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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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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l
그림/삽화
EOL
작품등록일 :
2019.05.26 18:45
최근연재일 :
2019.12.06 00:36
연재수 :
7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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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6
글자수 :
289,774

작성
19.07.07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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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연의 섬에 바닷길이 열리면(1)

DUMMY

가까워진 발소리가 에일 방문 앞에서 멈춰 서면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자객이 문을 두들긴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는 나는 롱소드를 치켜세웠던 양손 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데, 반대편에서 또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에일이 묵던 방문 앞에 서 있던 누군가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자빠졌다.


“너, 거기서 뭐하냐?”


반대편 복도에서 시젤이 가진 특유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혀.......형이야 말로, 공주님 방문 앞에서 뭐하는데?”


빈 방문을 두들겼던 건 보니아였다. 아까까지는 어떻게 숨겼는지 모르겠지만, 시젤이 뚜벅뚜벅 구두 소리를 내며 그에게로 걸어갔다.


“난 옆방에 볼일이 있어서 온 거고, 공주님 방앞에 서 있는 건 너겠지.”


시젤이 살벌한 목소리를 내면서 동생에게서 무언가를 뺏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나가려 하자 에일이 내 팔목을 잡았다.


“공주님한테 재워달라고 하려고?”


시젤이 뭔가를 가슴 위로 올리자, 보니아가 그것을 잡으려고 방방 뛰었다.


“몇 번이나 이랬어, 똑바로 말해.”

“오늘이 처음이야, 악몽을 꿨단 말이야!”


보니아는 시젤이 주는 위압감 때문인지, 동정표라도 받을 생각인지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 자식은 진짜 지켜야 할 선을 모르네! 공주님이 오냐오냐하니까, 어머니라도 되는 줄 알아?”

“형이 무슨 상관이야!”


주변 사람들을 다 깨울 요량인지 서서히 올라가던 그들의 목소리가, 이젠 쩌렁쩌렁하게 빈 복도를 타고 울렸다.


“멍청아! 어머니는 죽었어! 장난감 가지고 가겠다고 꼼지락거리던 누구 때문에 그 망령들한테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고!”


“그게 왜 내 탓이야!” 보니아가 제 작은 덩치에서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그에게 소리쳤다. “아무것도 못 한 건 형도 마찬가지잖아! 형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기사가 되겠다고 검도 차고 다녔으면서, 어린 나랑 똑같이 엄마 뒤에 숨었던 건 형이었잖아!”

“뭐?”


시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되물었는데, 그 안에는 살벌한 경고가 담겨있었다.


“형도 나랑 똑같은 겁쟁이야! 형 때문에 엄마가 죽은 거라고!”

“이제까지 그따위로 생각했었냐?” 시젤이 헛웃음을 흘리다가 곧장 보니아에게로 달려들었다.


그제야 문을 열고 나간 나는 보니아를 깔아뭉갠 채로 주먹질을 해대는 시젤의 등을 뒤에서 잡았다. 시젤은 내가 뒤에서 잡건 말건 에일이 피투성이가 된 보니아의 얼굴을 보고 경악하건 말건 공격을 멈추지 않았는데, 힘도 워낙 장사라서 비슷한 체급의 나로서는 도저히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야! 이 자식아!”


뒤에서는 하녀들이 모시고 온 크랜 공작이 에일이 놀라 주저앉을 만한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는데, 그제야 시젤은 시선을 돌려 제 아비 쪽을 보았다. 공작의 분노가 익숙한지 시젤은 그다지 당황한 눈치도 아니었다.


“손님까지 모셔두고, 이 무슨 경거망동한 행동이냐! 씨젤!”


자리에서 일어난 시젤은 피떡이 된 제 동생을 한번 내려다보고 제 손에 묻은 피를 문지르다가 다른 화풀이 대상을 찾았다는 듯 공작을 노려보았다. 크랜 공작은 신사답게 놀란 에일을 먼저 일으켜 세운 뒤 둘째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네 동생한테 그럴 거니, 그런다고 네 어미가 살아 돌아온다냐?”

“당신은 상관없겠지. 얘가 죽건 말건, 내가 죽건 말건, 어머니가 살아오건 말건. 당신이 번창시킨 사업이랑 그걸 물려받을 장남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다시 주먹을 쥔 시젤은 피가 번진 제 주먹에 입술을 처박았다. 그러고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가는데, 공작은 소년을 쫓지 않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에일은 시젤이 자리를 뜬 다음에야 기다렸다는 듯 보니아의 곁으로 갔고, 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시젤을 따라갔다.


