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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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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l
그림/삽화
EOL
작품등록일 :
2019.05.26 18:45
최근연재일 :
2019.12.30 21:57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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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
추천수 :
7
글자수 :
295,875

작성
19.09.1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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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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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악마의 사생아(1)

DUMMY

사내들을 죽이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을 못 죽일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탈길을 내리지르며 나는 관객의 소리가 나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마주치는 사내가 있으면 망설임 없이 뱄지만,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쫓기는 듯 도망쳤다. 사내들을 나를 쫓으며 욕지거리를 했다. 롱소드를 가로로 길게 휘두르기만 하면 저 소리도 멎게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굳이 손에 피를 묻히기 위해 멈춰 서고 싶지 않았다. 노을 진 바닥은 어두웠고, 수풀길은 거칠었으면 경사는 가팔랐지만, 내 몸은 쉽게 넘어지지 않았다. 내 발은 서로 엉킬 듯 엉키지 않았으며 내 상체는 위태롭게 휘청거렸지만, 중심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언덕들을 넘는 이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계획 따윈 역시 없었다. 단지, 저 노예 감옥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다는 본능에 가까운 의지가 내 몸을 잠식했을 뿐이었다. 저들의 손길이 내 몸에 닿는 건 끔찍했다. 굳은살이 박히고 상처투성이인 거친 손이든, 향유를 가득 발라 부드러운 손이든, 나는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뒤에서 호커스와 호진의 목소리가 들린다 해도 나는 절대 돌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동족이란 이유로 마음을 활짝 열어 보였으며 애정까지 바랐던 그들은 내게 끝까지 잔인했다. 그들은 사기꾼이자 아첨꾼에 불과했다. 미련스러운 믿음을 버리니 비로써 확실해진 것이다. 그래, 아첨꾼! 그들은 나와 에일 사이에 끼어든 아첨꾼이었다. 그녀와 함께할 때나 그녀를 떠날 때나, 내게 필요했던 건 오로지 그녀 하나였던 것이다. 그녀면 충분했다. 그녀의 푸른 머리카락만 있으면, 그녀의 차가운 손길만 있으면 나는 그저 행복할 수 있었다. 분명 그랬는데.........


귀족들의 마차가 세워진 공터에 도달했을 때, 나는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아내지 못했다. 얼굴을 닦아내도 계속해서 코피를 닮은 눈물이 흐른다. 공터를 지나 숲으로 도망치려던 나는 큰길에 홀연히 서 있는 푸른 머리통 하나를 발견했다. 머리를 땋아 올리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그 모습은 어린 시절의 에일을 떠올려 따뜻한 향수에 빠져들게 했다. 격한 기쁨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녀의 얼굴을 곧장 마주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숨이 멎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 존재가 에일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정말로 그녀의 체향을 기억하는지 공을 쫓는 개처럼 그 뒤통수를 향해 달렸다. 아직 언덕을 넘지 못한 사내들의 외침이 먹먹해지며 코끝이 시큰거렸다.


“에일......에일.......”


나는 자꾸만 절뚝거리는 발로 걷다가 그녀를 불렀다. 내 입에 머물렀던 이름이 다시 꿈처럼 사라질까 반복해서 그녀를 부른다. 다른 이를 향해 말을 하던 에일이 내 쉰 목소리를 듣지 못해 조바심이 났지만, 나는 괜찮았다. 그녀는 날 단박에 알아볼 것이었다. 굳이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살갗에 스치는 느낌만으로 나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그녀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소녀의 몸이 약간 움찔하지만, 그녀는 나를 완전히 뿌리치진 않았다.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에일, 난 네가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


내 손을 뿌리치지 않은 소녀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하늘색 머리카락이 내 뺨을 쓸고 지나가는데,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소녀와 눈을 마주친 나는 그녀의 몸에서 손을 뗐다.


“호우? 네가 왜 여기?”


그녀는 페렐레였다. 그녀의 몸에서 떨어진 나는 나도 모르게 계속 뒷걸음질을 치다가 꼴사납게 넘어져 버렸다. 흙탕물이 마구 튀자, 놀란 표정이었던 페렐레는 얼굴을 찡그렸다. 내 눈을 홀린 듯 바라보던 그녀는 내 이마에 찍힌 낙인을 발견하고는 다시 당황한 얼굴이 돼버린다. 그 표정에 새삼 수치심을 느낀 나는 그녀가 에일에게 이 일에 대해 말할까 궁금해하다가 왠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깨너머로 들리는 사내들의 호통 소리에 어깨를 약간 움찔한 나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큰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잠깐만! 잠깐만, 호우!”


귀족 아가씨 같지 않게 쩌렁쩌렁한 페렐레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그 소리는 나를 쫓는 사내들의 고함에 묻혀 버렸다. 경매장의 무대와 차양이 쳐진 귀족들의 공간을 발견한 나는 반대로 왔다는 걸 깨닫고 몸을 돌리려 했다. 단상의 중앙에 서 있는 로운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하필 그 순간에 사내가 아이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분명 돌아섰을 것이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하다못해 거짓을 연기하는 위선자도 되지 못하며 남의 안위를 신경 쓰기에는 스스로 너무 지쳐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다리를 아이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이의 몸은 금세 피범벅이 됐지만, 그 망할 치유력 때문에 상처들이 금방 아물어버렸다. 손과 부채로 입을 가린 귀족들 무리에서 감탄 소리가 새어 나왔고, 곧장 거액의 가격을 부르는 성급한 손님들까지 등장했다. 그들의 반응에 쇼의 진행자인 크랜델이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제부터가 쇼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여러분!”


