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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몽객
작품등록일 :
2009.12.23 12:53
최근연재일 :
2009.12.2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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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1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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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펀 하우스 (2)

DUMMY

루스카가 지하도시에 들어온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운 지하에선 천장에 박힌 마법등의 점등만으론 날짜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의 걱정섞인 예상과는 다르게 지하도시에서의 생활은 천국과 다름없었다. 삼시 세끼 풍족한 식사와 간식이 제공되었다. 비쩍말랐던 아이들은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르기 시작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두려움이 섞여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살이 붙었다 싶자 크루델 원장은 체력단련을 실시했다. 처음엔 간단하게 광장을 한바퀴 도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에 한바퀴씩 추가되었다. 초반엔 잘 따라가던 아이들도 백바퀴가 넘어가자 곧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천성적으로 체력이 약한 아이들부터 점차 낙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상해서부터 취침할때까지 어떻게든 할당량을 채우기만 하면 되는지라 큰 걱정은 없었다. 몇몇 잔꾀를 부리던 아이들이 본보기로 머리가 터져 죽자 더 이상 힘들다고 요령피우는 아이들은 없어졌다. 하루의 할당량을 채우기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이었다. 크루델은 아이들이 무슨짓을 하건 신경쓰지 않았다.

“흥! 이곳은 우리 구역이라고 했을텐데?”

“그러니까 공만 주워가겠다고 했잖아!”

“우리 구역으로 넘어온 이상 우리꺼야.”

“그런게 어디있어!”

하루치 할당량을 채운 자유시간. 아이들이 뛰어 놀던 중앙광장에서 말다툼이 벌어지자 루스카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인간은 무리짓는 동물이라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이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세력권이 삼파전으로 형성되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남자아이들은 평민과 몰락귀족의 아이들이 주로 모인 곳과 빈민층과 농노출신의 아이들로 양분되어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고 한데 모여 남자아이들의 싸움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해라. 공하나 가지고 유치하게 싸울 필요는 없잖아.”

말다툼이 점점 심해지자 한 아이가 중재를 하듯 나섰다. 금을 녹여 부은듯한 진한 금발에 잘생긴 얼굴, 손짓 하나하나에 기품이 묻어나오는 전형적이 귀족의 핏줄로 보이는 아이가 말하자 말다툼을 하던 아이들이 전부 입을 다물었다.

벌써부터 아이들을 휘어잡는 강한 리더쉽과 카리스마를 지닌 베스터드란 이름의 소년은 넘버1의 팔찌를 가진 중상층과 몰락귀족의 아이들이 모인 무리의 리더였다.

“흥 하여간 어딜 가나 잘난척이시지.”

빈정거리듯이 말하며 나타난 소년은 갈색 머리에 날렵한 몸매로 한쪽눈이 길다란 흉터를 가진 바오렌이란 소년으로 넘버2의 팔찌를 가진 빈민층과 농노출신의 아이들이 모인 무리의 리더였다. 넘버1과 2는 서로를 노려보다 등을 돌렸고 아이들이 침을 뱉고 야유를 하며 각자의 리더 뒤를 따랐다.

“정말이지 하는꼴이 너무 유치하지 않니?”

루스카는 자신의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타는듯한 붉은머리를 부풀리고 묘하게 색기어린 눈매를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어느새 다가 왔는지 루스카의 곁에 앉은채 루스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넘버3의 팔찌를 가진 스텔라란 이름의 소녀는 각자의 리더를 중심으로 양분된 남아들과는 달리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고 여아들을 한데 모은 여자아이들의 리더였다.

“안녕? 넌 저 멍청이들이랑은 좀 다른거 같은데?”

스텔라는 자신의 미모를 알고 그걸 이용할줄도 알았다. 은근슬쩍 루스카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다가왔다. 기본적인 보급만 이뤄지는 이곳에서 어떻게 구했는지 달콤한 향기가 풍겨왔다. 자신의 미모에 루스카가 넘어올 것을 확신한듯한 태도였다.

“용건은?”

