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속에서 1000만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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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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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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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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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저주 받은 검

DUMMY

1화-저주 받은 검






***


띠~ 띠~ 띠~띠띠띠띠!!


다른 병실과는 다르게 넓고 깨끗한, 비싼 1인 병실 중에서도 고급스런 곳에서 울리는 심박체크기의 소리가 급변했다.


“서, 선생님!”

“바이탈 상태 체크해!”


급변하는 박동 수에 의사와 간호사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띠~ 띠~ 띠~


“어? 선생님, 정상 맥박입니다!”

“이번에 투입한 약물은 뭐지?”

“아무것도 안 넣었는데요?”

“뭐? 근데 왜 갑자기?”


의사가 간호사의 말에 이상하다는 듯 환자를 살피려고 눈에 손을 가져가려는데,


번쩍!


“헉!?”


갑자기 떠진 눈에 의사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무슨 눈이···.’


몇 백년 묵은 사람의 눈이 그럴까.

갑자기 떠진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깊이가 순간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내 착각이었다는 듯 환자의 멍한 눈동자가 의사의 눈에 들왔다.


“환자분?”

“···.”


멍한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환자가 쓰러진 이유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돈을 쏟아 부어서 쓸 수 있는 포션이란 포션은 다 썼는데 근 3년 동안 이곳에 누워 있었다.


멍한 상태의 환자가 지금도 손에 쥐고 있는 낡은 검.


처음 병원에 왔을 때부터 3년 동안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저 검 때문이라는 건 확실한데, 무슨 짓을 해도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검을 쥔 손을 절단, 약물로 녹이는 것도 해봤지만 불가능했다.

유명한 헌터까지 초빙해서 독한 마음을 먹고 팔을 아예 어깨까지 자르는 것까지 시도했는데, 결과는 실패였다.

팔에 검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려 S급 헌터였다.

그런데도 피부에 흠집하나 나지 않는다.

그건 팔 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이 그랬다.

결국 헌터가 포기했다.

신기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3년 간 누워 있는데 몸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그냥 좋아졌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볼 때마다 더 완벽한 육체가 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진찰을 하는 그 짧은 시간에도 변하고 있는 듯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연구 대상감이었지만 VVIP라는 이유로 대외적으로 이 사실은 알려지지 못했다.

내부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의식불명으로 알고 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깨어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방금 그 기적이 일어났다.


“음···. 의식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긴 하지만 조 간호사, 일단 보호자한테 연락해주세요. 그리고 여기서 있었던 일은 다 잊어야 할 겁니다. 그 사람들 누군지 아시죠?”

“네.”


기적을 목격했지만 의사는 냉정하게 상황을 봤다.


***


빛 한 점 없는 어두컴컴한 곳에 한 자루 검을 휘두르는 남자가 있다.

언제부터 자신이 여기에 있었는지 남자는 모른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다.

처음엔 여기에 있는 이유도, 자신이 누군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그것들은 희미해졌다.

그가 일부러 잊은 것도 있고 시간이 잊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이곳엔 한 가지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검을 본격적으로 휘두르기 전에 항상 1시간동안 알 수 없는 기억이 떠오른다는 것.

그 기억은 한 사람의 일대기 같기도 하고 검의 시점으로 보는 한편의 영화 같기도 하며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걸 24시간을 주기로 지금까지 약 1000만 번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약 100편으로 만들어진 그 기억을 10만 번을 반복해서 본 것이다.

사실 더 많이 했을 수도 있고 조금 적게 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1시간의 영화가 끝나면 그는 그 기억을 토대로 검을 휘둘렀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 알 수 없는 기억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아서 그는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결국 이곳에선 다 소용없었고, 그는 다른 기억은 저 깊은 내면에 숨겨두고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


검을 완성 시키는 것.


그에겐 그 목표만 또렷하게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고, 그것만이 그가 해야 할 것인양 집착하듯 그렇게 아득한 시간을 검만 휘두르며 하나씩 완성해갔다.

