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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없는 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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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 (1)

DUMMY

출발선으로 돌아온 3년 차 시즌, 다카기는 시애틀에서 출항의 깃발을 올렸다.


시애틀은 늘 하위권을 맴도는 팀, 그렇다고 탱킹으로 유망주를 쓸어 담는 팀도 아니다.


돈은 쓸 만큼 썼고 이길 의지는 충분한데 성적이 안 나온다는 게 문제, 올해도 새로운 감독을 앉히고 각지에서 선수를 영입했다.


11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서 올해는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도 노력은 하는 팀 정책 덕분에 어느 팀처럼 팬들의 외면을 받진 않았다.


[구와타, 다카기, 개막전에서 격돌]


일본 여론도 개막전에 초점을 맞췄다.


2년 전부터 mlb진출을 타진했던 구와타 카즈미는 시애틀과 보장금액 4500만 달러, 옵션 1500만 달러가 포함된 6년 계약을 맺었다.


mlb 개막전에서 일본인 투수가 맞대결하는 건 이번이 처음, 일본에서 열렸다면 흥행은 보장됐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무산됐다.


그덕에 더 높아진 관심, 구와타는 개막전을 앞두고 간단한 소감을 밝혔다.


“제가 프로야구 3년 차였을 때 다카기 선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 돼버렸네요.”


이젠 다카기가 메이저리그 3년 차, 구와타는 신인 자격으로 이 무대에 섰다. 4-5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누구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상대는 나보다 한참 어린 선수지만 구와타는 한 수 배우겠다며 겸손한 입장을 내놨다.


“노코멘트”


그에 비해 다카기는 인터뷰를 거부했다.


구와타는 일본에서 8시즌을 보내는 동안 1200이닝을 겨우  채웠다. 매년 150이닝을 소화했다는 건데, 완투가 제법 나오는 일본에서도 이 정도는 두드러진 성적이 아니다


더 심각한 건 구위, 작년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 볼 평균 구속은 93마일을 넘겼다.


구와타의 최고 구속은 96마일, 하지만 평균은 91마일 정도다. 우완투수가 좌완보다 1-2마일 더 빠르다는 걸 고려하면 이 정도 구속의 우완 투수는 사방에 널려있다.


그렇다고 제구나 확실한 결정구가 있는지도 의문, 이런 투수에게 보장금액 4500만, 최대 6000만 달러를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미국 현지 여론도 가차 없이 쓴 소리를 퍼부었다.


[구와타는 다카기, 쿠사나기에게 감사해야 한다.]

 

쿠사나기는 1억이 넘는 총액을 받고 뉴욕에 안착, 2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여기에 고교졸업생으로 국제드래프트를 거쳐 보스턴에 입단한 다카기, 계약금 500만 달러에서 시작한 신화는 지금 메이저리그를 휩쓰는 돌풍으로 바뀌었다.


이 두 선수의 활약이 있었기에 일본산 투수들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진 게 사실, 그게 없었다면 구와타가 그만한 계약을 제시받을 수 있었을까.


얼어붙어 있던 스토브리그가 풀린 것도 호기로 작용, 전문가들이 혹독한 평가를 내놨는데 같은 일본인이라고 기자들 앞에서 마음에도 없는 립 서비스를 해야 하나.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준비를 어떻게 한 거야?’


이리나 다를까. 구와타는 1회부터 27개를 던지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커맨드야 원래 물음표가 달렸으니 그렇다 쳐도 90마일 근처에서 노는 빠른 볼, 일본에서 보여준 평속보다 떨어지는 수준이다.


스프링캠프부터 시범경기까지, 구위를 끌어올릴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저게 개막전 선발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은 선수의 투구인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시애틀 현지 해설 위윈들은 뭐 밟았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자, 이제 시애틀의 1회 말 공격으로 이어지겠습니다. 마운드에는 다카기 하루요시, 작년 시즌 성적은 19승 3패 평균 자책점 2.01, 200이닝 동안 삼진 286개를 기록했습니다.”

“정규시즌도 대단했지만 백미는 포스트 시즌 이었죠. 무려 38이닝을 던지면서 2점 밖에 주지 않았는데, 이건 단일 시즌 기준으로 메이저리그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갈지 궁금하군요.”


다카기는 초구부터 97마일 빠른 볼을 선보였다.


체격이 좋아지면서 힘이 더 붙은 빠른 볼,  구와타 입장에선 기를 쓰고 던져야 나오는 구속이지만 다카기에겐 일상이었다.


“다시 빠른 볼 벗어납니다. 이번엔 99마일이군요.”