루스카가 표정의 변화없이 덤덤하게 묻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 넘버3은 샐쭉한 표정으로 루스카를 노려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흥! 혼자 노는게 안쓰러워서 말을 걸어줬더니 잘난척은!”

넘버3의 기분이 안좋은 듯 보이자 아이들은 행여나 해꼬지를 당할까 싶어 넘버3의 곁에서 떨어졌다. 크루델리스는 고아원 아이들의 일에는 방관자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아니 그보다는 방치하다시피 헀고 모든 것은 아이들이 결정하고 실행했다.

그러니 각 무리의 리더들은 왕과같은 권력을 가졌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루스카는 아이들의 대장놀이에 관심없었다. 루스카의 유일한 관심사는 어떻게든 이 곳을 지배하는 저들의 눈에 들키지 않게 창공검을 찾는 일이었다.


@


루스카는 체력단련으로 실시되는 구보의 하루 할당량을 다 채우면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도서관의 서적은 방대해 각종 전문서적은 물론 온갖 장르의 서적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창공검에 대한 단서는 찾을수 없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창공검을 찾는다 해도 이곳을 벗어날수는 없었기에 이곳에서 힘을 기르며 창공검에 대한 단서를 찾고 결정적인 순간에 검을 가지고 벗어나면 되는 일이었다. 하루 이틀이 아닌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라 루스카는 여유를 가지고 도서관을 뒤졌다.

“흠… 역시 여기 있었군.”

한참 서적을 탐독하던 루스카는 등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살짝 미소를 머금은 검은머리의 사일러스는 이곳에 와서 사귄 치구라면 친구할 수 있는 소년으로 서로 번호로 호명하는 이곳에서 루스카가 유일하게 이름을 가르쳐준 소년이었다.

“무슨소리지?”

“뭐 별거아냐. 너나 나처럼 애들 틈에 안섞이고 따로 노는 애들은 다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거든.”

무리를 이룬 아이들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무리에 끼지 않고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루스카와 사일러스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이곳 도서관에서 몇 번 얼굴을 마주치다 차츰 대화를 나누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뭘 보고 있었냐?”

“…제국의 역사.”

역사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혹시나 창공검에 대한 단서가 있을까 싶어 읽어보는것뿐이었다.

“흐음?”

루스카의 말에 흥미를 느낀 사일러스가 루스카의 어깨너머로 펼쳐져있는 부분을 소리내어 읽었다.

“로라시아 대륙에는 칠신기라 불리는 신물이 있다. 신으로부터 직접 일곱가지의 무구를 내려받은 이들이 바로 신족이라 불리는 일곱가문의 시조들이다. 뭐야? 다 아는 이야기잖아?”

“그런가?”

담담한 루스카의 말에 사일러스는 호들갑을 떨며 너스레를 떨었다.

“반응이 뭐 그래? 전설과 영웅담의 대부분이 일곱신족가문 출신들의 이야기잖아! 이래뵈도 내가 여기오기전에 꿈이 바로 신족가문에서 일하는 거였다고!”

“……”

루스카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사일러스는 답답한 듯 말했다.

“시그너스 제국을 일으킨 폭풍검을 보유한 시그너스 가문과 황혼의 창을 소유한 베리엘 가문, 여명의 활을 가진 스콜렌 가문, 구름의 방패를 보유한 바시스 가문, 바람의 건틀렛을 보유한 글랜모르 가문, 창공검을 보유한 모건가와 알려지지 않은 뇌전검의 가문은 기본 상식이라고 상식!”

“잘 알고있군.”

사일러스는 신족가문에 대한 동경심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일곱신족과문과 관련된 일화들을 마치 자기집안의 일인양 자랑스레 떠벌렸지만 루스카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자 사일러스는 작게 투덜거리다 말했다.

“가자. 저녁시간 다 됐어.”

