라리스로 넘어온 것은 이미 이곳의 모든 적은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레번은 기이한 괴성을 지르며 다이어 울프를 소환해 냈다.
야생왕이 휘두르는 채찍에 닿는 것은 모조리 터져 나갔다.
레번이 쏟아내는 사령은 아예 야생왕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지독한 사기를 뿜어내는 리치조차 야생왕이 휘두르는 채찍 한 방에 터져 나갔다. 세렌은 바이올렛을 뽑아 들고 야생왕에게 신형을 날렸다.
그때 그녀의 앞으로 다이어 올프 한 마리가 막아섰다. 신형을 멈춘 세렌은 레번을 바라봤는데 그는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세렌은 레번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잽싸게 포탈로 뛰었다. 포탈이 막 빛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세렌이 포탈 안으로 뛰어들자 포탈은 밝을 빛을 뿜어내고는 활짝 타올랐다가 꺼졌다. 그 순간 야생왕의 채찍이 레번의 몸체를 터뜨려 버렸다.
레번이 쓰러지자 모든 사령이 공기 중으로 녹듯이 흩날리며 사라져 버렸다.
***
동탑의 마법사들은 모두 뒷걸음치며 길을 텄다.
시커먼 망토에 거대한 낫을 등에 멘 사내와 온몸 전부를 검은 천으로 칭칭 동여맸고 심지어 그의 피부와 눈동자까지 검은 사람이다. 그의 등에는 두 자루의 쌍검이 교차로 매여 있었는데 손 자루와 검집 또한 짙은 검은빛을 뿜어냈다. 두 자루 검의 디자인은 달랐으나 둘 다 암흑보다 더 짙은 암무를 뿜어냈다.
거대한 낫을 맨 사내는 이미 마교인들이 본 적이 있는 바로 칠무신의 가장 큰형이자 첫째인 사신왕 제럴드 발루아였고 거대한 낫은 그의 애병기 그림리퍼다.
온몸이 시커먼 사내는 처음으로 어반 마르스를 벗어난 칠무신 중 한명인 흑집사 로저스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로 레베카가 차분한 걸음으로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모습은 여느 때와는 다른 다소 경직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의 등장에 마법사들은 아마도 그들 근처에 가거나 뭐라고 말을 붙이는 사람도 없었다.
동탑은 대현자 아리스토틀을 생각해 기본적으로 예를 취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심지어 교주도 동탑을 방문할 때는 빈손으로 오지 않을 정도였지만 이 두 칠무신은 아무런 감정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곧 수련의 방으로 올라갔다. 두 사람은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있는 테츠 앞에 서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첫째 사신왕 제럴드 발루아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둘째 흑집사 로저스 오리언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구체 안의 테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레베카는 짧은 한숨을 쉬며 앞으로 나섰다.
"올해가 차기 황제 지명식 마지막 해입니다. 올해를 넘기면 곤란하기에 되도록 이런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려 했으나 성황의 엄명이기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나와 의논 한마디 없이 멋대로 행동한 그 사실 하나만으로 너와의 모든 인연은 이것으로 끝인 것을 알아라."
레베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서글픔이 담겨 있었지만 애써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소녀 처음부터 말씀드렸습니다. 성황의 명령이 우선이기에 그분의 명령을 어긴다는 생각은 절대 할 수 없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그럼 성황이 나를 속이면서까지 더러운 계획을 추진하라 했느냐?"
"모든 것은 그분의 뜻이니 속하는 따를 수밖에 없음을···."
"닥쳐라. 내 수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다. 강제로 나를 끄집어내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다."
사신왕은 잠시 고개를 들어 테츠를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잠시 태자 전하께서 마음을 다잡으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만. 성황께서 명령하시면 차원의 수련 장소 그대로 어반마르스로 모실 것입니다."
"더는 방해하지 말고 물러가라."
"그리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뒷걸음으로 수련의 방을 나왔다.
"지금부터 우리 두 사람이 이곳에서 경비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절대 접근을 못 하도록 조치해 주십시오."
"허허, 이 늙은이가 무슨 힘이 있겠소. 그리 부탁하니 그리 하겠소 만은 전하께 드릴 음식은 내 친히 가져다드려도 괜찮겠소?"
"그건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대현자꼐서 그리해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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