“이제는 완벽하네요. 작년까지만 해도 앳된 모습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게 메이저리거답게 변했네요.”


성장하면서 분위기도 약간 바뀌었다.


예전엔 얼굴에 소년 이미지가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선이 또렷한 미청년 느낌, 말이 많은 이미지 때문에 살갑게 다가갔다가 압도적인 덩치에 위축된 사람들도 많다.


사실 다카기는 힘을 쓰는 몸을 타고 났다.


힘이 없는 몸은 몸통이 가늘고 가슴근육도 대체로 몸의 윗부분에 자리가 잡혀 있다.


그래서 몸을 키우면서 균형 잡힌 핏을 잡기 어려운 것, 그에 비해 다카기는 두터운 몸에 가슴근육이 넓게 자리가 잡혔다.


‘가슴근육이 커지면 투구에 방해가 돼? 웃기는 소리, 운동하기 싫어서 그럴 듯한 이유를 가져다 붙인 거 아냐?’


가슴 근육은 운동세계에서 그리 환영받는 근육이 아니다.


너무 비대해 지면 투구나 타격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게 이유, 하지만 그 정도로 가슴 근육을 키우는 건 보디빌더들이나 하는 짓이다.


가슴은 힘을 내는 원천, 타격을 할 때도 큰 근육인 가슴이 먼저 움직이면 힘을 실을 수가 없다. 그만큼 중요한 근육, 그런데도 가슴 근육을 키우고 유지하는 웨이트를 소홀히 선수나 코치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가슴 근육을 안 키우고 어떻게 힘을 쓴다는 건가?


특히 웨이트를 상대적으로 중시하지 않는 아시아 쪽 사정은 더욱 심각, 구와타도 잘못된 통념의 희생양 중 하나였다.


몸이 힘을 쓰는 체형도 아닌데, 웨이트를 소홀히 했으니 어떻게 힘을 쓰겠나. 그에 비해 다카기는 힘을 쓰는 몸을 타고 났고 여기에 노력까지 더해진 케이스, 이것도 98마일을 기계처럼 찍어내는 투구 비결 중 하나다.


“너는 몸을 키워라.”


고등학교 시절 은사인 후루타 감독은 다카기의 장점을 잘 살려줬다.


힘은 타고 났으니 여기에 근육이 조금 더 붙으면 괜찮겠지, 덕분에 다카기는 고교 2학년 때부터 웨이트를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완성 단계에 접어든 진화, 6년 동안 꾸준히 훈련을 거듭한 다카기는 이제 어느 메이저리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피지컬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 사람들 눈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처럼 보였겠지, 구와타도 저 녀석은 타고 났다는 착각을 머릿속에서 중얼거렸다.


딱 ~

“타격, 2루수 잡아 1루에 송구합니다. 8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하고 있군요.”

“음 ··· 지금은 투심으로 보이는데 96마일이 나왔거든요. 이걸 올 시즌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겠네요.”


계속 되는 호투, 해설위원들은 다카기의 투심을 두고 대화를 이어갔다.


투심은 빠른 볼과의 구속 차와 살짝 가라앉는 무브먼트로 땅볼을 잡는데 특화된 구종이다. 하지만 다카기의 투심은 빠른 볼과 구속 차가 크지 않은 편, 그리고 떨어지는 움직임보다 옆으로 휘는 각이 더 크다.


제구가 안 되면 빠른 볼을 노린 스윙에 걸려들 위험이 큰 편, 작년까지만 해도 투심 평균 구속은 91마일 정도에서 형성 됐다.


그런데 올해는 빠른 볼과 투심의 구속 격차가 좁혀진 편, 아직 개막전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주무기로 삼는 건 신중한 판단을 요구했다.


‘빠른 볼로 가는 게 좋겠어.’


크로스 포수는 투심을 제한하고 포심 비율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카기의 빠른 볼은 알고도 못 치는 수준, 굳이 투심을 던질 이유가 있을까. 시범경기 기간 때도 투심의 활용 방법을 두고 다카기와 논의를 거듭했지만 역시 이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빠른 볼과 체인지업 그리고 간간히 섞어주는 커브 정도면 충분, 하지만 다카기는 투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애틀 정도라면 그 정도로 제압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진짜 강팀을 상대로 그런 단순한 조합이 통할까. 자신의 구위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작년까지 잘 써먹었던 무기를 포기하는 건 아쉬웠다.


시범경기부터 계속된 투심 활용 법, 개막전이라고 다르겠는가.


