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리브 더 데블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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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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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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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1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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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2화 우리가 그 멍청한 마을이야…….

DUMMY

그 후로 해골마는 자신을 구해준 네드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리고 네드는 눈밭에 푹푹 빠지는 해골마의 다리가 신경이 쓰였다. 저대로 두면 머지않아 또 설원 속에 파묻힐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네드는 두 손바닥을 비벼 해골마의 다리를 비롯해 갈비뼈 안쪽까지 양털을 채워주었다. 덕분에 해골마는 눈 속에 파묻히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해골마가 안전하게 눈 덮인 설원 속을 움직일 수 있으니 네드가 그에게 제 갈 길 가라며 손짓도 하고 눈뭉치도 던져봤지만, 해골마는 그런데도 우직하게 그의 뒤를 쫓았다. 아무래도 인간보다 보폭이 훨씬 넓을 텐데, 네드의 보폭을 맞춰주면서까지 말이다. 게다가 조금이지만, 네드의 말도 알아듣는 듯했다.


“갈 데가 없는 거야?”


네드가 물으니, 해골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은 어디에 있어?”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앗, 미안. 괜한 걸 물었네.”


해골마는 주인인 듀라한의 행방을 모르니 고개를 저었을 뿐이었지만, 네드는 주인이 죽었다고 오해를 해버린 것이다. 괜히 머쓱해진 네드가 헛기침할 때였다.


설원 저 멀리서 눈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만히 그 구름을 보고 있던 네드는 그 눈구름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니, 그것은 네드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눈구름 가운데 검은 점이 있었는데, 점점 다가오며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반응한 네드가 소리쳤다.


“고, 곰이다! 해골마야, 뛰어! 어서!”


곰이 눈밭을 헤치며 네드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네드는 해골마가 무릎을 굽혀 등에 태워준 덕분에, 재빨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뻔'했다.


“아직도 쫓아오고 있잖아!”


말을 타고 달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곰과의 거리는 멀어지기는커녕 더 가까이 좁혀지고 있었다. 거친 곰의 숨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울리는 듯했고, 그 발톱을 휘두르면 네드의 머리와 몸이 아쉬운 작별을 고할 터였다.


검은 곰이 높이 뛰어올라 해골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해골마가 깜짝 놀라 앞발을 들어 허공에 발길질하자, 그대로 네드는 눈바닥 위로 떨어져 버렸다. 눈구덩이 위로 푸른 하늘이 보였고, 곧 곰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곰이면 얌전히 겨울잠이나 자고 있을 것이지! 왜 하필 겨울 한복판에 일어나서 내 앞을 가로막는 거야!’라고 속으로 불평하던 네드는 곰이 침이 떨어지는 아가리를 벌리자, 두 눈을 꼭 감았다.


“······곰 발톱 테디.”


곰이 말했다.


“곰 발톱 테디라고 놀린 벌이다.”


곰은 금세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고,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긴장이 풀린 네드는 실크의 얼굴을 보고 목놓아 울음을 터트렸다.


“으허허헝, 잘못했어요. 마왕형······.”


자신을 형이라 부르는 네드를 보고, 실크는 그가 귀여워 코를 살짝 집고 흔들었다. 하지만 잠깐이었을 뿐, 금세 실크의 얼굴은 굳어져 진지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 너를 절실하게 찾고 있던 참이었다.”


“예? 저를요?”


당황한 네드가 되묻자, 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투스의 마나홀 이식은 성공적이었다. 미겔은 눈을 떼지 않고, 마나홀을 옮기는 의식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쾌한 볼거리는 아니었지만, 달리 갈 곳이 없기도 했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면 소란스러운 어린 루가루들이 맞을 테고, 의식에 방해가 될 게 뻔했다.


투스는 예리하게 날이 서 있는 작은 칼로 루가루 장로의 마나홀을 꺼내어 실크에게 이식을 했는데, 반나절 정도 회복기를 가지자 두 사람 모두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다.


“실크, 몸은 어때?”


미겔이 물었다.