그렇게 지금까지 그는 수 백, 수 천 가지의 검을 만들었고 그 중에서도 완성도 높은 건 총 7가지였다.


그 일곱 가지의 검 중 첫 번째 검은 다른 검의 휘두름보다 아주 많이 느렸다.

원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이 한 번을 휘두르는데 시간을 쓸 수도 있을 만큼 느린 검이었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는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잉태처럼 아주 느린 변화가 담겨있는 검이었다.

모든 검의 시작이 되는 검, 그게 바로 첫 번째 검이었다.

반면 두 번째 검은 빠르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찢어버리는 천둥소리가 날만큼.

첫 번째 검이 자연의 잉태라면 두 번째 검은 파괴였다.

다음 세 번째 검은 조용하다.

그러나 대낮에 태양을 가리는 달처럼 그 조용함 속에 많은 것을 바꿀만한 영향력을 보인다.

네 번째는 다시 한 번 반전해서 자신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미친 듯 날뛰는 하나.

이렇게 네 개의 검을 완성한 뒤에 완성한 나머지 세 개는 하나하나가 정말 오래 걸렸다.

다섯 번째인 세상을 삼킬 듯 입을 벌리는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앞선 네 개의 검을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을 합한 만큼 오래 걸렸고 여섯 번째 검은 또 그보다 많이, 일곱 번째 검은 앞선 모든 검을 합친 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그리고 이제 또 하나의 검의 완성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는 본능적으로 이 검이 마지막일 거라는 걸 깨달았다.

아마 어떤 식으로든 지긋지긋하고도 오랜 시간에 종점을 찍을 것이다.


후우-.


깊게 내쉰 숨소리가 어딘지 모를 어두컴컴한 곳을 울린다.

그 숨소리가 멈춘 순간, 그가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


드디어 검을 완성시켰다는 생각에 남자는 알 수 없는 쾌감으로 온몸을 떨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떨림은 아주 잠시였다.

무한할 것 같았던 이곳의 시간이 멈추고 어두컴컴한 공간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의 시간과 몸도 마찬가지였다.


파스스스···.


수많은 시간을 견뎌냈던 육체가 허물어진다.


‘아쉽구나···.’


부서지는 몸을 바라보며 그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그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마지막을 맞이하려했다.


스윽.


-?


갑자기 모든 것이 멈췄다.

그리고 남자의 눈앞에 1000만을 넘게 봤던 자가 나타났다.


*

*

*


번쩍!


남자는 아주 오랜 잠을 잔 것 같은 개운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바로 벌떡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어쩐지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오랜만의 육체라서 그런 걸까.

일단 손을 움직여봤다.

손에는 여전히 낡은 검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여기서도.


‘뭐지? 마지막에 분명.’


의식이 흐려지던 마지막에 그 자를 봤다.

아니, 그자와 대화를 했다.

오랜 시간을 봐와서 그런지 마치 오랜 친구처럼 그렇게 얘기를 나눴다.


‘음?’


잠시 상황을 인지하느라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귀로 뭔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정신이 좀 드시나요?”


끄덕.


정말 긴 꿈을 꾸었다.

지독히도 긴···.


“전무님!!!”


잠시 사색에 잠기려던 찰나, 고요함을 찢어버리는 고성이 그를 방해했다.

케케묵은 기억에 따르면 자신과 아주 친했던 자였다.

덕분에 하나둘 기억이 샘솟듯 떠올랐다.


‘한도겸, 대현그룹 기획전략본부 전무이사. 26살···그리고 저 인간은 조 실장.’


오랜만이었다.

정말.


“전무님!! 저 기억나십니까!?”


남자는 아무 말도 안했지만 조 실장은 마치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저기, 보호자분? 지금 환자는 안정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일단 잠시 환자분이 쉴 수 있게 보호자분은 나가주세요.”


의사가 거구의 조 실장을 말리려 했지만 가능할 리가 없다.


