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결의·수련
"이젠 우리밖에 안 남았구나."
어느새 열 명도 남지 않았다. 수련에 성실히 임하지 않은 아이들은 모두 쫓겨났다.
"근데 내공 수련은 언제 하고, 무공 초식은 언제 익혀?"
"그것보다 왜 배사지례를 안 올리는 거야?"
"저 철부지 또 잘난 체한다."
경공을 익힌 공손완아가 멋지게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아홉 바퀴 돌았다. 구룡번천(九龍飜天)이라는 경공 수법이었다. 실전에는 전혀 소용없고, 경공을 수련해 경지를 올리는 데 사용되는 수련 초식이었다.
일행은 산꼭대기로 향하는 길이었고 공손완아는 돌아가는 길이었다.
"쟨 아직도 자기만 아침 먹는 줄 알겠지?"
잔월과 담두천이 큭큭거렸다. 함께 뛰던 아이들은 숨이 차서 소리를 내진 못했지만, 전부 입꼬리를 올렸다.
어느덧 산꼭대기에 도착한 일행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지난 한 달 동안 이미 손발을 맞출 대로 맞췄다.
잔월을 비롯한 몇은 눈을 쓸고 모닥불을 지폈다. 담두천이 토끼와 새 그리고 쥐를 손질했다. 품에서 온갖 양념을 꺼낸 담두천이 새와 쥐에 양념을 넣고 구웠다. 토끼는 특별히 국으로 끓였다. 날씨가 추워 뜨끈한 국물이 간절했다.
쥐와 새가 구워지고 토끼가 뜨끈한 국물로 변할 때 진선이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미안. 뒤처리는 내가 할게."
"가뜩이나 느린데 뒤처리까지 한다고?"
담두천의 비난에 진선이 머리를 긁적였다.
고소한 고기와 뜨끈한 국물로 배를 채우고 담두천과 잔월이 남아 흔적을 지웠다. 자신만 아침을 먹는 줄 알고 콧대를 세우는 공손완아를 골탕 먹이기 위해 둘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무극존자가 만든 태운 밥에 심심한 국물을 먹으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공손완아가 얄미워 일행은 일부러 배고픈 척 연기하며 속으로 비웃었다.
돌아가는 길에 샘에서 양치를 해 고기 냄새를 없앴다. 샘을 지나니 얼마 안 가서 진선의 거대한 등이 보였다. 상체를 타고났지만, 하체는 너무 평범해서 달리기가 느렸다.
"대장, 천천히 와."
잔월과 담두천은 다음 일과를 위해 진선을 두고 먼저 달렸다. 먼저 출발한 나머지 일행까지 따라잡은 후 봉황산장에 도착했다.
"공손완아가 또 제일 가벼운 물통 가져갔구나."
일행은 툴툴거리며 나무 물통 두 개씩 골랐다. 멜대 양쪽에 물통 하나씩 달고 바로 뛰었다.
가장 늦게 도착한 진선에겐 가장 큰 물통이 남겨졌다. 그러나 진선은 큰 물통을 반겼다.
작은 물통들은 세 번 왕복해야 하지만, 큰 물통은 두 번이면 된다. 힘쓰는 일이 달리기보다 쉬운 진선으로선 큰 물통이 훨씬 나았다.
강에서 물을 길어 자기 담당 물독을 채운 후 점심을 먹었다. 다행히 무극존자가 불 조절을 잘했는지 밥이 살짝 타기만 했다.
밥과 다소 심심한 국으로 배를 채운 일행은 오후 일과를 나갔다.
"계집이 힘도 좋아."
가장 먼저 돌산에 도착한 공손완아가 머리통만 한 돌 하나 들고 나는 듯이 달렸다. 일행도 적당한 돌 하나씩 주워들고 봉황산장으로 돌아갔다. 무극존자가 됐다고 할 때까지 돌을 찾아서 운반한 일행은, 저녁 먹기 전에 운동 삼아 돌벽을 쌓았다.
망치와 정을 들고 돌을 다듬어서 봉황산장의 담을 쌓았다. 돌을 다듬으며 생긴 부스러기는 길 까는 데 사용했다.
저녁은 일행이 직접 만들어 먹었다. 무극존자도 하루 세끼 태운 밥을 먹는 건 견디기 어려웠다. 그나마 푸짐한 저녁을 먹고 나면 자유 시간이었다.
