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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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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l
그림/삽화
EOL
작품등록일 :
2019.05.26 18:45
최근연재일 :
2019.12.06 00:36
연재수 :
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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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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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수 :
289,774

작성
19.08.0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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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검은 왕국(2)

DUMMY

바닥에 엎어진 여인 위에 올라간 젊은 남자가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에게 벗어나려 여인도 나름대로 발버둥을 쳤지만, 그녀의 긴 손톱에 긁힌 남자의 팔뚝에는 얕은 생채기만이 남을 뿐이었다. 허리까지 차는 긴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로, 남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도저히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독기보단 당혹감이 서린 눈빛을 보내는 그녀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살인의 장면이 묘사된 그림이었지만, 그것은 인간의 살가죽이 벗겨지는 장면도 군데군데 등장하는 삽화 중에는 덜 자극적인 쪽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에서 유독 시선을 떼지 못하던 나는 내가 그것에서 유독 강한 감명을 받은 이유를 깨달았다.


‘에일을 닮았어.’


물론, 그녀는 소녀가 아니었고 에일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는 소녀가 자라 나와는 다른 성별의 존재로 성숙하게 되면 꼭 저 여자와 같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모습이 되면 그녀도 다른 영식에게 시집을 가겠지, 아니면 그 전에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책을 집던 손가락 하나를 뻗어 여인의 굽이치는 머리카락을 쓰다듬듯 문지르던 나는 그것을 품속에 챙겨 넣었다. 책을 돌려놓을 생각은 없었지만, 로비에 있던 대출 노트에 이름이라도 남길까 고민하던 나는 돌아섰다. 그것에 이름을 적어보았자, 루시안의 언어를 아는 이곳 주민은 없을 것이었다. 이미 재가 된 그들을 주민이라 부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리 생각하니 그건 대출 노트가 아니라 죽은 자들의 명단일지도 모르겠다.


도서관 지하에 거래장이 있다더니, 홀의 안내원 한 명 없는 1층은 호커스의 신발을 빌려 신은 내 발소리가 경박스럽게 느껴질 만큼 고요했다.


나는 지하로 통하는 나무문을 열었다. 먼지가 묻지 않은 문고리는 뻑뻑하게 돌아가더니 관리가 오래도록 안 된 문에서는 삐거덕 소리가 났다. 둥근 벽면에 감싸진 계단 중간 중간에는 위태로운 빛이 번쩍이는 횃불이 놓여있었지만, 직사광이 정면으로 내리쬐던 지상층에 비하면 어둡고 음침해 죽은 자들의 공간에 온 듯한 느낌을 줬다. 본래는 오래된 서적을 보관하는 용도였을 지하는 꽤 깊은 곳까지 파여있어, 계단을 내려갈수록 깊은 심연에 몸을 담그는 듯했다.


다리를 헛디뎠다가 겨우 난간을 잡은 나는 헛숨을 들이켰다. 내 발소리가 멈추자 드문드문 흐릿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뚜벅.뚜벅.


그들의 목소리는 서서히 내 발소리를 삼키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렇게 우악스러운 소리를 이제까지 듣지 못했는지 기이하게까지 했다. 주홍색 빛 무리가 사내들의 얼굴을 뺀 질 나게 비춘다. 식량을 사러 온 내 계획이 당치도 않게 느껴질 만큼 코너 대부분이 무기들과 마력기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무판자에 고정된 창과 비수들은 피를 묻히고도 제대로 닦지도 않았는지 끝이 까맣게 변했으며, 더 상태가 좋지 않은 상품들은 나무 상자들에 분류도 없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살상 도구에서 시선을 뗀 나는 겨우 정상적인 의자 가게로 눈동자를 돌렸다. 단순한 의자가 아닌지 어떤 의자에는 철사가 칭칭 감겨 전기인지 마력인지 알 수 없는 게 지직 흐르고, 또 어떤 의자는 등받이에 날카로운 송곳들이 박혀있어 앉기만 해도 정신이 번쩍 들 것 같았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의자들인가?


