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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alon..
작품등록일 :
2019.05.2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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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3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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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3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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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43화

DUMMY

올해로 42세가 된 김성주는 자신의 삶이 주마등이 되어 스쳐가는 것을 보았다.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을 6~7살 무렵 어머니의 죽음과 그 다음 해에 새로 오신 어머니.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때 돌아가신 아버지. 그럼에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을 살펴주신 어머니. 물론 형편은 좋지 않아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야 했지만 기댈 곳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시절 자신은 행복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갓 20살이 되던 해에 만난 첫사랑도 기억이 났다. imf가 찾아오고 사정이 좋지 않아 아르바이트로 전전해야 했던 그 시절에 찾아온 첫사랑은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칠흑보다 검은 눈동자가 빛나던 사람이었다. 비슷한 처지에 연애에 대해 관심조차 둘 수 없다는 그 사람을 쫓아다니길 3개월. 마침내 그 사람의 허락을 받았을 때도 생각이 났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 혹여 도망이라도 갈까 싶어 끈질긴 설득 끝에 혼인신고부터 하고 자신이 살던 원룸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것이 다시금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조금 더 연애를 즐겼다면 그 사람이 훨씬 좋아했을 텐데.’


스쳐가는 기억을 들여다보는 지금도 그 안쓰러움이 사그러들지 않는 것을 보면 참 많이도 한으로 남았구나 하고 자책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음해에 태어난 자신을 똑 닮은 사내아이. 쉬는 날 아침 그 전날의 숙취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삭의 아내 투정을 제대로 받아넘기지 못해 약간의 모진 말을 내뱉던 그날이 유난히 또렷하게 그의 기억 속에서 재생되었다.


“하아, 하아. 여보 나 조금 있으면 아이가 나올 거 같은데 어떻하지?”


“가더라도 술은 좀 깨고 가야하잖아. 많이 급해? 아니면 택시타고 가? 그냥 좀만 참으면 안 돼?”


바로 출발했어야 하는 것을 술김에 어그적 어그적 거리며 시간을 지체한 것이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 뒤로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만 연신 반복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그길로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2시간도 지나지 않아 태어난 자신의 아들 ‘주태’를 안던 그 순간을.


새어머니는 자신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셨기에 원망같은 건 애초에 생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차고 나서 느낀 사실이었지만 자신은 어머니에게 안긴 기억이 없었다. 따뜻한 체온을 받았던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은 다른 이들에게 정을 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랑으로 결혼했던 자신의 아내에게 조차 그런 감정이 느껴질 정도였기에 그는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 단정 지었다.


하지만 주태가 자신의 품에 안긴 순간 그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그저 마음을 주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한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혹여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자칫 잘못 힘을 주면 아이에게 이상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는 그때 자신의 마음을 닫아두고 있던 담장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가족을 대하는 모든 면이 바뀌었다. 자신의 아내는 짧았던 연애 시절이 다시 돌아온 것 같다며 좋아했으며 아들은 그런 자신을 유난히도 많이 따랐다. 하지만 좋은 것은 딱 10년이었다. 유난히 몸이 약했던 그의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려운 형편에 한푼 두푼 모아 대출을 끼고 산 집을 좋다며 반기던 그의 아내는 그 집에서 채 6개월도 살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을 택했다. 아들과 자신을 두고 그렇게 아내가 가버리고 그는 다시금 세상과 벽을 쌓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아들만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기에 오직 주태에게만은 온 마음을 쏟았다. 매일 그의 품에서 잠들길 원했으며 자신의 시야 안에서 아들이 살아가길 원했다. 중학생이 될 때까진 잘 따라주던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자꾸만 밖으로 나돌았다. 아버지인 자신을 벗어나길 원하는 아들에게 그가 진지하게 물었던 기억이 났다. 아들의 대답은 친구와 자기만의 환경이라고 했다.


그에 김성주는 다시 반성을 시작했다. 자신이 아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미 다 큰 것과 같은 아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그를 계기로 그는 아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고, 아들의 친구들과도 대화의 상대가 되어 줄 수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만이 전부였다.


