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천비도(破天飛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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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일오
그림/삽화
일오
작품등록일 :
2019.05.03 00:13
최근연재일 :
2019.08.08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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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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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82.자금성은 평온을 되찾고.

안녕하세요.,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DUMMY

82.자금성은 평온을 되찾고.


진산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흑고라는 놈의 본체를 전광석화의 속도로 순식간에 관통했다.

하지만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흑고가 기의 창에 꿰인후에도 맹렬하게 몸부림을 치면서, 크게 저항하는 반응에 진산은 경악을 하며 하마터면 뒤로 넘어 갈 뻔했다.

이제 어쩔것인가?

여기서 조금만 더 흑고가 거세게 저항하면서, 천성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독이라도 품어 내버리게 된다면,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두려움에 몸까지 부르르 떨려 온다.

억겁의 시간이 흐른것처럼 모든일들이 서서히 흘러 돌아가고 있었고, 숨막힐듯한 긴장감은 방안의 기물이라도 터쳐버릴 것처럼 진산의 몸을 꽁꽁 동여 매고 있었다.

잠시후에 주춤거리면서 놈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을때, 진산은 자신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창으로 만든 기(氣)를 회수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흑고라는 놈이 다시 움직이려 한다면 그때야 말로 빼도박도 못하는 대형참사를 이끌어 내고 말 것이다.

진산이 머릿속으로 수많은 갈등과 생각으로, 결정장애까지 심하게 겪고 있을때, 흑고란 놈의 머리 부분이 가늘게 떠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이 놈의 몸에서 아직까지는 독액이 흘러 나오지는 않고 있었다.

더불어 진한 긴장감으로 인해서 진산의 이마에도 놈의 몸뚱이 반절만 한 땀방울이 쉴새없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꾸울꺽!

-파르르르....!


진산은 극심한 긴장감에서 오는 심한 갈증으로 침이 넘어가면서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도대체 뭘까?

놈이 또 다시 부르르 떠는 느낌이 손으로 전해져 내려오자, 진산의 머릿 속은 더욱 시름이 강해졌다.

이놈이 죽기 전에 인간들처럼 회광반조 현상이라도 겪고 있는 것일까?

아님 독약을 배출하기위한 고약한 벌레의 발악의 전조일까?


-후두두두둑.....!


진산의 이마에서 땀방울들이 흡사 줄 터진 진주목걸이 알맹이처럼 쏟아져 내렸다.


-뚝!


어느 순간, 거칠게 대항하는것 같았던 놈이 다행이 놈이 경련을 멈추었다.

나직히 한숨을 불어낸 진산이 잠시 숨을 죽이고 놈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진기를 서서히 실타래처럼 풀어내 놈의 몸을 마치 누에고치가 감싸듯 들러가며 감쌌다.

시간이 더디게 얼마나 흘러 갔을까?

진산이 느끼기에 이제야 투명한 구체 안에 놈의 몸을, 완전히 몰아넣어 꽁꽁 옭아 매버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그런 느낌을 뒷받침이라도 하려는듯, 그때까지도 다행히 놈의 움직임은 죽은듯 멈춰 있었다.


“휘우유....”


이제 뇌호혈(腦戶穴)에 있는 놈을, 기의 구체(球體)가 풀리지 않도록 이문혈까지만 끌어내리면 된다.

제발 그안까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말거라.

진산은 머릿속으로 빌고 또빌며 의념을 놓치지 않으려, 심명을 다해 시술에 몰두해 나갔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팍!


드디어 동광제의 이문혈 부분을 살짝 베어낸 부분으로 뭔가 굴러 떨어져 나왔다.


“아....아아아! ....됐다! 됐어!”


진산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구술같은 땀방울을 닦아내면서, 떨어진 놈을 침소 한쪽에 놓아 둔 화로 위에 던져 넣어버렸다.


-푸시시.....!


아주 심하게 역겨운 냄새가 침소 안에 가득 차 올랐다.

좁쌀의 다섯 배 정도나 되는 크기일까?

저런 놈이 치명적인 독을 지니고 있다는 것조차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평산!, 있는가?”

“니...에, 검주님!”

