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탄환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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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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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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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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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33화. 신문지 영웅.

DUMMY

다음날, 자유를 되찾은 브레본이었지만, 마냥 기뻐하는 이만 있지는 않았다. 당시 베넷, 조이, 로건의 각 조에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지원을 했었고, 그에 따라 상단 인물과 마을 사람도 조이의 조에 속해 있었다. 사망자가 있었기에 그 날은 그들의 무덤을 만들어주고, 명복을 빌어주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 중 그리펠로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일은 다름 아닌 네이슨의 행동이었다. 이곳 브레본에 오기 전, 츠반이라는 자에게 된통 당했건만, 지금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행동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유일하게 내 그림의 진가를 알아봐준 팬이었어..."


하고 중얼거리는 말에 그리펠로는 더더욱 아리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의 진가를 알아봐주었다? 저 네이슨의 그림을? 어렸을 적부터 워낙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에 줄곧 그림을 그려 보여주곤 했었던 네이슨이었기에 그리펠로는 그의 그림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네이슨은 풍경 같은 그림을 그리는 데는 매우 뛰어나지만, 그에 비해 움직이는 생물을 그리는 것은 영 형편없었다. 혹시나 풍경 그림을 선물한 건가? 싶었지만, 이어진 네이슨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도 아닌 듯했다.


"자신의 모습 그려준 걸 어쩜 그렇게 기뻐하던지..."


"......"


그리펠로는 눈을 끔뻑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네이슨을 바라봤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발로 그린 게 더 나을 정도로 생물 그리는 것은 형편없던 네 그림이 말이야?' 하고 되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네이슨의 진심 어린 슬픈 표정과 분위기에 차마 무어라 말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죽은 이들의 장례식이 끝나고서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서야 그리펠로는 네이슨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들을 수 있었다.


"...좋은 녀석이었구나."


등이며 머리며 그렇게 폭행을 당했다는데, 살아남는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했다. 그런데 듣고 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퍼넌이라는 자나, 커리스와 제프라는 놈들은 어디 있는 걸까? 생각해보니 항복한 도적들 중에서 그 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들의 거주지로 가서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옷을 되찾았을 때까지도, 도적들이 죄인처럼 상단 사람들에게 연행되어 갈 때에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네이슨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혹시 조이 아저씨의 조와 싸우는 측에 포함되어 있었어서 죽은 게 아닐까? 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었지만, 네이슨은 그 둘은 도망쳤다고 하지 않은가?


퍼넌에 대해서는 아예 얘기조차 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에 대해 물어보려던 찰나, 네이슨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리고 그 말에 그리펠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펠로. 나한테도 좀 알려줘라. 총 쏘는 거."


"뭐어어어어어?"


돌연 그리펠로의 얼굴이 심각해지더니 "혹시 너 어디 아프니?" 하고 물으면서 네이슨의 이마에 손을 대보기도 하고, 그의 좌, 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그의 몸을 면밀히 살펴보기도 하는 등, 혹여 상처가 있어서 정신적 충격이라도 받은 것인지 확인해보았다.


마지막으로 혹시나 머리를 잘못 부딪히기라도 한 건 아닌가 싶어서 머리까지 확인해보려던 찰나, 네이슨이 대꾸했다.


"안 아프니까 적당히 좀 해라."


"그, 그럼 네가 웬 일이야?"


그리펠로가 두 보라색 눈을 끔뻑였다. 그도 그럴 것이, 네이슨은 유독 총을 싫어했었다. 아니, 싫어함을 넘어 혐오하는 것처럼 보였다. 행여나 너도 한 번 쏴볼래? 하며 장난감 총이라도 건넸을 때는 "나까지 총을 잡도록 인도 하지 마!" 라고 버럭 소리 지를 정도였다.


총잡이들 같은 버릇없고 야만스런 인간들이나 총을 쏘는 거고, 그런 야만인이 되려 하는 애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며 항상 총을 거부한 인간이 바로 네이슨이었다.