“아니, 지금 전무님이 3년 만에 깨어났는데 나가라니요?”

“그래도 환자가 안정을 취해야···.”


스윽.


“조용히 좀 해.”

“도련님!!”


환자, 한도겸의 말에 조 실장이 당황했는지 아주 예전의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


“어어? 환자분? 지금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안정을 취해···.”

“밖에.”

“예? 밖에요? 아직···.”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오며 뜬금없는 말을 한도겸에 의사가 다시 한 번 안 된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꺄아악!!!!”

“모, 몬스터다!”

“헌터들은 뭐하는 거야!”


병원 밖에서 일어난 소란이 병실까지 들렸다.


“도련님! 어디 가십니까!?”

“환자분!!”

의사와 조 실장이 놀란 틈을 타서 한도겸은 천천히 병실을 나서고 있었다.

그것도 문이 아니라 창문으로.

참고로 여긴 7층이었다.

거기서 뛰어내린 것이다.

급히 두 사람이 말리려 했지만 늦었다.


“헉!”


한도겸이 뛰어내린 것을 본 의사가 숨을 먹었다.

기껏 기적적으로 깨어났는데 자살을 했다.


“젠장!”


반면 나직이 욕을 뱉은 조 실장은 온몸의 근육을 폭발 시키듯 사용해 한도겸이 있는 곳으로 뛰어내렸다.

3년을 기다렸는데 그 결과가 미친놈의 자살이라니.


“도련!···님?”


7층 병실에서 뛰어내린 조 실장이 한도겸을 찾아 부르려는 순간, 이상한 것을 보게 됐다.


서걱!!!


“왜?”

“···.”


피떡이 되어 있어야 할 한도겸이 멀쩡히 서서 병원 앞에 생성된 가변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고블린을 썰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태연하게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스벌, 안 그래도 미친 인간인데···. 각성까지 한 건가?’


조 실장은 눈앞에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것도 잊고 멍하니 한도겸이 하는 걸 보았다.


‘3년 동안 누워 있던 양반이 아주 날아다니는 구나.’


그냥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다.

그가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 몬스터의 진녹색 피로 물든 바람이 불고 있었다.


망나니한테 검이 쥐어졌다.

그것도 아주 섬뜩한 검이.


...


한바탕 몸을 움직이니 어색했던 몸짓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몸의 상태는 그가 그곳에 있을 때 썼던 영혼으로 만들어진 것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쪽이 더 마음에 든다.

역시 자기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하지만 손에 쥐고 있는 검은 아니었다.

몬스터의 피로 물든 낡은 검이 부르르 떨었다.


우우웅!!


그의 손이 흔들릴 정도의 떨림이었다.


파직!!


떨림이 심화되자 검신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퍼석!!


검이 부서졌다.

검신에 새겨졌던 기이한 문양이 사라진 채로, 이제는 검이 아니라 그냥 고철 덩어리가 된 것이다.

그에게 숙제만 남겨둔 채로.

검의 주인이었던 그놈은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에서야 그 뻔뻔한 얼굴을 들이밀면서.


‘세상을 구하라고? 영웅이 되어서?’


놈은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려고 했다.

놈처럼 세상을 구하는데 실패하지 않을 그런 영웅.

머저리 같고 호구처럼 퍼주기만 하는 그런 뻔한 영웅.

하지만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1000만 시간, 아니 2억 4천만 시간을 그 고생을 했는데 겨우 호구가 되라고?


그는 재벌 3세이자 재계 서열 3위 대현의 그룹 후계자였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한다.

그 기업의 후계자가 호구라니.

세상을 구하긴 할 생각이다.


‘단, 내 방식으로 구할 거다.’


방식은 많이 다를 거다.


작가의말

다시 시작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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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변하는 세계 +10 19.05.14 6,720 1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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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얕은 수작의 대가 +10 19.05.06 9,423 15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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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넝쿨 째 들어온 +5 19.05.04 10,254 16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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