“문을 열고, 수호대 건을 불러주게.”

“니에, 검주님!”


진산은 동광제의 안색을 살피며 명문에 진기를 가볍게 회전 시켰다.


“끄응!”


잠시 후, 언제까지 닫혀 있을 것 같았던 동광제의 두 눈이 힘겹게 열렸다.


“아!”


그는 희미한 시야 속에 영준한 진산의 얼굴이 점차 뚜렷하게 나타자자, 일순 감격에 겨운 탄성을 자아냈다.


“검주! 짐...이...짐이 살아난 것인가?”


진산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쓸어 내렸다.


“폐하!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오오....! "

"경하드립니다, 폐하!"

"정말 고맙네, 고마워, 검주....사실 말은 안했어도 짐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네.”

“포기라니요? 아직도 만백성들은 폐하의 화해와 같은 선정(善政)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하...검주는 참기름처럼 향긋한 말 솜씨를 가지고 있군.고맙네.다시 태어난다는 기분이 이런 것이로군! 정말 감격스럽네.”

“하하...이제 흑고도 제거하였으니, 약속드린 대로 천수보다 이십년을 더 사실 수 있게 해드리지요.”

“오! 그게 정말이었는가?.. 검주?...염치없지만 검주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싶은 심정이군....그렇게만 해주게. 짐이 자네의 소원은 뭐든지 들어 주겠네."”

“하하..감히 폐하 앞에서 허언을 할 정도로 소신의 간이 크지 못 하답니다. 폐하!”

“하하하..부디 자네의 뜻이 성공하기를 바라겠네 .약속한대로 검주의 모든소원을 짐이 꼭 들어주기로 하지."

“하하...폐하! 정말이십니까? 설마 소신이 황궁보고라도 모조리 가지고 간다하면 어찌하려 하십니까?”

“이 사람아, 이를 말인가? 짐에게 새생명을 안겨준 검주에게 그까짓 황궁보고가 무에 아까울까?”

“하하...그럼 폐하 약속하신 겁니다.”

“하하...당연! 아...정말 기분이 좋구나, 몸 안의 혹덩이를 없애버린 탓도 있겠지만, 자네처럼 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벗이 생겼다는 것이 온 세상을 다가진 것처럼 벅차오른다네.”


진산이 동광제와 웃으면서 눈을 맞추고 그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면서, 고개만 바깥 쪽으로 돌려 나직이 말했다.


“건! 조용히 들어오게!”

“예, 주공!”


건이 한쪽으로 열어진 방문으로 들어오다가, 동광제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 오체투지를 했다.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평신!”


건이 나직이 외치자, 동광제도 나직이 말했다.


“건!”

“예, 주공!”

“폐하와 흡사한 체형의 무연고 시체를 한구 수배하게,”

“네에?.....아..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시체의 얼굴에 화골산을 부어 목없는 시신을 가져오게, 시간은 이틀 후,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극비(極祕)이네, 조금이라도 새어 나간다면 자네라 하더라도 그 목숨 부지하기 힘들 것이야.”

“예, 주공, 염려하지 마십시요. 그런데 얼굴 없는 시신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맞네!”

‘네! 바로 소관, 나가보겠습니다.”


진산은 그가 조심스런 몸짓으로 나가자, 황제를 보고 나직이 웃었다.


“폐하! 우리도 받은 게 있었으니 이제 저들에게 반격을 해야지요,”

“혹시 적들을 지붕 위로 유인하고 사다리를 치워 버린다는 상옥추제(上屋抽梯)의 계(計) 인 것인가?”

“하하..바로 알아보시는 군요, 이번기회에 한꺼번에 끌어들여서 끝을 보아야지요.”

“하하... 짐이 자네를 불러오지 않았다면 어쩔 뻔 보았는가? 뒷일을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네.”

“하하..이제부터 폐하의 몸을 재구성할 대법(大法)을 시행할 참입니다. 마음 편안하게 소신이 시키는 대로 하신다면, 이틀 후에 달라진 폐하의 신체를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하하...듣기만해도 하늘을 얻은 것 같으이...."

"하하....자, 그럼 돌아 누우시겠습니까?.”


