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탄환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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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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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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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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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2화. 이름없는 마을.

DUMMY

작열하는 태양은 바람마저 뜨겁게 치환시켰다. 뜨거운 열풍은 자연스럽게 더욱 지치게 하는 원인이 충분히 되어주고 있었지만, 총잡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입고 있던 망토가 제법 두터우면서도 무거웠던 편이라, 밤에 이불 대용으로 몸을 덮고 자는 도구가 되는 한편으론, 몸을 조금 무겁게 만드는 도구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것이 없어 몸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지만, 그 가벼움은 허전함으로 이어졌다.


그간 3일이었다. 몸을 덮을 부위가 부족한 탓인지. 잠든 밤과 막 일어난 아침이 조금 춥곤 했다. 그리고 나귀마저 얼마 못 가 죽고 말았다.


칸타 라는 이름의, 죽은 나귀를 물끄러미 응시했던 총잡이는 무덤덤히 고생했다. 고 한 마디 중얼거렸다. 나귀가 짊어졌던 물주머니, 안장 등을 챙기니, 몸의 무게가 망토가 찢겨지기 전과 별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아마 물주머니가 홀쭉하지 않았더라면 보나마나 더 고생했을 터였다. 걸음을 옮겨도 이어지는 금빛 풍경에, 끊임없이 총잡이의 발자국만이 남겨졌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하루가 지나고, 사막을 걷는 일은 그렇게 반복되었다. 불어오는 열풍에 모래언덕이었을 곳이 차차 무너져 내린 듯한, 그런 모습을 보는 총잡이의 두 보라색 눈이 흐릿해져갔다. 송글송글 맺혔던 땀방울 하나하나가 그대로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에 방울졌다.


마음 같아서는 얼음 속성을 지닌, 그가 가진 탄환을 사용하고 싶었으나, 총잡이는 사용하지 않았다. 식량도 오늘을 겨우 버틸까 말까 할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였고 물은 이미 다 떨어져버렸다. 이틀 전 지나쳐왔던 선인장의 그늘을 다시금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 눈앞에 실제로 그 때 보았던 선인장이 보이는 듯해 손을 뻗었다. 미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꼈던 장갑 낀 손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힘없이 흔들리는 듯했다. 이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 왼 손이 작게 좌우로 춤을 추었다. 지쳐서일까?


물을 머금은 솜 마냥 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워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버티지 못한 총잡이가 붙어있는 두 홀스터 중 푸른 총집에 손을 가져갔다. 벤튜리스와 싸울 때 사용했던 빙결의 탄환을 가진 권총이 손에 들렸다.


곧 총구를 위로 향하게 한 총잡이가 탕. 탕탕. 탕. 하고 연달아 네 발을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 푸른빛을 머금어 빛을 내는 네 개의 탄환은 각기 공중에서 하나하나 작지 않은 얼음조각이 되었다가, 대지를 뜨겁데 달구는 태양빛의 열기와 불어오는 열풍에 의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자연히 물이 된 그것은 총잡이의 몸을 적셨다. 총잡이의 의지에 따라 금세 녹도록 만든 것도 한 몫 하였을 테지만, 그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는 듯 물방울 하나하나가, 하염없이 총을 쏜 위를 바라보는 총잡이의 피부에 닿는 순간, 치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연기를 피워 올렸다.


살이 타들어가며 조금씩 물에 맞은 총잡이의 몸이 녹아내려가는 생경한 느낌과 고통에 총잡이는 비명을 질렀다. 아. 아. 아... 아아아아아악- 하는 비명을 질렀을 때, 문득 입 안에서 목소리가 채 나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탁탁 갈라진 쇳소리 같은 이상한 음성이 튀어나갔다. 츄악- 하고 확연히 온 몸을 적시는 차가운 감각에 번쩍 눈이 뜨여졌다. 허업-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는 동안에도 두어 차례 정도 더 차가운 물이 그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푸하, 콜록 하고 입 밖으로 튀어나온 음성은 여전히 잔뜩 갈라져 있었다. 꿈...이었을까. 그 생각을 할 즈음 앳된 음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위험했어요. 상당히."


허억. 허억. 거친 숨이 절로 몰아쉬어졌다. 메마르다 못해 잔뜩 갈라진 피부와 입술은 갑작스레 물세례를 받자 더욱 통증을 부추기는 듯했다. 피부가 부서져 조각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던 총잡이는 생생히 느껴지는 통증에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차츰 흐릿했던 시야가 눈을 깜빡임에 따라 회복되어갔다. 이렇게 까지, 살아있음을, 일깨워주지, 않아도, 되는데... 느껴지는 통증에 문득 띄엄띄엄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정신이 드냐는 물음이 잇따라 들려왔다.


