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 회의 이치
“회선, 무류창!!!(回旋 無流槍)”
진흑창의 오른손 주변으로 맹렬히 강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흑창은 그대로 손을 내뻗은 것이다.
“하앗!!!”
갑작스런 진흑창의 절기에, 천만홍도 당황하며 절기로 맞섰다.
“채홍검법 절초(彩虹剑法 絕招)!! 칠색채홍폭격(七色彩虹爆擊)!!!”
진흑창의 팔을 타고 검은 강기가 맴도는 가운데, 천만홍은 무지갯빛 일곱 검기로 맞섰다.
콰아앙!!!
두 절기가 격돌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폭음이 일어났다.
“크윽!”
“으아악!!!”
관중들의 상당수가 귀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헐크G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한 것이다.
“혹시 몰라서 급작스럽게 내공을 끌어올렸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뻔했군.”
“그래. 그 와중에 이 관중석에 있는 대부분의 자들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군. 하긴 그럴만하지. 내공을 끌어올린 우리들로서도 참기 힘든 폭음이었으니.”
마찬가지로 찡그린 표정의 태사향이 말했다. 보통 강과 강의 성질을 가진 무공끼리 충돌했을 경우 딱히 고막을 노린 음공이 아니더라도 어마어마한 충격음이 발생한다.
그리고 내공을 타고 온 사방으로 퍼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내공이 약한 자들은 버티지 못할 만도 했다. 만약 이 세 사람도 단번에 대비하지 않았다면 큰 충격을 입을 뻔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의 대결은 종막으로 치닫고 있었다.
천만홍의 일곱 빛깔 검기가 진흑창의 오른손에 적중하는 순간, 한때 그 빛은 진흑창의 팔을 모두 집어삼키는 듯 했지만 곧바로 튕겨 나왔다.
그리고 진흑창의 팔이 천만홍의 복부를 강타했다.
콰직!
“으아악!!!!!!!!!!”
길고 비통한 신음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관중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무대를 본 것이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결과는???”
귀를 감싸 쥐고 있던 자들이 차례차례 고개를 돌리고 있었는데, 무대엔 폭연과 함께 온 사방이 부서진 조각이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곳엔 쓰러진 천만홍도 있었던 것이다.
“와아, 역시 진흑창이다!!!”
“역시 당신이 홍콩제일인이야!!!”
관중석에서 참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진흑창은 잠시 지친 얼굴로 헐떡거렸다.
“허억, 헉!!”
천만홍을 쓰러트리긴 했지만 그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마지막에 역전하긴 했지만 그동안 입은 상처는 진흑창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다리와 눈두덩이에 베인 상처를 비롯해서, 온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그로인한 출혈과 체력소모 역시 무시할 수 없었고, 그보다 막판에 절기를 사용하기 위해 급하게 내공을 끌어올린지라 심맥도 약간 뒤틀린 상태였다.
그러나 진흑창은 시꺼멓게 변한 얼굴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기장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본 태사향이 말했다.
“진흑창의 소모가 심상치않군······. 얼굴이 꺼멓게 죽었어. 무리하게 내공을 끌어올려서 자기 요혈을 다친 거겠지. 어떻게 보면 천만홍에게 입은 상처보다 저 쪽이 더 치명적일지 모르겠군.”
“그래. 요혈과 심맥만 무사하다면 저 정도 상처는 하루면 낫지.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정양하는데 더욱 시간이 가. 이렇게 되면······.”
헐크G와 태사향이 원륭을 쳐다봤다. 원륭은 아직 일화와 경기를 치르지 않았지만, 병 조의 승자인 당화가 기권을 했으므로 일화만 이기면 압도적으로 유리해진 상황이었다.
우승후보 중 하나인 천만홍은 지고 당화는 이긴 뒤 기권했다.
이게 남은 일화와 진흑창만 이기면 우승이라는 말인데······. 그때 헐크G가 입을 열었다.
“이봐, 원륭. 근데 이상한 게 있다.”
“응??”
“왜 너와 일화의 경기보다 진흑창과 천만홍의 경기를 먼저 한 거지?? 생각해보니 이상하지 않나?? 엄밀히 말해서 저 진흑창과 천만홍의 경기는 준결승전이야. 4강이란 말이지. 하지만 너와 일화의 경기는 8강이다. 준준결승전. 이렇게 경기가 진행될 수가 있나??”
“사실······. 나도 그게 좀 이상했다. 뭔가 수를 쓴 건가, 원륭??”
“아니. 내가 그럴 리가 없지. 어차피 나는 요양해야 하는 부상도 없다. 그런데 내가 뭐 하러 그런 수작을 부린단 말인가?? 내게 득 될 것도 아무것도 없이.”
“그건 그렇군.”