팔받임에 칼들이 꽂힌 의자를 본 나는 저걸로 고기를 썰면 퍽 간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찾아오셨수?”


나무 의자에 앉아있던 등이 굽은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실눈을 겨우 뜬 가게 주인은 거동이 불편한지 지팡이를 받치고 걸었는데, 그의 두 손에 들린 막대의 길이만큼 거리를 둔 나는 머뭇거리다 물었다.


“마물 고기를 사러 왔어요.”


주인의 팔뚝에 그려진 눈알 문신은 주인과 함께 나이를 먹어 모양이 찌그러져 있었다. 내 앳된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던 노인이 느긋하게 손가락으로 구석에 자리한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떤 주인을 뒀는진 모르겠지만, 이곳은 너 혼자 오기에-.”


그의 손끝을 따라 등을 보이고 서 있던 나는 뒤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기척에 곧장 칼을 뽑아들고 그의 목에 그것을 겨누었다. 그가 눈썹을 찡그리자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파란 눈동자가 언뜻 보였다. 내 어깨로 뻗었던 손을 거둔 그는 혀를 찼다.


“심부름꾼이 아니라 살수였나 보지, 마가 아주 단단히 끼었군, 그려!”


롱소드를 곧장 집어넣은 나는 노인에게 사과하려 했지만, 벌레 보듯 하는 그의 눈길에 나는 입술을 떼지 못하고 뒷걸음질쳤다. 내가 도망을 치듯 노인이 가르쳐준 가게로 가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자 한번 기구하군, 내 놈 몸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겠어.”


나는 아까 전의 행동 때문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호진에게 검을 배운지도 1년이 거의 다 돼 가고 있었지만, 몸이 판단하기도 전에 반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 검이 또 사람을 해칠 뻔했던 것일까? 내 것에 배가 꿰뚫렸던 노예 소년의 얼굴이 떠오른 나는 쓴 침을 삼켰다. 전부, 요즘에 너무 민감해진 탓이었다.


얼른 심부름을 완수하고 이곳을 벗어날 생각에 나의 발걸음은 조급해졌고, 그러다 어깨에 뭔가 묵직한 게 다가와 부딪치는 느낌에 걸음을 멈췄다.


“뭐냐?”


팔꿈치를 내 어깨와 부딪친 사내가 나를 내려보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죄.....죄송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내 몸을 훑는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마물 젖이라도 사러 왔냐, 꼬맹이?”


그 말에 남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던 여성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웃었다. 목이 꺾인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나는 어서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입술을 씹었다. 내 쪽으로 침을 뱉은 남자는 그제야 성이 풀리는지 돌아섰다. 타액이 콧등을 타고 흐르며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파르르 떠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시비가 붙으면 제 이름을 대라던 호커스의 말이 문뜩 떠올랐다.


“호-.”

“가만 보니, 너! 그 새끼랑 좀 닮았다?”


남자의 말에 여자가 물었다.


“아, 그 사형수를 말하는 거야? 만나면 아작을 내겠다던?”


사형수? 머리를 깊게 굴리지 않아도 지금 ‘호커스’의 이름을 대면 일이 더욱 커지리라는 직감했다.


“그래, 만나면 두개골을 도끼로 토막 낸다고 했지.”


그리 말하며 울퉁불퉁한 근육 주먹을 꽉 쥐던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쉬운 대로 이놈이라도-!”


나는 남자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어색함과 익숙함의 차이일 뿐. 그렇게 생각하니 검을 맞잡은 두 손은 떨리지 않았다.


“날 이대로 보내줘요.”

“거리의 아이인 줄 알았더니, 귀족의 애동이라도 되나? 검은자치고 꽤 좋은 검을 쓰네?”


남자는 비릿하게 웃고는 날 지나쳐갔다. 안도의 숨을 내쉬던 나는 호커스가 과연 내게 실현 가능한 임무를 준 게 맞는지 의문이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나는 아까와는 다르게 어깨를 펴고 걸었다. 여기서 움츠러들면 이곳의 그림자가 날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이그리드 고기요, 등살로 비계 없이 두 근만 주세요.”


