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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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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l
그림/삽화
EOL
작품등록일 :
2019.05.26 18:45
최근연재일 :
2019.12.30 21:57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1,693
추천수 :
7
글자수 :
295,875

작성
19.08.29 01:43
조회
17
추천
0
글자
7쪽

경매장(6)

DUMMY

저들은 날 괴롭히고 있다. 그게 확실했다. 횃불이 이마 언저리를 비추며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내가 잠들려 할 때마다 훼방을 놓아 내 불면증을 없앴다. 이제 나는 등이 벽에 닿으면 저절로 눈이 감겼다.


내 몸에 쑤셔지던 저 기구가 무슨 의도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이 했던 짓은 몽롱해졌다. 하지만 고통과 상처는 남는다. 정신이 붙어있는 이 순간에도 내 가슴팍에는 불도장으로 지져진 흉터가 있다. 저들은 네 몸을 도화지로 아나 보다. 그들의 실력은 형편없다. 흉터에는 또 다른 흉터가 뒤덮이고 상흔에는 또 다른 상흔이 뒤덮인다. 이 또한 몽연한 기억처럼 지나가리라.


“으......으어억!”


익숙한 글귀가 다시, 내 몸에 새겨진다. 감은 두 눈으로 푸른 신기루가 넘실거린다. 그것은 가학적으로 느리게 흘러가고, 내 귓가에는 따뜻한 음성이 남는다. 그러나 이 순간을 지배하는 건 오로지 고통이다. 그 고통이란 것이 내 이성을 다시 태우며 소녀를 향한 온전한 애정마저 지워버린다. 나는 저것을 저주한다. 고문 의자에 결박된 나는, 내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다만, 추한 본능이 남은 짐승만이 살아남는다.


‘그래, 아르헨. 우리를 없애고자 했다면 고통을 가져갔어야지.’


마침내 인간과 우리 사이의 공통점을 찾게 된 나는 어깨너머로 어렴풋이 듣던 욕을 입으로 쏟아낸다. 쇠붙이를 치울 듯 치우지 않던 고문관들이 고문의 강도를 높인다.


“제발! 제발! 시키는 건 뭐든지, 시키는 건 뭐든지!”


나는 그들에게 애원한다. 감각을 받아들이던 뇌가 전부 타들어 가 사고는 마비된 지 오래다. 사내들이 그것을 치운다. 거칠고, 갈증으로 갈라졌으며, 피로한 숨이 입에서 뿜어져 나온다. 양팔과 다리를 결박하던 가죽끈이 풀어지고 내 몸은 바닥에 처박힌다. 두 손이 머리를 감쌌다. 몸이 기억하는 순서였다.


-


이곳에 들어온 지 사흘째였다. 아니, 사내들이 날 재우지 않아서 정말 사흘인지는 모르겠다. 눈을 감고 떴다고 느낀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을 수도 있으니, 그보다 더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빨이 뽑힌 첫날 이후로 내 시간개념은 무뎌졌고, 그때 찍혔던 낙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또 한가지 사실이라 확실할 수 있는 것은, 바닥의 오물을 미친 듯 빨아먹는 내가 아사 직전이라는 점이다. 이곳에 들어온 후로 제대로 된 물과 음식을 먹어본 일이 없다.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우리 안에 수통과 수프가 놓여 있었다. 두 입술이 둥글게 모였다. 갈증으로 갈라지다 못해 피가 쩍쩍 나는 입안에 침이 고인다.


저걸 먹으면 죽지 못해!


나는 힘겹게 무른 수프 쪽으로 향하던 눈길을 돌렸다. 그 옆의 수통으로 시선이 닿는다.


하지만, 물은, 물은.........


정신이 아찔했다. 내가 스스로 뺨을 때릴 새도 없이 손이 그것을 향해 뻗쳐진다.


한 모금, 두 모금.


목울대를 타고 뭔가가 넘어가는 그 느낌이, 쩍쩍 갈라진 땅에 비가 쏟아진 듯 날 미치게 한다. 게걸스럽게 소리를 내며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핥았다. 수통이 비자 그것을 던져버린 손이 이번엔 수프를 향해 뻗어진다. 내 몸이 아닌 듯 명령 없이 움직이는 그 손을 나는 깨물었다. 피가 주르륵 새어 나올 정도로 꽉 깨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경련이 온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참아, 호우. 참아, 호우!


그 두 글자가 갑자기 내 이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만 참으면, 오늘만 참으면 넌 죽을 수 있어!


지이잉 소리와 함께 머리가 울리며 시야가 번쩍 튀었다. 몸이 순간 휘청거리며 이빨 자국이 남은 손이 실수로 수프 그릇을 툭 쳤다. 수프가 엎어진 꼴을 보고 절망하는데 온몸에 힘이 빠진다. 내 얼굴은 어느새 수프가 엎어진 바닥에 처박힌다. 혀끝으로 낯설어진 음식의 맛이 닿자 속으로 환희하다가, 두 눈이 감겼다.