진산은 진기를 끓어 올려 자신과 동광제의 신형을 따뜻하게 감싸면서, 외부와의 차단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아까 고란이 그렇게까지 동광제의 죽음을 확신한 시점이 아마도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벌모세수.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동광제는 진산에 의해서 재탄생하고 있었다


-두둥!.



+++++++++++++++



황의곤룡포를 전신에 걸친 철혈의 사내, 동광제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산과 삼후(三后)가 제일 먼저 오체투지를 하며 바닥에 몸을 납짝 엎드렸다.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평신!”


진산일행이 몸을 일으킬 때 까지도 광장에 있던 수많은 이들은, 무슨 영문인지 깨닫지 못하고, 진산 넓은 등만 바라보고 있다가, 드디어 밝게 빛나는 동광제의 용안을 확인하고서야, 바닥에 몸들을 내던지듯 허물어졌다.


"폐하께서 살아 계시닷!"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온 광장이 들썩일 정도로 우뢰와 같은 큰 함성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만이 넘는 인영들이 한자리에서 소리를 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동광제를 향해 고개도 들지 못하고 엎드려 있는데, 유독 꼿꼿이 서서 흔들리는 눈으로 동광제를 바라 보기만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마치 이 사태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불신이 가득해서 서로의 얼굴들까지 믿을수 없다는 표정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 인원들만 해도 수백에 이르는지라, 황제의 두 눈에 시리게 들어왔다.

동광제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평신!”


동광제의 나직한 말이 마치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뚜렷하게 병사들의 귀에 들려왔다.

신기한 일이였다.

고개를 들고 동광제의 얼굴을 바라보던 병사들은, 그의 얼굴이 흡사 금칠이라도 해놓은 듯 번쩍거리자, 각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페하의 용안에서 금빛이 흘러나온다....!”


동광제는 손을 높게 들어 장내의 웅성거림을 자재시키면서 모두를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병사들은 저들을 향해 속사(速射) 준비를 하고 한시도 경계를 풀지 말라.”

"옛! 황제폐하!"


그의 말에 공민왕과 해공공을 비롯한 그들편에선 모든 무인들의 안색에 절망의 빛이 짙게 깔렸다.


“공민왕! 그렇게 이 자리가 탐나더냐?”


나직한 황제의 말에 체념한 듯 동광제를 힘없이 바라보던 공민왕이, 자조 섞인 표정으로 처연한 미소를 희미하게 떠올렸다.


“형님! 막내로 태어나서 황제의 위(位)를 잇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한이 되었었소. 그러다보니 깊은 불만만 쌓여가고 어느 한 순간 고란의 달콤한 사탕발림을 진짜처럼 믿어 버리고 말았던 것 같소."

“흐음....이놈, 아우야...어찌...그런......!”

“형님, 하지만 후회는 없소! 황제는 하늘에서 내린다는 말을 잠시 잊고 있던 소제의 잘못이 크오. 오늘 형님의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형님만을 황제로 점찍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소.”


공민왕은 말을 마치고 그 자리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패장은 유구무언이오! 형님의 처분만 바라겠소.”


동광제의 두 눈이 심하게 떨려왔다.

세자시절에 유독 귀여워하고 예뻐했던 믿음직스러운 동생이었다.

둘째인 순천왕은 워낙이 학자 같은 분위기의 조용한 아이였는지라,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았지만 막내 공민왕은 그야말로 그의 말벗을 도맡아 해주던 정이 가득한 아이였다.


“막내야.......이놈아.....”


억눌린 신음소리가 동광제의 입을 비집고 겨우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때 못내 안타까워 하던 동광제의 귓전으로 우렁차게 들려오는 또 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둘째아우 순천왕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폐하! 막내를 벌하려거든 소신도 같이 벌하여 주시옵소서!”

“둘째야, 너까지 또 왜 그러느냐?”

“폐하! 지나고 보니 소신도 고란이 찾아왔을때, 그의 음모를 희미하게 알 수 있었음에도, 폐하께 숨기고 말을 하지 않은 대죄가 너무 크옵니다. 그러니 막내를 벌하려거든 소신까지 죽여 주시옵소서.”

