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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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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l
그림/삽화
EOL
작품등록일 :
2019.05.26 18:45
최근연재일 :
2019.12.3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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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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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875

작성
19.08.23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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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경매장(3)

DUMMY

구두코가 길게 늘어져 난쟁이의 신처럼 끝이 말려진 신발을 신은 남자가 무리의 선두에서 걸어왔다. 몸에 튄 피를 감추기 위해 검은 옷을 입은 다른 관리자들과는 달리 고풍스러운 금색 망토에 뚱뚱한 몸을 가진 그는 부유한 상인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 같았다. 뒤뚱뒤뚱 펭귄 같은 걸음에 둥근 얼굴을 가진 사내였지만, 외알 안경의 유리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매서워 깐깐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악마 꼬마 역시 그를 처음 보는지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악마의 철장 앞에 멈춰선 그는 습관적으로 안경을 고쳐 쓰고는 고문관들에게 물었다.


“저 꼬마가 르벵크의 사생아?”

“예, 서방에서 데려온 놈이죠. 북방에는 저런 게 드무니, 이번 경매의 반응이 꽤 파격적일 겁니다.”


다른 이들보다 두세 발자국쯤 앞으로 나아간 남자가 긴장한 듯 두 손에 깍지를 낀 채로 말했다.


“그런데 르벵크면, 손이 귀한 집안 아닌가?”


경매장의 주인으로 보이는 안경 쓴 사내가 흰 장갑을 벗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턱짓에 굽실대던 고문관이 머뭇거리다가 녹슨 철장의 문을 열었다.


“자세히 보십쇼, 크렌델님. 입이 기형입니다. 아무리 아이가 귀한 가문이라 해도, 저런 불량품을 살려둘 리가 없지요. 오죽하면 악마와 간통한 년이 돈도 안 받고 애를 넘기겠습니까?”

“이런 물건을 오래 두는 건 위험할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윽!”


아이의 날개를 만지던 상인이 그의 말을 듣고 입마개 사이로 손을 넣자 아이가 그의 손가락을 물어버렸다. 고문관이 아이의 머리를 곤봉으로 후려치자, 악마는 약간의 상처가 생긴 손가락을 뱉었다.


“저 자식의 이빨을 뽑지 않고 뭘 한 거야!”


크렌델이 피가 흐르는 제 손을 보고 격분해 소리쳤다. 판에 전시된 고문 기구로 손을 뻗자 고문관이 떨리는 손으로 그를 막아섰다.


“크렌델님, 이, 이빨을 뽑았다간 상품값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습니다!”


화풀이하듯 자신에게 주의를 시키지 않은 고문관의 얼굴을 지팡이로 힘껏 내려친 크렌델은, 여전히 격분한 얼굴로 아이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다가 옆 철장에 죽은 듯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렸다.


“검은 아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창조 술사라도 되나?”


그가 비아냥대듯 묻자, 고개를 숙인 고문관이 말했다.


“호족에서 추방된 아이입니다, 당연히 순혈이고요.”

“그래? 귀족 계집애처럼 생겼는데, 검은 호랑이라고?”


크렌델은 그 말에 반색하며 눈썹을 약간 추켜세우고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럼, 저놈에게도 짐승의 치열이 있겠네?”

“아, 아직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있을 겁니다.”


어둠 속의 은은한 빛은 오히려 공포를 상징하듯, 갑자기 날 향해오는 사내의 관심에 나는 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짐승의 이빨을 뽑아야, 이 고통이 가실 것 같은데........저놈 것이나, 이놈 것이나 큰 차이는 없겠지.”


그가 몸을 풀 듯 목을 돌리고 팔목을 돌리자 뼈 마디마디에서 뿌드득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의 말을 알아들은 고문관이 다른 동료에게 턱짓하면서 철장의 문이 열리고 사내들은 머릿속이 하얗게 굳어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던 내 몸을 잡은 사내들이 팔과 다리를 벽에 걸린 족쇄로 결박했다. 내가 그들에게 애원의 말을 쏟을 사이도 없이 우악스러운 손들이 내 얼굴을 잡아 양쪽에 밧줄이 달린 쇠공을 내 입에 넣고 뒤에서 그것을 묶었다. 상단의 주인이 약간 몸을 숙여 자갈을 문 내 이빨을 들여다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송곳니가 위아래로 있군.”


그는 아까 손을 뻗었던 끝이 좁은 쇠집게를 내 앞에 들이밀고는 그것으로 곧장 내 왼쪽 송곳니를 뽑았다. 뿌리까지 푹 뽑히는 고통에 잠시 사고가 마비된 나는 내가 누구며, 여기가 어디인지를 잊고 그저 막힌 비명을 질렀다. 내 이빨을 바닥으로 버린 쇠집게가 이번엔 안쪽 어금니에 고정됐다.


“평생 수프만 먹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울어.”


그 말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내가 속으로 그것을 삼키자, 사내의 집게가 움직여 피가 이미 잔뜩 묻은 아래쪽의 송곳니를 움켜줬다. 어떻게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단 욕망에 사내들 손에 턱이 잡혀있던 내가 초인적 힘으로 고개를 틀자 이빨의 윗부분이 약간 부서졌다. 고문관들이 다시 내 턱을 잡아 고정하자 집게가 더 깊이 들어오는 듯하다가 두 번째 이가 뽑혀나갔다.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피가 튀며 집게에 잡힌 하얀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송곳니가 있던 자리에는 침인지 피인지 모를 것들이 차올랐으며, 나를 보며 통쾌하다는 듯 웃는 사내의 얼굴이 흐려졌다.


