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들의 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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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단영
작품등록일 :
2019.05.24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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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7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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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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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의 시대 - 14. 괴물의 항변(1)

DUMMY

14장 괴물의 항변



“위에친하고 엮을 수 있겠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헤르베르트는 그렇게 답하면서 만네르헤임을 살폈다. 저 아둔한 기사단장은 아직도 일바가 자신의 명령을 훌륭히 수행해냈다고 믿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네가 날 이용했으니 이번엔 내가 널 이용할 차례지. 헤르베르트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위에친이야 자기가 국왕인 줄로 믿고 만기친람 하는 인물이니 헤르만손 같은 궁정 소속의 인간과 접점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죠.”


헤르베르트는 자신의 마지막 말이 의미상 제대로 된 것인지 본인도 헷갈린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반복했다. 없으려야··· 없을 수가······. 적당히 멍청해 보이는 수준에서 계산을 그친 헤르베르트가 말을 이었다.


“물론 이를 좀 더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조정하는 일이 필요하긴 합니다.”

“너무 오래 끌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만네르헤임이 설명을 요구하는 뜻으로 턱 끝을 쳐들었다.


“아시다시피 전하께선 그 기둥서방 놈을 아주 예뻐라 하십니다. 그러니 일시에 모든 진상을 폭로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일이 두 사람 사이의 우애를 돈독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전하께선 아량이 여간 넓은 분이 아니시잖습니까? 천천히 정보를 흘려 말 그대로 정 떨어지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때쯤이면 전하의 결단력을 기대해도 좋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 이 사건에 대해선 네게 전권을 위임했으니 재량껏 해봐. 그런데, 벨바헨.”


만네르헤임이 손깍지를 끼고 상체를 당겨 앉았다. 그녀는 잠시간 말없이 헤르베르트를 쳐다보았다. 호명한 상대의 상상력이 멋대로 증식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만네르헤임의 특기였다.


“수완가라 자부하는 이들은 제 꾀에 넘어가는 일이 종종 있으니까 조심하도록 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 주의하도록 합죠.”

“수사관으로 임명했더니 내 가랑이 밑에서 송곳을 가는 놈들이 있더란 말이지.”


머리를 굴려. 당황하면 끝이야. 헤르베르트는 놀람과 노여움을 뒤섞은 표정을 재빨리 지어냈다.


“그런 놈들이 감히 있단 말입니까? 누굽니까? 제가 잡아다가 족쳐놓겠습니다. 분부만···”

“감호소.”

“감호소가 왜요?”


헤르베르트는 뜸들이지 않고 얼른 반응한 자신의 순발력을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며 표정을 유지했다. 만네르헤임이 그런 헤르베르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블롬슈테트 말이야. 그 녀석이 길덴스테른의 행적을 따라가다가 감호소에 대해 뭘 좀 알게 된 모양이야. 사냥꾼들이 옆에서 부추기니까 판단력을 상실한 것 같아.”

“어떻게 하실 요량입니까? 저도 돕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이번에는 의아한 표정. 그러나 그건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헤르베르트는 자신이 이 노련하고 빈틈없는 기사단장을 얕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미 처리했거든. 유배자들의 덴티스트카 알지? 그 여잘 사업 동반자로 삼은 건 정말이지 현명한 결정이었어. 자기 동생이 관계되어 있는데도 냉철하게 처리하는 것 아니겠어? 물론 동생은 해치지 않고 빼내란 명령을 나 몰래 내렸겠지. 하지만 현장의 일이야 항상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거니까. 혹시 모르지, 같이 간 우리 기사들이 좀 격해질지도.”


만네르헤임이 사뭇 즐거이 떠드는 동안 헤르베르트의 머릿속에서는 공들여 세운 계획이 전면 폐기되고 있었다. 새로운 계획을 수립할 필요는 없었다. 그의 머리에는 언제나 제이, 제삼의 계획이 마련되어 있었다.