그런 아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다. 친구를 구하겠다며 뛰어들다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괘씸하게도 그 친구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가는 아들의 친구 놈을 보며 뒷통수를 벽돌로 갈겨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들의 배에다가 대가리를 쳐박고 있는 저 괴물이 우선이었다. 빠르게 달려 괴물에게 발길질을 날리려는 그때 괴물에 그물에라도 걸린 듯 뒤로 밀려났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쉘터의 보호막이었다. 아들의 시신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던가. 해가 지고 다시 뜰 때까지도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누군가는 가족을, 친구를 잃어 버렸거나 괴물을 피해 숨어든 상태였다. 김성주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못박혀 있었다.


“아저씨 슬퍼요? 나도 그래요. 우리 엄마나 아빠도 똑같은 모양으로 누워있네요. 피도 흘리고 배도 비워져 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들의 시신 옆에서 주저앉아 허공을 주시하던 때 김성주의 귀로 들려온 목소리였다. 이제 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앳된 모습의 여아. 한참을 들여다보는 대도 말이 없었다.


“엄마랑 아빠는 어디 있니?”


조심스레 물으니 말없이 김성주의 소매를 붙들고 한적한 골목으로 끌고 간 여아는 골목 구석에서 쓰러져 있는 그의 부모를 보며 손을 가리켰다. 김성주는 그 모습에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그렇지만 이 아이는 무슨 죄가 있나 싶어 하늘을 보았지만 야속하게도 답이 오진 않았다.


“이름이 뭐니?”


“주아요. 신주아.”


“그래, 주아야. 우리 주아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저씨 아들까지 하늘나라로 보내줄까?”


“그럴 수 있어요?”


되묻는 아이의 모습에 김성주는 꽉 안아주고는 시신들을 한 곳에 모았다. 부서진 상가에서 땔감을 찾고, 기름도 모았다. 셋을 모두 화장하기에 땔감이 조금 부족하긴 해도 기름이 있으니 괜찮아 보였다. 반나절동안이나 이렇게 움직이니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시신을 둔 자리에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도 들것에 실어 나타난 사람들은 김성주와 아이가 하는 일을 말없이 도왔다.


커다란 불길이 대로 가운데에서 생겨났다. 빙 둘러싼 사람들이 불이 추는 춤에 넋을 잃고 있었다. 김성주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부모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눈물 한 점 없었다. 피를 보면서도 반응하지 않던 아이가 김성주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저씨, 나도 따라가고 싶어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어야 해요. 주아는 착한 아이니까 따라가고 싶어요. 가지 않으면 엄마 아빠가 슬퍼할 거 같아요.”


피를 보면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기에 생각보다 굳건한 아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김성주의 눈에 아이가 다시 보였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았구나.’


자신도 다를 바 없지만 아이를 맡길 곳도 없는 지금 김성주는 며칠만 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쉘터에 변화가 온 것은 보호막이 생기고 3일을 넘겼을 때였다. 경찰들이 불한당을 잡으며 내부를 단속했고 각성자라는 사람들은 외부로 나가 괴물을 잡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희망이 보일 것 같았지만 사정은 매 한가지였다. 배고픔에 상가가 털리고 갈 곳 잃은 아이들은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가족을 잃은 어른들은 자살을 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서 김성주는 주아를 보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치 주태가 남겨둔 마지막 사명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주아를 보살피는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더 거뒀고, 김성주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즈음 주태가 구했던 친구가 눈물을 보이며 김성주에게 찾아왔다. 너무 무서웠노라고, 무서움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노라고. 만나면 반드시 뒷통수를 까리라 다짐도 했것만 막상 얼굴을 대하고 나니 안쓰러움이 컸다. 옷은 여기저기 뜯어져 있었고 얼굴은 며칠째 신경도 못써 온갖 땟국물이 차지하고 있었다.


“괜찮다. 괜찮아.”


김성주는 아들의 친구에게 이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아들의 친구는 김성주를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어떻게든 죗값을 치르고 싶다는 그를 김성주는 뿌리칠 수 없었다. 그렇게 김성주를 중심으로 한 쉘터의 그룹이 생겼다. 함께 생활하며 먹을 것과 이야기꺼리를 나누며 누구하나 상처받은 현실에 절망하지 않게 그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렇게 나아질 것 같던 세상은 불과 한달을 버티지 못했다. 오크가 나타나고 각성자들이 그것들에 대비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또 한 번 김성주의 세상은 무너졌다.


