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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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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l
그림/삽화
EOL
작품등록일 :
2019.05.26 18:45
최근연재일 :
2019.12.3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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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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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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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6)

DUMMY

레나의 쇠약해진 몸을 핑계로 휴가를 무기한 연장하던 그들은 파노스의 권유가 협박 수준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영지를 떠나 휴보이 가문에 의탁해 지냈다고 한다. 레나가 처녀 때 후원을 받던 이 토착 가문은 페렐레의 친가로 그녀의 어머니인 루시안의 장녀(레시는 차녀이다.)가 시집을 간 가문인데 중앙과는 연계가 없어 작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북부 내에서 파노스에게 대적할 만한 몇 안 되는 유력한 가문 중 하나였다.


그들의 호의에 불순한 의도가 없다고 생각한 레나의 판단이 안일했는지, 그들의 맹목적인 원조는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본 목적을 드러냈다. 페렐레의 아버지인 휴보이의 가주는 루시안의 가주 자리를 두고 시작된 루시안과 휴보이 간의 분쟁이 고조되는 와중에 그 대척점에 레나의 아들을 내세우려 했다. 조슈아를 왕으로 만들겠다는 휴보이의 제안에 평화로운 삶을 원했던 레나는 진절머리를 치며 그곳을 나갔다. 그 후에는 차라리 망명을 가려고 문달의 힘에 관심을 가지던 동방 왕족과 연을 맺으려 했으나 이 역시 좌절되는 바람에 지금은 간간이 휴보이 가문의 도움을 받으며 후비진 휴양지에 숨어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간의 일들? 말도 마, 호우야. 파노스에서는 매일 협박편지에, 내 직속 하인이었던 이들의 신체를 잘라 보내지 않나. 사교계에서는 자바크와 붙어먹은 년이라고 면상에 대고 욕지거리까지 들었어. 이 루시안 레나가 말이야. 내가 참,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했다니까.”


그녀는 그리 말하면서도 여유롭게 차를 들이켰다. 그 동작에는 무의식적이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고풍스러움이 배어있었다.


사실상 레나는 아직 파노스에 입적되지 않은 상태였고, 존이 그녀와 노예 성혼을 하면서 그의 소유권은 전적으로 그녀에게 있었기에 파노스 가는 그녀를 상대로 어떠한 법적 소송을 걸 수 없었다. 뜬 눈으로 아들이자 가문의 필수적인 병력을 빼앗긴 그렌더는 왕족인 그녀를 직접 해치거나 종속시키는 일이 불가능했기에 비겁하게도 암살자나 용병을 몇 번 보냈는데, 그녀를 지키는 존 덕에 그들은 저택에 발을 디딘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낱 자바크를 위해 그런 온갖 수모를 겪어낸 그녀가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왜 그를 위해.......그렇게까지 했죠?”


내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레나는 나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일반적인 이들과는 다르게 지나친 애정을 내보였기에 이젠 그런 손길도 어색하지 않았다.


“닮아 보였거든, 그 사람이랑.........”


그녀는 머뭇대다가 말하곤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에일의 것과 무척 닮아있었는데, 나는 붉은자와 이리 오래도록 눈을 마주하는 게 처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에일과 나의 관계를 떠올리자면 내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볼 때 그녀는 다른 곳을 봤으며 그녀가 나를 볼 때 나는 고개를 돌렸으니 말이다.


“파노스 가로 들어가기 전, 태중 혼약이 돼 있던 상대가 있었어. 그는 혼혈아였는데, 특이하게도 검은자를 닮았었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우리 사이에는 정열적인 감정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깊은 유대감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있었어. 그는 언제나 잘 웃고, 너처럼 다정한 아이였는데, 네 나이쯤에 문이 열리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버렸지. 나는 항상 그의 곁에 서 있었는데, 그는 갑자기 내게 외롭다고 고백했고, 누군가가 자꾸 자신을 지옥으로 끌어당긴다고 초조해 했어.”


그녀의 엄숙한 얘기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도움을 줄 틈도 없이 그의 광증은 급속도로 심해졌어. 저에게 다가오는 시종이 있으면 칼을 뽑아들었고, 내가 찾아가도 제 방에서 나오려고 하지도 않았어. 나와 어머님은 그런 그를 기다리기로 했어. 시간이 지나면 그가 본래대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걸고 말이야. 그런 선택이 잘못됐었던 걸까, 하지만 그는······. 결국 죽어버렸어. 저택 내에서 살해당한 그를 처음 발견한 게 나였는데, 그 꼴이 너무 흉측해서 감히 어머님께 보여드릴 용기도 못 냈지.”


초점이 흐려졌던 그녀의 눈이 나를 응시했다. 그녀는 내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온몸에 단도들이 박힌 채였는데······. 수사관들은 그 범인을 잡아내지 못하고 그 층을 담당하던 시종들이 처벌을 받았지. 그들이 결백하다고 믿었던 난 진짜 범인을 직접 찾아다녔고, 차츰 그가 자살했다는 걸······. 제 두 눈에 스스로 칼을 박고 제 숨통을 끊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어. 시종들이 도망을 치도록 도왔지만, 나는 그들의 누명을 벗겨주진 못했어. 아니, 감히 그럴 수가 없었어. 그에게 배신감이 들고, 그와의 모든 관계가 거짓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그의 장례를, 그의 장례라도······. 치뤄주고 싶었거든······. 웃기게도.”


