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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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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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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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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검귀 (4)

DUMMY

“욱...”


선우는 위장으로부터 역류하는 쓴맛에 눈물을 찔끔 흘렸다. 한바탕 게워낸 그는 입가를 닦으며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외려 이번엔 샅샅이 훑었다. 대선이 아니라는 단서를 찾기 위해.


“이! 개새끼들! 죽여버릴 거야아!”


선우를 따라 화면을 마주한 명재가 울부짖었다.

그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죄책감이 그의 머리를 쥐어짰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계속해서 악을 써댔다.


“...선영 씨 찾자.”


선우가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는 대선이 아니라는 단서를 찾는 데 실패했다.

동료의 죽음을 정면으로 맞닥뜨리자, 자연히 남은 동료들이 떠올랐다. 선영을 구해야한다는 마음이 더욱 더 커졌다. 어쩌면 동료의 죽음을 애써 외면하기 위한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하늘에선 대선이 실망을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우는 멈춰서서 그를 애도할 여유는 없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했다.


‘모든 게 끝나고. 다 끝나면 그때 슬퍼할게요. 미안합니다, 대선 씨.’


그는 흐느끼는 명재를 다독이며 노인을 바라봤다.

별말없이 그들을 지켜보던 노인도 그를 마주봤다.


“치료부터 해. 이제부터 잠도 안자고 훈련만 할 거니까.”

“......”


노인이 어련하겠냐는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일어섰다.


<Q-21, 지금 가동되나? 확인해봐.>


선우가 흰가운 남녀에게 물었다.

남녀가 곧바로 Q-21로 달려갔다.

기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조작을 하고는 선우를 돌아봤다.


“깨진 곳만 보수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곳은 이상 없습니다.”

<얼마나 걸리지?>

“대략... 1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선우는 최대한 빠르게 고칠 것을 지시하고는, 페드로의 비서를 지배했다.


<너는 지라이야 마을로 가서 환자 중에 페도르란 남자를 데리고 와. 또 치료가 필요한 사람 있으면 다 데려오고.>

“예.”


비서가 후다닥 방을 나섰다.


“어이, 지조! 뭐야! 이봐, 캐서린! 톰! 지금 뭐하는 거지? 갑자기 귀신이라도 들렸어?”


페드로가 방 문과 Q-21을 번갈아 도리질하며 소리쳤다. 그는 선우의 능력을 모르니 그럴 만도 했다.


“닥치고 구석에 가서 박혀있어. 다음 웨이브만 아니었어도 당신 낯짝을 짓뭉겠을 테니까.”


선우가 서슬퍼런 경고를 날렸다.

어찌됐든 페드로도 칼리토의 조력자다.

페드로 때문에 선우의 세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칼리토에게 조력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선우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아, 그러지.”


선우의 눈동자 속에서 뭔가를 읽은 페드로는 조용히 구석으로 갔다. 선우의 뒷 모습을 바라봤다.


‘큰 사고라도 칠 것 같은 젊은이군. 저런 놈은 피하는 게 상책이지.’


그는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선우로 인해 이 사단이 났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자신의 비서와 연구원들이 귀신들린 사람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도 선우가 무슨 짓을 벌인 듯 싶었다. 그의 경험상 지금은 입을 닥치고 있을 때였다.


“잠깐. 그전에 불사신이라는 증명은 해야지?”


노인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로서는 당연히 확인해야할 사항이었다. 안 그래도 검술을 전수해줄 생각에 배알이 꼴렸던 그다. 게다가 아무런 소득도 없다? 어불성설이다.


페드로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노인을, 이어서 선우를 살폈다. 또 난동을 부리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좋다.

한발짝 양보해서 다 부숴도 좋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안위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저 노인네가 노망났나. 좀 닥치라고. 닥쳐!’


그가 속으로 처절한 외침을 날렸다.

그의 외침이 무색하게 선우가 검을 치켜들었다.


‘시발! 엄마 살려줘.’


페드로는 17살 이후로 처음으로 엄마를 찾았다.


푹!


‘으잉?’


페드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선우의 몸통에 검이 오롯이 꽂혀있었다. 그의 다리를 타고 피가 줄줄 흘렀다.


“이제 내가 살면 증명된 거지?”


나지막히 말한 선우는 검을 뽑고는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쓰라린 고통을 느끼며 Q-21이 어서 고쳐지기 만을 기다렸다.


/


드넓은 일리시아의 검투돔에 선우와 노인 둘만이 마주보며 서있었다.


“제자야.”

“...쉰내나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얼른 시작하지?”


선우의 날선 응답에, 노인이 침음했다.


