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숲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뭉게구름성
작품등록일 :
2019.04.29 14:28
최근연재일 :
2021.05.12 12:00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1,436
추천수 :
59
글자수 :
223,527

작성
21.04.30 12:00
조회
18
추천
1
글자
7쪽

인형의 숲 - 풍랑소리, 500년이 넘도록

[도시전설이 있다. 죽은 사람을 되살려 인형으로 만들어 준다는.]




DUMMY

풍랑소리


바람이 분다.


"난 풍랑 소리 좋아해요. 땡그랑, 땡그랑, 하는 소리가 뭔가 투명하다고 해야하나? 그 소리 좋아해요."


언젠가 지혜가 내게 해준 말이다.


잘 잊어가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녀는 꿈에서까지 나를 아프게 할까.




"바다 보고싶다. 그리구, 별도 보고 싶어요. 엄청나게 많은 별. 그런 분위기 좋지 않아요? 잠깐이나마 세상에 딱 우리 둘만 있는 느낌."


"둘만 있으면 쓸쓸할테니까 하나 더 만들지 뭐."


"뭐에요, 그게."


그녀는 시덥잖은 농담에도 선선한 바람 같은 웃음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나 많이 못나졌죠."


"여전히 예뻐."


간암 말기.


증상이 없었다.


워낙 건강했기에.


"금식 중인데 빈손으로 오긴 좀 그래서 책 좀 사왔어. 여행책자."


"아, 재밌겠다."


그녀는 여전히 활짝 웃었다.


"여기서 하루 자보고 싶다. 좋지 않아요? 조용하고 뭔가 절 특유의 분위기도 있고."


"내가 지금만큼 여유가 있었으면 다 데려다 줄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지금은. 미안해."


"그런 말 하지마요. 죽는 사람 같잖아. 나 다 나으면 만날 돌아다닐거니까 돈 많이 모아놔요."




그녀와 나는 혈핵형이 맞지 않았다.


간이라면 나누어 줄 수 있는 장기인데.


나누어 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주도. 여기도 갈거에요. 예쁘겠다. 잠수함도 탈 수 있대요!"


많이 수척해졌다.


"아 좀 자야겠다."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




제주도 이야기를 하고 일주일 후.


그녀는 죽었다.


잠을 자던 도중 증세가 급격하게 나빠졌다고 한다.


그녀는 그렇게,


말 한마디 없이,




지독하게 가난했었다.


미친 듯이 일했다.


그녀에게 이제 갚아야 할 것들을 마땅히 갚을 수 있게 되자, 그녀는 아프고, 그리고 죽었다.


도시전설을 들은 적이 있다.


그를 찾아갔다.


그는 지혜를 똑같이 만들어 주었다.


가자. 어디부터 가볼까.




깊은 산 속의 암자부터 찾아갔다.


풍랑을 하나 사서 문 앞에 걸어두었다.


마루에 앉아 지혜를 닮은 인형과 하루종일 수다를 떨었다.


딸그랑, 딸그랑,


밤이 깊자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모기향을 피웠다.


향 냄새가 난다.


별이 셀 수 없을 만큼 떠있다.


"저 곳 어딘가에는 아픈 사람이 없는 곳도 있을거야."


지혜를 닮은 인형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주도에 갔다.


배를 타고 갔다.


배를 타고 가는 내내 바다를 보며 갔다.


멀미가 났다.


제주도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구석구석, 안가본 곳이 없었다.




지혜와 전국을 돌며 3달을 보냈다.


해주지 못했지만, 해주고 싶었던 것들은 다 했어.


"좋았어?"


"고마워요."


지혜를 흉내내는 지혜를 닮은 인형이 활짝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녀를 보내주었다.


마침내 울었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슬픔으로.


---------------------------------


500년이 넘도록


"나는 고려 태생이야. 핀을 만난건 지금은 영국이라 불리는 곳이였어."


허언인줄 알았다.




카페에서 과제를 하고 있던 차였다.


내 노트북 화면을 유심히 보던 한 중년이 넌지시 말을 했다.


"이성계 아들 딸 중에서는 이방원이가 제일 똘똘했거든. 그래서 그 놈한테는 칼을 못잡게 했었어. 그뿐이야."


인물에 대해 분석하는 과제였지만 자료가 없어 추측성으로 소설을 쓰고 있던 차였다.


"과제하는 거 아닌가? 그럼 정확하게 해야지. 좀 가르쳐 줄까."


고려 말 역사에 밝은 사람인줄 알았다.


대뜸 자신이 고려 태생이라고 하기 전까지.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았다.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어딘가 이질감이 들었다.


살아있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난 상인이였어. 젊은 날에 중국으로 갔다가 일이 꼬여서 계속 외국으로 나돌아 다녔어. 역마가 단단히 낀 사주였거든."