그들의 얘기에 묘한 위화감에 사로잡히던 나는, 그녀의 얘기가 끝나자 어떤 식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망설였다. 내가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말을 애써 꺼내려 할 때쯤 마법을 배우러 정원으로 나갔던 슈와 그의 새로운 선생이 테라스 안으로 들어오며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레나는 전혀 예상 못 했다는 표정으로 (이제까지 이런 일은 전혀 없었다는 듯이) 머리가 까맣게 탄 마법사를 상대해야 했고, 나는 식은 차를 마저 들이켜고 조슈아를 데리고 그 자리를 나왔다. 반성의 기미가 조금도 없는 조슈아는 도랑을 거닐며 제 또래들이 부르는 동요를 흥얼댔다. 드래곤 한 마리, 두 마리 하며 발장단에 맞춰 걸어가는 그 꼬마를 보며, 나는 다시금 내가 상대하고 있는 대상이 아직 아이임을 상기했다.


“그분의 머리카락은 왜 태운 거야?”


내가 한발 물러선 채 묻자 아이는 망설임도 없이 대꾸했다.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했어. 엉터리 마법사인 주제 말이야.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에게는 배우지 않을 거야.”


‘문달인 너보다 강한 사람? 네가 아무리 마법 술식도 모르는 꼬맹이라지만, 과연 그런 사람이 이런 깡 촌에 있을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너 혹시, 존에게 배우고 싶은 거야?”


그 말에 아이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만약 몇 달 전, 녀석과 친해지기 전의 나였다면 녀석은 내 머리카락을 아까 그 마법 선생처럼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녀석과 나 사이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제가 아무리 불꽃을 쏘아대도 내가 저택을 나가지 않자 녀석은 내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다. 뭐, 내가 조슈아를 친구로 받아 들여줄 일은 없지만 말이다.


“할아버지에게 배울 거야.”


‘그렌더를 말하는 건가?’


존의 기억을 통해 조슈아가 파노스 가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는 걸 아는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넌 왜 그분을 좋아하는 거야? 그분과는 만난 적도 별로 없잖아?”

“할아버지는 만날 때마다 조슈아에게 선물을 사줘!”

“고작 그런 이유로?”


‘역시 애는 애구나······.’


파노스가 존에게 했던 짓들을 지독할 만치 뚜렷하게 기억하는 나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악당들을 혼내줘!”

“악당?”

“존이랑......”


그 말에 나는 얼굴을 굳혔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까지 제 친부를 싫어하는 걸까? 존이 파노스가 했던 것처럼 제 아들을 때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존이 왜 악당이야?”


내 타박에 가까운 질문에 아이의 붉은 눈동자가 설핏 흔들렸다.


“난 존이 신기해서, 살 색이 이상해서 다가가려던 것뿐이야! 근데 녀석은 조슈아를 밀쳤어!”


그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춰 섰다. 휴보이의 문장을 달고 몇 년의 출장을 갔다가 돌아온 날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던 아들을 저도 모르게 쳐서 넘어뜨렸던 기억을 떠올린 나는 기함하며 물었다.


“넌 그때 일을······. 그때 일을 기억하는 거야? 넌 그때 고작 네 살이었는데···?”


변명하듯 내 눈치를 보며 말하던 아이는 다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조슈아는 존이 싫어! 다른 꼬맹이들은 존이 레나를 속이고 있는 거랬어! 존 때문에 조슈아도 더럽다고, 조슈아하고는 안 논단 말이야!”


그 후로 우리는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고 나는 슈에게 그 아이를 괴롭혔던 귀족 아이들에 관해 묻기도 하고 검은자 주제에 혼혈아에게 주제넘은 위로를 건네기도 했지만, 존과의 재회를 조슈아가 기억한다는 부분부터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였기에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계단과 복도를 지나 조슈아의 방에 도달했을 때 아이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을 내 얼굴에 대고 속삭였다.


“할아버지가 있다면, 그런 놈들은 전부 혼쭐나는 거야! 그래서 슈가 불렀다고! 이건 형에게만 해주는 얘기야! 할아버지는 곧 올 거야!”


내가 아이의 말을 겨우 이해했을 때쯤에 아이는 제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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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7) 19.12.30 10 0 13쪽
»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6) 19.12.06 11 0 9쪽
69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5) 19.11.25 13 0 11쪽
68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4) 19.11.09 13 0 11쪽
67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3) 19.11.03 12 0 10쪽
66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2) 19.10.19 12 0 8쪽
65 거짓과 진실, 혹은 진심(1) 19.10.09 8 0 9쪽
64 악마의 사생아(2) 19.09.23 12 0 10쪽
63 악마의 사생아(1) 19.09.16 11 0 9쪽
62 경매장(7) 19.09.11 17 0 12쪽
61 경매장(6) 19.08.29 17 0 7쪽
60 경매장(5) 19.08.26 22 0 8쪽
59 경매장(4) 19.08.25 15 0 8쪽
58 경매장(3) 19.08.23 19 0 8쪽
57 경매장(2) 19.08.22 21 0 8쪽
56 경매장(1) 19.08.21 15 0 10쪽
55 검은 왕국(5) 19.08.20 15 0 8쪽
54 검은 왕국(4) 19.08.18 16 0 7쪽
53 검은 왕국(3) 19.08.15 14 0 11쪽
52 검은 왕국(2) 19.08.08 28 0 10쪽
51 검은 왕국(1) 19.08.04 15 0 8쪽
50 숙부(7) 19.07.29 15 0 8쪽
49 숙부(6) 19.07.28 20 0 8쪽
48 숙부(5) 19.07.22 18 0 7쪽
47 숙부(4) 19.07.21 25 0 7쪽
46 숙부(3) 19.07.15 25 0 7쪽
45 숙부(2) 19.07.14 26 0 9쪽
44 숙부(1) 19.07.13 32 0 7쪽
43 별들의 방랑자 (2부 프롤로그) 19.07.08 41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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