“휴우! 일어나라, 너까지 이형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지 말거라!”


그러나 바닥에 이마를 찧듯이 내려박은 순천왕은, 깊게 고개를 숙이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 하지 않고 있었다.

동광제는 꿇어 앉아있는 공민왕의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는 해공공을 바라보며 두 눈에 노기를 가득 담는다.


“해공공! 이런 역적놈의 새끼! 어쩔 셈으로 그렇게 꼿꼿하게 서 있는 것이냐? 끝까지 짐에게 해코지를 해보겠다는 생각인 것이냐?”

“폐...폐하! 이....이......”

“왜 더듬는 것이냐? 이 상황에 아직도 미련이 남았다는 뜻이 겠구나! 여봐라!”

“폐....폐하.....절대.. 아...아닙니다..폐하!”


그는 동광제의 불같은 고성이 터져 나오자, 순식간에 당황하며 오체투지를 하기 이르렀다.


“폐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소신을 부디 죽여주시옵소서!”

“죽여주시옵소서!”

“죽여주시옵소서! 폐하!”


그의 통곡같은 외침이 터져나오는 순간, 동창의 무인들과 공민왕 사저(私邸)의 무인들이 모두 오체투지를 하면서, 합창하듯 외치고 있었다.

이로써 황실을 파탄으로 이끌고 황궁에 일던, 피비린내나는 역모가 드디어 그 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파천비도 진산이 오롯이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산은 확실하게 매듭을 짓기 위해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무리들 속으로 몸을 날렸다.


“공민왕과 해공공은 앞으로 나서라!”


싸늘한 진산의 외침이 광장에 울려 퍼지자, 어리둥절 하는 두 사람은 못 이기는 척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대들은 진실로 폐하께 잘못을 뉘우치는가?"


진산의 얼음같은 외침에 그들은 찔끔하면서, 그의 불같은 시선을 피해 눈을 내려 깔았다.

그리고 두사람의 입에서 각기 어눌한 말들이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그...렇소....검주!"

"맞...맞소!....뉘우치고 있....소이다!"

"어리섞은 자들! 그럼 그대들은 폐하께 어떤 것으로 잘못을 뉘우쳤다 보여 줄 수 있겠는가?"

"그....그것이......?"

"아....뭐라......할..말이......?"


두사람은 진산의 말에 차마 대꾸조차 이어가지 못하면서 더듬거리기 시작하고, 이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던 진산이 사자후를 터트리듯 대갈일성을 발했다.


"이제와서 아무리 너희들이 뉘우친다고 일만번을 외쳐도 본 검주는 믿을 수 없다. 폐하께 직접 목이라도 떼어 바쳐도 용서가 안 되는 인간들이, 본 검주의 말에 대답도 못하면서 감히 말로만 용서를 빌어? 공민왕! 해공공!"

"예...에!"

"네,,,엣?"


두사람은 진산의 고함소리에 찍소리도 뱉지 못하고, 더욱 고개만 자라목처럼 집어 넣으면서 겨우 대답을 했다.

진산은 그런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허공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공민왕과 해공공은 역모를 자행하고 황실을 어지럽힌바, 황제폐하의 칙명이 떨어지기 전에 황룡검주의 자격으로 두사람의 단전을 폐한다."


말을 끝나자마자, 진산은 두 사람의 향해 전광석화처럼 손을 휘둘러 단전을 부숴버렸다.


-휘이이잉

-휘익!

-퍽!

-푹!


“으윽!”

“으악!”


단전이 순식간에 터져 나가면서 신형이 일장정도 날아가 엎드려 있는 병사들의 등 위로 떨어져 내였다.

한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던 그들은 처절한 심정이 되어, 병사들의 도움으로 겨우 몸을 일으키고 입가로 흐르는 진한 선혈을 주체할 수 없어서 꾸역꾸역 토해냈다.

두사람의 눈에서는 누가 먼저라고 말할 수 없이 억울함인지 후회인지 모를 피가섞인 붉은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서는 진산에 대한 분노의 눈빛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미 자신들의 생을 포기해 버린 탓이리라.

