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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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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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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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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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가문 한 집 4

DUMMY

4


2016년 11월. 중구 장사동.


그들은 카페에 자리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상세히 파악해야 하는 수호와 진주는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고, 나머지는 알아서 사담을 나누기로 결정했다.


이윽고 그들의 앞에 커피와 음료가 놓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양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특히나 칼잡이의 커피가 그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에서 김이 사라졌다. 날씨가 부쩍 쌀쌀해진 탓도 있었다.


“아··· 군데군데 다 잘렸네.”


진주는 이제야 점퍼를 점검했다. 편안해서 자주 입는 외투인데 잠깐 스친 칼자국으로 엉망이었다. 바깥이 어둡고 사람도 없어서 망정이지, 다른 장소였다면 분명히 이목을 끌었을 터였다.


“미안합니다.”

“그쪽이 사과할 일은 아니죠. 공격은 제가 먼저 했으니까.”


재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진식이 갑작스레 연락하지 않았는가. 호성과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다지 비싸지도 않았다. 오히려 피비린내가 배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어쩐지 이상했어··· 수장의 측근들을 얼추 아는데, 그쪽들 같은 인상은 없었거든요.”


다시 생각하니 후회되었다. 기습하기 전에 물었다면, 상가 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모전이 애초부터 없었을 터였다. 만약에 이번 사태로 상가 내부의 상인들이 특별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것 역시 골치 아팠다.


“하아, 방심할 수 없었어요. 아이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네,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시로 돌아가도, 똑같이 되풀이할 것이었다. 하필이면 진식에게 연락을 받은 직후였다. 지금도 언제 미행이 따라붙을지 몰라서 긴장되었다. 신중해서 밑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애매모호한 태도가 나중에 더 큰 화를 불렀다.


수호는 그녀에게 동의했다. 자신도 귀왕을 호위하는 무사였다. 당장은 도리가 없어서 떨어진 상황이지만,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통증은 이미 한참 전에 가라앉은 상태였다. 별안간 시작된 싸움의 여운을 여태 기억할 필요는 없었다. 도리어 위력만큼 상대방이 든든했다. 그녀가 줄곧 아이와 함께한다면 신변의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나저나, 동호를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네?”


뜻밖의 질문에 수호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껏 조용히 기다리다가 찾고 있잖아요. 그럼,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그건······.”


수호는 망설였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그렇다고 짐작을 정답처럼 말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니 자신은 어머니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주군의 결정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성품이 아니었다.


그저 그대로 믿고 이행했다. 그래서였을까. 가장 믿음직한 심복이지만, 주군이 잘못된 방향으로 엇나갈 때도 당최 말리지 못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꽤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시는구나.”


상대가 조용하자, 진주는 스스로 납득했다. 어색한 침묵을 기다리는 성격이 못 되었다. 만약 형주가 상대라면 이미 쓴소리를 했을 것이었다. 서로가 아직 서먹한 관계이기에 나름대로 배려한 결과였다.


“아마도 이번 사태 때문에··· 아이의 신변이 위험해질지 모른다고 판단하신 듯합니다.”

“그 전도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진주는 곧바로 반박했다. 틀림없이 이유는 존재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까닭이라면 지금껏 유지한 공백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의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조용히 살겠거니··· 그래서 여태 방치했지. 그들이 알아챘다면, 동호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거예요.”


수장은 보기보다 신중한 편이었다. 조금만 거슬려도 방관하지 않았다. 다시는 항명할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밟았다.


하마터면 그녀도 낙인찍힐 뻔했다. 그만한 위험을 사전에 막은 이가 바로 진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진 한(恨)을 온전히 이해하는 어른이 없었다면, 자신은 일찍이 사고부터 쳤겠다.


아무튼 수장의 성격에 동호를 방치할 리가 없었다. 아이의 엄마를 몰라서 다행이었다. 태한의 일탈이라고 규정한 듯했다. 일반인 여자와 사랑한 나머지 사리 분별을 못하고 나섰다는 정도로.


이후로 가족들의 소식이 끊겼지만, 그만큼 위협도 느끼지 못했겠다. 남편을 보내고서 어딘가에 숨죽이며 살고 있겠다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여인에게 실로 잔인한 한국 사회이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알았을까. 문제의 사실을 숙지하는 사람도 적었고, 아이의 생명줄이 달린 사안이라서 모두가 조심했다. 형주는 배짱조차 없고, 진식이나 혜경이 경솔하게 흘리지도 않았겠다. 별안간 병원을 찾아온 제열에게도 이상한 낌새가 없었다.


