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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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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l
그림/삽화
EOL
작품등록일 :
2019.05.26 18:45
최근연재일 :
2019.12.30 21:57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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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
추천수 :
7
글자수 :
295,875

작성
19.07.14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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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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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숙부(2)

DUMMY

“저는 집에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내가 강하게 반발해도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절 루시안에 넘겨준다고 해도 아저씨는 아무것도 못 얻을걸요! 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요!”


그는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시체의 목을 올가미 밧줄로 매고는 갈고리를 꺼내 말 안장에 연결하고 그 갈고리에 밧줄의 끝을 묶었다. 그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그 일을 해내고는 그와 별로 다르지 않은 눈빛으로 내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역시......사례금보단 몸값을 받는 게 나으려나?”


몸이 떨렸다. 그제야 저 능숙한 사냥꾼에 대한 위기감이 내 몸을 스멀스멀 잠식해오는 듯했다. 내가 입을 다물자 남자는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는 무감각한 표정으로 빈민촌의 경계선을 넘어갔다. 말과 시신이 연결되면서 거기서 내리려 했던 나는 꿋꿋이 말을 위에 올라타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경계에서 몇 걸음을 디뎠을 뿐인데 역겨운 냄새가 거칠게 내 빈속을 쓸고 지나갔으며 오물과 짐승의 피가 섞인 진흙 길에서는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나도 모르게 코를 틀어막았다. 병인들의 시선이 우리 쪽을 향해 쏟아졌는데 남자는 그것을 그저 무시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전부 나와 같은 검은 색이어서 그런지 나는 그들의 눈길을 피하지 못했다.


썩은 판자와 널빤지로 만들어진 그들의 움막에는 빛이 거의 들지 않았으며 그들의 그 눈은 내가 이제까지 보아온 산자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들의 검은 눈은 죽어있었다. 거리에 앉아 동냥 그릇을 꺼내놓은 등이 굽은 노인도, 다리 한쪽이 잘린 채석장의 광부도, 여인들의 뒤에 숨은 아이들도 눈에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매스꺼운 시체 썩은 내와 기아의 냄새가 그들의 생명력을 좀 파먹고 있다. 그 눈은 전부 죽은 자의 것이었는데 나는 왜인지 그 속에 담긴 수만 가지의 감정과 절망이 살점에 와 닿았고 그 어떤 눈을 볼 때보다도 더 깊게, 깊게 그 속에 빠져들었으며 결국은 그 검은 뭔가에 침몰할 수 있었다.


거지의 거리를 지나치자 마치 국경을 수비하는 성벽처럼 거대하고 높은 나무 벽이 나타났다. 남자가 문을 두들기자 덧창으로 늙은 사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콧수염을 길게 기르고 그것을 옆으로 땋은 사내는 말에 앉아있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 벌써 왔는가? 그 노예 녀석? 그런 곳에서 썩기에는 아까운 얼굴이네.”


사내는 파란 눈을 내게로 고정한 채로 뭔가를 생각하는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혀로 입술을 쓸었다.


“뒤에 시체는 안 보여? 경비 놈들한테 전해, 반항이 심해서 두 놈 다 잡아 죽였다고.”


그의 말에도 문지기는 시선을 내게서 떼지 못했다.


“그럼 저 녀석은 뭔가?”


남자는 그제야 내 쪽을 보다가 약간의 뜸을 들이고 말했다. “내 조카, 형 내외가 죽어서 날 만나러 여기까지 왔더라고.”


내 몸값을 저 장사치 같은 문지기와 나누고 싶지 않아 지어낸 거짓말이었지만, 가족을 가져본 일이 없는 나는 그의 말에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런, 이런! 자네가 조카에겐 퍽 다정한 삼촌이었나 보군?”


문지기가 버튼을 누르자 도르래장치가 달린 나무문이 양쪽에서 저절로 열렸다. 말에서 내린 내가 그와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가자 문지기는 더 노골적인 시선으로 내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근데 자네는 아버지 노릇 할 형편은 아니지 않나? 자네만 좋다면 내가 괜찮은 입양처를 소개해줄 수-!”


남자가 웃으며 말의 허리를 잘랐다. “저 다 큰 녀석을 누가 입양해? 어린 녀석이랑 뒹굴고 싶은 귀부인이 많은 거겠지.”


남자는 문지기 옆에 서 있던 내 어깨를 쥐어 반대편에 서게 하고는 문지기의 손에 시체가 연결된 갈고리를 넘겼다.


“말 전해줄 필요 없어. 밀린 수당까지 오늘 다 받아내야겠거든.”


그는 그리 말하다가 슬쩍 내 쪽으로 따가운 시선을 보내왔는데 나는 그의 낮은 한숨 소리도 무시한 채 아직도 올가미가 목에 걸린 시신들 곁으로 다가갔다. 자갈길을 지나온 시체는 목이 꺾이고 진흙투성이가 돼 있었는데 피가 검게 굳은 그들은 여전히 검은 눈을 뜬 채였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한쪽 손으로 그들을 눈을 감겨줬는데, 그 느낌이 내 예상보다 훨씬 뻑뻑했다. 그러자 벌써 저만치 걸어간 그가 신경질적으로 나를 불렀다.


