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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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9.06.01 00:19
최근연재일 :
2019.07.2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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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22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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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8화.

DUMMY

다시 침묵이 깊게 깔렸다. 마부석에 앉은 루치아는 다니엘레의 말에 집중했다. 어느덧 더미드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플갱어를 말하는 건가?”


“아니, 말 그대로야. 그 녀석 몸 안에 또 다른 영혼이 있다는 얘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다니엘레는 말없이 손에 신성력을 모아 막대기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리베리오의 목에 가져다 댔다. 흠칫 놀란 그는 눈동자만 내려 밑을 바라봤다. 하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분명 목에 무언가 닿아 있었지만,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네 검을 맨몸으로 막아낸 건 눈속임 같은 게 아냐. 신성력이라는거다.”


“신성력?”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그것을 거두었다. 두 번의 싸움으로 인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리베리오는 생각 이상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래. 선천적으로 몸 안에 가지고 있는 일종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 이건 밀림과 함께 생겼지. 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접촉했을 때 그 사람도 신성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리베리오는 한쪽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그게 영혼과 무슨 상관이지?”


마차가 한차례 덜컹거렸다. 다니엘레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상관은 없지. 나도 혹시 몰라서 하는 얘기니까.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는 당연히 영혼 같은 걸 느낄 수가 없지. 근데 울리세는 달랐다. 그냥 느낌이 아니라 확실하게 보여졌어.”


“네 말은 그럼 우리 형이 밀림에서 어떤 것에 의해 영혼이 덧씌여졌다는 얘기냐?”


다니엘레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베리오는 헛웃음을 지었다.


“확실한 증거도 없지 않나?”


“그래, 그래서 울리세를 붙잡고 확인 해봐야한다는 거야. 걔만이 알고 있겠지. 그리고 시시비비를 가려 이 모든 것의 원인과 결과를 통해 재판을 해야 한다는 거다. 너도 이건 동의하겠지?”


마지막 말을 하며 그는 의식적으로 더미드를 흘깃 바라봤다.


“동의는 한다만, 넌 아직 나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어.”


다니엘레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를 내려다봤다. 더미드는 무표정하면서도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거의 얼굴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자존심 세우느라 반말하는 걸 여태까지 가만히 두는 게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인데, 모르겠어?”


“그딴 거 필요 없으니 가져가.”


둘은 잠시동안 서로의 눈을 마주 봤다. 흔들린 건 리베리오였고 시선을 거둔 건 다니엘레였다.


“어찌됐건 울리세가 협조하는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아둬. 인명피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시작이 어떻건 간에 무마할 수는 없으니까.”


더미드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멀리 던졌다. 해는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날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어. 네가 도와준다면 그걸로 된 거야. 만약 그렇게 한다 하면 난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의 편의를 제공할 거라고 약속하지.”


대답이 들려오지 않을 거라 예상한 다니엘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가 그동안 생각했던 건 그거였다. 영혼이 두 개가 된 것의 원인. 밀림 속에서만 있었기에 답 또한 밀림에 있을 수밖에 없다. 자기들이 밀림을 완전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엘레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국왕과 신기루 속의 사람과의 합의하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들이 모르는 비밀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는 전에 혼자 생각했던 것을 끄집어 냈다.


‘돌연변이는 그가 아니라, 밀림 속에 것들 중에 있다는 얘기인가?’


이제는 어떤 것도 과한 억측이 아니게 됐다. 영혼이 두 개라면 둘 다 공존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누가 진짜인 거냐.’


울리세 본인인 것인가. 아니면 그를 연기하는 정체 모를 누구인 것인가. 생각만으로는 가설일 뿐이었다. 그는 지금의 생각을 정리해 머릿속에 어딘가에 잘 접어 넣어놨다. 당위성과 타당성은 그것으로부터 결정지어질 일이다.


어둠이 깊게 내려앉을 때까지 달린 그들은 앞이 제대로 분간되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야 마차에서 내려 야영을 준비했다. 여름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모닥불은 필요 없었지만,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아 나무를 모아 불을 피웠다.


당연히 불침번을 설 필요가 없는 리베리오는 잠을 잤고, 하루종일 고생한 루치아 또한 제외시켰다. 다니엘레는 나무둥치에 몸을 기대고 모닥불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얼마간 그러고 있으니 더미드가 몸을 뒤척이더니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


다니엘레는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그를 잠깐 바라보고는 다시 모닥불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더미드는 졸린 기색도 없이 꼿꼿이 앉아 그를 주시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던 다니엘레는 결국 고개를 들었다.


“네가 내 편이 아니라는 건 안다.”


다니엘레는 잠자코 그가 이어 말하길 기다렸다.


“내가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번에도 역시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반성을 하고 있지 않아서 적대시 하고 있는 것이겠지. 잠깐동안 지내본바 너는 남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데 울리세에게만큼은 남다른 것 같군. 그가 당한 일을 대신해서 나에게 화내고 있으니 말이야.”


“궤변이야. 시작이 무엇이었는가를 따졌을 뿐이다.”


더미드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놈은 첫 번째로 절도를 저질렀고 두 번째로 귀족을 폭행했다. 그것도 급 낮은 사람이 아닌 나라에서 중책을 맡은 사람을. 너희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그 죄질의 크기가 남달라.”


더미드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들의 목소리 때문인지 풀벌레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즉결처형이 가능할 만큼의 중죄에 속한다. 내가 과한 처분 했다고 생각하나?”