“첫 제자가 이 모양이라니, 서글프구나. 검이나 꺼내라.”


노인이 한숨을 푹푹 쉬며 다가갔다.

그의 검을 쥐는 법부터 지적했다.


“너, 어디서 배웠냐? 뭐가 이렇게 엉망진창이야.”

“배운 적 없어.”

“배운 적이 없다?”


노인은 그가 검을 쓰던 당시를 떠올렸다.

자신에 비하면 벼룩수준이었지만, 나름 봐줄만은 했다. 그런데 배운 적이 없다니. 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부적인 기질을 타고나지 않는 이상에는. 그의 나이 801세. 평생 그런 자질은 본 적이 없다. 공상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실재가 나타났다.

노인의 눈빛이 번쩍였다.


“흥미롭군. ...응? 에이, 검빨이네.”


노인이 속았다는 듯 선우의 어깨를 툭 쳤다.

노인 정도의 수준이면 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그의 눈에 [울프베르트]에서 흘러나오는 광포하지만 순수한 에너지가 보였다. 검에서 나온 그 에너지가 선우의 손목을 타고, 팔뚝을 타고 올라가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실력이 가능한 것이었다. 자세나 검격이 흐트러져도 검의 기운이 커버해주니까.


“사기꾼.”

“알았으니까, 빨리 좀.”


선우가 눈을 부라리며 재촉했다. 노인이 혀를 끌끌차며 자신의 검술에 대해 읊기 시작했다.


“내 검은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속도.”

“속도?”

“그래, 속도. 빠르기만 하면 된다 이 말이다. 힘이고, 정확도고, 검결이고, 뭐고 다 필요없어. 빠른게 최고야. 검기도 빠르게 휘두르면 더 세.”


선우는 점점 의심이 들었다. 그가 하는 말은 육상선수가 축구를 지배한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개소리라는 뜻이다.


‘그래도 실력은 두 눈으로 봤으니까.’


선우는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노인은 뒷짐을 지고 걸으며 계속 읊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를 속도에 투자한다. 네 검에서 나오는 기운까지 몽창. 그러면 너도 조금은 검의 진수를 향해 한발짝 내딛을 수 있을 거다. 우선, 네 꺼부터 다르는 법을 배우도록 하지. 눈을 감고, 배로 호흡하면서 단전에 힘을 줘봐라. 똥이 나올 것 같아도 참아.”


선우가 멍하니 노인을 바라봤다.


‘이대로... 괜찮겠지?’


걱정이 깊어지는 선우였다.


/


천장부터 뚝뚝 떨어지는 검은 천막.

짙게 드리운 안개.

이 음산한 동굴 깊숙한 곳에서 짙게 푸른 눈동자 두 개가 번뜩였다. 두 눈동자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은발의 여자에게로 향했다.

은발의 여자는 12인 중 하나인 미르바.

그녀는 상냥하게 웃으며 눈동자 앞에 섰다.


“부르셨습니까, 데메우드 님.”

“...”


데메우드는 말이 없었다.

미르바가 천막을 배배 꼬며 말을 붙였다.


“다음 웨이브장소가 그 이름 없는 세계이더군요. 그렇게 정하신 연유라도?”

“......배신자가 있다.”


데메우드의 말에, 미르바는 내심 떨렸다.

배신자는 그녀였다.

그녀.

사실 그녀는 남자다.

근데 왜 능력을 써가며 여장을 하고 다닐까.

우습게도 그녀는 외형 빼고는 자신이 남자라는 걸 숨기지 않았다. 혹여나 말해야할 타이밍이 오면 서슴없이 남자임을 밝혔다.

그럴꺼면 왜 여장을 할까.

성별은 남자, 겉모습은 여자.

그녀는 자신의 이중성과 혼돈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멍청한 타인들은 그저 겉만 보고 판단했지만, 그녀는더 복잡한 존재였다. 사람들이 그걸 알아줬으면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이제껏 없었다.


‘근데 이 남자는 왠지 다 꿰뚫어보는 것 같단 말이지. 저 눈이.’


그녀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설마요. 감히 누가 데메우드 님의 발등을 찍겠어요.”

“찍더군.”

“......혹시 절 부르신 까닭이 그것 때문이에요?”


미르바는 조금씩 심장이 조여왔다. 데메우드는 항상 그랬다. 데메우드는 사막이 인간을 말라죽이는 것처럼 서서히 상대를 죽여나갔다.


‘개새끼.’


그녀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면서도 움찔했다.

그가 이것까지 꿰뚫어볼까 싶어서.


“네가 찾아라. 다음 웨이브 안에.”