실크는 가볍게 몸을 움직이다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움직이는 데는 이상이 없지만, 기운이 없다.”


“도련님, 그래도 체력적으로 힘들 테니 움직이지 마시고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투스가 도구를 정리하며 말했다.


반면 루가루 장로는 인간이 되어버린 제 손을 쥐었다 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숙부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장로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허탈한 듯이 말했다.


“피부가 부드러우니 어색하군. 그리고 후각이 둔해지고 눈도 침침해졌어.”


“······죄송합니다.”


실크가 미안해했지만, 루가루 장로는 콧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 않아. 인간이 되어 도망친 루가루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그렇습니까.”


실크는 말을 고르며 겨우 꺼낸 한마디도 자신이 없었다.


“숙부님, 만약 제가 마왕성을 되찾는다면······. 마족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곳으로 떠나 정착할 생각입니다. 그때, 루가루들도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조카의 제안을 들은 루가루 장로는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 봤다. 천장에는 덩굴줄기가 서너 가닥 내려와있었고, 덩굴잎 사이사이마다 거대한 반딧불들이 있었다. 호박빛의 이끼가 자라며, 질 좋은 황토가 진탕된 바닥. 루가루들이 이곳을 떠난들, 이만한 다른 곳을 찾을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떠나야겠네만. 안 그래도 루가루들은 환경에 민감하다 보니 확답은 못 주겠네.”


“그렇습니까.”


실크는 여러 번 묻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별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당장 같이 떠나지 않아도 새롭게 정착할 곳에서 루가루들이 살만한 곳을 물색한 다음 데려오는 것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투스 영감님이 계시니 당분간은 인간들의 눈을 속이며 버틸 수 있으니까.”


미겔이 의견을 냈지만, 투스가 일갈하며 그 의견을 뒤로 물렸다.


“허튼소릴!”


투스는 큰소리를 낸 탓인지, 피가 섞인 헛기침을 뱉었다.


실크가 말했다.


“영감은 너무 햇빛 없이 오래 살았다. 하루빨리 황무지로 돌아가야 해. 길은 우리가 알고 있으니 어서 황무지로 돌아가자.”


한쪽 무릎을 굽힌 투스는 지팡이에 모든 체중을 싣고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가쁜 숨으로 겨우 한 글자씩 이어 말하는 투스는 곧 쓰러질 듯, 아득한 정신을 겨우 붙잡고 있었다.


“바깥은······. 이 늙은 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춥고 쓰라리답니다. 저는 이미 마음의 정리를 했어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렇게 도련님을 보니 기뻤습니다.”


실크는 당장 병석에서 일어나, 투스를 부축했다.


“동료 중에 추위를 막아주는 마법사가 있다. 네드, 그러고 보니 네드는 어디에 있지?”


투스는 오랫동안 집도한 의식 탓에 남은 기운마저 태워버렸는지, 비틀거리다 쓰러져 버렸다.


“투스!”





“족장님은 지금 안 계세요.”


아폴이 매튜와 엘렌을 알아보고 빈 대장간에서 종종발로 나와 말했다. 황무지는 햇빛을 가려줄 구름 한 점 없어 겨울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뜨거운 곳이었다. 마을 주변에 세운 거대한 바위들은 강한 태양 빛을 받으며 아지랑이가 올라오고 있었고, 풀 한 포기도 자라질 못하는 건조한 바람 탓에 숨을 쉴 때마다 목이 까끌까끌했다.


큼큼거리는 기침을 하고 엘렌이 말했다.


“그러면 슈네트 족장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알고 있니?”


용광로에서 뿜어지는 열기를 손등으로 가린 엘렌이 묻자, 아폴은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결국 ‘어차피 마왕님의 지인분들이시고, 알려드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아폴은 “저쪽.”이라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시면, 화산지대가 나오고, 온천장이 하나 있어요. 그곳에 인간 마을이 침입했고,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직접 나가셨죠.”


이어서 자신의 할머니를 두고, 아폴은 이렇게 평가했다.