“설마··· 그 찌질이가?”

“찌질···?”

“아, 있어요. 수장에게 뭐든 다 바친 인간.”


정중하게 대하기도 싫은 부류였다. 당시의 사고는 그가 유도했다고 설명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금만 신중했다면 태한을 굳게 믿었다면, 모두가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호성은 모두의 개혁 의지를 거세해 놓았다. 새롭게 거듭날 수 있었던 반인반수 사회는 기어이 퇴보하는 길로 걸었으며, 불합리한 관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수장에게 전하지 않았던가. 정혼자가 아닌 다른 상대와 가정을 꾸린 정황도 보았다고. 당시에 함께 살던 배우자의 얼굴도 분명히 목격했을 것이었다.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여태껏 정체를 몰랐겠다. 그러다가 서울 광장에서 일어난 소동으로 알아챈 것이었다. 태한과 사랑을 나누었던 상대가 보통 인간이 아닌 오귀라니, 사실을 알고서 경악했을 표정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가만히 형세를 보았겠다. 오귀가 난데없이 모습을 드러낸 시국이었다. 누가 유리한지 모르는 마당에 무작정 수장에게 고할 수는 없었겠다. 본인이 살길을 철저히 계산하고, 진식을 찾아왔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 은인도 몰아내고서 줄곧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진식은 불쌍하게 여겼지만, 그녀는 도저히 포용하지 못했다.


“어쩌면··· 동호의 원수.”


진주는 아직 무엇도 모르는 동호를 보았다. 무엇이 그렇게 흥미로운지, 맞은편에 앉는 중년 남자의 사연을 들으며 눈까지 빛냈다.


모친과 비슷한 덕분일까. 참으로 붙임성이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해도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자까지 용서하기 힘들 터였다. 당장의 오해는 풀었지만, 여전히 시끄러운 과제들이 다수 남았다.


“아이가 어머니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글쎄요. 평소에도 곧잘 이야기하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수호도 따라서 당사자를 응시했다. 동호는 처음 만나는 상명과도 곧잘 말하고 있었다. 아마 각자의 사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겠다. 신기했다. 어떻게 낯선 상대와 스스럼없이 이야기가 가능할까.


타인의 사연에 원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아무리 궁금해도, 사적인 영역은 침범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했다. 함께 다니는 동안 상명에게 공연한 질문도 삼갔다. 지나치게 신중한 나머지 상대방과 친해지지 못했다. 연희처럼 먼저 다가오는 경우가 아닌 이상 그에게는 아직도 버거운 과정이었다.


저렇게 관심이 활발한 청년이었다. 모친의 사정도 분명히 헤아렸을 것이었다. 그런데 넌지시 이야기한 경우가 없었다니, 그만큼 주변의 눈치를 보았나. 한편으로 걱정까지 들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외면한 부모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들 쉽게 납득될 세월이 아니었다.


게다가 청년은 당돌했다. 인상이 그러했다. 외형이 모친을 닮아서 더욱 그렇게 보였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이지만, 진태의 조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까딱 잘못하면 자신을 관통할 칼날 앞에서 당당한 기상이었다. 주변의 말에 휘말려서 괴로워할 성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집이 상당할 가능성은 있었다. 결심하면 반드시 해낸다, 마치 지금의 어머니처럼 말이었다.


“모 아니면 도일 거예요. 저 녀석이 마음은 단단한데··· 좀처럼 중간이 없거든요.”


진주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알고서 교류한 세월이 얼마되지 않았다. 이따금씩 얼굴만 보는 경우까지 포함해서 이 년 남짓이었다. 병원에서 근무한 기간도 일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청년의 모든 속사정을 파악하기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순전히 행동이나 태도로 추측했다. 동호는 남들을 배려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일종의 거래와 비슷했다. 받으면 그만큼은 반드시 갚았다. 그것이 선의든 악의든 상관없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이 꽤 다사다난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주저가 없었다. 좀처럼 뒤끝이 없는 그녀마저 가끔 분노할 정도였다. 그래서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은 끊임없이 주입했다. 문제의 성향을 고치지 않으면 바깥 생활에 막대한 지장이 된다고.


“한창 사랑받을 시기에 부모와 헤어졌어요.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죠. 거기까지 바라면 우리가 너무 이기적인 거예요.”

“압니다.”

“그래도 바르게 커서 다행이에요. 아버지의 유전자가 어디로 가지는 않았나 봐요.”