“하지만 참 이상하긴 하다······.”
태사향과 헐크G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이 세 사람뿐만 아니라, 관중들 사이에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 원륭이란 놈이랑 일화가 대결해야 하는 날 아니었어?? 왜 대결이 밀린 거지??”
“그래. 8강전보다 경기가 빨리 잡힌 4강전을 치르다니, 이런 대회는 들어본 적이 없어!!”
전대미문의 진행. 그것은 관중들에게도, 원륭과 그의 동지들에게도 의문을 가져왔다.
곧이어 대회 운영회 측에서 안내가 내려왔다.
“아, 관객 여러분. 사전에 미리 말씀을 드리지 않아 죄송합니다. 본래 오늘의 대결은 원륭 선수와 일화 선수의 대결이 있어야만 하나, 일화 선수의 사정으로 인해 대결이 하루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결승전 일자는 변함이 없지만, 일부 경기의 순서가 바뀌게 되었음을 사과드립니다.”
“이제 와서 사과하면 뭐해!!”
“배당이 바뀌었잖아!!”
관중들, 아니 도박꾼들이 일제히 와서 항의하기 시작했다. 도박이란 것은 본디 일정한 배당이란 것이 있는데, 이 배당에 따라서 배당금이 달라졌다.
배당률이 높아지면 결과가 적중했을 경우 돈도 당연히 더 많이 받고, 배당률이 낮아지면 배당금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배당률이라는 것이 시시때때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한번 배당을 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바뀌지 않는 게 아니라, 경기 전까지 배당을 정하는 쪽은 선수나 팀의 정보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배당을 바꾼다.
심지어 경기 중에도 배당을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비등비등해보였던 어느 선수나 팀이 압도적으로 불리해져서 그로 인해 생각지도 않았던 어마어마한 손실이 예상되는 경우, 이미 정해둔 배당을 무턱대고 바꾸는 것이다.
사실 이건 일반적인 일이라, 사설 도박이 아니라 나라에서 허용하는 도박들도 그러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손실률이 엄청 나므로.
하지만 이 대회의 경우, 팀은 아니지만 그만큼 선수 개개인의 상태가 매우 중요시된다.
팀의 경우 선수 한명이 타격이 있어도 다른 선수로 바꾸거나, 다른 선수들이 그 차이를 메꿀 수 있지만 이런 일대일의 비무 대회는 선수의 상태가 모든 것인 것이다.
진흑창이 이기긴 했지만 천만홍으로부터 상당한 피해를 입은 걸 보고 누구와 붙든 이걸로 진흑창이 승리할 확률은 상당히 낮아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예상과 달리 경기순서가 바뀌어 진흑창이 회복할 시간이 늘어나자 다시 도박꾼들은 고민했다.
본래는 일화와 원륭이 대결한 후에 그 승자가 당화와 겨루어야 하는데, 문제는 당화는 기권했고 아직 그 사실을 미처 알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8강전 경기보다 진흑창과 천만홍의 4강전이 먼저 진행됨으로 인해 경기 일자가 완전히 꼬여버렸던 것이다. 매우 복잡해진 상태엿다.
일부 소식에 정통한 자들은 당화의 기권 소식이나 기타 자세한 사항들을 미리 파악한 상태였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모르고 있었다.
원륭 등 세 사람은 도박장 앞을 지나가며 한마디 했다.
“쯧쯧, 경기 순서가 바뀐 걸로도 이 모양인데, 당화가 기권했다는 것을 알면 이 자들은 뒤집어지겠군. 모든 예측이 뒤집어 질 것이다. 아마 이 자들은 나와 일화의 싸움에서 일화가 이기고, 일화나 당화 중 하나가 진흑창을 상대로 했을 때 상처를 아직 회복하지 않은 진흑창을 비교적 수월하게 상대해서 이길 거라고 예측하겠지. 하지만 그 모든 사실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과연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웃기기가 그지없군. 푸하하하하하!!!”
원륭은 지나가며 통쾌하게 웃었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왜 저러나,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태사향도 묘하게 입 꼬리를 늘어트렸다.
“후후, 때로 세상이란 참으로 묘하지. 가끔 나만 빼고 모든 것이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 내가 중국 특수부대에서 일하며 소련과의 국경분쟁에 참가했을 때,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윗대가리 놈들은 모두 피신을 끝마친 후였지. 후에 북경에는 주은래만 남아있고 모택동 등 수뇌부들은 이미 지방 벙커로 다 피신을 끝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허망했던지······. 이제 모든 걸 알게 되면 저 자들의 심정도 나와 비슷할까, 후후.”