진산은 부릅뜬 호목(虎目)을 들어 두 사람을 내려 보면서 서서히 몸을 돌렸다.


“황실 수호대는 저 역적들의 무공을 폐하라!”

“옛! 검주, 명을 받드옵니다!”


순식간에 장내에는 살을 가르는 격타음과 처절한 비명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워낙 많은 무인들이 남아 있던 지라, 그 소란은 한참동안이나 이어졌다.

이제 그들은 무공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회한의 눈물을 흘려가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한순간에 평범한 범부(凡夫)로 돌아가는 그들을,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한 장면도 눈에서 지우지 않고 바라보는, 동광제의노기가 가득했던 안색이 그제야 풀어지기 시작했다.


“대장군!”

“예! 폐하!”

“저들을 옥에 가두고 그 죄상을 낱낱이 파헤쳐, 그에 맞는 형벌을 정하여 짐에게 상신(上申)하라!”

“예! 폐하! 즉시 봉행(奉行) 하겠나이다!”

“휴우! 검주는 짐과 함께 어전으로 돌아가세!”

“예, 폐하, 모시겠습니다.”


그들이 서쪽하늘로 기울어져가는 해를 등지고, 태화전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을 때, 오만이 넘는 병사들이 그들의 뒷모습을 향해 대례(大禮)를 올리고 있었다.

태화전 안에는 태왕태비를 비롯하여 다수의 비빈들과 순천왕을 비롯해 황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공주들과 손주들은 자리를 피하였느냐?”

“예, 아바마마! 안전한곳에 대피해 있사옵니다.”


세자 수의 말이 떨어지자, 비빈석을 바라보던 동광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아니...숙빈, 이것은 어디 갔느냐?”

“예, 숙빈은 소자가 금의위를 시켜서 옥에 가두었나이다.”


동광제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 나오고, 그는 이빨을 가는 듯 나직이 입을 열었다.


“짐이 친히 그년의 목을 치리라!”

“황상! 노여움을 푸세요, 어찌 보면 오늘이 좋은날 아닙니까?”

“아...어마마마, 하하하....그 말씀이 옳군요. 정녕 오늘이 나쁜날만은 아니었군요. 많이 놀라셨지요?"


태왕태비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내며 웃는다.


“황상! 아까는 여기가 지옥인 줄 알았다오.”

“어마마마, 심려를 끼쳐드려서 송구합니다. 그리고 전해드릴 희소식이 한지지 있사옵니다."

"황상! 이런 판국에 희소식이라니요, 무엇입니까? 얼른 말씀해보세요."

"하하하....검주의 말을 들어보니 소자가 오히려 회춘(回春)을 하여 앞으로 수십년은 거뜬하다 하더이다. 그러니 소자에 대해서는 심려 놓으셔도 되실 겁니다, 어마마마!”

“오! 관세음보살! 그것이 정녕 참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어마마마, 소자는 이제 검주 말이라면 개를 호랑이라 말하여도, 믿게 돼버리고 말았습니다.하하.....!”

“오호호호....정말이란 말이오? 정녕 그러한 것이라 말이지요? 황상!”

“하하...예! 어마마마! 처음에 소자처럼 믿지 못하시는군요. 하하...소자도 검주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어마마마처럼 믿지 못하였었지요."

"호호,,,정말이었군요, 감축드리오. 황상! 정녕 이나라의 홍복이오, 황실의 경사라 아니할 수 없네요."

"감사하옵니다. 어마마마!"


동광제와 태비간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있던 진산이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런 동광제는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진산을 바라보며 간절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참...검주!”

“예! 폐하!”

“짐이 부탁하나가있는데 말을해도 되겠는가?”

“하하....허심탄회하게 말씀하시지요, 폐하!”


진산의 대답을 듣던 동광제의 시선이 태황태비에게서 중전 선형왕후에게도 시선을 옮겼다.

말없이 눈물만 찍어내고 있던 중전서씨는 그의 눈빛에 고개만 끄덕 꺼릴 뿐이었다.


“검주! 태비마마와 여기 중전에게도 나에게 해주었던 벌모세수를 해줄 수 있겠는가?”

