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0 아비규환의 홍콩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의 반대 시위에 화염병이 등장하는 등 홍콩 사태가 날로 격화되자 중국 주요 매체들은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으로 인해 홍콩 경찰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며 마지노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한편 시위대가 공항을 점거하여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중국의 관영매체인 환구시보의 기자가 납치되어 구타당한 일도 발생했다.
이에 중국 측 언론 등은 이를 테러로 규정하며 심각하게 비판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이를 정당화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홍콩의 강경파들의 주장은 이랬다.
“환구시보라면 중국의 나팔수가 아닌가!!! 중국의 입장만 그대로 옮겨 적는 놈들이 무슨 기자인 것인가!!! 구타당해도 싸다!!!”
한편 오히려 이를 경계하는 온건파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기자를 납치해서 구타하면 안 되지!!! 그러면 우리가 중국이랑 뭐가 다른가!!! 중국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도 우리는 반박할 도리가 없다!!!”
실제로 중국이 이번 사건 등을 빌미로 하여 시위대를 점점 압박하고 있기에 온건파 시위대들도 싸잡아 비난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위대의 대응이 격해질수록 홍콩 경찰의 탄압 역시 가혹해져갔고, 그럴수록 다시 시위대의 저항도 거세져만 갔다. 악순환이었다.
홍콩의 시위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의 증시에도 영향을 줄 정도였으며, 홍콩 노동국장은 홍콩의 시위가 하반기 실업률 상승에도 크게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홍콩이 세계적인 금융허브의 지위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계속해서 쏟아졌으며, 캐리 람 행정장관은 시위대가 홍콩을 멸망의 심연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난을 하였다. 그러나 홍콩 시위대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애초에 홍콩인인척 하며 중국의 시녀가 되어 홍콩을 팔아넘긴 자가 누구냐!!! 바로 그 마녀가 아니냐!!! 캐리 람, 그 마녀!!! 캐리 람 행정장관은 양심이 있으면 사퇴를 하라!!!”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와 범죄인 인도법 철회는 시위대가 요구하는 가장 큰 사안이었다.
그러나 홍콩 및 중국 정부는 절대 그 안을 수용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시위대에 비난을 퍼부었으며, 언제라도 공안과 무장경찰부대 등을 투입할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아마도 세계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미 병력을 투입하여 시위대를 싹 쓸어버렸을 것이다. 천안문 사태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였다.
-1989년 천안문, 아무 일도 없었다.
역설적인 이 말은 중국이 천안문 시위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을 죽여 그들의 입을 막은 데서 비롯되었다.
한편 8월 17일 강경파 시위대들은 홍콩 전역의 은행들에서 현금을 전액 인출하여 은행을 파산시키는 뱅크런을 시도하였다.
홍콩은 세계적인 주요 금융센터였기에 만약 이 같은 운동이 성공하였다면 홍콩 은행의 신용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을 것이라 분석되었으나, 시민들의 호응이 없어 실패했다.
극단적인 강경파 그룹이 아닌 일반 시민들은 이런 방식의 투쟁에 대해 짜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홍콩 시위의 여파는 다른 나라에까지 뻗어나가서, 호주에서는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친중파 시위대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조차 생겼다.
친중파 시위대들은 호주 방송국의 취재진까지 공격을 하여, 홍콩의 강경파 시위대들과 같이 극과 극은 통한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중국의 언론 매체들은 오히려 이런 친중파 시위대들의 모습을 두고 유학생들이 타국에서 뜨거운 애국심을 보여주고 있다며 칭찬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역시 그 나라에 그 국민들답군. 유학생들이 타국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는데 이것들을 애국심이라 부르며 칭찬을 하고 있다니. 괜히 중국인들이 타국에서 이상한 취급을 받는 게 아니야. 중국인들은 전 세계의 암이다.”
한국에서도 중국인들은 행패를 부려대고 있었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홍콩의 현황을 알리는 대자보 등을 마음대로 훼손했고,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비난했다.