“인간들이 요즘 마족들을 몰아내고 서로 앞다투며 마계를 차지하려 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을 두고 뭐라 하는 건 아니지만, 할머니는 인간들의 마을이 보이기만 하면 분을 참지 못하시고 그 위에다 쇳물을 던져버릴 분이세요.”


매튜와 엘렌의 머릿속에 쇳물을 뒤집어쓰고 타오르는 그래스호퍼의 기착지가 그려졌다. 물론 슈네트의 호방한 성격이야, 자신들이 겪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교섭이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희 할머니를 찾으러 오신 거예요? 두고 가신 물건이 있으세요? 아니면 제작할 물건이라도······?”


아폴이 부부의 속도 모르고 환하게 웃었다.


매튜가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이지, 정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다. 인간들이 이 근처 황무지에 마을을 세운다고 하면······. 물론 족장님이 노여워 하시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 대신 인간들이 족장님께 무엇을 드려야 마을에 쇳물을 던지지 않으실까?”


어린 아폴은 매튜의 속마음도 모르고 가볍게 말했다.


“으음······. 마을을 건설한 인간 중 절반의 목숨일까요? 농담이에요! 하하하! 설마 이 근처에 마을을 세울 멍청한 인간들이 어디에 있겠어요! 리저드맨이 아닌 이상, 말라 죽겠다는 얘기밖에 더 돼요? 설마 생긴다고 해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으니, 농사 자체가 불가능한걸요! 저희야 지하에서 이것저것 캐는 기술이 있다지만 말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주변에 생길 인간 마을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요.”


매튜가 두 눈을 찡그려 감고 말했다.


“우리가 그 멍청한 마을이야······.”


“옛?”


“우리 마을이 이 근처에 터전을 닦고 새로운 마을을 세울 계획이야.”


그제야 말실수를 깨달은 아폴이 허둥지둥하며 어떻게든 무마하려고 애썼다.


“그, 그렇군요! 그러면 뭣이냐. 여러분들이라면 안면도 트여있고······. 그러니까 할머님도 다시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던 아폴이 만약 자신이 할머니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인간들의 마을이라면 할머니는 그 마을을 내버려 두실까?


“사실 그래도 할머니는 용광로를 집어 던지실 분이에요. 이건 변함없어요.”


“그 어떤 거래를 해도?”


엘렌이 묻자, 아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떤 보석을 바치셔도 할머니는 고개를 돌릴 분이 아니세요. 무기, 식량, 정보, 지위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인질이 걸려있어도 직접 창을 들고 뛰쳐나가실 분이지, 타협하는 분이 아니세요. 그래서 저희 종족이 족장님으로 모시는 분이죠.”


아폴이 당당히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지만, 부부는 벌써 가슴께에 바위가 눌러앉은 기분이었다. 매튜는 한숨을 삼키고 말했다.


“어쩌겠어. 이러나저러나 직접 부닥쳐봐야 알겠지.”


아폴은 눈가의 비늘을 쓸어 먼지를 털어냈다.


“추천하지 않지만요······. 사실 포기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래도 할머니의 마음을 돌리고 싶으시다면······. 할머니는 화산지대로 가신 김에 온천에서 일주일 정도 계실 테니, 거기까지 가는 지도를 드릴게요.”


아폴이 창고로 들어가 지도를 찾기 시작했다. 정리가 안 된 장비들이 우당탕 넘어지고 구르는 소리가 났다. “전 괜찮아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매튜는 엘렌에게 말했다.


“온천이라 하면 저번에 얘기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그 뭐야 눈 하나에 몸집이 큰 마족.”


남편이 자신의 말을 기억해주자, 엘렌은 반색하며 답했다.


“내가 말했던걸 기억해준 거야? 기뻐라! 맞아, 키클은 가끔 나랑 연락하는 사이야. 아마 아폴이 말한 온천이 키클이 운영하는 온천일걸? 언젠가 한번 오라고 편지에 쓴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려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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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29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2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2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0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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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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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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