“흐흠..폐하...그말씀 하시려 하셨군요."”


진산은 두 여인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진맥부터 해보겠습니다.”

“이자리서 말인가? 하하....고맙네, 검주!”


진산은 두 손을 동시에 내밀어 두 여인의 한꺼번에 진맥을 해본다.

한 번에 두 사람을 진맥하다니...말로도 들어 본적이 없는 중인들이 놀라워서 서로의 눈들만 바라본다.


“폐하! 다행이 가능할 것 같사옵니다, 좋은 날을 잡아 소신이 찾아오겠습니다.”

“고맙네, 검주!”

“아! 이 늙은이도 감사해요, 검주!”


태비의 말에 진산이 웃으면서 손사례를 치자, 중전 선형왕후도 그를 바라보면서 옥구슬 같은 목소리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검주, 오늘 일만으로도 벅찬데 뭐라 감사를 해야 할지...”

“하하..아닙니다, 중전마마! 폐하와 다정하게 오래오래 장수하시고, 이나라를 언제까지 부국으로 만들어 달라는 소신의 선물쯤으로 여겨 주시옵소서!”


이때 중전의 뒤쪽으로 앉은 비빈들의 눈에서도 어떤 기대감에 반짝반짝했으나, 누구하나 그녀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짐이 오늘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은 검주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황궁보고를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부여 하겠다. 그리고 하향하는 길에 마음에 드는 보물을 마음껏 가져 가도록 보고를 검주에게 열겠다!”

“하하하.....폐하! 너무 과하신 것 같습니다. 소신은 그저 그중 몇 가지면 충분하옵니다.”

“검주, 짐이 그대에게 무얼 아끼겠는가?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으니....검주가 이해 하고 받아주시게! 검주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짐은 이것마저 성이 차지 않는다네, 참, 그리고 그대를 도와 이번에 큰 공로를 세운 검주의 부인들에게도 황궁보고에 들어 보물을 가져갈 수 있는 상을 내리노라!”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성은이 망극 하나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진산을 필두로 삼후가 황제에게 감사의 대례를 올렸다.

이로써 진산은 황궁보고에서 흑심을 가지고 있던 것 들을 마음껏 챙길 수 있게 되었다.



++++++++++++++++++



북경의 진가협부 대청 안.


삼경이 가까워와서 오늘의 긴 하루가 피곤해서 모두가 드러 누울만도 한데, 수호대 전원들과 진가인 모두는 한자리에 모여, 아직도 술자리를 파하지 않고 있다.

원래 진산은 내공으로 술 기운을 막지 않는 터라, 술로 인해 붉어진 안색이 더욱 영준(英俊)하게 만들고 있었다.

반면에 여인들도 복사꽃 같은 안색에 하나같이 절색들이라, 그 모습 또한 밤에 피는 활짝 핀 요염한 꽃의 자태를 보는 듯하다.

또한 건과 수호대무인들은 자신들의 주공의 절세무공을 오늘 마음껏 눈에 담았는지라, 저런 분과 평생을 같이 할 수 있다는 마음에 온몸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고무(鼓舞)되어 있었다.

바로 이때 스무 명 정도 되는 무인들이 대청으로 들어오며 진산을 향해 포권을 해온다.


“가주님! 저희들 왔습니다.”

“오! 왜 이리 늦었는가? 어서 이리로 자리들 잡게!”


진산이 반색을 하며 찾아온 이들을 반갑게 맞아들이고 그들도 진산의 곁으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바로 북경에서 활동하고 있던 진가의 정보각의 무인들이었다


“가주님! 실은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으응? 무슨 말이든 해보게!”

“방금 날아온 정보에 의하면 어제 무림맹이 해체 되었답니다.”

“뭣이? 지금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진산의 두 눈이 언제 술기운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크게 커졌다.


“자세히 말해보게 일이 어떻게 된 일인가?”

“그저께 저녁에 바라밀교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허어! 이것 참! 그래서 고란이 나에게 전해줄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었던 것이 이것 이었나?”

“어제 밤에 약 삼천 정도가 쳐들어와서 이천 겨우 넘는 무림맹을 초토화 시켰다는 소식입니다.”