그가 손가락을 맞부딪치쳐 탁 소리를 내자, 창들이 고정된 수레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굳어 사람들의 얼굴이 죽은 자의 것처럼 붉게 번져 보였다. 내 양팔을 사내들이 붙들어오지만, 나는 그 손길들을 뿌리쳤다. 나보다 덩치가 두 배쯤은 큰 그 괴물들을 쉽게 떨쳐내는 게 기이하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왼쪽 눈이 다시 제 기능을 찾았지만, 나는 그것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다지 놀랍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피 칠갑을 한 내가 무대를 향해 내달리자 그곳을 지키던 경비들은 내게 곧장 다가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오히려 살기가 담긴 내 눈을 그들은 두려워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내가 굳이 검을 올렸다가 떨어뜨릴 필요도 없이 그들을 간단하게 밀쳐낸 나는 계단을 올랐다. 르뱅크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눈살을 한껏 찌푸리며 경비들을 불렀다. 사내의 시선이 멈춘 곳은 피투성이가 된 내 발이었는데, 하얗게 칠이 된 단상의 계단에 남은 발자국들이 퍽 인상적이었다.


바보같은 사내들이 단상 위로 한꺼번에 올라오려다 서로의 발을 밟으며 미끄러져 버렸고, 내가 저에게 다가온 와중에도 옆구리에 창이 꽂힌 로운은 몸을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아이의 표정과는 대조되는 귀족들의 웃음소리와 환호성에 나는 고개를 돌려 단상 너머를 보았다. 광적인 미소 아래 그들의 두 눈동자는 피에 절어 검붉게 보였는데, 나는 순간 악마들 앞에 난도질당하는 듯한 착각까지 들어 몸이 떨렸다.


몸을 숙인 나는 아이를 감싸 안았는데, 겁을 먹은 로운은 날 알아보지 못하고 온갖 발버둥을 쳤다. 아이의 입과 날개는 이미 결박돼 있었기에 내 몸에 상처를 남기지 못했지만 나는 그랬더라도 아이를 끌어안은 두 손을 풀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몸부림을 칠수록 내가 더욱 강하게 그 아이를 붙들자 바들 거리는 아이의 몸이 내 품을 파고들었다.


내 등 뒤에는 두 번째 창을 든 고문관이 서 있었는데, 나는 그를 저지하지도 않은 채 아이를 안고 몸을 웅크렸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알고 있음에도 적에게 등을 보인 채 내 몸은 두려움에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런데도 머릿속은 이 아이와 심장을 맞닿은 채 있지 않으면 내가 완전히 망가져 버리리라는 멍청한 망상뿐이었다. 그러니까 망가진다는 건 정말로 미쳐버려 살인마가 되든, 호운이 돼 영원히 살의에 사로잡힌 존재가 되든 말이다. 어쩌면 이보다 더 망가지기 전에 누군가 날 죽여줬으면 하는 바람에 그리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모순적인 건 아이의 어깨에 얹어진 턱은 바들바들 떨렸으며 앞으로 닥쳐올 고통을 예감한 눈은 먹먹하게 감겼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깨너머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등판 위로 주인 모를 피가 뿌려졌다. 청중들의 비명에 나는 그제야 눈을 떠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리자 날 내려다보는 붉은 눈이 보였다. 날이 두꺼운 검을 치켜든 사내는 나를 빤히 보다가 돌아섰는데, 바람에 날리는 망토에는 적색의 날개에 파묻힌 하얀 천사가 그려져 있었다. 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가문의 문장과는 달리 성정이 웬만한 야만인들보다 잔혹하기로 유명한 붉은 악마 가문, 르뱅크. 이제야 나타난 그들의 모습에 나는 약간 허탈한 기분까지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바닥에는 고문관의 머리가 뒹굴고 있었는데, 내가 그쪽으로 시선을 다시 돌리는 사이에 크랜델의 머리가 간단하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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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7) 19.12.30 10 0 13쪽
70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6) 19.12.06 11 0 9쪽
69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5) 19.11.25 13 0 11쪽
68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4) 19.11.09 13 0 11쪽
67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3) 19.11.03 12 0 10쪽
66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2) 19.10.19 12 0 8쪽
65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1) 19.10.09 8 0 9쪽
64 악마의 사생아(2) 19.09.23 12 0 10쪽
» 악마의 사생아(1) 19.09.16 12 0 9쪽
62 경매장(7) 19.09.11 17 0 12쪽
61 경매장(6) 19.08.29 17 0 7쪽
60 경매장(5) 19.08.26 22 0 8쪽
59 경매장(4) 19.08.25 15 0 8쪽
58 경매장(3) 19.08.23 19 0 8쪽
57 경매장(2) 19.08.22 21 0 8쪽
56 경매장(1) 19.08.21 15 0 10쪽
55 검은 왕국(5) 19.08.20 15 0 8쪽
54 검은 왕국(4) 19.08.18 16 0 7쪽
53 검은 왕국(3) 19.08.15 14 0 11쪽
52 검은 왕국(2) 19.08.08 28 0 10쪽
51 검은 왕국(1) 19.08.04 16 0 8쪽
50 숙부(7) 19.07.29 15 0 8쪽
49 숙부(6) 19.07.28 20 0 8쪽
48 숙부(5) 19.07.22 18 0 7쪽
47 숙부(4) 19.07.21 25 0 7쪽
46 숙부(3) 19.07.15 25 0 7쪽
45 숙부(2) 19.07.14 26 0 9쪽
44 숙부(1) 19.07.13 32 0 7쪽
43 별들의 방랑자 (2부 프롤로그) 19.07.08 41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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