-


차가운 감촉이 내 몸에 닿았다가 떨어지며 나는 눈을 떴다. 여전히 어지러워 얼굴이 찡그려졌다. 냇가에서 사내들이 날 씻기고 있는 듯한데 자꾸만 눈이 감긴다. 녹아내리는 눈꺼풀을 반쯤 들자, 주위가 흐릿하다. 내 시력은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유독 어둡고 시야가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것도 같다. 왼쪽 눈을 살짝 감아도 변화가 없었다. 오른 눈을 감자 충격적이게도 암흑이었다.


“내 눈에 무......무슨 짓을 한 거야!”


두 사내의 손이 내 몸을 꼭 붙든 상태인데도, 내가 발버둥을 치자 그들은 날 놓칠 뻔했다. 이 죽어가는 몸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오는지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뭐가, 인마!”


사내가 성을 내며 내 복구를 주먹을 쳤다. 순간 숨이 막혀왔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 눈!” 나는 그리 말하며 손가락 끝으로 왼 눈을 가리켰다.

“아, 안 보여! 안 보인다고! 나한테 대체 뭘, 뭘 먹인 거야!”


나느 울부짖으며 발길질을 해댔다. 죽기로 한 주제 한쪽 시력을 잃은 게 뭐 별일이라고, 이러는 내 모습이 한편으로는 우습다.


“문이 닫히는 약인데, 시력을 잃었다고?”


그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는지 사내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내 몸을 다시 거칠게 씻겼다. 내가 자꾸 몸부림을 치자 그들이 다시 고문을 받고 싶냐며 날 협박해왔다. 하지만 평소처럼 손이 먼저 올라가진 않았다. 내 몸을 대충 물로 씻어낸 그들은 내게 회색 옷이 아닌 다른 정장을 입혔다. 도망칠 여력도 없는 나는 그들에게 몸을 맡겼다. 고통에 고함을 지르는 것 말고는 모든 기능을 잊어버린 몸이 자꾸 축축 늘어졌다. 외눈박이가 됐다는 사실도 더는 내게 충격적인 자극이 되지 못했다. 여기저기 실밥이 나온 낡은 것이지만 각이 잡힌 옷매가 퍽 이질적이었다. 이런 옷은 입어본 적도 없는 것처럼, 애초에 회색 옷을 입고 태어난 존재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그들이 날 끌고 간 천막에는 가운데 나무판이 세워져 있었다. 사내들은 그림이 그려진 그것에 날 결박했는데, 그것을 보곤 가판대에 진열된 물건들을 떠올린 나는 새삼 불쾌감을 느꼈다. 내 기분이 어떻든 사내들은 내 팔다리에 채워진 가죽끈을 더욱 조여왔다.


“여긴 어디예요? 날 어떻게 할 거에요?”


길게 난 천막의 문 사이로 강렬한 햇볕이 내 얼굴에 내리쬐었다. 창고의 용도로 보이는 천막에는 뚜껑 없는 곽들이 쌓여있었는데, 곽의 손잡이 구멍으로 삐져나온 내 검자루를 발견한 나는 이곳에 내 보물들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그 지옥에서 나갈 수 있을 거다.”


같잖게도 사내는 내게 저런 조건을 걸어왔다. 그 말에 나는 입술이 찢어지도록 입꼬리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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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7) 19.12.30 10 0 13쪽
70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6) 19.12.06 11 0 9쪽
69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5) 19.11.25 13 0 11쪽
68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4) 19.11.09 13 0 11쪽
67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3) 19.11.03 13 0 10쪽
66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2) 19.10.19 13 0 8쪽
65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1) 19.10.09 9 0 9쪽
64 악마의 사생아(2) 19.09.23 13 0 10쪽
63 악마의 사생아(1) 19.09.16 12 0 9쪽
62 경매장(7) 19.09.11 17 0 12쪽
» 경매장(6) 19.08.29 18 0 7쪽
60 경매장(5) 19.08.26 22 0 8쪽
59 경매장(4) 19.08.25 15 0 8쪽
58 경매장(3) 19.08.23 19 0 8쪽
57 경매장(2) 19.08.22 21 0 8쪽
56 경매장(1) 19.08.21 16 0 10쪽
55 검은 왕국(5) 19.08.20 15 0 8쪽
54 검은 왕국(4) 19.08.18 16 0 7쪽
53 검은 왕국(3) 19.08.15 14 0 11쪽
52 검은 왕국(2) 19.08.08 28 0 10쪽
51 검은 왕국(1) 19.08.04 16 0 8쪽
50 숙부(7) 19.07.29 15 0 8쪽
49 숙부(6) 19.07.28 21 0 8쪽
48 숙부(5) 19.07.22 18 0 7쪽
47 숙부(4) 19.07.21 27 0 7쪽
46 숙부(3) 19.07.15 25 0 7쪽
45 숙부(2) 19.07.14 26 0 9쪽
44 숙부(1) 19.07.13 33 0 7쪽
43 별들의 방랑자 (2부 프롤로그) 19.07.08 41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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