“허허......!”

“가주님! 한 가지 소식이 또 있습니다.”

“말해보게? 또 무슨 일인가?”

“전투에서 살아남은 각파의 간부들과 무인들 약 천 여명이, 하음 우리 진가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뭣이?"


진산은 정말로 술기운을 날리기라도 해야 할 듯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아니, 강호상에 언제부터 어데 가서 맞기만 하면, 모두 진가장을 찾아 나서는 전통이라도 생겨났단 말인가?

그는 어이가 없어서 입만 크게 벌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향이가 간드러지게 교소를 터트리며, 튀김 하나를 들어 벌어진 입속에 쏙 집어 넣어 버린다.


“호호....우리 오빠, 황궁보고에 가서 보물들을 더 많이 들고 와야겠네?”

“호호...가가 표정이 정말 웃긴다.”


초하와 화영까지 간드러지게 웃어 제치자, 어이가 없어하던 진산도 허허,웃지 않을 수 없었다.


“허허허....뭐! 우리 제갈하고 복희만 죽어나겠지? 혹시 과중한 업무에 질려버려서 도망가버릴지 모르니, 이번에 황궁보고에 들어가면 그 두 사람 결혼 예물이나 빵빵하게 필히 챙겨야겠어.”


보고이야기가 진산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세여인의 눈빛도 묘하게 움직이면서 진산에게 바짝 다가들었다.


“오빠! 언제 갈끄...야?”


향이의 애교 잔뜩 섞인 말에 그는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으면서 말했다.


“무림의 시선과 정세가 모두 우리 진가를 향하고 있으니 ,이곳 일을 빨리 처리하고 본가로 가야 될 것 같구나.”

“응, 그래야 될 것 같긴하네.”

“패망(敗亡)한 무림맹까지 본가로 온다라..........흐음.....이 또한 하늘이 내게 주는 순리란 말인가?”


진산의 시름이 담긴 한숨이 깊게 묻어나고, 먼 산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은 그어떤 각오를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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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97.전쟁의 시작. +6 19.08.06 3,479 53 15쪽
96 96.결판을 내자! +7 19.08.05 3,589 54 21쪽
95 95.맹주, 그거 하겠소! +7 19.08.03 3,585 59 15쪽
94 94.뭐...뭐라구요? +7 19.08.02 3,556 54 16쪽
93 93.개파대전(3). +9 19.08.01 3,753 57 20쪽
92 92.개파대전(2) +7 19.07.31 3,676 57 18쪽
91 91.개파대전(1). +9 19.07.30 3,907 59 19쪽
90 90.도약(跳躍) +7 19.07.29 4,039 62 21쪽
89 89.파문(破門). +9 19.07.27 3,982 69 21쪽
88 88.검후의 숙명(宿命). +7 19.07.26 3,987 58 16쪽
87 87.눈속의 비무 +7 19.07.25 4,132 61 18쪽
86 86.개싸움. +7 19.07.24 3,988 63 13쪽
85 85.꿈틀거리는 진가협부 +7 19.07.23 4,128 70 20쪽
84 84.진가협부의 봄. +7 19.07.22 4,341 72 19쪽
83 83.무림맹의 사람들 +7 19.07.20 4,530 75 16쪽
» 82.자금성은 평온을 되찾고. +7 19.07.19 4,537 68 25쪽
81 81.고란. +7 19.07.18 4,500 73 18쪽
80 80.혈왕들의 진화(進化). +7 19.07.17 4,481 69 17쪽
79 79.고란! 나를 넘어라! +5 19.07.16 4,427 73 17쪽
78 78.아! 황제폐하! +7 19.07.15 4,409 67 18쪽
77 77.흑고(黑蠱). +5 19.07.14 4,351 71 16쪽
76 76.황궁보고(皇宮寶庫) +7 19.07.13 4,480 68 15쪽
75 75,고양이에게 생선 맡기기? +7 19.07.12 4,462 67 17쪽
74 74.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리라! +7 19.07.11 4,407 69 17쪽
73 73.흑살방을 지워라! +7 19.07.10 4,468 6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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