이를 두고 한국인들은 대자보를 훼손한 중국인 유학생들을 비판을 했다.
“남의 나라에 왔으면 예의를 갖출 것이지 대체 뭐하는 짓이냐!!! 그것도 유학을 온 대학생들이 자국의 공산주의 정권의 열렬한 추종자 노릇을 하며 진실을 외면하기만 하다니!!! 남의 나라에 왔으면 그 나라에 대한 예의부터 갖춰라!!!”
본래부터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제주도의 중국인 땅 투기, 중국인이나 조선족 등에 의해 일어나는 각종 범죄, 그 외 중국인들은 시끄럽고 더러우며 이기적이라는 인식 역시 어느 정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중국인 유학생들의 행동은 더욱 더 중국인들을 싸잡아 욕먹게 만드는 이유가 됐다.
더군다나 사드 사태라든지 그로인한 한한령, 더 나아가서는 조선시대나 그 이전부터 중국에 당한 침략의 역사 때문에 중국이라고 하면 일본 이상으로 눈에 불을 켜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학가에 걸린 홍콩 해방의 현수막은 절단이 됐고, 어떤 대자보는 찢겨진 채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모두 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한 짓이었다.
한국 내 중국인 유학생들의 수는 대략 7만 명으로 추산되었고, 그들은 중국인 특유의 열렬한 소속감을 드러내면서 타국에서도 열심히 자신들의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애국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면 자신들이 유학 온 나라의 국민들의 정서라든지 기타 감정들을 고려하지도 않았으며, 홍콩 시위에 대한 지지 집회가 열리면 일제히 몰려가 ‘하나의 중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방해하기도 했다.
사실 이미 2008년에도 당시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중국의 인권문제를 지적하는 시위대에 대해 중국인 유학생 수천 명들이 몰려와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큰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렇듯 타국에서도 눈치를 보지를 않고 폭력행위까지 불사하는 중국인 유학생들로 인해, 한국인들의 중국인들에 대한 감정은 계속해서 안 좋아져만 갔다.
한편 8월 1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는 정체불명의 무리들이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넘어오는 것이 목격됐다고 보도를 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홍콩과 인접한 중국 선전 시에서 20대에서 40대의 남성들이 10~20명씩 무리를 지어 홍콩으로 오고 있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식별을 하기 위해서인지 흰옷에 같은 색의 손목 밴드를 차고 있다고 보도되었는데, 옷 색깔이라든지 하필 이런 시국에 그런 차림으로 무리를 지어 본토에서 넘어오는 것을 보고 그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 관련된 자들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위안랑 역에서 일어난 무차별 테러사건 등을 비롯해, 홍콩 각지에서 흰옷을 입은 남자들에 의한 폭력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온라인상에서는 중국 복건성 지방에 거주하는 자들이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 본토인들을 돕기 위해 홍콩으로 넘어올 것이라는 소문조차 돌고 있었다.
그 외 중국인 무장 경찰이 이미 투입돼 시위대들에 대한 강경진압에 나서고 있다는 소문 역시 돌았으며, 아예 인민해방군 번호판을 탄 차량이 시위 현장에서 목격되었다는 둥 각종 썰이 난무하고 있었다.
어느 게 사실인지, 어느 게 거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각종 소문과 소문, 그 와중에 진정한 진실이 일부 소문에 숨어들어 은밀하게 나돌고 있었다.
한편 송환법 반대를 위해 투쟁을 벌이는 강경파 시위대들의 행동이 너무나도 과격해, 그들 중에 중국의 프락치들이 숨어 일부러 시위를 더욱 과격화하고 있다는 이야기조차 나왔다.
한편 한국은 중국과의 중개무역을 위해 홍콩을 통해 많이 거래하고 있었는데, 홍콩의 불안정한 정세에 의해 한국의 무역 역시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왔다.