사일러스는 루스카를 기다리지 않은채 도서관을 벗어났고 루스카도 읽던 책을 정리하곤 사일러스의 뒤를 따라 걷다가 고개를 돌려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호프만 장로님. 반드시 창공검을 찾을게요. 지켜봐주세요…’


지하도시의 일상은 아이들의 체력단련이 삼백바퀴를 넘어가면서부터 새로운 과목이 하나 추가되었다. 북쪽 건물의 일층 강당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읽고 쓰기에서부터 간단한 셈법까지 기초적인 부분부터 시작해 점차 진도를 높여나갔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신학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어찌보면 지루하고 졸린 시간이었지만 강당에 들어가기전 하나씩 사탕을 지급받아 달달한걸 좋아하는 아이들로선 신학강의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따라서 루베르 루네스께서 말씀하시니 알맹이 없고 마음에 없는 제물을 나의 제단에 올려놓지 말라. 죄 짓는걸 두려워 말라. 불의라 생각지 말라. 불행에 신음하고 부모잃은 고아들을 모아 도당을 짜고 창칼을 쥐어주어 나의 군사로 만들라. 오직 나만이 유일한 하나 일찌니 나를 믿지않고 침을 뱉는자는 지옥불의 고통속에 신음하게 하라. 나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자와 그 가족의 심장을 뽑아 나의 제물로 제단에 올리라. 내가 흡족해 할지니…”

‘다르군…’

루스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모건가의 서재에서 신학에 관한 책도 읽은적이 있었지만 지금 크루델리스가 경건하게 낭독하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루네스교는 제국에서 가장 큰 교세를 유지하는 열두주신중 하나인 달의 여신이었다.

루스카도 루네스교의 성서를 읽어본적이 있었다. 지금 크루델리스가 낭독하는 성서의 내용은 본래 루네스교 성서의 내용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루네스교는 박애와 평등을 내세워 기득권층을 불편하게 만드는 종교로 만민평등을 내세우는 공화파와도 연계돼 제국 정부로부터 은근히 견제를 받고 있었지만 많은 제국민들이 믿는 종교였다.

하지만 유일신 교리를 내세워 자신을 믿지 않는 자 이외엔 전부 죽이라는 극단적인 종파는 절대 아니었다. 만약 그런 종교였다면 진즉에 제국의 공안에 의해서 멸교당했을 테니까. 루베르 루네스. 붉은달이라는 이름처럼 루네스를 부르는 호칭마저 달랐다. 크루델이 낭독하는 내용처럼 이 지하도시에 아이들을 모아 신의 군대를 만들려는 광신집단이 틀림없었다.

“루베르 루네스 신의 뜻대로…”

아이들은 홀린 듯 멍한 표정으로 루베르 루네스를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사탕에 뭔가 특수한 약물이 들어간 듯 흐리멍텅한 눈으로 루베르 루네스를 연신 읇조리고 있었다.

‘어째서 나는 멀쩡한거지?’

루스카도 사탕을 먹긴 먹었다. 크루델리스와 선생들은 아이들이 사탕을 다 먹었는지를 꼼꼼하게 검사했기에 도로 내뱉을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루스카는 이지가 흐려지지도 않았고 크루델리스가 낭독하는 성서의 내용에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향료를 태우는지 강당 곳곳에 피어 오르는 정체모를 연기는 안개처럼 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보라! 루베르 루네스께서 너희를 굽어 살피시니 경배하라!”

크루델리스의 외침과 함께 루네스교의 상징인 원안의 열십자 문양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지더니 한 여인의 형체가 희미하게 안개를 헤치며 나타났다.

“우와아아!”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바라보았지만 루스카는 문양을 향해 실들이 모여 들더니 뿜어져 나와 형체를 이루는 모습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즉 진짜 신의 현신이 아닌 단순한 눈속임에 불과했지만 약에 취해 제대로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겐 영락없는 신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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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타인의 죽음에서 슬픔을 느끼다.(2) +5 09.10.28 4,463 10 13쪽
7 타인의죽음에 슬픔을 느끼다. +5 09.10.27 4,840 17 6쪽
6 시궁창 속에서 창공을 만나다. (5) +2 09.10.27 4,704 14 8쪽
5 시궁창속에서 창공을 만나다 (4) +3 09.10.27 4,755 13 11쪽
4 시궁창 속에서 창공을 만나다 (3) +3 09.10.27 4,797 1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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