그의 망토는 바람에 부대끼며 너풀거렸다. 펠트 천으로 된 낡은 망토는 관리가 잘되지 않아 보풀이 생겨나고 듬성듬성 덩어리가 져 있어 그리 단정하다는 느낌을 주진 못했지만 어기적거리는 주인의 걸음걸이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호리호리한 몸의 남자가 풍기는 묘한 분위기는 절벽 위를 걷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위태롭고 고독해 보였는데, 거리의 사람들이 그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을 보면 나만 그리 느끼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그는 골목을 돌고, 다시 돌아 외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맥주와 해적선이 그려진 나무 팻말을 보니 아무래도 선술집인 듯했다. 횃불이 몇 군데 놓인 내부는 밤처럼 캄캄했고 육각형으로 된 낡은 테이블 몇 개에 나무의자들이 서너 개씩 놓여있었다. 매캐한 담배 냄새에 콜록거리던 나를 구석 자리에 앉힌 그는 어딘가로 걸어갔다.


동물의 이빨을 깎아 만든 맥주병이 부딪치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던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여자들을 곁에 끼고 허풍스러운 무용담을 늘어놓는 남성 몇 명과 눈이 마주쳤다. 나보다 눈높이가 높고 얼굴에 흉터 하나쯤은 훈장처럼 가지고 있는 남성들의 험악한 표정에 풀이 죽은 나는 냅킨이라도 만지작거리며 심신을 안정시키려다가 갑자기 가짜 숙부가 돌아오는 바람에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 뒷걸음질치듯 내게로 돌아온 그가 말했다.


“말소리가 들려.”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겁먹은 두 눈을 깜빡거렸다.


“너, 루시안으로 돌아가지 싫다고 했지?”


그제야 나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고 그는 테이블 밑으로 숨으라 턱짓했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 밑으로 들어갔다. 가뜩이나 주위가 어두웠는데, 그곳에 몸까지 숨기니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내가 몸을 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들어온 방향과는 반대쪽에서 문이 요란하게 열어젖혀 지며 사내들의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팍에 상감세공으로 루시안의 문장이 새겨진 은 갑옷을 입은 남성이 선두로 들어왔는데 건물 안이 어두워서인지 금속 갑옷이 뿜어내는 푸른 빛은 영롱하게까지 보였다. 그 청록색 거북이 문장을 수천 번은 보아왔던 나였지만 왜인지 그 기사가 뿜어내는 기운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기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손님들이 내던 목소리는 작아지다가 나중에는 주위에 답답한 정적이 흘렸다. 짧은 치마를 입어 하얀 다리가 훤히 보이는 술집의 여성이 숙부의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넌 일단 뒷문으로 나가.”


여자의 목소리는 꽤나 다급하게 들렸지만, 당사자인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왜, 나 때문에 온 것도 아닐 텐데.....”

“넌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수배령-!”


숙부가 여인이 권하던 방향과는 반대로 걸어가자 그녀는 말을 멈췄다.


“여기에 새벽 정찰을 나갔다던 정찰병들이 있다던데?”


루시안의 기사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주는 위압감에 사람들은 눈짓으로 술이 떡이 돼 바에 턱을 괴고 코까지 골며 자는 두 남성을 가리켰다.


“정찰은 꿈속에서 갔다 왔나?” 기사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칼등으로 그들을 깨우려는데 그 앞을 숙부가 막아섰다.


“보다시피 당번이 상태가 별로라서, 내가 갔었어요. 그 정찰.”


숙부는 뻔뻔하게도 그들 앞에 섰다. 숙부는 날 루시안에 팔아먹으려고 마음을 바꾼 걸까?


“네가?”


기사가 그에게 잃어버린 검은 소년에 관해 물으려던 찰나 호위기사들과는 비교되는 가벼운 발소리의 건물 내에서 들려왔다.


“그들이 호우를 봤대요?”


익숙한 소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 떨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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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7) 19.12.30 10 0 13쪽
70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6) 19.12.06 11 0 9쪽
69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5) 19.11.25 13 0 11쪽
68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4) 19.11.09 13 0 11쪽
67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3) 19.11.03 13 0 10쪽
66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2) 19.10.19 13 0 8쪽
65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1) 19.10.09 9 0 9쪽
64 악마의 사생아(2) 19.09.23 13 0 10쪽
63 악마의 사생아(1) 19.09.16 12 0 9쪽
62 경매장(7) 19.09.11 17 0 12쪽
61 경매장(6) 19.08.29 18 0 7쪽
60 경매장(5) 19.08.26 22 0 8쪽
59 경매장(4) 19.08.25 15 0 8쪽
58 경매장(3) 19.08.23 19 0 8쪽
57 경매장(2) 19.08.22 21 0 8쪽
56 경매장(1) 19.08.21 16 0 10쪽
55 검은 왕국(5) 19.08.20 15 0 8쪽
54 검은 왕국(4) 19.08.18 16 0 7쪽
53 검은 왕국(3) 19.08.15 14 0 11쪽
52 검은 왕국(2) 19.08.08 28 0 10쪽
51 검은 왕국(1) 19.08.04 16 0 8쪽
50 숙부(7) 19.07.29 15 0 8쪽
49 숙부(6) 19.07.28 21 0 8쪽
48 숙부(5) 19.07.22 18 0 7쪽
47 숙부(4) 19.07.21 27 0 7쪽
46 숙부(3) 19.07.15 25 0 7쪽
» 숙부(2) 19.07.14 27 0 9쪽
44 숙부(1) 19.07.13 33 0 7쪽
43 별들의 방랑자 (2부 프롤로그) 19.07.08 41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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