한국은 특히 2019년에 일본 측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무역에 악영향이 생겼고, 제1교역국인 중국과의 무역 역시 사드 사태 이후 한한령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본 상황이었기에 그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사드 사태 이후 암암리에 한한령은 해제가 되어 무역은 다시 회복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입은 피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중국인이나 중국 정부는 홍콩이나 티벳 문제 등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한국인들이 적지 않은 수준으로 공공연히 반중정서를 드러내고 있었기에 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중국인들 중에선 한국을 소국 취급하며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야 되겠냐, 라는 거만한 생각조차 하는 자들이 은근히 있었기에, 한국의 그런 움직임이 그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았다.
8월 14일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는데, 계속되는 중국과 홍콩 정부의 경고에다, 정말 자칫 잘못하면 중국의 인민해방군 등 정예 병력이 투입되어 시위대들을 쓸어버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계속해서 제기되자 시위대들은 중국에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우산을 쓰고 평화시위를 강조하며 시위를 진행하였다.
시위대가 이렇게 평화적인 시위를 전개하였기에, 홍콩의 정세는 한층 나아졌다.
중국과 홍콩 정부가 무력 개입할 명분이 사라지고 있었고, 중국 정부 역시 홍콩 시위가 또다시 격화되지 않는 이상 강경책으로 진압하지는 않을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허나 이 사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8월 24일 홍콩 경찰은 시위대의 퇴로를 막아버렸고, 이에 불안감을 느낀 시위대, 그리고 일부 과격파 시위대가 다시 한 번 불을 붙이면서 폭력시위는 재개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위가 다 폭력적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유화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려던 시위가 다시 한 번 암초를 만난 것은 분명했다.
계속해서 일부 과격파 시위대가 쇠파이프 등을 들고 폭력을 휘둘러대자, 홍콩 경찰은 이날 처음으로 물대포를 출동시켰다. 그리고 실탄조차 사용하였다.
탕!!!
“!!!”
“!!!!!!”
시위대들은 물러섰다. 그들은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들에게 휘둘러대고 있었는데, 그 중 어떤 경찰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져버렸다.
그대로 두면 동료가 넘어진 채로 집단구타 당할 일은 뻔한 사실이었기에, 경찰들은 실탄을 허공에 발포를 하고 권총을 겨누어 시위대들을 물러나게 했다.
이것은 3개월 동안 이루어진 홍콩 시위 중 처음으로 실탄이 사용된 사례였다.
실탄과 물대포의 사용에 경계를 한 시위대들은 근처 건물 등에 피신했다 흩어져버렸다.
그러나 개중에는 다시 또 진출을 했다 체포되는 자들도 발생했으며, 시위대가 이동할 것이란 첩보를 받은 경찰이 어떤 쇼핑몰에 들이닥쳐 평화롭게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던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불심검문하는 바람에 쇼핑몰은 난장판이 되었다.
이 시민들은 정말로 시위대와 무관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경찰들에 항의를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한편 8월의 마지막은 정말로 아비규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불붙은 도로, 방화를 저지르는 과격파 시위대들을 향해 경고사격을 하는 경찰, 최루탄과 물대포가 난무하는 도심. 한편 특공대가 투입돼 지하철역에서 시위대들을 체포를 했다.
“이거 놔!!!”
퍽!!!
시위대의 일원이 부르짖었으나 경찰특공대는 그 남자를 방패 및 곤봉으로 후려쳐 끌고 가 버렸다.
한편 시위대의 일원 중 권총을 소지한 자들이 발견되었는데, 홍콩은 일반인 총기소지가 금지되어 있었고 그걸 떠나서라도 대부분의 시위대들이 평화적인 시위를 전개하고 있는데 그렇게 권총까지 들고 화염병마저 던지는 시위대들은 100% 프락치로 의심되었다.
궁요의 보고를 듣고 진흑창은 일어섰다.
“우리가 나서야겠군······.”
진흑창을 따라 홍콩 무림인들도 일어섰다. 그들이 나설 때가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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