항상 장난감 총으로라도 총잡이 흉내를 내는 애들을 보면서 애늙은이처럼 저러고 싶을까? 하고 쯧쯧 혀를 차지 않나, 자연스럽게 애들 사이에서 따를 당한 주제에 야만인이 되려는 애들이랑 왜 어울려야 하냐면서 마치 자신이 무시한다는 듯한 행동을 보였던 이가 네이슨이라는 인간이었다.


반면에 어른들에겐 가장 이쁨 받는 아이기도 해서 왕재수도 이런 왕재수가 없었던 놈이었건만, 아무튼 그렇듯 총이라면 질색을 하던 녀석이 지금 총 쏘는 법을 알려 달랜다.


"...배워야 하겠더라고. 지키기 위해서라도."


문득 제 손을 보며 그렇게 말하는 네이슨의 모습은 역시 매우 진중해보였다. 자고로 남을 지키기 위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사는 그 어떤 것이라도 멋져 보이는 법이라고, 지금 이 순간 그리펠로는 네이슨이 멋있게 보였다.


원래도 애어른 느낌을 풍기기도 했지만, 마치 조금 더 성장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뒤이어 덧붙인 말에 모처럼 멋있어 보였던 분위기가 찬 물을 끼얹듯 깨져버렸다.


"내 팬을 위해!"


"허이구, 잘났다 그래."


그래도 화륵- 타오르는 두 하늘색 눈을 보니, 굳게 마음먹었다는 것이 그리펠로 자신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여서 그도 그 이상 뭐라 말을 하진 않았다.


"좋아, 총 쏘는 법만 알려주면 되는 거지? 사실, 그거야 알려줄 것도 뭣도 없지만..."


"아니."


즉각 나오는 아니라는 대답에 그리펠로가 응? 하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조립과 분해부터 알려줘."


"...!"


그러고 보면 자신 또한 총 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우선 총기의 조립과 분해 방법부터 배웠었다. 그러면서 직접 총기의 구조를 머리가 아닌 손으로 익혔었다.


처음에는 왜 쏘는 법은 안 알려주고 엉뚱한 걸 알려 주냐며 투덜거렸었는데,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고장 날 수 있다는 걸 안 뒤부터는 그 소리가 쏙 들어가 버렸었다. 문득 네이슨은 총잡이도 아니면서 왜 조립과 분해부터 배우려 할까? 생각이 들은 그리펠로가 넌지시 물었다.


"그건 왜?"


"왜긴, 해당 무기를 사용하기 전에 그 무기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사용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아냐?"


...자신보다 훨씬 더 나은 것 같은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묘하게 자괴감을 느끼는 그리펠로였다.


"그보다 넌 벌써 그렇게 움직여대도 되는 거냐? 어제 보니까 상처 엄청 심한 것 같던데."


걸음을 옮기며 네이슨이 툭 던진 말이었다. 신문지로 가려진 몸에서 신문지를 치웠을 때, 그리펠로의 상처가 뒤늦게 드러났었다. 팔, 가슴은 물론 옆구리에 등까지 심하게 베였던 그 모습이 네이슨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호오? 짜식, 걱정해주는 거냐? 내가 누구냐? 치료가 예전에 끝났는데 설마 아직도 집 안에 박혀서 끙끙거리고 있을라고."


다소 우쭐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모습에 미간을 가늘게 좁힌 네이슨이 시험 삼아 툭! 그의 상처부위를 건드려보았다.


"악!"


짧은 비명을 내뱉은 그리펠로가 즉각 두다다 네이슨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에 네이슨이 피식- 웃었다.


"그게 쉽게 괜찮아 질 리가 없지."


"으... 이래보여도 움직이는 덴 아무 이상 없거든?"


"그래, 그래. 그러니까 나한테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얘기하는 네이슨의 표정이 어쩐지 얄미워 보여서 그리펠로가 불만스레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네이슨이 그리펠로에게 총기 조립과 분해를 배우는 동안, 마을 사람들도 저마다 할 일을 하였다.