괴물의 손에 목아 날아갈 것이라는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살았다. 여전히 신주아는 그의 손을 잡고 있었고 그와 뜻을 같이 하던 이들도 절반이상이 살아남았다. 그저 살아남기만 했다.


김성주의 눈앞에 그 남자가 보였다. 만 명이 넘는 사람을 말 몇 마디로 통제하고 그들의 눈과 귀를 가리면서도 바른 길로 이끄는 그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김동윤’ 이라고 했다. 그가 전면에 나타나고 나서 모든 것이 괜찮았다. 물론 매일 1%에 해당하는 백 명 정도가 목숨을 잃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더 이상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쉘터에 있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불한당 같은 놈들이 수시로 사람들을 노렸다. 치안을 유지한다고 말은 하지만 음성적인 일은 훨씬 더 크게 번졌다. 아마 그래서 자신에게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제물로 바쳐질 인물에 신주아가 걸렸다. 김성주는 목소리를 높여가며 아이는 안 된다고 외쳤지만 동조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때 김성주는 큰 결심을 했다. 사람을 위한 희생. 그는 신주아를 대신해 자신이 제물이 되길 간청했다. 김동윤이 죽고 다음 대 이끄는 자가 된 사람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이를 허락했다. 그리고 그날 밤 김성주는 우는 낯으로 신주아에게 고깃국을 먹였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아빠, 우리 내일부터 못 봐?”


“그럼 이번에도 난 따라가면 안 돼?”


“이젠 아무도 날 말리지 않아. 그러니까 아빠 허락해줘.”


아이는 이미 아이의 탈을 벗어던진 그 무엇이 된 것 같았다. 그것이 아니다. 그런 식은 절대 안 된다 라고 자신있게 내뱉지 못하는 자신이 혐오스럽기도 했다. 신주아의 눈을 한참 바라본 김성주는 아들의 친구를 불렀다. 얼마 전 각성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힘이 없는 아들의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김성주의 당부를 잊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다음 날 괴물의 제물이 되어야 할 김성주는 이미 자신을 대신해 끌려가는 이끄는 자에 의해 죽음에서 벗어났다. 그는 김성주에게 더 이상은 버틸 자신이 없기에 아이를 대신하는 그를 위하는 마음으로 하루의 시간을 더 준다며 제물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억울했다. 지난밤의 고깃국을 본 후 자신도 더 이상 버티는 것이 힘든데 이젠 지인이 아닌 타인까지 강제적으로 배려하게 되었다. 이를 악물고 노려보지만 이끄는 자는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았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보내주는 자리. 그날 오후 김성주는 이끄는 자를 다시 만났다. 윤지후에 의해, 화상자국을 가진 채로 본 그의 눈빛은 이미 죽어 있었다.


지후와 일행을 만나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더 이상 괴물은 무서운 상대가 아니었다.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상태였으며 진실된 식량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강해지는 아들의 친구를 보며 김성주는 윤지후가 미웠다. 시기나 질투가 아닌 자신의 결정에 반발하는 그의 마음이 미웠다. 하루하루가 고문이었고, 지옥이었다. 그런데도 그 때문에 살아야했다. 그래서 쉘터에 있는 괴물을 소탕하는 날 김성주는 억지를 부렸다. 언제고 틈을 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그는 억지를 부렸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불어난 괴물의 틈바구니에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었던 공단 내의 각성자들이 뭉치지 못하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지후의 친위대가 대열의 유지를 위해 고함을 질러대고는 있었지만 400명의 인원 모두가 거기에 따를 수는 없었다. 지후와 일행은 한꺼번에 통제가 힘들어지자 40명 단위로 인원을 나눴다. 그러던 와중 김성주의 눈에 기회가 포착되었다.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사이 놀 한 마리가 근처까지 왔다. 사람의 장벽은 얕아서 고작 세 발만 앞으로 나가도 놈의 손톱에 목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고민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주마등처럼 이어지던 김성주의 기억은 거기가 끝이었다. 그리고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주 잠깐이면 되었다. 그 잠깐이면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아저씨, 조심하셔야죠.”


오라는 괴물대신 지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눈을 치켜뜨니 이미 괴물은 지후의 손에 두 동강이 난 상태였다.


