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검은눈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Eol
그림/삽화
EOL
작품등록일 :
2019.05.26 18:45
최근연재일 :
2019.12.06 00:36
연재수 :
70 회
조회수 :
1,634
추천수 :
6
글자수 :
289,774

작성
19.08.25 00:40
조회
14
추천
0
글자
8쪽

경매장(4)

DUMMY

낯선 파란 눈동자가 시야 너머로 보인다. 뇌가 으스러질 듯 이글거리며 주뻣주뻣 선 머리카락과 말아 들어간 발가락 끝까지, 고통이 온몸을 잠식해온다. 치지직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매캐한 탄내는 날 자꾸 철장 안의 현실로 불러들인다.


-그러니까 어머니도, 아버지를 사랑했던 거네?

-그랬었나 봐.


그을린 인영이 사람의 얼굴을 갖춘다. 길게 자라 뻗친 머리카락을 묶지도 않고 늘어뜨린 여자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치는 듯하다가, 금이 간 조각상처럼 갑자기 얼굴이 부서져 버린다.


탕-경쾌한 총소리가 방 안에서 울린다.


-호우야, 너는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는 아이가 아니야.


귓속에 이물질이 들어찬 듯 먹먹한 핏소리가 들린다. 머리가 지이잇 하고 울리며, 겨우 뜬 눈동자로 침대에 걸터앉은 소녀와 그녀의 곁에 앉은 소년이 보인다. 그들을 향해 다가가고 싶지만, 묵직한 공기가 내 몸을 억눌러 온다. 주저앉은 나는 땅에서 기는 채로, 그쪽으로 손을 뻗는다. 딱딱하고 질퍽한 벽이 손가락 끝에 닿는다.


나야, 에일. 나야, 에일.........손가락 한 마디가 겨우 경계를 넘어서자, 악마의 날개가 일으킨 듯한 검은 삭풍이 그녀가 있던 공간을 쓸고 지나간다. 침대와 소년이 사라지며, 그제야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 에일이 어리숙하게 뒷걸음질을 치다가 뒤로 넘어져 버린다. 내가 그녀를 일으켜줄 생각으로 다가가자 그녀는 비명을 지른다.


꺄아아악! 저리 가! 저리 가, 이 괴물!


그녀가 재봉 인형을 집어던졌다. 머리에 그것을 정통으로 맞은 나는 잠시 이해할 수 없어 그것을 주워들었다.


에일, 왜..........?


자꾸 잇새로 새는 바보 같은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았다. 질퍽한 땅에서 발을 떼기가 힘들지만, 나는 한 걸음씩 그녀에게로 다가간다. 네 품에 안기고 싶어, 네가 날 안아줬으면 좋겠어. 그런데 경멸이 가득 담긴 그녀의 푸른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저리 가! 저리 가, 호운!


호운? 그제야 나는 화장대에 비친 눈 빨간 괴물을 발견했다. 사람과 비슷한 덩치에 털이 없고 주름진 거무죽죽한 몸을 가진 원혼귀,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는 선혈의 발자국들이 찍혀있었고, 그것은 내 것이었다.


-


“푸핫!”


내가 숨을 뱉자, 입과 코에서 지린내가 나는 오물이 흘러나왔다. 물웅덩이에 얼굴이 박힌 채로 내가 발버둥을 치자 내 뒷머리를 잡던 억센 손길이 날 풀어줬다.


“이제야 정신이 드냐, 검은 꼬마?”


사내의 오줌이 섞인 웅덩이를 들여다본 나는 역겨움에 연신 웩웩댔다. 이젠 익숙해진 고문관의 목소리에, 내 어깨에 드리워진 그림자들을 느끼면서도 막상 시선을 올리지 못한 나는 이마에 새겨진 낙인을 더듬었다. 도장에 새겨진 문자대로 검게 탄 피부에서는 여전히 진물이 새어 나오며 검은 딱지가 앉은 상태였다. 피부가 괴사한 듯 이젠 고통이 희미해진 이마를 쓸며 나는 내가 여전히 살아 숨을 쉰다는 게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이것을 찍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내 머리를 태워 죽인다고 생각했었다. 단지 재미를 위해 말이다.


“오늘은 금방 끝나니, 얌전히 있어라, 꼬마.”


사내는 그리 말하며 내 앞머리를 거칠게 들춰내고는 저들이 만들어낸 끔찍한 흉을 보며 검게 썩은 앞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놈, 이마에 적힌 게 뭔 줄 아냐? 노예의 낙인이다. 네놈같이 주제를 모르는 놈들에게 딱 필요한 거지.”


그의 말에 내 눈이 금방이라도 울 듯 붉어지자, 그는 더욱 즐거워했다.


“이 낙인이 다른 흉터들처럼 언젠간 희미해질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력이 투여되면, 네놈은 영원히 그 천박한 글자를 지닌 채 살아가야 할 테니. 아마 한시도 네 존재를 잊지 않게 될 테지.”


“저는 노예도, 광대도 아니에요.”