그 중에는 베넷, 조이, 로건 등에게 네이슨처럼 총기 사용법을 익히고자 하는 이도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익히고자 모인 이들은 대부분 총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 할 줄 알더라도 조립 방법이나 구조 등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아울러 격투술을 알려 달라 청하는 이도 있었다. 도적 무리에게 한 동안 지배되면서 스스로들 모두가 각자 본인을 지킬 힘이 있어야 함을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브레본 마을보다 먼저 사람들 개개인이 변화를 맞이하는 동안, 마구간에서 말 세 마리가 없어졌음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마구간 지기와 관리자가 뒤늦게 눈치를 챘을 때에는 이미 말 세 마리를 훔친 이들이 멀리까지 도망친 뒤였다. 그 세 사람이란, 다름 아닌 커리스와 제프, 그리고 퍼넌이었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지?"


커리스가 앞에서 말을 모는 퍼넌에게 물었다.


"일단은 프림 로젠으로 가야겠지."


그러자 고개를 절레- 저으면서 제프가 말을 꺼냈다.


"참 영악하군, 처음부터 연발총만 가지는 대로 배신할 생각이었다니..."


그러면서 제프는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유일하게 도망치는 데에 성공했던 두 사람은 사실 상 발각되는 것 역시 시간문제인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퍼넌이 숨겨주지 않았다면 아마 둘 역시 분명 많은 사람들 앞에 항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사실, 숨어 다닌 것이 아니라 돌아다녔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었다. 실제로 퍼넌은 숨기는커녕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왔으니까. 설령 들켰어도 도적들에게 당해서 얼굴이 흉측해졌다. 그래서 못 보여준다고 말하며 뻔뻔하게 베건 사람들 중 한 명인 척 연기하기까지 했다.


"...사기꾼..."


"위선자..."


"배신자..."


커리스와 제프가 서로 번갈아가며 조그맣게 중얼거리기 시작했지만, 퍼넌은 개의치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너희도 배신자 아닌가?"


"우, 우린 명령 지키다 말고 딴 짓한 것뿐이지... 엄연히 배신은 아니라고?"


"결국 나랑 같이 왔으니 함께 배신자인 거다."


제프가 더듬거리며 대꾸하자, 퍼넌이 비릿하게 웃으며 그렇게 쐐기를 박았다.


"그래, 그래 어차피 너 아니었음 우리도 죽거나 항복해서 그 상단에서 뼈 빠지게 노예 생활 했어야 했을 테니까..."


커리스가 투덜거리듯 얘기한 이후부터는 서로 간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커리스와 제프 두 사람은 적어도 확실히 퍼넌에게 목숨을 빚진 셈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퍼넌의 같이 가지 않겠냐는 말에 군말 없이 따른 것이었다.


아니,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싫어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브레본 마을에 남아 있을 순 없었으니까. 처음에 제프는 퍼넌이 상처 치료부터 도와달라고 하자, 그를 도와주면 빚진 것을 갚은 셈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동료 도적들이 어떻게 되는 지 보고난 후에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적어도 두 사람은 목숨의 은혜도 모르고 져버릴 정도로 쓰레기 같은 인성은 아니었다. 남을 해치는 것과 제 목숨 지켜진 것은 별개였다. 그렇게 세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브레본을 떠나 프림 로젠으로 향했다.


프림 로젠으로 향하는 퍼넌의 허리춤에는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홀스터가 자리해 있었고, 그는 잠시 그 홀스터에 손을 가져갔다.


'다음은 힘의 탄환이다.'

속으로 중얼거리는 퍼넌의 두 적갈색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   ‡   ‡   ‡   ‡



당연하게도 브레본에서 더 이상 총잡이들을 차별하는 점 역시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제니가 그리펠로가 없었다면 무기를 훔칠 수 없었을 거라 얘기하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그가 폭탄을 가지고 왔기에 상대적으로 별다른 피해 없이 도적들을 몰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까지 저항하던 프라빌과 일부 그의 부하들을 생각해봤을 때, 폭탄이 없었다면 지지는 않더라도 마을 측도 베건 측도 사망자가 더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애초에 그리펠로 덕분에 로건이 연발총도 되찾을 수 있었고 말이다. 사람들은 거주지이자 본거지를 지키던 올빼미 감시원들을 모두 그가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들에겐 은인인 셈이었다.