“어머니는 가기 싫다고 하셨는데.......” 시젤은 주먹으로 입을 막은 채로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의 주먹으로 핏물과 콧물, 눈물이 섞인 액체들이 흘려 바닥에 떨어졌다.


“고향에 돌아가기 싫다고 하셨는데......”


나는 소년과 두 걸음 떨어져 걸었지만, 소년의 관심에서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소년이 막다른 길목에 들어섰을 때 내가 그를 불렀다.


“.....시젤”

막힌 벽에는 창으로 달빛이 스쳤는데, 밤하늘 아래에 선 그를 바라보니 위태롭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나를 노려봤는데, 그 째진 눈매가 꼭 늑대 새끼 같았다. 보니아가 그를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한편으로는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보니아와는 달랐고 그 정도의 살기와 분노는 내게 결코 두려운 것도, 마주 보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양팔을 벌려서 소년을 꼬옥 안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와 체구가 비슷한 내 품에서 그가 울음을 터뜨렸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었어. 이런 게 유치하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 멀쩡한 얼굴을 견딜 수가 없어, 사업 때문에 어머니를 그런 곳으로 내몬 주제에, 그렇게 멀쩡히 사는 꼴을 볼 수가 없다고......!”


소년의 등을 토닥이며 나는 그가 그렇게 멀리 서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계단 턱에 앉은 채로 소년과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루시아의 땅을 넘어가다가 호운의 습격으로 죽게 된 그의 어머니에 관한 얘기와 뒤늦게 와서 그들을 구해줬다는 반월에 관한 얘기, 소년이 어울려온 귀족 소년들에 관한 얘기와 그들과 저질러온 온갖 일탈들에 대해 그는 내게 털어놓았다. 나는 이에 화답하듯 호진에게 배웠던 검술에 관해, 에일과 가족처럼 생활하던 시절들에 관해 얘기해줬다. 소년이 내게 그전의 공백에 관해 묻자, 나는 답을 못하다가 그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에는 내가 질문했다.


“에일이 네 어머니랑 닮았어?”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어머니는 루시아였거든.”


“그래서 너도 그녀를 좋아하는 거야?”


내 질문에 소년은 턱을 올려 달을 보았다. 그의 얼굴 주위로 하얀 기루가 일렁거렸다.


“루시안이라서, 신기하다는 건 인정할게.”

“네가 나한테 물었었지,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이 어떠냐고.”


나는 소년과 눈을 마주친 채로 슬며시 웃다가 얼굴을 굳혔다.


“나는 그녀를 여자로 보지는 않지만, 그녀를 사랑해.”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말했다. “이 차고 넘치는 감정을 사랑 말고 무엇에 국한할 수 있겠어, 그녀는 내 인어야.”


소년은 나를 빤히 보았다. 시선을 놓지 않고 그는 나를 보았고 나도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에일보다 짙은 색의 파란 눈동자를 보았고 그 안에 감긴 복잡한 감정을 보았다.


“그리고 난 오늘 그 인어의 곁을 떠날 거야.”


* * *


그 검은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그 눈에는 피가 흐른다. 그것은 피눈물을 흘린다.

라타는 살 마디 마디가 썩어가는 그 괴물을 보고 도망치지도 않았으며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당혹감이 스치던 눈빛도 금세 가라앉아 그녀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진흙투성이가 된 발로 한서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의 눈동자는 바다처럼 푸르렀다. 심해처럼 깊었고 파도가 치지 않았는데, 인어의 눈에 담기는 존재는 도저히 살아있는 것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리언의 부축을 받다가 한서가 휘청하자 그녀가 양팔을 그의 겨드랑이에 끼워 일으켜 세우고는 팔을 구부려 그를 제 품에 안았다.


그의 어깨를 팔로 쓰다듬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헝클어진 머리가 더 엉망이 되도록 제 손가락 사이에 그의 머리카락을 쥐어, 거칠고 부드럽게 끌어당긴다.


‘라타가 한서의 혼도 가져갈까?’ 리언을 이를 궁금해하다가 이내 긍정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인어의 키스로 가져갈 수 없는 것은 없다지. 힘도, 수명도, 저주도.....심지어 혼까지.’