그래서 진식은 한동안 걱정했다. 바깥으로 표현하지 않으나 부모에 대한 원망이 내내 도사릴까. 은근슬쩍 확인하면 편할 테지만 일부러 자제했다. 오히려 거듭 떠올릴수록 현실의 불만에 대한 핑계로 바뀌기 쉬웠다.


게다가 당사자의 감정이었다. 남이 나서서 관여할 부분이 아니었다. 오해가 있더라도 엉킨 실타래를 풀어낼 사람은 부모와 아이, 본인들뿐이었다.


수호는 저절로 옛 인연을 떠올리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데다가 자식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 밑에서 아등바등 버틴 사람이었다. 누구도 신뢰하지 못한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가. 똑같은 조건으로 환생한 그를 마주하는 것 같아서 점점 긴장되었다.


상대가 이야기하는 대로 모 아니면 도였다. 청년이 작정하면, 어머니가 지금껏 이룩한 과업이 모조리 허물어질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패륜도 주저하지 않겠다. 상식은 없었다. 장생한 칼잡이가 진즉에 목도하고 말았던 참극이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죠.”


수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쩌면 실례가 될지 모르는 질문이었다. 아이의 아버지인 동시에 어머니가 사랑했던 남자였다. 물론 지금도 여전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만한 소란을 벌이지 않았겠는가.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그 됨됨이를 묻기가 조금은 찜찜했다.


“음··· 이제는 기억이 희미하네요. 당시에는 저도 어렸으니까.”


진주는 곰곰이 생각했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나이가 어렸을 때는 아니었다. 선명하게 떠올리지 못해도, 이따금 태한의 인상이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에게 인상이 깊은 어른이었다. 동년배 아저씨들과 확실히 달랐다.


“굉장히 상냥하고 소심했어요. 비유하자면, 지나가는 개미한테도 사과할 것 같은 사람. 맞아··· 딱 그런 성격이셨어.”


진식은 굳건한 어른이었다. 약자와 강자를 대우하는 태도에 차별이 없었다. 쏟아지는 맹수들의 눈치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어떤 바람도 버티는 소나무를 보는 듯했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때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수장감으로 여겼다. 인지한 그 얼굴에 분노가 서리면 그만큼 무서웠던 적도 없었다.


태한은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맹수들의 관행을 당연시하고 있을까, 내내 걱정하던 인물이었다. 본인의 짓이 아니라도 언제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은 무엇도 바꾸지 못한다는 자괴감으로 늘 고민했다. 때문에 위선자라는 소리도 적잖게 들었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는 쓴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그는 매사에 소극적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태도에 위로를 받았다. 회상하는 자신이 그러했다. 공감의 위력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자신의 처지를 그토록 위로하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조차 타고난 운명을 수용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나. 어느 누구도 소녀가 하는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틀렸다고 말하지 않아도, 무모하다고 보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태한은 달랐다. 도리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모든 부조리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누구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음에도, 행동하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정말로 그를 원망했다. 사춘기가 일찍 찾아오는 바람에 그에게 못할 말까지 쏟아낸 적도 있었다.


태한은 고스란히 인정했다. 시간이 흘러서 불합리한 일족의 구조를 알았다. 혼자서는 도리가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결국은 다수의 협조가 뒤따라야 가능했다. 그래서 변화의 문턱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는데, 배신자 때문에 깡그리 어그러지고 말았다.


진주는 고개를 들었다. 당황하는 얼굴색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돌이켰다. 지나간 인연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말했나. 자신은 괜찮을지 몰라도 상대에게 또 다른 거부감을 주었겠다.


“아··· 제가 혹시 실언을···?”

“아니요. 생각하지 못한 인상이라······.”


수호는 민망해서 시선을 회피했다. 완전히 다르게 상상하고 있었다. 귀왕을 행동하게 유도한 사내였다. 그래서 그녀처럼 당돌한 성품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매사에 소심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런데 정반대였다. 오히려 상냥한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감동시켰나. 요사이 보기가 드문 유형이기는 했다. 어중간한 마음으로 도전한 사내들은 모두 다 거절하지 않았나.


“아하. 아저씨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오해해요. 수장에게 처음으로 맞선 사람이잖아요. 특별히 더 강인하고 묵직한 성격일 거라고 상상하죠.”