그리펠로가 자기들끼리 서로 싸워서 운 좋게 이긴 거라고 솔직하게 얘기했지만, 어쨌거나 가장 골치이기도 했던 올빼미 감시원을 처리했으니 큰일을 해낸 거라며 상단과 마을 사람들에게 칭찬과 동시에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아울러 그는 얼마 없는 아이들에게 역시 어떻게 해서 살아남았고 어떻게 이긴 거냐며 질문 공세를 수차례 받아야 하기도 했다. 비단 그 뿐만 아니라, 함께 온 일행인 네이슨 역시 플린과 더크의 증언에 따라 칭찬과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밖에도 첫 팬이 죽은 것에 대한 심심찮은 위로를 받았다. 이 모든 것이 대충 오늘 네이슨에게 총기 조립과 분해 방법을 알려준 이후에 뒤늦게 서야 일어난 일이니 그리펠로나 네이슨이나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의외로 꽤 친해진 마을 사람까지 생겼는데, 그는 바로 케빈이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도와줘서 고맙다 전했고, 아울러 도적들이 두려워 가능한 빨리 내보내려 했었던 일까지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그 뒤, 제니의 과거와 대략적인 속사정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속사정이란 다음과 같았다.


제니는 마을 사람과 함께 농삿 일을 하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로 일하시던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함께 있던 4인 가족이었다. 제니의 아버지 로렌스는 스스로 몸을 지키기 위해 총을 익힌 총잡이이기도 했는데, 떠돌아다니다가 제니의 어머니인 벨리아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로렌스는 이번처럼 도적이나 무법자가 올 때마다 선뜻 나서서 마을 사람을 지켜주기도 해서 상당히 신뢰를 받던 사람이었으나, 반년 전 한 도적 무리가 쳐들어오면서 무참하게 가족까지 살해당했다고 한다. 벨리아가 제니만은 지키기 위해 가족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었다는 사실과, 케빈이 마치 아버지인 양 행동했었다는 이야기까지...


거기에 가족들 모두가 총에 당해서인지 총을 꺼려한다는 말까지 듣게 되자 그리펠로는 새삼 자신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자신 또한 총을 무척이나 싫어했었으니까.


아무튼 그제 서야 그리펠로는 모든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마치 부모님이 케빈이 아닌 것처럼 중얼거렸던 것부터 시작해서, 도적들을 유독 증오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습. 또한 총을 꺼려한다는 말로 보아, 무기고에서 보다 가벼웠을 총보다도 토마호크를 가져가려 한 것도 어쩌면 총이 꺼려져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곧 씩, 웃은 그리펠로가 제니는 좋은 아이라며 제니에게도 꼭 좋은 아빠가 되어달라는 말을 남긴 후, 케빈의 집에서 나왔다. 마을 아주머니끼리 수다를 떠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밝은 모습으로 농사일을 하는 사람, 그간 제니, 플린, 더크 외에는 보이지 않던 몇몇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 등. 활기찬 풍경이 보였다.


...한쪽에서 술을 마시고 술을 뿌리며 춤을 추는 오드도... 저 영감님은 자유를 찾기 전이나 후나 그닥 변함이 없는 것 같네...


"이리 내라잉! 내 축하를 해주겠다 아이가!"


술 좀 그만 뿌리라고 말리는 청년에게서 축하해주겠다며 도로 술병을 가져오는 오드를 잠깐 응시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여하간 처음 브레본에 들어섰을 때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들.


괜히 돌아다녔다가 도적들 개개인에게 빼앗긴다든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한 대 얻어맞는다든가 식으로 부당한 일을 많이 당한 마을 사람들은 선뜻 밝은 모습조차 보일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마을을 돌아보던 차, 문득 그리펠로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마을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로건이었다. 그리펠로는 즉시 로건에게 다가갔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이야기가 막 끝난 듯 서로 악수를 할 때 즈음 그리펠로가 끼어들었다.