“함정으로 꾀어내서 한꺼번에··· 사라지게 만들었지. 지금쯤이면 마무리됐을 거야. 뒤처리에 네가 필요해. 수사관들이 갑자기 사라진 일이 위에친에게 악재로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분부대로 합죠.”


이만 나가보라는 뜻으로 만네르헤임이 손짓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가는 헤르베르트를 그녀가 다시 불러 세웠다.


“벨바헨.”

“예, 단장님.”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면 바르발라 문건을 없애줄 거야.”


헤르베르트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잘하라고.”


헤르베르트는 문을 닫고 나왔다. 바르발라 ‘문건’ 같은 건 없었다. 바르발라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문서에 기록할 만한 멍청이가 기사단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날의 일을 문서 따위보다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물건은 있었다.


헤르베르트는 박제된 시체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시체를 사건이 있은 지 오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만네르헤임의 집념에 혀를 내둘렀다. 시체에 남은 흔적이 공개되면 바르발라의 영웅은 천하의 개자식으로 추락하고 말 터였다.


“단장님이 뭐라고 하셔요?”

“너더러 신경 끄라고 하시던데.”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종자 에스텔이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헤르베르트는 걸음을 재촉하며 에스텔에게 손짓했다.


“따라와. 갑옷 좀 입어야겠다.”

“웬일이래요?”

“콱 그냥! 말대꾸 좀 하지 마, 알았어?”


에스텔이 답하지 않자 헤르베르트가 고개를 팩 돌리며 째려봤다.


“대답 안 해?”

“말대꾸하지 말라면서요.”



*



“천천히 나와.”


이고르는 자신의 위에 쌓여있던 시체 하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카이만이 옆에서 탈피하는 애벌레처럼 열심히 꿈틀거렸다. 그 덕분에 시체가 다시 이고르 위로 쌓였다. 세 번째 시체를 밀어내고 나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고르는 마차에서 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사 둘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은 일군의 사람들이었다. 이고르는 빠르게 숫자를 세었다. 스물 남짓. 복장과 무기로 보건대 기사단 소속은 아니었다.


머스킷으로 이고르와 마차를 겨냥하고 있는 이들은 유배자들이었다.


“이것 봐라. 상황 파악 안 되지? 무기를 들고 내려?”

“습관이라서.”

“개수작 부리지 말고 내려놔!”


이고르는 여기사의 으름장에 무기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고르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한눈에 봐도 여긴 감호소 따위가 아니었다. 벽이 허물어지고 탑이 기운, 폐허가 된 요새였다.


마부가 마차에 연결된 마구를 풀었다. 이고르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제 곧 총성이 울려퍼지리란 뜻이었다.


“가빈, 무기 가져 와.”


갑옷으로 무장한 사내가 이고르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검을 겨눈 채로 이고르와 그의 발치에 놓인 칼을 번갈아 살피다가 재빨리 칼을 낚아채고 물러섰다. 여기사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세 명인 거 알고 있으니까 다 나와!”


마차가 다시 시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둘, 셋, 넷······. 마지막 시체는 바닥에 쌓여있던 시체의 경사면을 타고 제법 멀리까지 굴러갔다. 카이만이 양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고르와 달리 그의 무기는 눈에 띄지 않아서 기사들이 그를 한참 뜯어봤다.


“나머지 하난 어딨어?”


카이만의 허리에 걸린 은색 갑의 용도를 짐작하지 못한 여기사가 다음 표적을 찾아 외쳤다. 가빈의 것보다 더 긴 검을 들고 여기사가 천천히 접근했다. 그리고 그때 천에 감싸인 채 바닥에 놓여있던 시체가 돌연 꿈틀거렸다.


“아악!”