진주는 개의치 않았다. 대부분이 오해하는 사실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목격하지 못한 약자에게 태한은 전사였다. 무엇도 득되지 않는 상황에서 약자를 대변하고, 수장에게 맞섰다. 태한의 눈동자에서 그토록 투혼이 아른거린 적도 처음이었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까지 용기를 냈잖아요. 저는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태한은 이후로 욕망에 눈이 멀어서 정혼자를 저버리고, 다른 사람과 밀회까지 즐긴 무뢰한으로 여겨졌다. 누구도 진상을 명확하게 조사하지 않았다. 당연히 위에서 그러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수장의 전언이 무조건 진실이며, 불복하는 사람은 태한의 잘못된 사상에 동조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당시에는 모두가 침묵했다. 부모도 언제 나설지 모를 자식을 염려하던 때였다. 진식에게 설명을 듣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기회가 마땅하지 않았다. 그래도 맹수들이 호도하는 정보는 절대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야 진상을 알았다. 진식이 그동안 말을 아낀 이유도 이해했다. 자신과 형주는 곧 학업에 열중할 나이였고, 어른들에 비해 외부의 간섭에도 취약했다.


당장은 분하고 억울해도,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해야 다음 기회도 기다릴 수가 있었다. 머리로는 곧잘 이해하면서, 뒤늦게 진실을 말한 진식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때문에 자신의 멘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장시간 고민도 했으니까.


“그래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그녀는 실소했다. 덕분에 이토록 단단했다. 하지만 때때로 가슴이 아리는 이유는 당시 무력했던 소녀가 가엾은 탓이었다. 나이가 이 정도만 되었어도 충분히 돕지 않았을까.


그러나 다시 돌아가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절대자는 태한을 지지하지 않았다. 지금의 자신이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 이상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결국은 불가능한 소원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수호는 자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죄다 과거형이었다. 마치 지나간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지금은 다르다는 말인가. 어머니가 그토록 기다렸을 순간이었다. 그런데 만약 원하는 모습으로 성사될 재회가 아니라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실례가 되더라도 현재의 그에 대해서 보다 상세히 파악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아, 그게···!”


진주는 속으로 뒤통수를 난타했다. 지나간 추억에 몰입한 나머지 상대가 가장 궁금할 부분을 간과했다. 저쪽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 어째서 조용하게 아이를 보살펴야 했는지, 이제는 솔직히 털어놓을 차례였다.


연락이 쉬웠다면, 진즉에 알렸을 것이었다. 그만큼 안타까운 안부였다.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면 보다 수월하게 마음을 정리할까. 어린 날의 자신처럼 충격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들이 자연하게 그려졌다.


“뭐?! 그걸 왜 이제야!!”


누군가가 느닷없이 언성을 높였다. 진주와 수호는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아연실색한 형주가 혼자서 우두커니 자리에 서 있었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도 쓰지 못하고 일어난 모양새로 보아 상당히 심각한 사안 같았다.


“거기,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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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 종곡 21.02.19 48 0 14쪽
384 어른 괄시는 해도 9 21.02.16 46 0 14쪽
383 어른 괄시는 해도 8 21.02.16 52 0 13쪽
382 어른 괄시는 해도 7 21.02.12 44 0 13쪽
381 어른 괄시는 해도 6 21.02.12 44 0 13쪽
380 어른 괄시는 해도 5 21.02.09 43 0 12쪽
379 어른 괄시는 해도 4 +1 21.02.09 48 0 13쪽
378 어른 괄시는 해도 3 21.02.05 53 0 13쪽
377 어른 괄시는 해도 2 21.02.05 40 0 13쪽
376 어른 괄시는 해도 1 21.02.02 79 0 13쪽
375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8 21.02.02 46 0 15쪽
374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7 21.01.29 123 0 16쪽
373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6 21.01.29 61 0 14쪽
372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5 21.01.26 54 0 14쪽
371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4 21.01.26 62 0 12쪽
370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3 21.01.22 57 0 15쪽
369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2 21.01.22 74 0 15쪽
368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1 21.01.19 52 0 15쪽
367 하늘이 돈짝만 6 21.01.19 44 0 13쪽
366 하늘이 돈짝만 5 21.01.15 44 0 13쪽
365 하늘이 돈짝만 4 21.01.15 77 0 12쪽
364 하늘이 돈짝만 3 21.01.12 62 0 11쪽
363 하늘이 돈짝만 2 21.01.12 71 0 12쪽
362 하늘이 돈짝만 1 21.01.08 49 0 13쪽
361 쥐 본 고양이 9 21.01.08 51 0 13쪽
360 쥐 본 고양이 8 21.01.05 59 0 12쪽
359 쥐 본 고양이 7 21.01.05 51 0 12쪽
358 쥐 본 고양이 6 21.01.01 46 0 12쪽
357 쥐 본 고양이 5 21.01.01 5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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