"로건 아저씨!"


부름에 로건은 물론, 그와 대화하던 상대도 뒤를 돌아봤다. 대화하던 이는 그리펠로를 보더니 작게 미소 짓고는 그럼 그 때 보자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리펠로로군. 벌써 움직여도 되는가?"


"에이, 어차피 치료는 어제 다 끝났는걸요."


약 바르고 붕대 감는 순간까지 내내 아프긴 했지만... 뒷말은 속으로 삼킨 채,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그리펠로였다.


"그런가? 그럼 다행이지만... 무리하지 말고 조금 더 안정을 취하게."


몸에 옷처럼 입고 붙였던 신문지를 치웠을 때 생각보다 상처가 심해보였었다. 그랬기에 불과 어제 막 치료를 끝마쳤음에도 괜찮다며 돌아다니는 그가 걱정이 안 될 리는 만무했다.


오지랖이라 치부하기엔 이미 그에게 해방의 은혜를 입은 셈이었으니까. 만약 그리펠로가 본부에서 그 4명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분명 반기를 들었던 자신들 측의 피해도 막심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에이, 그래도 아예 안 움직일 순 없죠. 그래도 감사합니다."


로건의 말 속에서 내심 자신을 향한 걱정을 느낀 그리펠로가 꾸벅 고개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빙그레 미소 지은 로건이 곧 물음을 꺼낸다.


"그보다 나는 왜 찾아왔나? 무슨 일 있는가?"


무슨 일 없다는 것 정돈 알면서도 짐짓 그렇게 묻는 그의 물음에 그리펠로가 웃으며 답한다.


"일은요 무슨, 굳이 있다면 네이슨 녀석이 총을 익히려 한다는 것 정도려나요?"


"하핫, 아마 네이슨만 익히려고 하는 건 아닐 걸세. 최근 빈 집 중 하나를 새로 확장 공사하는 거 못 봤나?"


"아, 지나가면서 본 것 같아요."


로건이 웃으며 설명한다.


"아예 전문적으로 가르칠 건물로 만들려고 하네."


"헤에, 다른 사람들도 배우려 한다는 걸 듣긴 했는데, 이젠 아예 따로 가르치는 곳까지 만드는 건가요?"


"그렇지. 자네도 한 번 알려 줘 보겠나?"


넌지시 묻는 로건의 말에 그리펠로가 손사래를 쳤다.


"가르치는 일은 무슨요! 안 그래도 조만간 떠날 예정인걸요."


"그래? 오늘 저녁부터 이틀간 축제가 있는데, 하다못해 축제는 즐기고 가지 그러나? 상처가 심했는데, 푹 쉬기도 할 겸 말일세."


"핫하, 안 그래도 하루 정도는 더 있다가 갈 겁니다. 네이슨도 그러길 원했고요."


그러면서 잠시 그리펠로는 네이슨이 한 말을 떠올렸다.


"그리펠로, 이왕 여기 생각보다 머물게 된 거 축제 하루만 즐기고 가자. 듣자하니 너도 조금 더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쉬기도 할 겸 말이야 응?"


"그야 그런데...네가 축제를 그렇게 좋아했던가?"


오제론에서도 축제를 열었을 때 네이슨이 참여한 모습은 정작 본 적이 드물었던 그리펠로였던 지라, 축제를 즐기고 가자. 라는 말에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에 네이슨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아, 그릴 게 좀 있는데...그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거든. 그래서 네가 좀 기다려달라고."


마치 부탁하는 어조였다. 상당히 독립적이어서 남에게 뭔가 부탁하는 일도 드물었던 네이슨이기도 했고, 진지해 보이는 네이슨의 눈에 그리펠로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지금도 생각하면 여전히 얼떨떨했지만, 그렇게 진지했으니 분명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흐음, 하루, 이틀 만에 괜찮아질 상처는 아니어 보이던데?"


