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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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man
작품등록일 :
2019.05.09 17:45
최근연재일 :
2020.03.12 08: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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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150,144

작성
19.05.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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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고백

DUMMY

“나 말이야······ 지금까지 널 좋아했어.”


“네?”

······라고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만 말해야할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 들렸으려나? 라는 걱정도 잠시 나는 곧바로 안심했다. 왜냐하면 내 목소리가 들렸을 리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선배의 목소리에 대답했기 때문에······.


“저도······.”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한 템포 쉬고 말을 이었다.


“······좋아했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담담한 어조의 전형적인 고백 승낙. 하지만 나는 받아드릴 수 없었다.


그게 아니지. 이게 아니지. 그렇게 가볍게 승낙해 버리면 어떻게!


몸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야. 이런 고백 용납할 수 없어!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선배가 고백한 사람, 내가 아니니까. 선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하는 고백, 내가 막을 수 없으니까. 내일부터 선배를 만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최대한 괜찮은 척하며 선배의 행복을 빌고 있어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왜 너야! 왜 너냐고! 이 친구야!!!!!


나의 가장 오래된 친한 친구, 재우가 선배의 고백 대상이었다.

이 고백은 선배에게 고백하기위해 계단을 올라가던 중 듣고 말았다.


나는 둘 사이에 당장 쳐들어가서 분위기를 와장창 내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선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하지만 실망이다 재우야. 우리가 알고지낸지가 몇 년인데, 넌 내 마음도 몰랐냐. 진짜 너무하다······.


지금 당장 재우에게 달려가서 뺨을 한 대 쳐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멈춰있던 발을 겨우 움직여 학교를 벗어났다.


흥분하지말자······. 내가 뭐라고······.


시체처럼 썩어버린 몸뚱이를 힘들게 움직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절한 심정으로 선배의 고백을 회상하는 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러냐? 이 거지같은 세상아······.”


우산은 없었다. 세상이 당장이라도 망해버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한탄을 하며 빗속을 걸어가자 빗물이 내 눈가를 따라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가를 닦지는 않았다. 자연의 섭리대로 흘러내리게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이대로 집에 가게 되면 100% 확률로 수진이한테 놀림당할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아니, 빗물을 닦으려는 찰나에 빗소리를 뚫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눈물을 닦으려는 손을 치우고 정면을 바라봤을 때 이 추태를 진심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상대인 수진이가 우산을 들고 서있었다.


“뭐야? 놀리려고 마중 나온 거냐?”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진이에게 다가갔다. 그런 나를 보고 수진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는 선배가 고백에 성공했지만, 비에 젖어서 돌아오는 게 걱정돼서 마중 나온 거예요.”


“농담도 심하다. 고백에 성공했으면 선배랑 같이 우산 썼겠지.”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수진이가 건네는 우산을 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너밖에 없다.”


힘없이 미소 지으며 수진이를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선배, 징그러워요~.”


“아무튼~.”


나는 능글맞게 대답하고 빗속을 걷고 걸어 집에 도착했다.



※※※



“샤워부터 하시고 저희의 향후계획에 대해서 얘기하죠.”


수진이는 벽장에서 수건을 꺼내 내게 건네줬다.


나는 수건을 건네받으면서 “이렇게 불쌍한 사람한테 끝까지 계약을 강요할거야?” 라고 답했다.


“물론이죠. 사실 선배가 고백에 실패하면 한강으로 도망칠까 봐 마중 나간 거라고요~.”


“한강이 얼마나 먼 데······. 아무리 나라도 선배한테 고백 못 했다고 아, 죽어야지~. 하지는 않는다고. 뭐, 근처 탄천이라면 빠져볼 만도 하지만······.”


“그래도 학교는 나가실 거잖아요.”


“그렇지 개근상은 타고 싶으니까~.”


나 정우정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다. 중학생 때 타지 못한 3년 개근상을 고등학교에서 타는 것!


“그런데······ 고백도 못 했다뇨?”


장난스러운 나의 말투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던 수진이는 갑자기 날카롭게 나를 째려봤다.


아차, 싶었다.


“흐으음······.”


수진이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시선을 회피하는 내 눈동자를 쫓아가 무언가를 추궁했다.


“무슨 일 있었던 거죠?”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압박했다.


“그게······.”

“······그게?”


