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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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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l
그림/삽화
EOL
작품등록일 :
2019.05.26 18:45
최근연재일 :
2019.12.0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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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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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수 :
289,774

작성
19.10.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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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1)

DUMMY

목에 매여져 있던 리본의 끝을 당겨 주르륵 풀어버리니 한결 숨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어처구니없는 비유지만 목을 졸라오던 두 손아귀에서 벗어난 느낌이랄까.


매듭을 풀자 끈이 셔츠 단을 타고 스스르 내려왔고 나는 그것을 간단히 한 손에 칭칭 둘러싸 버렸다. 리본의 끝이 검게 탄 상태여서 손에 검은 재가 약간씩 묻어났기에, 손가락을 몇 번 쓱쓱 문질렀다. 그런 행위는 내가 이 검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너무도 무의식적이고 당연하게 일어났다. 썩은 나무에서 자꾸만 소리가 나고 등판에 이끼가 자라난 낡은 벤치였지만, 그것에 몸을 기댄 나는 눈을 가만히 감아보았다. 익숙한 새소리와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레나의 저택이 사방이 넓은 숲으로만 둘러싸였다는 점이 이럴 때는 좋았다. 이런 곳에서 함부로 도망쳤다가는 길을 잃고 조난을 당하기 쉽지만, 그만큼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는 일도 쉬웠으니 말이다.


몸을 약간만 틀어도 들리는 삐거덕 소리에 새삼 안도감이 들었다. 이 뒤죽박죽, 심란하기만한 마음에도 평화라는 게 잠시 머물렀다가 지나가는 듯했다. 물론 그조차도 객처럼 머물렀다가는 다른 감정들과 그다지 다를 게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번엔 울화가 치민다. 이놈의 정장 차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신경질을 부리며 윗단추를 몇 개 풀어버리자, 이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무력감에 빠졌다. 가끔 마력 불씨가 날 위협하는 걸 제외하고는 저택에서의 일이 그다지 힘든 것도 아니었다. 하수인들이 입는 정규 복장이 못 입어줄 정도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옷은, 경매장에서 있었던 것들과 비교하면, 아니 애초에 비교를 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쪽이었다. 하지만 내게 할당된 일을 마치고 자유시간이 찾아오면 나는 정말로 못 견딜 수준이 돼 버리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리 반복적으로 생각하며 나는 내 검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몇 번이고 쓸어넘겨 보았다.)


나는 그녀가 그리웠다.


그 애틋하고도 얄팍한 감정이 나를 덮쳐 오면, 나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게 돼 버렸다. 당장에라도 그녀의 곁으로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아 보거나, 하다못해 침대 밑이나 소파 밑으로 숨어들어 그녀를 훔쳐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사실 이런 상상을 만 번쯤은 해보았다. 물론 그리 생각하고 발이 땅에 닿으면 나는 곧장 그 바보 같은 계획을 밀어내지만 말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에게 들킬까 봐 겁을 먹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생각은 그 어느 때보다 낙천적으로 변해 지금의 고비만 넘기면 모든 것이 그저 지나가 버리라 예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그 고비가 지나가지 않았으며, 나는 오늘도 그녀를 그리워하고 루시안의 여인도 이젠 없어진 검은 책이나 뒤적거리며 마을을 달래겠지만, 내일도 그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쯤 되니 나는 이 객처럼 머물렀다가 지나가는 난폭한 난봉꾼들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 눈꺼풀을 내리깔고 다시 소리에 귀를 기울여 무너졌던 이성의 탑을 도로 쌓으면, 나는 그간의 생각들이 정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사기꾼의 곡조 같아 피식 웃음을 흘리게 된다.


아까까지는 내가 겪어온 일들과 지금의 상황을 세상 최악의 저주라 여겨 세상을 향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신을 향해 욕이 섞인 원망을 늘어놓았는데, 지금은 또 이 모든 게 참 잘된 일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그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다.


차라리 조금 이르게, 그래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 때에 그녀의 곁을 떠난 게 다행이라고 말이다. 계속 그녀의 곁에 있었다면, 나는 내 처지를 비관해 검은 두 눈을 송곳으로 찔렀을지 모른다. 혹,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에 그 일에 에일의 남편이나 약혼자를 강제로 끌어들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유약한 성정을 생각하면 후자는 가능성이 무척 낫지만,) 나 자신을 망가뜨렸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런데 왜 하필 장님일까?


나는 그리 생각하며 나조차도 이유를 모르겠어, 피식 웃었다. 찢어진 페이지가 있던 부분을 펼쳐 든 나는, 그래도 그 루시안의 여인을 볼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며 그것을 찢었던 과거를 후회했다. 그렇게 깊은 자책도 아니었는데, 눈가가 시큰해지기 시작한다.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부을 차례가 왔나 보다.


‘너, 여기 있었구나.’


한번 붉은 눈물을 흘리면 다음 날까지 몸이 안 좋았기에 나는 내게 말을 걸어준 이에게 키스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말을 걸었다고 하기에는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뒤를 돌자 내 뒤에서 존이 서 있었다. 사용인들은 그가 벙어리라고 쑥덕거렸는데, 그 이외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이질적이고 낯선 목소리는 귀를 통해 들린 게 아니었으니.


‘역시, 넌 호족이라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거지?’


머리를 강타하는 기이한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그는 입을 꾸욱 다문 채였다.


“......존? 당신이 말하는 거예요?”


지레 놀란 내 반응이 민망할 정도로 태평하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내 옆에 앉았다. 지금 이 순간 의자가 삐거덕대는 소리만이 현실이라고 느껴졌다.


“어.......어떻게?”

‘주술사의 언어잖아. 문을 언어를 보내고 있는거지.’


중성적으로 들려, 그와는 매치가 잘되지 않는 목소리가 말했다.