사내가 날 팰 거란 생각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뺨을 후려치는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웃는 낯의 사내가 옆으로 비켜나며, 로브를 뒤집어쓴 마녀가 갑자기 내 이마에 손을 짚어왔다. 그 낯선 손길에 나는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여전히 내 앞머리를 움켜쥔 묵직한 손 때문에 약간의 반항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뭐라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자, 얼굴을 반쯤 가진 검은 모자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자주색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거칠고 따가운 붉은 마력이 새어 나왔지만, 그녀의 고문은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마력이 내 전신을 타고 돌자 순간이었지만, 정신이 약간 몽롱해지며 극락에 온 듯한 고양감까지 솟구쳤다.


“끝났나?”


젊은 여인이 내 몸에서 손을 떼자, 고문관이 물었다. 그녀는 마력을 부을 때와는 달리 보라색으로 돌아간 눈으로 내 이마를 빤히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어요, 낙인이 생겼지만 불완전한 느낌이에요.”

“그럼 확인을 해보라고.”


닦달하는 사내의 말에 여인이 내 턱을 집어 올리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검은 동공 주위로 색소가 번지듯 붉은색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네 이름이 뭐지, 1148번?”


1148? 그녀가 내게 지어준 이름이 1148인 걸까? 곧장 호우라고 외치려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의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는 걸 저들이 눈치채면 더 심한 것을 내게 들이댈 것이 뻔했다. 독방에 갇힌 아이들의 감정 없는 눈을 떠올린 나는 최대한 그들 흉내를 내듯 얼굴에서 표정을 지운 채 대꾸했다.


“1148번.”


그 말에 그녀의 입술이 오묘하게 휘었다.


“네 주인은 누구지?”


이런 건 뭐라 대답해야 한담? 그런 것은 없다고 대뜸 답하려던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루시안 에일이요.”


그 말에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 웃어댔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크게 웃던 그녀는 손가락으로 눈가를 닦아내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날 노려봤다.


“아니, 이젠 크렌델님이야.”

“크렌델.”


내가 반사적으로 대꾸하자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이젠 끝난 줄 알았는데, 내 목을 움켜쥔 그녀가 내 귓바퀴에 대고 속삭였다.


“간사한 애송이 같으니라고. 옛주인이 이미 네게 세뇌를 걸었나 보지?”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내 시선에 들어오도록 왼쪽 손을 들어 올리고는 그것을 약간 굽혔고, 그 손짓에 맞춰 머리가 깨질 듯 찌르르 울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내가 머리를 움켜쥔 채로 쓰러지며 몸을 웅덩이에 처박자, 얼굴을 찡그린 그녀는 오물이 튄 옷을 털고 일어섰다.


“누굴 바보로 아니, 꼬마야? 그딴 연극에 내가 속을 것 같아? 내가 널 지배하진 못해도, 회생도 할 수 없게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걸 알아야지.”


고문관 쪽으로 몸을 기울인 그녀가 여전히 내게로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군인으로 쓸 물건은 아니라고 하셨죠?”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그가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묘책이 떠올랐다는 듯 손바닥을 짝 부딪치며 말했다.


“그렇다면, 문을 박살 내는 게 좋겠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은눈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자유연재+제목 변경 19.08.09 46 0 -
70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6) 19.12.06 7 0 9쪽
69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5) 19.11.25 11 0 11쪽
68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4) 19.11.09 12 0 11쪽
67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3) 19.11.03 10 0 10쪽
66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2) 19.10.19 12 0 8쪽
65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1) 19.10.09 8 0 9쪽
64 악마의 사생아(2) 19.09.23 12 0 10쪽
63 악마의 사생아(1) 19.09.16 11 0 9쪽
62 경매장(7) 19.09.11 17 0 12쪽
61 경매장(6) 19.08.29 17 0 7쪽
60 경매장(5) 19.08.26 22 0 8쪽
» 경매장(4) 19.08.25 15 0 8쪽
58 경매장(3) 19.08.23 18 0 8쪽
57 경매장(2) 19.08.22 21 0 8쪽
56 경매장(1) 19.08.21 15 0 10쪽
55 검은 왕국(5) 19.08.20 14 0 8쪽
54 검은 왕국(4) 19.08.18 16 0 7쪽
53 검은 왕국(3) 19.08.15 14 0 11쪽
52 검은 왕국(2) 19.08.08 28 0 10쪽
51 검은 왕국(1) 19.08.04 15 0 8쪽
50 숙부(7) 19.07.29 15 0 8쪽
49 숙부(6) 19.07.28 20 0 8쪽
48 숙부(5) 19.07.22 17 0 7쪽
47 숙부(4) 19.07.21 19 0 7쪽
46 숙부(3) 19.07.15 25 0 7쪽
45 숙부(2) 19.07.14 25 0 9쪽
44 숙부(1) 19.07.13 32 0 7쪽
43 별들의 방랑자 (2부 프롤로그) 19.07.08 39 0 1쪽
42 연의 섬에 바닷길이 열리면(3) 19.07.08 33 0 11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Eol'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