돌덩어리가 섞인 찬물이 온몸에 끼얹어지며 잇새에 끼워진 헝겊이 젖었다. 목까지 흘러내린 피가 그새 굳었지만, 아직 두 개의 송곳니는 남아 있었다. 다시 입안으로 차가운 쇠의 감촉이 닿아왔지만, 다른 쪽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그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익숙해지기 어려운 고통과 함께 붉은 피가 또 파앗 튄다.


-또, 또! 애들 대신 투여한 거야? 호우라!


의식이 흐릿했다. 붉은 피가 고인 눈으로 들어오는 세상이 내가 만들어낸 망상처럼 느껴지다가, 사내들의 눈을 보면 이것이 현실이란 생각이 새삼 든다. 마치 영혼이 몸 밖을 나간 듯, 혹은 엇갈려 들어간 듯 내 세상은 희미하기만 하다. 고통이 멈추지 않는 몸을 두고, 이성이 먼저 내 곁을 떠난 듯했다. 명목적인 고통만 남은 내 몸은 울고 비명을 지르는 인형, 혹은 짐승이 된다. 마지막 이가 뽑혔다. 이번엔 눈이 감겼다.


-이 정도 고통은 참을 수 있어, 호란.

-헛소리, 그러다간 우리 중 네가 가장 먼저 죽게 될걸!

-그 아이들은 너무 어려, 내가 참을 수 있어.


흐릿한 그림자 소년들이 나를 두고 대화를 나눈다. 그들에게 말을 걸기 전, 그중 하나가 고개를 돌리며 생경하지만, 익숙한 검은 눈으로 나를 본다. 참을 수 있어? 참을 수 있어? 넌 그냥 죽길 바라는 게 아니고? 그는 나였다. 눈꺼풀을 뜨자 녹슨 철장 너머로 바닥에 쓰러진 날 두고 떠나는 고문관들이 보인다.


“넌 내게 감사해야지, 덕분에 얼굴이 훨씬 사람 같아졌잖아.”


눈을 뜬 나를 보곤 그가 다시 큭큭 댔다. 힘줄이 끊긴 듯 닫히지 않는 턱에서는 검붉은 피가 줄줄이 흘러나오고, 이가 빠진 네 개의 구멍으로 덫에 걸린 짐승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눈물이 굳어 시야의 반이 어둡고, 옅은 칠을 한 듯 반이 붉다. 내가 내는 소리에 사내가 몸을 다시 내 쪽으로 돌리자 나는 혀에 힘을 줘 소리를 멈춘다. 그리고 그것은 그를 더욱 즐겁게 했다.


“저 녀석, 참 마음에 드네. 팔지 말고 상단에서 키울까?”

“예? 그 무슨?”


그가 내 쪽을 턱짓하자, 사내는 왜인지 내 가랑이 사이를 빤히 보았다.


“자네는 끝까지 눈치가 없군. 도장을 찍고, 종자견으로 쓰자는 얘기잖아.”


죽음으로써 삶을 느껴. 죽음으로써 삶을 느껴. 그게 내가 숨 쉬는 방식이잖아? 나와 똑같은 얼굴을 했던 소년의 목소리가 틀림없다. 저들을 죽여, 놈들의 창자에 이빨을 박아.


“과연, 탁월한 생각이십니다!”


사내는 판에 걸려있던 옛 글귀가 적힌 쇠도장을 집게로 집더니, 그것을 화로 안에 넣고 뒤집었다.


아직, 고통이 남았구나.


작가의말

57화의 내용을 약간 수정했습니다.(노예상인->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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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7) 19.12.30 10 0 13쪽
70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6) 19.12.06 10 0 9쪽
69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5) 19.11.25 12 0 11쪽
68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4) 19.11.09 13 0 11쪽
67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3) 19.11.03 12 0 10쪽
66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2) 19.10.19 12 0 8쪽
65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1) 19.10.09 8 0 9쪽
64 악마의 사생아(2) 19.09.23 12 0 10쪽
63 악마의 사생아(1) 19.09.16 11 0 9쪽
62 경매장(7) 19.09.11 17 0 12쪽
61 경매장(6) 19.08.29 17 0 7쪽
60 경매장(5) 19.08.26 22 0 8쪽
59 경매장(4) 19.08.25 15 0 8쪽
» 경매장(3) 19.08.23 19 0 8쪽
57 경매장(2) 19.08.22 21 0 8쪽
56 경매장(1) 19.08.21 15 0 10쪽
55 검은 왕국(5) 19.08.20 15 0 8쪽
54 검은 왕국(4) 19.08.18 16 0 7쪽
53 검은 왕국(3) 19.08.15 14 0 11쪽
52 검은 왕국(2) 19.08.08 28 0 10쪽
51 검은 왕국(1) 19.08.04 15 0 8쪽
50 숙부(7) 19.07.29 15 0 8쪽
49 숙부(6) 19.07.28 20 0 8쪽
48 숙부(5) 19.07.22 18 0 7쪽
47 숙부(4) 19.07.21 25 0 7쪽
46 숙부(3) 19.07.15 25 0 7쪽
45 숙부(2) 19.07.14 26 0 9쪽
44 숙부(1) 19.07.13 32 0 7쪽
43 별들의 방랑자 (2부 프롤로그) 19.07.08 41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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