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한련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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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전재판
작품등록일 :
2019.05.12 21:36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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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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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입학식(5) - 우유 향

DUMMY

목청 좋은 두 사람이 옥신각신 싸우는 걸 무의식적으로 구경하려 멈춘 화제와 재림은 강하게 풍겨오는 단 내에 그곳이 곧 카페가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비하고 어딘가 비밀스러워 보이는 카페의 외관과 달리 그 앞에 서있는 바람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성창중학교도 잘 살거나 이름 좀 날리는 집 자제들이 주를 이루는, 역시 N3가 후원하는 재단 중 하나인 중학교였다. 그러니까, 그들의 학교에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교육과 품위에 목숨을 건 부모들 아래서 자라오며 으리으리한 궁전 같은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수두룩 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눈엔 더더욱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제 삼촌에게 반말하는 바람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럼 갖다 버릴 건 좀 버려! 죽은 화분들만 가게 앞에 놔두니까 사람이 안 오지.”

“난 햇빛 좀 많이 쐬라고 그런 거야! 물도 많이 주고 가끔 그 초록색 주사도 놔줬는데 대체 뭐가 문젠지 모르겠단 말이야 나도.”

“아 변명은 됐고, 나 여기 알바로 써 줘.”

“어휴, 계란후라이도 못 하는 게 퍽이나 카페 알바를 하겠다!”

“자퇴하면 진짜 열심히 배울게! 아주 기냥 뼈를 묻겠다고요!!”

“떼끼! 바람이 너 그 비싼 중학교 입학한 지 이제 겨우 한 학기 지나가나 싶었더니 철없이 그럴래? 교복도 좀 입고 다녀. 우리 누나가 뭐라고 생각...”

“진짜 철없었음 삼촌 도우러 안 왔을 걸?”


아마 성창중 교장은 입학생이 교복 바지 대신 노란 꽃무늬 바지를 입는다거나, 친척 어른께 반말을 찍찍 써댄다거나 하는 것을 본다면 당장 뒤통수를 움켜쥐고 쓰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 바람이 꽃바지에서 목장갑을 꺼내다가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재림과 화제와 눈이 마주쳤다.


“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이 빠진 둘은 그들이 실례인지도 모른 채 바람을 구경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쓱해진 그들은 곧 자리를 떠야할까 바람에게 인사를 해야 할까 눈치를 보다가 가게 안에 있어 보이지 않던 바람의 삼촌이 비척비척 걸어 나오는 모습에 미어캣처럼 눈만 동글동글 뜨며 굳어버렸다. 큰 키를 가진 바람의 삼촌은 골격이 크고, 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진한 인상을 지니고 있어 꽤 위협적으로 보였다.


“... 어! 성창중 교복!”

“그러네.”

“아는 사람이니? 아님, 같은 반 친구?”

“삼촌은 나한테 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응, 미안... 혹시나 해서...”


한 3초간은 그랬다. 바람의 삼촌은 당황한 듯 손을 앞으로 모으곤 바람과 재림을 번갈아 보다가, 다시 바람과 화제를 번갈아 보며 물어봤다. 바람은 관심 없다는 듯 목장갑을 끼며 답했다.


“난 누군지 몰라. 삼촌이 가서 나랑 아는 사이냐고 물어봐봐.”

“어떻게 그래! 나 낯가리잖아.”


목소리를 낮춘다고 낮춘듯한 바람의 삼촌은 손 부채질을 하며 카페 안으로 들어가려는 바람의 어깨를 잡고서는 짤짤 흔들어대며 말했다. 화제는 이 상황이 흥미로운 건지, 아니면 이거 놓으라며 털기춤을 추는 바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둘을 좀 더 지켜보고 싶어졌다.


“저기, 아직 장사 안 하나요?”


바람도 바람의 삼촌도 화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거의 동시에.


‘닮았다!’


재림도 화제도 이미 집 생각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어느샌가 바람과 삼촌은 말없이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




“카페를 아예 갈아엎는 중이라 뭐가 없네. 허허허! 일단 더운데 주스라도 마시렴. 아, 에어컨 틀게? 나 더위를 좀 타서.”

“감사합니다.”

“우리 애가 이래보여도 너희랑 같은 중학교인데~ 낯을 가려선지 아직 친구가...”


재림과 화제는 멋쩍어하는 바람의 삼촌에게 얕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마자 둘이 앉아있는 원형 나무 테이블에 포도 주스 하나가 쾅! 하고 놓였다.


“엄마야 이바람! 얘가 글쎄!”

“이제 기억나네. 거기 금발, 전교 부회장이지? 2학년 남재림.”

“뭐라고?! 너어는 그럼 지금 선배한테 반말하는 거니? 아니 잠깐, 남... 남재림? 남재림이라면 설마 그 남 가문네 막둥이 말하...”

“삼촌 주방으로 좀 가든지 아님 조용히 하든지 해. 나 말하잖아.”

“저 저 싸가지! 으휴, 누나가 보면 아주그냥 앰뷸런스 실려가겠다!”


바람은 어느새 앞치마를 둘러매고 호기롭게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그러나 왼손에 쟁반을 들고 있던 터라 오른팔만 대충 팔짱 시늉을 했다. 무엇보다도 재림은 바람이 매고 있는 앞치마의 목걸이 부분이 정수리에 걸려있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바람이 자신을 말하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할뻔했다.


“어... 맞아.”

“하! 참나.”


-쿵!