그 남자는 차를 마시지 않았다.


귀찮았다.


조용히 과제나 하고 싶었다.


"가별초 알지? 이성계 사병 말이야. 그 쪽에 잠깐 식자재를 댄적이 있거든. 그러다 보니 들리는 게 많았어."


이젠 웃기지도 않아.


"이성계는 어떤 사람이였는데요?"


"아. 그래. 요새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 왕이 되기엔 그릇이 작은 자였어. 뭐라할까. 시야가 좁았거든. 강직하다 못해 우둔하기 까지 했으니까. 그러다보니 적이 많았지. 이 자가 밉상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이 들게 했거든. 이성계는 그런 공포심을 다스릴 줄은 몰랐어."


"상인이였다면서요?"


"상인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그때는 큰 상단의 행수였던 사람이야."


갈수록 미치광이 같았다.


자기가 죽지않는 신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왕이 되네 마네. 시끄러운 탓에 이성계와 거래를 끊고 상단을 정리했어. 식구는 없었어. 그 전에 귀족들에게 다 죽임 당했거든.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갔었지. 그래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생긴 것 까지는 못봤어. 중국에 갔다가 인도도 가고, 그렇게 떠돌아다니다가 늙어서 돌아다닐 힘도 없을 때 쯤 그 사람을 만났거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저 1초라도 빨리 내 앞에서 사라져 조용히 해줬으면 싶었다.


"그래서 거의 100년전 쯤 다시 조선 땅에 와보니까 난리가 나 있더라구. 왜놈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어. 그럴 수가 있나 싶었지. 노략질이나 일삼던 나라라고 기억하고 있었거든. 뭐, 나야 별 상관없는 몸이 됐지만 말야."


미치광이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느리게 톡톡 치고 있었다.


"말이 많았군."


그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카페를 나섰다.


과제는 끝 마쳤다.


나도 물건을 챙겨 카페를 나갔다.


------------


"아, 핀씨. 오랜만입니다."


핀은 자신의 작품을 알아보았다.


"오랜만입니다. 지금은 무엇이라 부르면 됩니까?"


"지금은 나진혁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그들은 악수를 했다.


"여행은 즐거우신가요."


마일즈는 빈 찻잔을 내어왔다.


"아무렴요. 원래 떠돌이가 적성에 맞는 터라."


그는 빙긋 웃었다.


핀도 빙긋 웃었다.


"이제 어디를 가 볼 생각인가요."


진혁은 찻잔 모서리에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릴 뿐 말이 없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손가락을 멈추었다.


"이제. 여행은 그만 하려고 합니다."


그는 다시 침묵했다.


"500년을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몸으로 살아온 건, 그저 호기심 때문이였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걸까, 여기는 시간이 지나면 어떤 모습이 될까."


공방은 침묵했다.




"이제 식구들 만나러 가렵니다. 저승길에서, 썩을 놈의 서방이라고, 못된 아비라 저 혼자 세상 재미나게 살고 왔다고 흉 보면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형의 숲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새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Cave 21.08.22 12 0 -
공지 인형의 숲은 여기까지 입니다. 21.05.12 55 0 -
54 황혼 Outro - 여명 21.05.12 22 2 4쪽
53 나무의 이야기 - 기억의 잔, 꿈의 상자, 상자의 꿈 21.05.11 22 1 13쪽
52 인형의 숲 - 다툼, 나무의 이야기 - 흰둥개 21.05.10 21 1 9쪽
51 황혼 - 7번째, 황혼 21.05.10 25 1 8쪽
50 인형의 숲 - 그들의 세계, 가지고 싶은 사람 21.05.06 14 1 8쪽
49 황혼 - 충돌, 거흉 21.05.05 19 1 7쪽
48 인형의 숲 - 산행, 노랫소리 21.05.04 21 1 7쪽
47 황혼 : 전면전 21.05.03 18 0 8쪽
46 인형의 숲 - 극야, 서커스 21.05.02 18 1 6쪽
45 황혼 : 신들의 대화, 돌입 21.05.01 17 1 8쪽
» 인형의 숲 - 풍랑소리, 500년이 넘도록 21.04.30 19 1 7쪽
43 5부 메인 스토리 황혼 : 여행자 롬, 마일즈의 새 몸 21.04.29 19 1 7쪽
42 5부 시작 - 인형의 숲 : 행방불명 21.04.28 30 1 7쪽
41 기사 - 무덤가의 기사, 공방의 기사 : 못다한 이야기들 21.04.27 21 1 10쪽
40 기사 - 마왕(2) 21.04.26 29 1 8쪽
39 나무의 이야기 - 기억상자, 자기애 21.04.25 28 1 6쪽
38 기사 - 마왕(1) 21.04.24 20 1 8쪽
37 기사 - 이도술 21.04.23 21 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