오늘은 투심을 활용할 방법을 찾는 시험무대, 좌타자 마이크 헤이즈를 상대로 초구부터 투심을 던졌다.


몸 쪽으로 바짝 붙어 날아오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살짝 파고 들어가는 궤적, 빠른 볼을 노리고 있던 헤이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나만 특별대우 하는 거지?’


다카기는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이 높은 편, 당연히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는다. 그런데 왜 나만 투심? 그것도 9번 타자를 상대로 특별대우를 해주는 건가.


귀찮으니까 땅볼 하나로 남은 이닝을 처리하겠다는 건지, 일단 다음 공을 지켜봤다.


[스트라이크!!]

“들어옵니다. 카운트는 원 볼 원 스트라이크”

“지금도 투심인데, 예리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찔렀거든요. 역시 투심은 제구가 중요합니다.”


구속에 재갈을 물려봤자 93마일, 선뜻 달려들 구속이 아니라 마이크 헤이즈는 배트를 내지 못했다.


혹시 또 투심? 예상은 했지만 정확한 타격이 안 되면서 2루 땅볼로 물러나고 말았다.


‘나 지금 실험당한 건가?’


그제야 헤이즈는 고개를 떨궜다.


내가 얼마나 만만했으면 개막전에서 구종을 실험하는 실험체로 삼았을까. 분하지만 이게 현실, 실험에 성공했으니 앞으로도 계속 써먹겠지 않을까. 더그아웃에서도 동료들에게 투심을 주의하라는 조언을 건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시애틀 선수단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마이크 헤이즈는 타격이 떨어지니 실험체로 삼았겠지만 상위 타선을 상대로도 투심을 활용할까? 빠른 볼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벅찬데 투심까지 생각하는 건 비효율적, 상위 타선은 다음 공격에서도 빠른 볼에 초점을 맞췄다.


‘응?’


하지만 예상과 달리 보스턴 배터리는 4회부터 투심 비율을 제법 끌어올렸다.


빠른 볼만 생각하고 있던 타자들은 의표를 찌르는 결정구에 넉 아웃, 다카기의 또 다른 결정구인 체인지업은 투심과 일정 부분 겹치는 무브먼트를 보인다.


다른 게 있다면 체인지업은 마지막에 떨어지고 투심은 옆으로 휘어나간다는 것, 마지막까지 정체를 숨긴 놈들이라 타자 입장에선 정말 대응하기 어렵다.


다카기가 마지막까지 투심을 안고 가려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시애틀의 선발 구와타는 4회도 넘기지 못하고 강판됐지만 다카기는 6회까지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이젠 끝이다.’


7회 들어 투구 패턴은 다시 바뀌었다.


이번엔 빠른 볼 위주,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라 다카기는 남아 있는 힘을 모두 끌어올렸다.


경기 후반에도 99마일을 던지는 괴력에 홈팬들은 일제히 침묵, 시애틀 선수단도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슨 3단 변신 로봇도 아니고, 공을 던지는 선수는 분명 한 명인데 3 ~ 4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기분이랄까.


서로 다른 지구라 자주 만날 일은 없지만, 다카기가 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인지 시애틀 선수들은 한 경기 만에 깨달았다.


7회를 마친 다카기는 뒤처리를 동료들에게 맡겼고, 개막전에서 6대 0 승리를 거둔 보스턴은 쓰리 핏 달성의 청신호를 밝혔다.


“다카기 선수, 작년에 이어 개막전에서도 승리를 거두셨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선 삼진이 적었던 게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어지는 인터뷰, 한 기자는 별것도 아닌 일로 꼬투리를 잡았다.


작년 시즌, 다카기는 9이닝 당 12.87이라는 놀라운 탈삼진 율을 선보였다. 10삼진 이상을 잡은 경기는 무려 17경기, 단일 시즌 기준으로 역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록이다.


그런 선수가 오늘은 7이닝을 소화하며 삼진을 6개 밖에 잡지 못하다니, 혹시 투구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 아니냐는 질문을 내놨다.


“당연하죠. 오늘은 이런 저런 구종을 많이 시험해 봤으니까요.”

“시험이라고요?”

“네, 여러분들은 몰라도 저는 오늘 투구에 만족합니다. 실험이 끝났으니 앞으로는 더 좋은 투구를 할 수 있겠죠.”


누군가에겐 살 떨리는 개막전이 무기를 가다듬는 연습무대였다니, 기자들은 별 일 아니라며 돌아서는 에이스의 뒷모습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우라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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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볼 것은 다 보았다 - (3) +3 20.01.02 1,429 6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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