내가 금화를 내밀자, 마물의 초록색 피가 묻은 손을 닦지도 않고 내민 난쟁이는 미간을 찡그리며 나를 보았다.


“아, 거스름돈은 괜찮아요. 팁이에요.”

“팁은 개뿔이나, 놈이 진 외상값이 얼만데.”


머리가 내 허리춤에 오는 중년의 난쟁이가 말할 때마다 덥수룩한 수염이 실룩거렸다.


“놈이요?”

“그래, 그놈! 이딴 질긴 고기를 처먹는 놈이 호커스, 그 자식밖에 더 있어?”


백정은 내 손에 들린 금화 하나도 빼앗으며 외쳤다. 단순히 마물 고기가 비싸 금화 두 닢을 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돈을 주머니에 넣고도 연신 씩씩대던 난쟁이는 냉동고에 갔다 와야 한다며 자리를 비웠고, 꽤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마물을 잡으러 간 건가? 같은 자리를 배회하다가 그를 찾으러 갈까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느껴지는 살기에 고개를 돌렸다. 아까 부딪쳤던 사내가 흉흉한 기운을 뿜으며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날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했잖아요!”


검을 뽑아든 난 그가 일행을 데려왔나 하는 노파심에 주위를 살피며 검을 허공으로 휘둘렀다. 다행히도 그는 혼자였다.


“나는 널 안 건드려.”


그리 말하는 사내는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려 보였지만, 그의 입술에는 나를 향한 명백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꼈을 때쯤, 여왕의 기사들을 연상시키는 정갈한 발걸음 소리가 떼를 지어 몰려왔다. 하얀 로브를 뒤집어쓴 내 또래의 소년을 필부로 그의 뒤에는 하얀 비둘기의 문장을 단 중무장한 기사들이 대열을 맞추고 섰다. 아니지, 부엉이와 비둘기의 혼종으로 보이는 저 새는 매였다. 그리고 비상하는 매는 에눌리아의 상징이었다.


소년이 하얀 로브를 벗자, 그의 어깨로 백색에 가까운 은색 머리카락이 쏟아졌다. 에일과 비슷한 옅은 색의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는 내 얼굴을 빤히 보고는 미간을 미세하게 좁혔다.


“너, 아버지의 아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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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자유연재+제목 변경 19.08.09 41 0 -
70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6) NEW 10시간 전 3 0 9쪽
69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5) 19.11.25 9 0 11쪽
68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4) 19.11.09 12 0 11쪽
67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3) 19.11.03 10 0 10쪽
66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2) 19.10.19 11 0 8쪽
65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1) 19.10.09 7 0 9쪽
64 악마의 사생아(2) 19.09.23 11 0 10쪽
63 악마의 사생아(1) 19.09.16 11 0 9쪽
62 경매장(7) 19.09.11 17 0 12쪽
61 경매장(6) 19.08.29 17 0 7쪽
60 경매장(5) 19.08.26 22 0 8쪽
59 경매장(4) 19.08.25 14 0 8쪽
58 경매장(3) 19.08.23 18 0 8쪽
57 경매장(2) 19.08.22 21 0 8쪽
56 경매장(1) 19.08.21 15 0 10쪽
55 검은 왕국(5) 19.08.20 14 0 8쪽
54 검은 왕국(4) 19.08.18 15 0 7쪽
53 검은 왕국(3) 19.08.15 14 0 11쪽
» 검은 왕국(2) 19.08.08 28 0 10쪽
51 검은 왕국(1) 19.08.04 14 0 8쪽
50 숙부(7) 19.07.29 15 0 8쪽
49 숙부(6) 19.07.28 18 0 8쪽
48 숙부(5) 19.07.22 17 0 7쪽
47 숙부(4) 19.07.21 19 0 7쪽
46 숙부(3) 19.07.15 25 0 7쪽
45 숙부(2) 19.07.14 25 0 9쪽
44 숙부(1) 19.07.13 32 0 7쪽
43 별들의 방랑자 (2부 프롤로그) 19.07.08 39 0 1쪽
42 연의 섬에 바닷길이 열리면(3) 19.07.08 3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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