진선은 무극존자의 추종자들에게 은자를 건네고 쌀과 채소 그리고 양념을 부탁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쉴 틈조차 없기에 필요한 물품 구매는 전부 추종자들을 통했다.
공손완아는 방문을 닫아걸고 내공 수련을 했다. 잔월과 담두천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실없는 대화를 나눴다. 아무 말이나 꺼내면 화제가 계속 바뀌면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때 아이 셋이 짐을 싸 들고 나왔다.
"그간 고마웠어. 우린 그만 포기할래."
"왜? 지금 수련도 재밌잖아."
잔월의 말에 셋이 눈을 흘겼다.
"난 그냥 가전 무공이나 익힐래."
셋이 나가니 총 다섯 남았다.
"자강, 넌 절대 안 떠날 거지?"
담두천의 말에 한자강이 우물쭈물 대답을 못 했다. 한자강은 외공을 익히다 온 아이였다. 과한 수련으로 몸이 망가졌는데 무극존자라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왔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지금까지 수련을 견뎌냈는데, 잔월과 담두천이 보기에도 아슬아슬했다.
추종자들과 농담 따먹다가 돌아온 진선은 셋이 떠났다는 말에 울상을 지었다.
"우리 넷은 절대 포기하지 말자."
"우리 도원삼결의 할까?"
"넷인데 어떻게 삼결의 해? 그리고 여긴 복숭아나무도 없잖아."
결국 넷은 봉황사결의 하기로 했다. 진선이 돈주머니를 풀어 술을 구했다. 흑표가 새 두 마리를 잡아 왔다.
"그럼 봉황사결의를 시작할까?"
"잠깐. 흑표도 넣어줘. 오결의 하자."
그러나 결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잠깐. 왜 한날한시에 같이 죽어야 하는데? 누구라도 오래 살면 좋잖아."
잔월의 말에 진선이 고개를 저었다.
"결의할 때 원래 이렇게 말하는 거야. 안 지켜도 돼."
"맹세 내용을 안 지켜도 되면 의형제를 배신해도 괜찮겠네? 난 반대야."
담두천이 결의할 때 허황한 내용을 넣는 데 반대했다.
"그럼 어떻게 해?"
"모두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도록 서로 돕는다. 어때?"
"나, 진선."
"나, 한자강."
"나, 담두천."
"나, 잔월 그리고 흑표."
"우리 다섯 중 잔월과 흑표는 한날한시에 태어났지만, 남은 셋은 각자 다른 날에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든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도록 서로 도울 것을 맹세하며, 의형제를 맺을 것을 천명한다. 봉황산의 산신과 천지신명이 굽어살펴 이 맹세를 어기는 자는 똥통에 빠지게 해주기 바란다."
나이로 진선이 맏이가 되었다. 해가 바뀌면서 열두 살이 된 한자강이 둘째고 생일이 잔월보다 빠른 담두천이 셋째가 되었다.
"나는 돈하고 힘 담당. 한자강은 수련법을 많이 알고 있으니 수련 담당이다. 담두천은 음식과 과일 담당이고 잔월은 우리에게 글 가르치는 담당이다. 막내 흑표는 고기 공급을 담당하도록 한다. 이의 있는 사람?"
"없다."
"원래는 피를 내서 술에 섞어야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모두 진실함을 믿기에 생략하도록 한다. 이 대접에 술을 나눠 먹으면 우린 형제다."
피를 내기 두려웠던 아이들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진선이 한 모금 크게 마신 다음 대접을 한자강에게 건넸다. 한자강이 소심하게 살짝 마신 다음 담두천이 크게 마셨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술맛을 음미하는 모습을 보니 술을 한두 번 마신 솜씨가 아니었다.
잔월도 술을 꿀꺽 마신 후 흑표에게 건넸다. 혀로 살짝 핥은 흑표가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섰다. 몸을 돌리는 건 아주 싫다는 표현이기에 잔월은 강권하지 않았다.
남은 술은 땅에 부어 봉황산 산신과 천지신명 몫으로 했다.
"그럼 내일부터 저녁 먹고 우리끼리 수련하고 글공부도 하자."
"수련은 무리인 것 같으니 일단 글공부만 하자. 몸이 괜찮다 싶을 때 수련도 겸하는 게 좋겠어."