데메우드가 말했다.

미르바는 망설였다.


‘나를 사냥개로? 무슨 생각이지.’


그러나 거절할 명분은 없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 웨이브에 그 세계에서 총력전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십니까?”

“......”


역시나 데메우드는 침묵했다.

그저 뚫어져라 그녀를 응시했다.


“...그럼 배신자를 잡으러 가보죠.”


미르바는 천막을 베베꼬던 손가락을 풀고 동굴을 나섰다.


“......”


동굴 안엔 다시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


“와, 시발.”


선우는 원래 욕을 잘 안 한다. 선영이 쌍욕을 해도 존대로 응대했던 그다. 그런데 지금은 그조차도 욕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웨이브 미완수에 따른 강제 종료알림이 뜬 오늘.

선우는 이곳에서의 막바지 수련 중이었다.

그리고 그는 검투돔을 갈랐다.


“...뭐냐, 너?”


노인이 눈을 껌뻑거렸다. 재차 비비고는 돔의 바닥을 쳐다봤다. 역시 땅이 길게 둘로 쪼개져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스킬빨이라고 해두죠.”


선우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노인이 하도 앙탈을 부린 탓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존대를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사부.”


아직 사부라는 말이 입에 안 붙는다.


“이런... 사기꾼.”


선우의 사부로 등극한 노인이 침음했다.

그는 목도했다. 선우의 검에서, 반지에서, 전신에 두른 비늘에서 용솟음치는 기운을.

노인의 가르침으로 선우가 그 기운들을 다루게 된 것이다. 아직 자유자재까진 아니지만, 십중팔구 정도는 됐다.


“으아악! 내 돔! 무슨 짓을 벌인 거야!”


마침 지나가다가 굉음에 놀라 뛰어 들어온 페드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는 길길이 뛰며 선우와 노인에게 다가갔다.


“고치면 되지. 돈 많잖아. 기술도 있고.”


선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돈?! 돈... 돈 많지. 쩝, 그래도 적당히 좀 하라고.”


페드로가 한결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며칠새 선우는 그를 다루는 법을 익혔다.

방법도 쉽다.

그의 돈과 명예에 대한 자부심을 손가락으로 살살 긁어주면 만사 오케이다.

선우는 아직도 그를 보면 열불이 났지만, 화만 내기보다는 이용해먹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장례식은 잘 치뤄줬지?”


선우에게 부탁했던 아이의 아버지, 페도르는 결국 숨을 거뒀다. 애초에 일각을 다투던 그의 생명은 선우를 기다리지 못 하고 꺼져버렸다.


“자네 말대로 성대하게 치뤘어. 그나저나 아들이 안타까워 죽는 줄 알았네. 의연해보이려고 억지로 울음을 꾹꾹 참는 게, 어휴...”


페드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선우는 노인을 흘겨봤다. 그의 부하인 우산녀가 그 아이의 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이다.


“크흠, 뭐.”


노인이 겸연쩍은 듯 되려 눈을 치켜떴다.

선우는 그를 사부로 부르기로 한 걸 취소할까 고민했다.


“아, 이 말 전해달랬어. 나중에 커서 자네처럼 강한 사람이 되는 게 꿈이래. 그래서 자신같은 약자들을 돕고 싶다더군.”


페드로가 빙긋 웃으며 아이의 말을 전했다.


“과분하군. 약자... 지라이야 사람들을 약자를 만든 건 당신이야. 왜 지라이야를 핍박한 거지? 같이 상부상조하면 좋잖아.”

“정말 세상사를 전혀 모르는군.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일리시아와 지라이야의 관계는 도르래와 같지. 한쪽이 올라가려면 반드시 다른 한쪽은 내려가야만 해. 물론, 발전할 생각없이 허허실실 산다면 모르지만. 근데 누구든 그러기는 싫잖아.”


페드로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선우의 눈에는 마치 꼰대 같은 상사가 신입사원에게 일러주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당신이 그걸 해낸다면?”

“뭐?”


선우의 의외의 말에, 페드로가 고개를 돌렸다.


“공생하면서도 양쪽의 발전을 끌어낸다면 말이야. 그럼 시대의 영웅이 되지 않을까. 그 꼬마도 내가 아니라 당신을 꿈으로 삼을 테고. 나도 내 세계에 가서 당신이 이룬 대단한 업적을 칭송하면, 당신은 적어도 두 개의 세계에서 위인이 되는 거지.”

“...”


페드로가 침묵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를 선우가 유심히 살폈다.

꽤나 먹힌 듯하다.

선우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다음은 일리시아와 지라이야 주민들의 몫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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