“하아.”


이제 진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제야 한발 물러선 김성주는 지후와 친위대, 그리고 각성자들의 전투를 바라볼 수 있었다.


치열했다. 그들은 정말 처절할 정도로 베고 찌르고 상처 입었다. 목적한 바는 뚜렷했지만 정말 그것이 이루어 질 줄은 몰랐다. 만에 가까웠던 괴물들이 이제 몇 백도 되지 않았다. 최대 이틀을 본다고 했던 지후는 그 가공할 능력으로 반나절 만에 점멸에 이를 정도로 괴물을 소탕했다. 촘촘하게 붙어 있던 괴물들 사이사이가 대로변만큼이나 넓어질 정도가 되자 모든 괴물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김성주가 보는 사람들의 눈에 희망이 보였으며 뿌듯함이 보였다. 자신도 그 틈바구니 안에서 같은 감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이미 죽어버린 그것에 물을 준다고 해서 살아나지는 않았다.


“쉘터가 사라진 것은 우리도 처음 겪는 일이라 아무래도 그 중심까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나 같이 가시겠습니까?”


지후가 또 물어왔다. 김성주는 힘없는 목소리로 동의했다. 이곳에 있으나, 움직이나 김성주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쉘터의 중심이 다가오자 지후와 친위대가 나누는 말들이 귀로 들려왔다.


“역시나 저것은 마기가 뭉쳐져 있는 것 같지?”


“웨어울프들이 숨 쉬듯 마기를 뱉어낸다더니 노리는 것이 저것인 모양이야.”


“아무래도 앞으로는 이동속도를 더 높여야 할 것 같아. 한곳에 오래 지체했다간 손 쓸 시간도 없어질지도 몰라.”


“휴우, 가뜩이나 다음 괴물도 골치가 아픈데 이것까지 문제가 되네.”


“오빠들, 저 고여 있는 마기도 [정화]가 될까?”


누가 한 얘기인지는 몰랐다. 그저 뭉쳐져 있는 지후와 그의 친위대가 나눈 말뿐이었다. 마음 한편으로 그 대화에 관심이 가긴 했지만 자신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억지로 떠맡겨진 자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문득 모든 걸 털어내고 나니 노래 한 소절이 생각났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행복과 슬픔을 같이 한 지난 삶이 다시금 머릿속을 떠다녔다. 분주히 쉘터의 중심을 오가며 무언가를 하던 지후와 친위대 사이로 빛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그 불빛에 김성주는 무의식적으로 다리가 움직여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지속된 발걸음이 마기를 씻어내고 밝은 빛을 뿌리는 쉘터의 중심에 다가서도록 만들었다. 정신도 없이 뻗어진 손 끝에 빛의 막이 다다른다. 그리고 김성주는 자신의 머릿속을 울리는 알람을 들었다.




[쉘터에 접촉하셨습니다.]

쉘터에 접촉한 당신은 쉘터의 주인이 될 자격을 얻었습니다.

쉘터의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쉘터의 주인은 보호막의 크기와 단단함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단 그 크기와 단단함엔 반드시 대가가 따르며 그것은 각성자들의 마력과 주인의 생명력으로만 보충이 됩니다.

최초 등록시 3650일에 해당하는 생명을 채워야 하며 보호막의 강화 또는 마력의 충전에도 그에 상응하는 생명이 소모됩니다.

당신에게 남은 생명은 약 10950일입니다.

당신의 생명을 담보로 쉘터의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주인 등록 실패시 재등록엔 한달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예] [아니오]




심지어 시스템이란 것도 자신의 죽음을 유예시켰다. 아내가 맡긴 아들부터 시작된 자신의 삶은 주아와 지후를 거쳐 쉘터까지 이어졌다. 김성주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이것이 아닐까하는 감상에 잠시 젖었다. 슬며시 감기는 눈과 함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긴장감. 그는 마음을 굳혔다.




[예] 쉘터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아직도 그의 마음속엔 노래가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고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 빈손짓에 슬퍼지면 /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나를 두고 간님은 용서하겠지만 /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 정둘곳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


작가의말

이번 화는 내용을 중간에 끊어내기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좀 길어졌습니다. 너무 지루하지는 않을 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아직은 이정도가 최선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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