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리브 더 데블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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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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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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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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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당신을 용서할게요.

DUMMY

미겔은 떠나려는 스탕달의 발걸음을 잡았다.


“그 문장, 당신은 마족과 계약했군요! 그것도 왕국의 후작인 신분으로!”


“네 녀석······!”


“소매에 달린 프릴로 가려질 줄 아셨나요? 당신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치부가 들키지 않을 줄 아셨어요?”


줄리엣과의 계약을 모욕당하자, 스탕달은 불같이 화를 내었다.


“치부? 감히 치부라고 말했나!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스탕달은 무심코 장전하려다, 머스킷이 미겔을 상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단 걸 뒤늦게 깨닫고 내팽개쳤다. 대신, 그는 꼬질대를 펜싱 칼을 쥐듯 굳게 잡았다.


“잠깐. 저는 마족의 계약 탓에 이렇게 언데드가 되었는데, 왜 당신은 멀쩡하죠?”


“질문은 끝났나?”


스탕달은 쇠막대로 미겔의 비어버린 눈구멍을 향해 꽂아 넣었다. 쇠막대는 그대로 미겔의 두개골을 때렸고, 그 충격으로 그의 머리는 멀리 뒤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미겔의 몸이 부서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두 팔은 스탕달을 움켜잡았다. 머리가 없이 움직이는 그의 해골 몸은 기괴하게 꺾이며 스탕달을 위협했고, 결국 스탕달의 발목을 잡아 바닥에 메쳐버렸다.


“답을 들어야 질문이 끝나지요. 전 아직 답변을 듣지 못했어요.”


미겔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며 제 몸으로 돌아왔다.


“왜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지, 대답해 줄 생각은 없다.”


그런데 스탕달이 답하지 않은 대답이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크르르릉.”


쫓아냈던 놀 떼들이 모이며 두 사람을 에워쌌다. 놀 떼들이 미겔의 해골 따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놀들의 목표는 스탕달의 살가죽에 이빨을 박아넣는 것이리라.


설상가상으로 스탕달은 미겔과 싸우느라 머스킷마저도 던져버린 후였다. 몇몇 놀들이 머스킷에 관심을 가지고 냄새를 맡는 듯했으나, 화약 냄새 탓에 코를 풀고 지나쳐버렸다.


반전된 상황에서 협상테이블의 주인을 차지하게 된 미겔이 스탕달에게 말했다.


“어떻게,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이쁜 짓 하면 살려는 드릴 텐데요.”





리저드맨의 마을에 남아있는 이들은 실크와 크리스티안, 그리고 매튜 부부뿐이었다. 쓰러져있던 오스먼드는 그들이 잠시 한눈을 팔았을 때 사라져버렸고, ‘생각 있으면 말해줘, 친구들아.’라고 적힌 쪽지를 두고 갔다. 어떻게 연락할지 방법 같은 건 적어두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렇게 적어놓고 사라져버렸다.


실크는 놀 떼를 해결하기 위해 설원에 남았던 미겔을 다시 만나서, 그대로 마왕성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는 아폴이 꾸려준 배낭을 챙기고 마을을 떠나려 했다. 이미 해는 너울져 넘어가고, 곧 어두워질 시간이었다.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이 야심한 시간엔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그건 미겔도 마찬가지입니다.”


매튜가 실크에게 경고했지만, 실크는 이미 출발할 준비가 끝나있었다.


“그 해골 녀석이 지껄인 말은 마음에 담아두지마, 자존심을 깎아서 지갑을 열게 하는 상술이니까.”


실크는 품속에서 오스먼드의 계약서를 꺼냈다. 그 계약서에는 실크의 날인이 적혀있었다.


“너, 너 인마! 내가 한 말은 귓등으로 들은 모양이지! 그게 뭔 내용인지 정말 이해를 못 해서 그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제 방식입니다. 제겐 배신하는 부하 따윈 없습니다.”


매튜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그래. 네 인생 네가 살겠다는데 내가 무슨 훈수를 두겠냐마는······. 그만큼 각오가 되었겠지?”