재림은 이번 컵은 정말로 부서지는 줄 알았다. 바람은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눈으로 재림을 째려보고 있었다.


“그래서 도련님, 서민 체험이라도 하러 왔수? 우리 학교 물을 흐리는 가난뱅이 잡종새끼가 들어와서 뭐 어떤 놈인지 얼굴이라도 보자, 이런 건가?”

“저... 미안한데,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잘...”

“아니면 1학년 놈들이 작업을 뭣같이해서 영~ 성에 안 차셨나? 그래서 직접 조지려고?”

“이바람! 헛소리할 거면 들어가 있어! 지금 이게 무슨 추태니?!”

“아이씨, 삼촌은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재림은 자신이 누군지 알고서도 적대적으로 구는 바람이 놀라웠다. 아니, 그보다는 이런 취급은 난생처음 겪어봐서 조금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어느새 카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뻔뻔한 새끼.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 니 옆에 있는 노란 대가리가 뒷조사라도 해주디? 학교에서 지랄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랐어?”

“너 그만 안 해? 아주 누나 말버릇만 쏙 빼닮아서!”

“대답해!!”


생각보다 큰일임을 직감한 바람의 삼촌은 의자를 거칠게 빼고 일어섰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이 보이는 험악한 얼굴이었다. 그제서야 화제는 어렴풋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말리는 점장을 바라보는 이바람. 자퇴 이야기를 꺼내던 이바람. 다짜고짜 재림을 잡아먹을 듯 굴었던 이바람...


“차라리 나만 건드리라고!”


화제는 왠지 바람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챙그랑-


은빛 쟁반이 바닥에 나뒹굴었고, 바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를 뛰쳐나갔다.


‘우유 냄새.’


재림은 갑자기 코끝에 진한 우유 향기가 스치는 것을 느꼈다. 일순간 눈앞이 일렁이며 호흡이 가빠오는 증상과 함께, 잊고 있었던 6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왜? 그때 이후론 우유는 가까이하지도 않았는데.’


토기가 올라왔다. 더러운 집안, 한심한 새끼, 가난한 냄새-. 자신에게 듣도 보도 못한 일을 가지고 다그치는 이유도 가르쳐주지 않은 바람이었으나 마지막으로 마주친 바람의 눈은 분명히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바람이 가진 재림과 같은 사람들에 대한 혐오를.


바람의 손끝은 비정상적으로 짧은 손톱과 벗겨진 살갗으로 얼룩져, 재림은 그가 마치 끓는 물에 데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



1학년 1반의 반장은 교사들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하던 김은가람이었다. 김은가람은 그의 기수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급 높은 순혈이라고 말이 오가고 있었고, 집안 또한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한다는 소수의 김씨 가문 중에서도 특히 인정받는 집안이었다. 품행이야 이루 말할 것도 없이 모범적인 학생 그 자체라 교사 뿐만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신임이 두터웠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하하, 난 똑바로 말했는데 못 알아들은 걸 보니 네 귀가 먹었거나 아님 네 머리가 딸리는 건가보다. 지금 여기로 이바람 데려오라고.”

“바람이는 왜 찾으시죠? 죄송하지만 지금은 아침 자습시간...”

“알았어, 알았어. 데려오기 싫다 이거지? 그럼 그냥 내가 데리고 올게.”

“잠깐, 선...”


쿠당탕-


“눈깔 그따위로 뜰래, 재수없는 잡종새끼야?”


화제가 앞문을 확 열어젖힌 탓에 난 소리인지, 그것도 아니면 낙서로 얼룩진 자신의 책상 밑으로 밀쳐진 바람이 바닥에 고꾸라져 난 소리인지 모를 굉음이 퍼졌다. 굉장히 모욕적인 말이라도 들은 듯한 표정으로 바람을 밀친 아이는 화제의 얼굴을 보고 나서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어, 선배...! 이건 그... 저기...”


화제의 발에 엉망으로 찢긴 교과서의 페이지가 채였다. 교실 바닥을 나뒹구는 종이 중 일부는 빨간 색연필로 주인의 이름과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로 가득 메워져 있기도 했다. 가담한 아이들, 방관한 아이들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주동자의 눈을 피하거나 저들끼리 수군대며 화제의 눈을 피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구보다 당황한 건 바람이었다.


“어제 그...”

“야, 반장! 그, 나만 한 건 아니잖아? 이, 이, 일단 이 교과서도...”


모두가 등을 돌린 지금 이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하는 듯 간절하게 머리를 굴리려는 주동자의 모습, 그리고 짜기라도 한 듯 아무도 나서서 말을 더하려고 하지 않는 가담자들의 얄팍한 우정에 기가 찬 화제는 김은가람에게 이유를 물으려 입술을 달싹였다. 그 순간이었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교장의 호통 소리가 1반 교실을 메우고도 모자라 복도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어느새 남재림은 화제의 옆에 서 싸늘해진 눈빛으로 우유 썩은내가 진동하는 교실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흩어진 교과서의 종이들을 주웠다.


“재림아,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그냥... 느낌으로요. 교장 선생님 모셔오느라 좀 늦었는데, 얼추 시간은 맞은 것 같아 다행이네요.”


김은가람은 난처한 듯 눈을 꼭 감았다. 저 멀리 복도에서 누군가가 서두르는 듯한 구두 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작가의말

>한련고등학교 TMI 2

화제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흑발 흑안이다.

재림의 어머니는 흑발 흑안, 아버지는 금발 청안이다.

바람의 어머니는 흑발 흑안, 아버지는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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