“저.....저와 대화하시려고 여기까지 따라오신 건가요?”


내가 눈매를 약간 찡그리며 말하자 그는 픽 웃었다.


‘넌 호족치곤 반응이 다양하구나.’


그 말에 나는 약간 뜨끔해 몸을 움츠렸다.


“이제까지 그런 방식으로 레나님과 도련님한테 말을 거셨던 거군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조슈아가 갑자기 그 난리를 친 거고.......”


나는 레나의 아들인 조슈아를 존칭도 안 하고 불렀다는 생각에 뒤늦게 입을 막았다.


시답지 않은 장난을 치던 레나의 반응과 달리 그녀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어 날 데려온 것이었는데, 그녀가 내게 맡긴 임무는 은둔형 외톨이에, 동방 왕녀의 머리털을 태워 저택에 감금된 상황의 제 아들과 놀아주며 녀석과 친구가 돼 주는 것이었다.


내가 루시안의 문자를 안다고 말하자 그녀는 날 놀이 친구 대신 꼬마의 언어 수업 선생님으로 고용하게 됐지만, 본 목적은 그 망할 꼬맹이 놈의 친구를 만드는 데 있었다.


하지만 녀석과 나는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최악이었고, 녀석과 함께 지낸 지 열흘째였지만 난 그 꼬리에 불 달린 망아지 놈을 재평가할 생각이 없었다. 레나가 녀석을 자꾸 ‘슈’라고 불러 그리 불렀다가 손가락이 잘린 뻔한 첫날의 기억을 들춰내지 않고 오늘 일으킨 말썽들만으로도 녀석은 내 인생 최고의 말썽꾸러기로 등극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참 하녀의 치맛자락에 불을 붙이는 일로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한 녀석은 인사를 하러 온 내 리본에서 불을 붙이고는 계집애 같다며 나를 되레 놀려댔다. 사실 거기까지만 한다면 내가 제 나이도 모를 그 꼬맹이를 그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을 것이었다.


조슈아는 레나와 그녀의 노예 성혼자인 존 사이에 태어난 아이인데, 제 친부의 붉은 머리카락색이며 붉은 눈동자 색은 물론이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를 빼다 박은 주제에 그렇게도 제 아비를 못살게 굴었었다. 제 작은 마력으로 시도 때도 없이 그를 공격하는 건 예삿일이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폭언을 쏟아붓는 건 일상이며 레나의 곁에 붙어있는 꼴을 보면 아주 경기를 일으켰다.


“왜 저 자식이랑 같이 밥을 먹는 거야! 레나!”


오늘 아침에 내가 수업을 예정보다 일찍 끝내준 것이 화근이었다. 레나와 존이 같이 식사하는 걸 조슈아가 발견하고 만 것이다.


“엄마한테서 안 떨어져! 레나는 내꺼라고, 이 망할 노예 새끼야!”


저 말을 할 때 나는 진심으로 조슈아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었다. 항복한다는 듯 손을 든 존이 뒤로 물러서자 조슈아는 레나를 꽉 끌어안고는 그에게 으름장을 놓았었다.


“한 번만 더 레나한테 손대봐! 곧장 할아버지를 불러올 거니까!”


그러고도 성이 안 풀려 연신 씩씩거리다 덧붙였다.


“난 엄마랑 평생 살 거니까! 왕녀한테 장가는 네가 들어!”


마지막 말은 아무래도 제 약혼녀이자 나이가 7살인 해태르의 왕녀를 얘기하는 듯했다. (조슈아가 머리카락을 태웠다던) 그래, 아무리 화가 많은 녀석이라지만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혼자 저렇게 지껄였을 리가 없었다. 존이 이 이상한 주술사의 언어로 녀석을 혼냈으리란 생각에 나는 약간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존은 내 예상과 달리 고개를 저었다. 그 표정이 조슈아의 욕설을 들을 때만큼이나 담담해 보였다.


‘아니, 그들에게 말을 걸어본 적은 없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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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6) 19.12.06 7 0 9쪽
69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5) 19.11.25 11 0 11쪽
68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4) 19.11.09 12 0 11쪽
67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3) 19.11.03 10 0 10쪽
66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2) 19.10.19 12 0 8쪽
»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1) 19.10.09 8 0 9쪽
64 악마의 사생아(2) 19.09.23 11 0 10쪽
63 악마의 사생아(1) 19.09.16 11 0 9쪽
62 경매장(7) 19.09.11 17 0 12쪽
61 경매장(6) 19.08.29 17 0 7쪽
60 경매장(5) 19.08.26 22 0 8쪽
59 경매장(4) 19.08.25 14 0 8쪽
58 경매장(3) 19.08.23 18 0 8쪽
57 경매장(2) 19.08.22 21 0 8쪽
56 경매장(1) 19.08.21 15 0 10쪽
55 검은 왕국(5) 19.08.20 14 0 8쪽
54 검은 왕국(4) 19.08.18 16 0 7쪽
53 검은 왕국(3) 19.08.15 14 0 11쪽
52 검은 왕국(2) 19.08.08 28 0 10쪽
51 검은 왕국(1) 19.08.04 15 0 8쪽
50 숙부(7) 19.07.29 15 0 8쪽
49 숙부(6) 19.07.28 20 0 8쪽
48 숙부(5) 19.07.22 17 0 7쪽
47 숙부(4) 19.07.21 19 0 7쪽
46 숙부(3) 19.07.15 25 0 7쪽
45 숙부(2) 19.07.14 25 0 9쪽
44 숙부(1) 19.07.13 32 0 7쪽
43 별들의 방랑자 (2부 프롤로그) 19.07.08 39 0 1쪽
42 연의 섬에 바닷길이 열리면(3) 19.07.08 3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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