“물론입니다.”


실크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엘렌이 실크에게 말했다. 그녀의 은신은 날이 가면 갈수록 은밀해져 갔다.


“우리는 기착지에 대한 거래가 끝나지 않아서, 계속 이 근방에 머무를 생각이야. 생각나면 가끔 들러줘.”


엘렌이 떠나려는 실크의 옷매무새를 여며 찬 바람을 막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호호! 사모님이라니, 어색하게 왜 그래.”


민망해진 엘렌은 실크의 등을 두들겼다.


“실크라면 뭐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난 그렇게 믿어.”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출발해 보겠습니다.”


“그래, 몸조심하고.”


엘렌은 실크가 마을을 떠나자,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저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저런 시커멓게 다 자란 아들이 있다면······, 든든하겠지.”


매튜도 동의했다.





실크의 뒤로 크리스티안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아닌척해도, 실크의 보폭에 자신의 속도를 맞추고 있었다.


“크리스티안, 너는 네 갈 길을 가라. 굳이 나를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


크리스티안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냥, 방향이 얼추 맞는 것뿐이에요.”


“그래도 이 저녁에 출발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마족은 오히려 밤에 활동하기 좋은걸요.”


크리스티안의 끝나지 않는 말대꾸에 실크의 질문도 그쳤다. 한동안 침묵이 길어지자, 크리스티안이 물었다.


“있잖아요.”


“듣고 있다.”


“아까 한 말 진심인가요?”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제겐 배신하는 부하 따윈 없습니다.’라고 했어요.”


크리스티안은 실크의 속을 들여다 보려 했다. 그는 타고난 전사의 기질이 있어 겉과 속이 같은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그 목적이 너무나 명확해 보이지 않는 때도 있었다. 가령 실크는 속일 생각이 없었지만, 크리스티안이 그를 믿을 수 없어 스스로 속이는 경우였다. 지금 크리스티안이 그런 상황이었다.


“음, 그 말 그대로다. 만약 부하가 나를 상처입혔다 해도 무슨 뜻이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잘못된 군주 밑에는 회초리를 꺼낼 충신이 필요한 법이니까.”


크리스티안이 넌지시 말했다. 크리스티안은 실크의 곁에서 그의 표정을 살피려 했다.


“정말로 배신하려 하는 부하가 있었다면요?”


“그런 이는 없다.”


“아뇨, 있어요.”


크리스티안은 확신을 두고 말했다. 어찌나 확고하게 말했는지, 실크가 걸음을 멈추고 크리스티안을 봤을 정도였다.


“전쟁 내내 아군의 위치를 인간들에게 알려주는 배신자가 있었어요. 저는 믿을 수 없었지만, 아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줄리엣이 그런 일을 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의외의 대답에 크리스티안이 까무러치게 놀랐다.


“예? 알고 계섰다구요?”


“줄리엣이 두 명이더군. 하나는 결정석에 봉인되어있고, 다른 하나는 오비디언을 꼭두각시처럼 다루며 루가루 숲을 불태우려 했었지. 그전까지는 심증만 있었지만, 며칠 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도 줄리엣에겐 이유가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선대 마왕의 이름이 나오자, 크리스티안은 놀람을 넘어 경악했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도 태연할 수 있는 실크의 담력에 학을 뗄 정도였다. 크리스티안의 부드럽게 흐르던 슬라임은 감정에 영향을 받았는지, 표면이 굳어버렸다.


“오비디언을요? 아니 어떻게?”


“글쎄, 나는 거기까지는 잘 모른다.”


“글쎄라뇨? 지금 말씀하신 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알긴 하시는 거예요?”


실크는 짧은소리만 내었다.


“흐음.”


“전쟁으로는 부족해요! 그저 마계와 테스널 왕국 간의 문제가 아니란 말에요! 정말로 모든 생명······! 많은 것들의 생명이 달린 문제란 말예요!”


크리스티안의 혼이 쏙 빠지며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실크가 말했다.