한자강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채 사흘도 안 되어 셋은 글공부를 잠깐 멈추고 수련을 하자고 제안했다. 잔월은 하루에 백 글자씩 가르쳤는데, 머리가 총명한 담두천마저 채 절반도 외우지 못했다.
"마보는 기본 중의 기본이야."
한자강이 마보 자세를 취했다.
"내가 하던 마보와는 다른데?"
"마보는 세 가지가 있어."
"우선 근력 키우는 마보야. 마보면 다리 근력만 키운다고 오해하는데, 엉덩이와 허리 그리고 옆구리까지 키울 수 있어. 발끝의 각도를 이렇게 하면 근력을 키워주지."
한자강이 시범을 보였다.
"다음은 지구력 키우는 마보야. 근력과 지구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대형은 근력만 뛰어나. 그리고 잔월은 지구력이 엄청나지. 난 지금까지 잔월이 힘들어 헐떡이는 거 한 번도 못 봤어."
그제야 진선과 담두천도 지금껏 잔월이 힘들다는 말을 꺼낸 적 없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마지막은 균형이야. "
자세를 바꾼 한자강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가장 힘든 자세야. 균형 능력은 평소 안 쓰는 부위의 근력을 키워야 해. 안 쓰는 부위는 근력이든 지구력이든 부족할 수밖에 없지. 그래서 수련이 가장 힘들어."
진선은 지구력을 택했고 한자강은 근력을 택했다. 잔월과 담두천은 균형 자세를 잡았다. 얼마 안 지나 땀을 뻘뻘 흘리는 담두천과 달리 잔월은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한자강은 너무 쉽게 버티는 잔월을 꼼꼼히 살폈지만, 누구보다 정확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수련을 끝낸 셋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낑낑거릴 때 잔월은 모닥불을 지피고 흑표가 잡아 온 새를 손질했다.
노릇노릇 구워서 배를 조금씩 채운 후 돌아가 잠을 잤다. 진선이 같은 방에서 자자고 주장했지만, 코골이가 심한 진선과 같은 방을 쓰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각자 방 하나씩 쓰기로 했다.
"일어나. 다들 일어나."
잔월이 방을 돌며 일일이 깨웠다.
"해가 떴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말을 들은 듯 진선이 부르르 떨었다.
밖에 나가니 공손완아가 어찌할 바를 몰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뭐해?"
"사부님이 사라졌어."
"찾아봤어?"
"응. 홍운도 사라졌어."
자신의 애마가 사라졌다는 말에 잔월이 마구간으로 뛰어갔다. 사실 말을 넣어서 마구간이라 불렀을 뿐, 그저 나무 기둥 네 개에 지붕이 있는 작은 붕자(棚子)였다.
"추종자들도 다 사라졌어."
"편지 같은 거 없는지 찾아봐."
"존자는 글 쓸 줄 몰라."
"자, 달라질 건 없어."
모두 당황한 가운데 잔월이 나섰다.
"일단 산꼭대기까지 다녀오자. 그리고 물을 긷는 거야. 오후엔 직접 시장에 가서 쌀이나 채소 그리고 고기를 사 오자. 그리고 돌을 날라 담을 쌓은 후 저녁을 먹고 수련하는 거지. 어차피 지금까지 아침에 깨워주기만 했을 뿐 아무것도 가르친 게 없잖아."
오형제는 바로 수긍하고 산꼭대기로 뛰었다. 그러나 공손완아는 홀로 집에 남았다.
산꼭대기에서 아침을 먹고 돌아온 일행이 물 길으러 갈 때도 공손완아는 참여하지 않았다. 점심을 만들어 먹고 진선과 한자강이 시장으로 갔다. 잔월과 담두천은 돌산으로 가서 돌을 날랐다.
돌을 다듬어 벽을 조금 쌓은 후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언젠간 무극존자가 돌아와서 절세의 무공을 가르칠 거라는 기대를 품고 공손완아를 제외한 일행은 똑같은 일과를 반복했다.
그러나 여름이 되어서도 무극존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五結義 다섯이 결의하고
修鍊 알아서 수련하다
- 작가의말
결의가 끝나자마자 사라진 무극존자. 도대체 그는 어디에 간 걸까. 혹시 자신을 안 끼워줘서 심통이 났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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