“그럼 네 말마따나 그 자리에서 죽였으면 되는 일 아니냐?”


“아니, 그때 나는 너네 나라에 있었고 그 나라의 법에 맞춰서 행했을 뿐이다. 너도 원리원칙을 중시하겠지.”


“도덕적인 면을 말하는 거야.”


“아니, 넌 나와 같아. 네가 말한 대로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따져 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그에 걸맞은 벌을 내린 거다. 내가 잘못했다고? 그럼 법이 잘못된 거다. 아니면 사회가 잘못됐다는 거던가.”


다니엘레는 받아칠 수 없었다. 그의 말은 전부 옳았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어야 하는데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이 씌인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꾸만 마음이 불편했다. 그의 태도를 욕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다니엘레 자신만큼은.


“교대 시간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대화를 끝내고는 누웠다. 더미드는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자꾸만 울리세의 입장에 서게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그도 알지 못했다. 지금의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유부단하게 갈팡질팡하는 자신에게 울컥 화가 올라왔다.


몇 시간 잠을 잔 다니엘레는 다시 더미드와 교대를 했다. 둘은 당연하다는 듯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골똘히 사색에 잠겨있는 동안 아침 해가 밝아왔다. 동시에 더위가 점점 짙어졌다. 모닥불에 남은 불씨마저 꺼트리고 있을 무렵 루치아가 깨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멍하니 땅을 내려다봤다.


“밥 먹고 바로 출발할거니까 슬슬 다 깨워.”


“네.”


갈라진 목소리로 힘없이 대답한 그녀는 눈을 비비고는 기지개를 켰다. 그러자 잠이 좀 달아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뻐근한 몸을 풀며 물었다.


“연락 온 건 없죠?”


“확인해봐야지.”


그는 안쪽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가죽 주머니를 꺼냈고 매듭을 풀어헤쳤다. 주머니 안을 얼빠진 채 바라보던 다니엘레는 천천히 손을 올려 깃털을 꺼냈다. 그의 눈 밑이 사시나무 떨듯 떨더니 삽시간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깃털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당장 출발할 준비해.”


“예? 설마······.”


다급한 목소리에 그녀의 가슴이 흔들렸다. 설마 하는 눈으로 루치아는 조심히 다가가 그가 들고 있는 깃털 펜을 바라봤다.


“마티아가···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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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세가 옵니다.”


외곽을 감시하던 병사가 다가와 그에게 작게 보고했다. 마티아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했다. 현재 집결돼 있는 병사들 수를 생각하며 그는 기사단장을 바라봤다. 그 또한 난색을 표하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금 힘들 것 같군요.”


마티아는 한 손으로 턱과 입을 문질렀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부하를 향해 빠르게 말했다.


“지금 당장 애들 각자 자리로 가라 하여라. 그리고 자네는 병사들을 통솔해주게.”


그대로 그들은 흩어졌고 두 명의 지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약속된 대형을 갖추고 그가 오길 기다렸다. 이미 마을에 지내던 민간인들은 더미드의 권력으로 비밀리에 대피시켜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마을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최소한의 횟불로 울리세의 형체를 쫓았다. 입구까지 도달한 그는 뛰던 것을 멈추고는 당당하게 정면으로 들어왔다. 조금 걷던 그는 잠시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마티아는 실처럼 이어진 신성력을 붙들고 아직 기다리라 명했다.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더 중앙으로···.


“사격 개시!”


마티아의 우렁찬 신호와 함께 단체의 인원들과 그는 동시에 모아두었던 신성력을 날려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동시에 건물 지붕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귀를 찢는 수십 개의 시위를 당기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몸에 박히는 소름 끼친 소리가 귀에 파고들었다. 기사단장은 방심하지 않고 신호를 보냈다. 곧바로 울리세를 향해 기름병을 던졌고 바로 이어서 횃불이 날아들어 그에게 적중했다.


“윽···.”


순식간에 솟은 불기둥에 마티아는 눈을 찌푸리며 손으로 가렸다. 불은 멈출기세는 커녕 건물에 옮겨붙을 듯 계속 타올랐다. 그 불기둥을 중심으로 간격을 두고 골목에 매복하고 있던 병사들이 진을 치고 기다렸다.


마티아는 바닥이 검게 그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그을림이 점점 불을 타고 올랐다. 거대한 화염은 이제 완전히 까맣게 변했다. 맨 끝마저 변하는 순간 어둠이 찾아왔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마티아는 기사단장과 함께 병사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뭔가 잘못된 기분이 들었다. 웃음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뒤에 있던 병사 몇이 횃불에 불을 켜고 주변에 고정시켰다. 드문드문 비춰지는 빛 사이로 마티아는 울리세와 눈이 마주쳤다.


“공, 공격···공격하라!”


소름 끼치도록 침묵이 깔렸다. 그 누구도 그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살아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전신이 타 있었고, 온몸 곳곳에 화살이 박혔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몸에서 어둠보다 짙은 정체 모를 것이 얇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기괴한 모습에 어디선가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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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19.07.02 5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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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화. 19.06.27 45 2 11쪽
22 21화. 19.06.25 43 3 11쪽
21 20화. 19.06.25 53 3 10쪽
20 19화. 19.06.23 39 3 10쪽
» 18화. 19.06.22 44 3 12쪽
18 17화. 19.06.21 3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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