여기사가 한쪽 무릎을 꺾으며 휘청거렸다. 포대를 끄르고 나온 일바가 여기사, 그라프스트룀의 다리를 찍은 손도끼를 뽑아냈다. 선혈이 바닥에 후드득 번졌다. 둑을 터뜨린 듯이 시간이 빠르게 터져 나왔다. 카이만이 쇠뇌를 뽑아들고 가빈 하겔린을 겨냥했다.


퉁-


검을 들어 발사된 볼트를 간신히 쳐낸 가빈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가 떨어뜨린 칼을 향해 이고르가 맹진했다. 머스킷을 든 조직원들이 주춤거리다가 카이만을 향해 발포했다. 카이만이 몸을 날려 바닥에서 굴렀다.


빈총을 든 조직원을 향해 이고르가 칼을 휘둘렀다. 여섯 마디의 칼날이 채찍처럼 휘몰아쳐 조직원들을 베었다. 조직원 둘이 무력하게 쓰러졌다. 일바가 절뚝거리는 그라프스트룀을 향해 손도끼를 내던졌다. 그라프스트룀이 손도끼를 막아내고, 다음 순간 달려든 일바가 그녀의 뒤를 잡았다.


“물러나라! 발포하지 마라!”


가빈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부르짖었다. 이고르가 칼을 가로로 크게 휘둘러 가빈의 옆구리를 노렸다. 가빈이 검을 세로로 들고 막았다. 이고르의 칼이 뱀처럼 휘며 기사를 그러안았다. 반대쪽 옆구리의 흉갑이 우그러지며 가빈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가빈은 이를 악물고 이고르의 다음 공격을 쳐냈다. 사냥꾼의 칼은 무지막지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다시 한 번 둘이 엉켰다.


“흡-!”


이고르는 칼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왼 어깨와 가슴 사이에 스틸레토가 박혀 있었다. 가죽 흉갑으로 감싸이지 않은 부위였다. 상대는 검으로 공격하려는 동작을 취하면서 마지막에 재빨리 왼손에 숨겨둔 무기를 내질렀던 것이다.


“포위진 형성하고 재장전! 준비된 사수는 대기!”


가빈이 고함을 쳐 유배자들의 조직원들을 일깨웠다. 조직원들이 분주히 장약하고 꽂을대로 총구를 쑤셔댔다. 이고르는 입으로 스틸레토의 손잡이를 물어 뽑아냈다. 일바에게 붙잡힌 그라프스트룀이 악을 써댔다.


“이 씹할 년, 내가 죽이고 말 거야. 알아들어? 널 죽이고 네 시체를 칼집으로 쓸 거라고!”


목에 도끼가 겨눠진 그라프스트룀은 종아리에서 흘러나온 피로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수사관들을 함정으로 끌어내면서 당연히 기병 전투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으므로, 해당 부위는 갑옷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겔린 경! 이건 옳지 못한 일입니다!”

“난 명령을 수행하는 거다, 일바.”


일바의 외침에 가빈이 마주 답했다. 카이만이 적들을 향해 쇠뇌를 겨눈 채 일바에게로 뒷걸음질 쳤다. 이고르 역시 일바에게 다가갔다. 머스킷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기였지만 그라프스트룀을 인질로 잡았으므로 쉽사리 발포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 명령이 잘못됐단 겁니다!”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야!”

“어째서 그렇습니까? 선배도 기사잖습니까?”

“조직의 결정은 개인의 판단에 우선한다!”


이고르는 일바가 말문이 막혀 황망한 눈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대신 말했다.


“감호소엔 당신 동료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하겔린 경. 감호소가 장사치들의 손에 운영되고 있단 얘깁니다.”

“네게서 들을 말은 없다, 사냥꾼! 발포 명령까지 대기! 첫 명령에 양끝부터 다섯 번째에 선 사수까지만 격발한다!”


유배자들이 머스킷을 겨눈 채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들의 두목은 셋 가운데 하나는 죽이지 말라는 별도의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두목의 동생이라는 저 남자는 납치해서 잠잠해질 때까지 감금해둘 계획이었다.