수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어차피 말하지 않으면 어떤 꼴이 될지 알기에 말할 수밖에 없었다.



※※※



“흠······ 그래서 도망쳐왔다는 거죠.”

“그래······.”


말하면 말할수록 내 목소리는 쥐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잠깐! 왜 그렇게 불쌍하게 쳐다보는 건데?”


“실제로 불쌍하니까요. 고백도 하지 못한 채 차여버리다니. 이보다 불쌍한 일이 어디 있어요~.”


“놀리냐?”


나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설마요. 빨리 씻고 나오세요.”

“······그래.”


화장실에 들어가 욕조를 봤을 때 욕조에 물이 차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경 써준 모양이다.


“고맙다. 수진아.”


나는 문을 살짝 열며 그렇게 말했다.


“······.”


돌아오는 말은 없었지만 수진이가 날 생각해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수진이가 준비해준 물에 몸을 담갔다. 물 온도는 마치 재기라도 한 것처럼 따뜻했다.


“아~ 따뜻하다~.”


따뜻한 물속에 몸을 불리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내가 모자란 점이 무엇이었을까? 내가 내 친구보다 부족한 점을 무엇이었을까?


너무 많다.


나는 내 친구보다 잘난 것도 없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없다. 아, 하나있다 게임. 하지만 게임이 여자 사귀는데 뭔 상관인가······. 그나마 확실한 건 나는 재우보다 선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 있게 그렇게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선배는 그런 내가 아닌 내 친구를 좋아한다.


난 끝났다.


머릿속에서 실연의 노래가 자동 재생되었다.


나는 너를 믿었기에 그녀를 소개시켜줬는데······.

잠시 우울해졌다. 설마 내가 이 노래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물론, 선배를 먼저 알고 있던 사람은 재우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내일부터 두 명을 어떻게 쳐다보지?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 내일 등굣길에 재우를 만나면 어떡하지······.

하늘에 비는 수밖에 없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들이 사실 다른 사람이었기를······.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목욕을 끝마쳤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이제는 내 앞에 닥친 일에 집중할 때다. 수진이와의 계약······ 받아들이자.

나는 더 이상 비참해질 일이 없다.

나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그대로 수건을 허리에 둘러매 문을 박차고 나와 수진이에 방에 쳐들어갔다.


“수진아 우리 사귀자!!!”

더 이상 잃을게 없는 한 남자의 당당한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오타 및 기타 등등 지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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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아무 생각이 없다 20.03.12 7 0 11쪽
30 방과 후 20.03.06 7 0 21쪽
29 그의 이름은 김하윤 19.10.30 21 0 14쪽
28 전학생이 오다 19.10.28 13 0 9쪽
27 기억 상실 19.10.26 18 0 9쪽
26 죽은 토끼의 향연(2부 프롤로그) 19.08.28 22 0 5쪽
25 1부 에필로그 19.07.13 26 0 11쪽
24 좋아한다고 19.07.04 30 0 5쪽
23 이제는 말할 수 있다(2) 19.06.29 33 0 15쪽
22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06.23 32 0 16쪽
21 기억의 바다(3) 19.06.20 26 0 5쪽
20 기억의 바다(2) 19.06.18 17 0 12쪽
19 기억의 바다 +2 19.06.16 27 0 15쪽
18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19.06.13 26 0 14쪽
17 금요일의 대결전 19.06.10 15 0 12쪽
16 계약 종료 +1 19.06.06 26 0 6쪽
15 이렇게 될 줄 몰랐어 +1 19.06.05 26 0 11쪽
14 옷가게로 가요 19.06.03 21 0 11쪽
13 곡별연자 +1 19.05.31 33 0 10쪽
12 영화보러 가요 19.05.30 21 0 11쪽
11 시공의 폭풍 19.05.27 20 0 19쪽
10 말했다 19.05.24 20 0 10쪽
9 식사를 마치고 19.05.23 18 0 12쪽
8 금요일은 동아리 시간 19.05.21 21 0 8쪽
7 고백 확정 19.05.17 21 0 9쪽
6 목요일(2) 19.05.15 26 0 12쪽
5 목요일 +1 19.05.13 71 1 10쪽
4 부탁 19.05.12 70 0 8쪽
3 계약 19.05.11 52 0 9쪽
» 고백 19.05.09 37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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