리언은 그녀가 제 주인의 혼을 가져가리라 확신했다. 그의 혼은 병들고 저주받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했으니, 그런 식으로라도 그와 함께할 수 있다면 이를 선택할 것이었다. 그를 덜어낸 자리의 공허함을 저주로 가득 채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그 공백을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한서는 무력했으며 몸이 저주를 견디지 못해 죽어가고 있었다. 키스의 주도권은 라타에게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무엇이든 가져올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 무엇이든 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목에 얼굴을 박았다. 그 지독한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그녀는 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문질렀다. 그 얼굴을 핥듯이 키스하고 그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검은 것들을 집어삼킨다. 인어가 울었다. 그녀가 삼킨 것이 눈물이었기 때문일까, 인어가 우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녀가 울었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서의 양 뺨을 감싸다가 눈을 감고 그것에게 입을 맞춘다. 그 상태에서 한서가 검은 피를 내뱉지만, 그녀는 그와의 입술을 맞붙인 채로 혀를 내밀어 그 이사이 구석구석을 핥았다. 한서가 거친 숨을 몰아쉬면 더 깊은 곳으로 혀를 내밀어 그의 골이라도 씻어낼 듯 혀를 움직인다.


그가 중심을 잃자 무릎을 구부리고, 그가 바닥으로 쓰러지자, 그곳에 엎어진 채로 그렇게 계속해서, 그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한서가 정신을 잃어도 그녀는 경건한 사냥을 하듯 그의 입술을 놓아주지 않는다. 제 몸을 감싸던 신비한 기루가 빛을 잃어도 제 하얀 살갗에 검은 반점들이 생기다가 그것들이 점점 제 몸을 얼룩처럼 덮어와도, 그녀의 몸이 썩어 움푹 파이고, 검게 변해도 그 주검은 한서를 끌어안던 손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미라가 되고 미라는 골과 뼈만 남은 뭔가가 되고, 그 썩은 골이 한서의 몸에서 일그러지다가 검은 재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리언은 그 모든 순간을 바라본 동시에 그것을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 되었다. 뭔가 어그러진 것을 느낄 새도 없다. 눈을 뜬 건 인간 쪽이었다. 그런데 그 눈은 도저히 한서의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호그의 것도 아니었다. 바다를 닮아 푸른 것이다. 심해처럼 깊고, 파도가 치지 않는 그러한 고요한 바다.


작가의말

늦었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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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6) 19.12.06 5 0 9쪽
69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5) 19.11.25 10 0 11쪽
68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4) 19.11.09 12 0 11쪽
67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3) 19.11.03 10 0 10쪽
66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2) 19.10.19 12 0 8쪽
65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1) 19.10.09 7 0 9쪽
64 악마의 사생아(2) 19.09.23 11 0 10쪽
63 악마의 사생아(1) 19.09.16 11 0 9쪽
62 경매장(7) 19.09.11 17 0 12쪽
61 경매장(6) 19.08.29 17 0 7쪽
60 경매장(5) 19.08.26 22 0 8쪽
59 경매장(4) 19.08.25 14 0 8쪽
58 경매장(3) 19.08.23 18 0 8쪽
57 경매장(2) 19.08.22 21 0 8쪽
56 경매장(1) 19.08.21 15 0 10쪽
55 검은 왕국(5) 19.08.20 14 0 8쪽
54 검은 왕국(4) 19.08.18 16 0 7쪽
53 검은 왕국(3) 19.08.15 14 0 11쪽
52 검은 왕국(2) 19.08.08 28 0 10쪽
51 검은 왕국(1) 19.08.04 15 0 8쪽
50 숙부(7) 19.07.29 15 0 8쪽
49 숙부(6) 19.07.28 18 0 8쪽
48 숙부(5) 19.07.22 17 0 7쪽
47 숙부(4) 19.07.21 19 0 7쪽
46 숙부(3) 19.07.15 25 0 7쪽
45 숙부(2) 19.07.14 25 0 9쪽
44 숙부(1) 19.07.13 32 0 7쪽
43 별들의 방랑자 (2부 프롤로그) 19.07.08 39 0 1쪽
42 연의 섬에 바닷길이 열리면(3) 19.07.08 3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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