조직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질은 어떻게 합니까?”

“부수적 피해는 감수한다.”

“야 이 미친 자식아!”


그라프스트룀이 일바의 품에서 몸부림쳤다. 가빈이 들었던 왼팔을 절도 있게 앞으로 꺾었다.


“발포!”


총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콩을 볶는 것처럼 경쾌한 소리가 났다. 총알이 그라프스트룀의 갑옷을 때리는 소리였다. 일바가 팔을 감싸 쥐고 마차 뒤로 몸을 던졌다. 카이만이 시체 더미 뒤에서 쇠뇌로 응사했다.


“발포!”


다시 총탄이 쏟아져 나왔다. 둔각을 이루며 비스듬히 선 조직원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교차 사격으로 화망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고르는 정강이를 인두로 지지는 듯한 통증을 참고 달려들었다.


이고르는 자신을 겨눈 조직원들이 발포하는 순간 조준을 낮추는 것을 보았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이들은 생포를 주문 받았다. 그리고 이들에겐 물론 덴티스트카 류드밀라의 명령을 어길 만한 배짱이 없었다.


콰직-


부서진 머스킷의 부품과, 아래턱이 박살난 조직원의 치아가 낱낱이 허공을 수놓았다. 조직원들이 우왕좌왕하며 대열이 흐트러졌다. 기사의 지휘로 잠깐 동안은 군대를 흉내 낼 수 있었으나 결국 총 든 잡배들에 불과할 뿐이었다.


“다 죽여 버릴 거야, 이 개새끼들! 이 빌어먹을 개새끼들!”


총을 맞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라프스트룀이 몸을 뒤틀며 바락바락 고함을 질러댔다. 욕지거리가 절반이었다. 이고르는 하나를 더 베어 쓰러트리고 다음 상대를 찾았다. 조직원이 머스킷을 겨누고 있었다.


이번 조준에는 아량을 베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직원은 자신의 생사를 좌우할 선택 앞에서 돌연 커다란 의문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숫제 목을 꺾었다. 쓰러진 조직원의 옆머리에 볼트가 박혀 있었다.


“착검!”


일바의 배를 발로 차 밀어낸 가빈이 외쳤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게, 둘 모두 뺨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화약으로 된 인공의 구름이 흩어지고 흙먼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고르는 등허리에 뜨끈하게 번지는 통증을 참으며 칼을 뒤로 휘둘렀다.


총검을 꽂아 넣었던 조직원이 목을 감싸 쥐고 비척거리다가 엎어졌다. 난전은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이고르는 전황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적들의 얼굴에 공포가 번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고르를 앞에 두고 머뭇거리던 조직원이 다시 카이만의 볼트를 맞고 나뒹굴었다.


이고르는 달려든 또 다른 조직원의 머스킷을 낚아채 균형을 흩트리고 칼자루로 머리를 찍었다. 충격으로 상대의 눈구멍에서 안구가 튀어나왔다. 머리와 안구 모두 이고르가 내려찍은 발 아래서 으스러졌다.


퍽-


이고르가 던진 단도가 빠르게 날아가 일바에게 접근하던 조직원에게 꽂혔다. 일바는 가빈의 검을 막아내고, 마치 화답이라는 것처럼 손도끼를 던졌다. 이고르의 뒤에서 두개골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집중해라!”


가빈이 벌컥 고함을 지르며 일바의 허벅지에 스틸레토를 박아 넣었다. 갑옷으로 완전 무장한 채 머리만 내어놓은 기사를 상대하는 건 같은 기사인 일바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머리를 노리면 틈을 보이게 되고 그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카이만이 엄호를 위해 적당한 각도를 찾으려고 분주히 뛰어다녔지만, 노련한 기사는 계속해서 사선을 피했다. 이고르가 전의를 상실한 조직원의 얼굴을 자비 없이 후려쳐 부수고 이 철옹성 같은 기사의 공략에 가담했다.