“크리스티안. 그대는 오비디언, 선대 마왕을 어떻게 생각하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폭군이죠.”


크리스티안이 팔짱을 꼈다. 두 손으로 두 팔을 붙들고 있으면 떨림이 멈출 줄 알았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렇군. 그는 다크엘프를 거의 멸족시키고, 그에 못지않게 다른 마족들에게도 가학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왜 전투력이 현격히 낮은 내가 나타나자마자, 저항하지 않고 물러났을까? 그가 원한다면 내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나를 죽일 수 있었다. 아주 손쉽게.”


크리스티안이 듣고 보니 그랬다. 오비디언이 원했다면 실크의 쿠데타가 일어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결처형은 물론, 나아가 루가루의 멸족을 선언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물러난 거야. 어째서인지 아직도 모른다. 그 후로부터 ‘왜?’라는 질문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며 괴롭히고 있었다.”


실크는 대검을 바닥에 꽃이 기댔다. 잠깐이나마 얼굴에 올랐던 열기가 찬바람에 식어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





머리에 새싹이 피어난 오스먼드는 마왕성 지하 보물창고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가위가 들려있었고, 새싹이 자라 나뭇가지가 될 때마다 그것을 자르고 있었다.


오스먼드가 직접 다중 마법진으로 감싼 지하 보물창고는 뛰어난 마법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드래곤이 나타나더라도 마법진을 해제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해제하더라도 수십 년은 족히 걸릴 게 분명했다.


강력한 봉인으로 보호받고 있는 물건은 다름 아닌 마왕의 검이었다. 오비디언이 마왕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을 바닥에 내리꽂고 사라진 이후로 그 칼을 뽑은 자가 아무도 없었다.


실크조차도 말이다. 그는 쿠데타 직후 마왕이 되었지만, 마왕을 상징하는 검을 뽑을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오스먼드가 직접 그 검을 숨겨놓은 것이었다.


오스먼드는 자신이 걸어놓은 마법진을 헤치며 들어가, 마왕의 검을 손에 쥐었다. 손잡이를 잡자마자 검게 타오르는 스파크 탓에, 오스먼드의 해골 팔이 재가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실크와 레오나, 어느 쪽이 이 검을 뽑게 될까요······.”


금방 마력으로 팔을 재생시킨 오스먼드는 한동안 마왕의 검을 바라보다 그 곁을 떠났다. 그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나뭇가지만 떨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얼굴에 올랐던 열이 식은 실크는 못다 한 말을 이어 말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는 그저 자신이 없는 마계를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마왕의 검을 봉인해두고 사라지면, 무능한 후대 마왕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꼴을 모든 이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거겠지. 그러면 마족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옛 마왕이 지배하던 그때 그 시절이 좋았어.’라고.”


이야기를 듣는 크리스티안은 오스먼드가 좋았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실크에게 불만을 가진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소수의 마족은 오비디언을 그리워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오비디언이 두렵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나는 오비디언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실크는 크리스티안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그녀에게 조금 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믿는 것이 옳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이미 결과가 나와 있지 않은가.”


실크는 전쟁의 피해가 채 사라지지 않아 황폐해진 마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마왕의 검을 뽑아줄 새로운 마왕을 찾고 있다. 그때까지 잠시 내가 자리를 맡았을 뿐이지. 만약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난 언제든지 물러날 준비가 되어있다.”


반응이 없는 크리스티안을 두고 실크가 떠나려 하자, 크리스티안이 뒤늦게 말했다.


“물론이죠, 그때까지는 실크님이 유일한 마왕이에요.”


한숨을 쉬고 크리스티안이 이어 말했다.


“당신을 용서할게요.”


놀 떼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이 그때였다. 사냥감을 찾았으니 집합하라는 울음소리는 실크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미겔은 놀 떼를 막기 위해 홀로 남겨졌었다.


실크는 바닥에 꽂았던 검을 다시 뽑아 들어 소리의 방향을 찾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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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29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2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3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0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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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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