"살만 베인 것뿐인데요 뭐. 그리고 너무 오래 쉬면 좀이 쑤셔서 못 참아요."


씨익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자, 로건이 뭐, 본인이 괜찮다면야... 하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보다, 로건 아저씨는 앞으로 어쩌실 건가요?"


그 물음에 로건이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순수히 궁금해 하는듯한 그리펠로의 눈을 보곤 피식 웃고는, 대답한다.


"일단 당분간 여기 머물면서 인원을 보충할 생각이네. 알다시피... 보통 사람들은 안전하게 마을에 있으려만 하지, 사막을 돌아다니려 하지 않아서 인원 모으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


하긴, 하며 고개를 주억이는 그리펠로의 귓가로 연이어 로건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마을의 대표 상단은 아니지만, 이곳과도 자주 교류해볼 생각이네. 여기까지 오면서도 계속 피해만 보다가 결국엔 새롭게 시작하는 셈이지. 물론, 그 전에 선물할 계획이었던 물건 역시 근시일 내로 보내러 가야겠지만 말일세."


선물할 계획이었던 물건이란 연발총을 의미했지만, 로건은 굳이 거기까지 얘기하지는 않았다. 그리펠로 역시 딱히 그에 대해 물어보지는 않았다. 상단이니까 중요한 물건 한, 두 가지쯤은 있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며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이후로 로건과는 일상적인 대화를 몇 번 더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리펠로에게 뜻밖의 인물이 찾아온 것은 다음날 아침이 밝자마자 였다. 똑똑- 울리는 노크 소리가 한 번에서 그치지 않고 연이어 들렸다.


"흐아암, 아침 댓바람부터 누구야?"


졸린 눈을 비비며 그리펠로가 몸을 일으켰다. 그간 도적들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죽었을 때 생겨난 빈 집 중 한 곳에서 잠을 잔 그리펠로였다. 잠시 후, 끼익- 문을 열며 누구냐고 묻자, 익숙한 음성과 말투가 그리펠로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어떻게 된 게 나보다도 일찍 못 일어 나냐? 형아야 진짜 올빼미 감시원을 모두 처리한 브레본의 '신문지 영웅' 맞아?"


그리펠로의 눈이 놀라움으로 휘둥그레 떠졌다. 눈앞이 아닌, 슥- 아래를 내려다 본 그의 눈에 찾아온 손님이 들어왔다. 찾아온 손님은 바로 장난스럽게 씨익- 웃고 있는 제니였다.


작가의말

내일은 어버이날이군요. 시간 참 빠르네요 ㅎㅎ

선작, 추천, 댓글은 늘 글쟁이의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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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3화. 에단의 사연 ②. 19.06.26 42 1 13쪽
66 62화. 에단의 사연. 19.06.25 47 1 16쪽
65 61화. 회오리 탄환을 넘겨라! 사막의 결투! 19.06.23 40 1 16쪽
64 60화. 불완전 페로움과 회오리 탄환 ②. 19.06.20 68 1 20쪽
63 59화. 불완전 페로움과 회오리 탄환. 19.06.19 38 1 21쪽
62 58화. 선풍지대를 돌파하라! ④. 19.06.17 48 1 18쪽
61 57화. 선풍지대를 돌파하라! ③. 19.06.14 42 1 19쪽
60 56화. 선풍지대를 돌파하라! ②. 19.06.13 42 1 15쪽
59 55화. 선풍지대를 돌파하라! 19.06.12 46 1 14쪽
58 54화. 서크투스 ②. 19.06.07 33 1 14쪽
57 53화. 서크투스. 19.06.06 43 1 13쪽
56 52화. 서로 다른 선택. 19.06.05 32 1 13쪽
55 51화. 힘의 흔적지. 아포딕시 존 ②. 19.06.03 40 1 16쪽
54 50화. 힘의 흔적지. 아포딕시 존. 19.05.31 55 1 14쪽
53 49화. 이블린의 제안. 19.05.30 44 1 16쪽
52 48화. 무시무시한 신고식 ②. 19.05.29 43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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