이제 그들 주변엔 죽거나 쓰러진 조직원들이 산적해 있었다. 악을 써대던 그라프스트룀도 기력이 다했는지 간헐적으로 꿈틀거릴 뿐이었다.


“선배께서 지셨습니다. 검을 거두세요.”

“허튼소리.”

“인정해, 이 고집 센 양반아. 나랑 이고르가 당신 팔 하나씩 붙잡아도 머리 자를 사람이 남는데.”

“패배를 인정하십시오, 하겔린 경. 명예롭게, 기사답게 말입니다.”


이고르의 말은 효과가 있었다. 이고르를 힐끗 살핀 가빈이 검을 고쳐 쥐었다. 이윽고 그는 검을 흙바닥에 꽂아 넣었다. 카이만이 쇠뇌를 겨눈 채, 왼팔로는 허공을 더듬어 검을 거두어 오려 하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카이만!”


이고르가 버럭 외치며 칼 쥔 손에 힘을 넣었다. 가빈이 돌발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손끝에서 서늘한 빛을 발하는 것은 예의 스틸레토였다. 목을 노렸던 스틸레토가 카이만의 입술에 붉은 세로줄을 남겼다. 카이만이 물러나며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퉁-

퍽-


현기증이 일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처럼 가빈 하겔린이 비척거렸다. 눈에 볼트가 박히고 뒤통수는 날아가서 허여멀건 뇌가 들여다보였다. 앞으로 쓰러질지 뒤로 넘어갈지 결정을 못한 듯이 기사는 칼자루를 쥐고 버텼다.


“쉬십시오.”


일바가 다가가 가빈의 목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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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기사들의 시대 - 6. 달은 밤에 뜨는 태양(3) +1 19.06.27 408 23 14쪽
19 기사들의 시대 - 6. 달은 밤에 뜨는 태양(2) +3 19.06.25 446 24 14쪽
18 기사들의 시대 - 6. 달은 밤에 뜨는 태양(1) +4 19.06.24 646 22 15쪽
17 기사들의 시대 - 5. 더러운 진실(3) +5 19.06.21 419 26 15쪽
16 기사들의 시대 - 5. 더러운 진실(2) +5 19.06.20 397 22 15쪽
15 기사들의 시대 - 5. 더러운 진실(1) +1 19.06.18 498 28 14쪽
14 기사들의 시대 - 4. 옷장 속의 해골(4) +3 19.06.17 386 29 16쪽
13 기사들의 시대 - 4. 옷장 속의 해골(3) +7 19.06.14 403 29 13쪽
12 기사들의 시대 - 4. 옷장 속의 해골(2) +2 19.06.13 429 24 13쪽
11 기사들의 시대 - 4. 옷장 속의 해골(1) +1 19.06.11 501 27 15쪽
10 기사들의 시대 - 3. 공모자들의 도시(3) +3 19.06.10 494 28 15쪽
9 기사들의 시대 - 3. 공모자들의 도시(2) +1 19.06.07 476 26 13쪽
8 기사들의 시대 - 3. 공모자들의 도시(1) +2 19.06.06 525 26 13쪽
7 기사들의 시대 - 2. 불완전한 목격자(3) +2 19.06.04 475 32 18쪽
6 기사들의 시대 - 2. 불완전한 목격자(2) +5 19.06.03 538 28 14쪽
5 기사들의 시대 - 2. 불완전한 목격자(1) +3 19.05.31 640 32 12쪽
4 기사들의 시대 - 1. 필요한 모든 것(3) +3 19.05.30 743 31 17쪽
3 기사들의 시대 - 1. 필요한 모든 것(2) +2 19.05.28 841 27 13쪽
2 기사들의 시대 - 1. 필요한 모든 것(1) +7 19.05.27 1,288 36 15쪽
1 기사들의 시대 - 프롤로그. 사자의 전언 +15 19.05.27 2,448 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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