"그래... 드는군."


목소리가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잔뜩 울어서 쉰 목소리도 지금 자신의 목소리보단 나을 것 같다. 딱히 답을 바라고 한 대꾸는 아니었으나, 대답이 이어졌다.


"다행이네요."


힐끗. 힘겹게 고개를 돌려 누구인지를 확인해보았다. 어깨 너머까지 흘러내린 산발의 갈색 머리칼이 보였다. 누더기 같은 옷은 긴팔이었지만, 바지나 치마 없이 옷이 무릎까지 길게 내려와 있는 소녀였다.


"여긴...?"


말을 하는 것조차도 힘겨웠다. 그것을 다시금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소녀의 음성이 이어졌다.


"아직 말 안하시는 편이 좋아요."


그리곤 소녀는 총잡이의 머리맡에 두었던 양동이를 다시 집어 들었다. 물을 더 길어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멀어지는 소녀의 인기척을 느끼며 총잡이는 눈을 감았다. 기력을 다 빨린 것처럼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힘겹게 손가락 끝을 움직여보아도, 딱딱함이 아닌 조금 부드러운 촉감과 함께 약간 쓸리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손도 엉망이어서일까 아니, 짚 위에 누워 있는 듯했다. 어쩐지 손이 허전했다.


아까 그 꼬맹이가 장갑도 벗겨낸 모양이었다. 아직 어린아이임이 분명한 소녀의 음성은 무미건조 했었다. 어쩐지 낯익은걸... 그런 생각을 할 즈음, 물을 길러 온다던 소녀가 돌아왔다.



     ‡   ‡   ‡   ‡   ‡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부터 현실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아 물어보니, 마을 밖 그렇지만 마을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있는 선인장에 물을 주러 나왔다가, 총잡이를 발견했다고 했다.


선인장을 키우냐고 물어보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와 총잡이의 기분이 묘해졌다. 소녀의 지나치게 무미건조한 듯한 음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이 부족하지 않다면 상관은 없지만, 총잡이가 보기에 마을은 물이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마을이라 부르기도 빈약한 편으로 가구도 30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대략 걸음을 옮기며 건물 수를 세어보니 식당과 여관을 포함해도 30이 조금 넘는 수였다. 교회가 하나 있고 우물도 하나, 가구 수가 적은 만큼이나 사람 수도 적어보였다.


"물을 아껴 써야 하지 않나?"


"저도 항상 선인장에게 물을 주러 가는 건 아니에요. 여유가 있을 때만 가는 거죠."


소녀의 대답에 총잡이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엔 소녀가 물음을 던졌다.


"먼 길을 오셨나 봐요."


총잡이의 푸석해진 머리며 얼굴. 거기에 묻은 모래와 약간의 자갈. 그 외에도 긴 여행을 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낡아 보이는 옷차림 등이 손쉽게 총잡이가 먼 길을 왔으리라 짐작하게 하였다. 그러니 소녀의 물음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아쉰에서 오는 길이지."


총잡이의 대꾸에 소녀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한 때 파라다이스라 불렸을 정도로 살기 좋은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망하여 흔적조차 찾기 힘들어진 마을이었다.


"멸망한 마을..."


소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쉰이야 파라다이스라 불렸던 만큼 유명한 곳이기도 했고, 빛의 탄환의 시작이 그 마을이었기 때문에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곳이었다. 걸음을 계속 옮기자, 교회에 예배 보러 가지 않은 사람도 약간이나마 보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몸이 쇠해 움직이기 힘든 노인이 대개였다. 예배 보러 가지 않고 남아있던 노인은 총잡이의 홀스터를 보곤 저마다 경계어린 눈빛을 보냈다. 평범한 마을이로군 싶었다. 소녀가 말하는 것이 지나치게 무미건조하다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털썩. 총잡이를 데려왔던 곳 지금은 창고로나 쓰인다는 예의 짚이 있는 곳에 앉은 총잡이는 소녀가 가져온 음식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곧 그 약간 식어 미지근한 수프를 먹으라는 듯 내미는 소녀를 보며 총잡이가 물음을 던졌다.


"무섭지 않나?"


"배고픈 이에겐 기꺼이 나눠줘야 한다고 배웠어요."


"누구에게?"


괜찮아질 때까지 물을 길러오고 하루 동안 정성껏 돌봐준 소녀가 문득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물어보는 말이 추궁 하는듯한 느낌으로 변질되었다.