“그래도 자네 만하지는 않겠지. 듣자하니 자네는 그 국경에서의 분쟁에서 총을 무려 일곱 발이나 맞았다며.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네. 자네 같은 고수가 왜 총을 맞은 건가?? 그것도 무려 일곱 발이나 말이야.”
원륭의 물음에 태사향은 답했다.
“후후, 그 절름발이 중위는 복싱능력이 엄청났네. 어지간한 권법을 능가할 정도였지.”
“복싱의 위력이 그렇게나 대단한가??”
“말도 말게. 중국 무술이 허례허식이나 허초 같은 거나 수련하며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복싱은 철저하게 실전을 통해 발전해왔네. 복싱의 고전적인 형태와 같은 것은 고대로부터 존재해왔지만, 사실상 근대적인 복싱이 태어난 것은 1786년 퀸즈베리 후작이 복싱을 후원하며 생긴 퀸즈베리 룰 이후이지. 하지만 복싱은 불과 200년 정도 만에 4천년 중국 무술을 뛰어넘은 거야. 내공이 아니라, 기술만 보자면 확실히 그렇지.”
“흐음, 하지만 그 절름발이 중위란 녀석은 분명 내공이 없었을 텐데??”
“그건 그랬지. 하지만 하나만 묻지. 내공을 사용하지 않은 무공은 위력이 없나??”
“그건 아니지. 그래, 그렇군······. 그 정도로 그 중위의 복싱 능력이 뛰어났다는 말인가.”
“그래. 나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후에 듣기로 그 중위 놈은 세계대전도 겪은 단련된 군인이었고 전쟁 중에도 백병전에서 복싱으로 적들을 쓰러트린 적이 있다더군.”
“확실히······. 전쟁 중에는 은근히 백병전도 자주 일어난다고 하니까······.”
원륭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병전이 일어나는 이유는 총알이 다 떨어져서, 혹은 정찰 임무 중 예고없이 상대를 만나 총을 쏠 시간과 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가까워서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태사향은 덧붙였다.
“확실히 처음부터 내공을 썼다면 단번에 쓰러트렸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나의 각법과 목봉술은 그 자의 복싱을 압도했어.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결국 잠재된 내공이 없으면 아무리 내공을 쓰지 않아도 한계에 부딪치는 법이지······. 물론 나도 그 중위가 갑자기 총을 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워낙 번개같이 쏴서 미처 대응하지도 못했는데, 그런 걸 보면 그 중위놈의 특기는 알고 보면 복싱이 아니라 사격이었을지도, 후훗. 그 덕분에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진 것이 아니겠나.”
말을 마치고 태사향이 웃옷의 단추를 살짝 풀었다. 그러자 마치 북두칠성의 모양으로 새겨진 흉터들이 있었던 것이다.
“마치 북두칠성 같군.”
“그런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아무튼 그 후로 많은 교훈을 얻었지. 전장에서는 절대 방심하지 않는다는 것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졌지만······.”
그 말과 함께 태사향은 원륭을 쳐다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을 보고 원륭이 아무 말도 없이 걸어가는데, 헐크G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아까의 그 진흑창의 마지막 초식.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았나??”
“응? 뭐가??”
“천만홍의 검기가 그를 덮쳤을 때 말이다. 처음엔 그저 천만홍의 검기가 그를 완전히 뒤엎는가했는데, 그 순간 바로 검기가 튕겨 나오며 전세가 역전되었어. 그 결과 천만홍은 기절한 채 실려 갔고, 진흑창은 지치긴 했지만 걸어 나갔지. 나에겐 그 마지막 한 수가 단순히 힘으로 밀어내 이겼다고는 보이지 않는데······.”
“자네도 그런가? 사실 나도 그렇네.”
“······.”
헐크G와 태사향의 대화를 듣다가, 원륭이 입을 열었다.
“아마 그럴 거다. 진흑창의 그 절기에는 회전의 이치가 가미돼있으니까.”
““회전의 이치??””
헐크G와 태사향이 동시에 물었다.
“그래. 회전의 이치. 무(武)란 기술에는 다양한 이치가 깃들어있지. 유(柔)의 이치, 강(剛)의 이치, 심지어 예리함의 이치나 폭발하는 이치도 있네. 그 와중에 유나 강만큼이나 자주 사용되면서도 막상 제대로 사용하기 힘든 게 회(回)의 이치지.”
“회의 이치라······.”
“가령 묻지. 저잣거리의 삼류 무림인이 익히는 육합권에서조차도, 회의 이치는 깃들어있네. 주먹을 내뻗을 때 주먹을 비틀고, 허리를 비틀고, 그 외 온갖 근육을 비틀며 가동시키라 이르지. 하지만 말이야, 그러한 이치를 제대로 지키는 자들이 있나??”
“······.”
헐크G와 태사향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확실히 그런 무림인들은 거의 드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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