"수녀님께요."


내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은 두 흑안에 얼핏 강인한 신뢰가 엿보였다.


"그렇구나."


가벼이 대꾸한 총잡이가 이내 수프를 들었다. 어찌 보면 괜한 의심일 지도 몰랐다. 어제도 가져온 음식을 먹었으나,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으니까. 허기가 많이 졌음을 증명하듯 수프를 먹는 속도는 빨랐다.


건더기가 그리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약간 고기가 섞여 있고, 맛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빠르게 수프를 다 해치웠을 즈음, 총잡이는 소녀의 시선이 자신의 불편한 왼 손에 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에 총잡이가 뭐라 입을 열려던 찰나, 소녀의 물음이 먼저 이어졌다.


"손은... 왜 그러신지요?"


소녀의 두 검은 눈에 총잡이의 왼손이 보였다. 엄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다른 사람과 별다를 바 없는 굳은살이 잔뜩 박인 듯한 손이었으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없었다.


조금 전 수프를 먹으려 숟가락을 들었을 때에도 왼 손이 아닌 오른 손으로 들었다. 처음에는 왼 손 보단 오른 손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야 오른 손잡이니까 그러려니 넘어갔었지만, 한 손만을 이용한다는 것을 머지않아 깨달았을 때, 그제 서야 총잡이의 왼 손가락들에는 손톱이 없음을 볼 수 있었다.


"아아, 장갑을 벗고 있었다는 걸 깜빡했군. 싸움의 흔적이라고만 해두마."


무덤덤히 대꾸한 총잡이는 곧 벗어두었던 제 중절모를 다시금 머리에 썼다.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 것은 그 즈음이었다. 문이 열리면서 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검은 머리 수건과 검은 옷. 그리고 줄까지 금으로 된 십자 목걸이를 한 여성이 총잡이에게 다가왔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는지 여쭤도 될는지요."


총잡이에게 다가온 수녀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자연스럽게 물음을 건넸다.


"아쉰."


짤막하게 어디서 왔는지 마을 이름만을 알려주자, 수녀가 고개를 주억였다.


"이곳보다 더 동쪽에 있는 마을은 아쉰 뿐이지요. 하면, 혹 생존자이신지요?"


자상한 미소를 띤 채 그렇게 물으면서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서 총잡이를 본 수녀는 고개를 들면서 얼핏 보인 총잡이의 왼 손에 흠칫. 굳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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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5화. 속임수 탄환 ②. 19.05.23 51 2 17쪽
47 44화. 속임수 탄환. +2 19.05.22 76 2 21쪽
46 43화. 총을 다시 잡은 이유 ②. 19.05.21 48 2 22쪽
45 42화. 총을 다시 잡은 이유. 19.05.20 42 2 14쪽
44 41화. 그리펠로의 과거. 심경의 변화 ②. 19.05.19 44 1 16쪽
43 40화. 그리펠로의 과거. 심경의 변화. 19.05.17 28 1 15쪽
42 39화. 아크루의 비극. 19.05.16 29 1 20쪽
41 38화. 프림 로젠으로 가는 길 ③. 19.05.15 25 1 21쪽
40 37화. 프림 로젠으로 가는 길 ②. 19.05.13 68 1 21쪽
39 36화. 프림 로젠으로 가는 길 ①. 19.05.10 39 2 20쪽
38 35화. 신문지 영웅 ③. 19.05.09 46 1 16쪽
37 [외전] 전갈 변태. 19.05.09 26 2 17쪽
36 34화. 신문지 영웅 ②. 19.05.08 42 2 13쪽
35 33화. 신문지 영웅. 19.05.07 38 2 21쪽
34 32화. 반격. 그리고 해방 ②. 19.05.06 35 2 20쪽
33 31화. 반격, 그리고 해방. 19.05.03 54 2 18쪽
32 30화. 달려라 제니! 19.05.02 3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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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8화. 무기를 훔쳐라! 19.04.30 30 2 15쪽
29 27화. 반격을 위해 ②. 19.04.29 30 2 16쪽
28 26화. 반격을 위해. 19.04.28 34 2 17쪽
27 25화. 오드와 제니&플린&더크 3인방 ②. 19.04.26 21 2 16쪽
26 24화. 오드와 제니&플린&더크 3인방. 19.04.25 29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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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2화. 억압받는 브레본 ②. 19.04.23 28 2 13쪽
23 21화. 억압받는 브레본. 19.04.23 48 2 14쪽
22 20화. 여행의 시작 ③. 19.04.22 2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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