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리브 더 데블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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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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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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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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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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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DUMMY

매튜와 엘렌은 그래스호퍼가 습격당했다는 전갈을 받자마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마을은 무너졌어도, 부상자는 적었다. 그러나 올란이 말해준 건 그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뭐? 거츠 그 녀석이 왕이 된다고?”


하지만 더더욱 믿을 수 없는 얘기는 따로 있었다.


“뭐? 보드카는 무사하다고! 얼른 좌판이라도 깔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올란, 자네 아버지였다면 벌써 반쯤 타버린 나무판자로 테이블을 만들어서 술을 팔았을 거야! 바텐더인 주제에 이런 데서 인색하게 술을 아끼기는! 그래서 자네가 시비스터에서 살겠다고 뛰쳐나갔을 때 아무도 말리지 않았지! 결국, 봐봐라. 몇 년도 못 채우고 꼬리를 말고 고향으로 돌아왔잖냐. 아버지의 술을 반의반만이라도 닮아봐라. 내가 그때 그 맛을 아직도 못 잊어서······!”


“그땐 자네도 어려서 술을 마시지 않았잖아!”


매튜는 입술을 샐쭉 내밀어서 괜히 발음을 뭉개며 말했다.


“아니야, 마셨어. 딱 한 잔. 몰래. 훔쳐서.”


주위를 둘러보던 매튜가 웃음기를 지웠다. 그가 끌고 온 마차에는 당장 쓸만한 물자들이 가득했다.


“일단 마계에서 끌어모을 수 있는 물자란 물자는 전부 긁어왔어.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뭐야?”


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옆이 숲이니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 하지만 역시 식량이 문제군. 저장해둔 곡식들이 다 젖어버렸어. 그리고 썩어가고 있지. 아무리 보드카가 무사하다고 해도 배는 채워야 할 게 아닌가. 게다가 이듬해 수확 철까지 식량다운 식량을 기대할 순 없을 거야. 다른 마을에서 물자를 유통해야 해. 문제는 이게 우리 마을만의 사정이 아니란 거야. 바로 옆의 모스 마을도, 시비스터도 비슷한 처지라고. 그래서 식량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도 크지, 결론적으로 값이 오를 거란 얘기야. 그나마 시비스터에서 용사라는 사람이 나타나 괴물을 해치웠다던가.”


“용사?”


매튜는 곧 레오나를 떠올렸다. 그녀를 환영으로나마 잠깐 본 게 전부였지만, 절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검을 들 것 같은 인물은 아니었다.


“아니, 마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여검사가 아니고, 네드 말이야. 양치기 네드. 이 이야기도 빼먹고 말 안 할 뻔했구만.”


“뭐? 네드가 용사가 되었다고?”


“그래! 자네랑 갔던 네드가 별안간 이상한 기사랑 작은 아이 그리고 시커먼 용병이랑 돌아왔었는데, 갑자기 용사가 되어서 거츠랑 같이 가버렸어.”


올란이 설명하는 걸 듣던 매튜는 어렵지 않게 투스를 위해 드래곤의 뿔을 꺾으러 간 파티원들임을 알았다.


‘내가 리저드맨의 마을에서 지낼 때, 도대체 일이 어떻게 꼬이고 설킨 거야?’ 매튜는 생각했다.





매튜가 마을 친구들한테 갔을 때, 엘렌은 따로 빠져나와 자신들의 집을 찾아갔다. 물론 부부의 집도 예외 없이 괴물의 습격을 받아 박살 나 있었다.


엘렌은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기껏 설리반이 가꾸어준 위층이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결혼 기념 선물로 집안에 정원을 가꿔주었는데, 이젠 그 흔적들만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엘렌은 용케 남아있는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곱게 나뭇잎으로 쌓여있는 상자였는데, 나뭇잎이 습기와 한파를 막아준 듯 상자에는 약간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분명 설리반의 마법이었다.


상자를 여니 쿠키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잼이 들어있는 쿠키, 버터가 반죽이 된 쿠키, 눌러 구운 곡물이 박힌 못생긴 쿠키까지. 그리고 쿠키와 함께 편지 한 통이 들어있었다.


설리반이 지나가던 중에 잠깐 들렀지만, 부부가 모두 외출 중이라 선물만 두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엘렌?”


때마침 그녀의 등 뒤에서 설리반이 엘렌을 불렀다. 엘렌은 설리반을 따라오는 커다란 호두가 있는걸 봤지만, 그녀는 식물을 잘 다루는 인물이니 대수롭지 않았다. 엘렌은 얼굴에 화색을 띠고 설리반을 반겼다.


“설리반!”


“엘렌! 보고 싶었어!”


설리반이 단 걸음으로 달려와 엘렌의 품에 안겼다. 엘렌이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말했다.


“여긴 어쩐일이야? 임무가 있어서 몇 년 동안 바쁘다고 얘기하지 않았어?”


“그건 그런데, 잠깐 짬이 생겨서 쿠키를 구워왔었어, 이제 슬슬 떨어질 때가 됐잖아. 그런데 엘렌은 없지, 덩달아 마을도 텅텅 비었지. 나는 역병이라도 돈줄 알았어. 이번에는 엘프의 땅으로 돌아가는 중에 한 번 들려봤어. 이번엔 집마저도 무너져 있구나······.”


설리반은 폐허가 된 그래스호퍼를 둘러보다 말했다.


“엘렌, 여기서 벗어나야 해. 여긴 위험해. 곧 큰 재앙이 닥칠 거야. 이런 붕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랑 함께 가자.”


엘렌은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묻지 않을게. 하지만 나는 여기에 있을 거야.”


“엘렌!”


“설리반.”


설리반이 다그치듯이 말했지만, 엘렌은 완고했다.


“아마 설리반이 그런 말을 한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어. 그리고 설리반과 매튜가 날 구해준 건 언제나 감사해하고 있어. 나는 설리반이 살아남을 걸 믿어 의심치 않으니, 나는 내 남편인 매튜를 지켜야 해.”


엘렌의 시선 끝에는 언제나 매튜가 있었다.


“저 꿈으로 부풀어있는 멍청이를 두고 내가 어떻게 떠나겠어? 같이 떠나려 해도 그이는 이 마을을 두고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이왕 온 거 차라도 한잔······, 아차 집이 무너졌구나.”


설리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나는 한시 빨리 가야 해서 먼저 실례할게.”


“그래, 나중에 또 보자.”


마을을 떠나는 설리반은 엘렌이 보이지 않는 거리까지 멀어지자, 혼잣말로 다짐했다.


“정신 차려야지.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





네드는 순식간에 시비스터의 유명인이 되어 가는 곳곳마다 그를 반기는 시민들로 기분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는 마지막 거인 하나까지 제압해 무력화시킨 성과를 인정받고, 뒤이어 거츠의 즉위식에서 얼굴을 비춤에 일약 용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흐흐, 흐!”


네드는 입에서 저절로 흐르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그의 흥을 깬 건 예술가연합 소속의 테너 가수였다.


“인제 그만 왕성으로 가야 합니다. 준비하시죠.”


“당분간 여기에 있으면 안 될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곳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사람들이 용사님께 원하는 것이 계속 늘어날 겁니다. 아무래도 건물 등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인력이 하나라도 아쉬울 테니까요.”


“어차피 나는 용사인걸? 내가 벽돌을 옮기는 하찮은 일을 할 것도 아니고, 자잘한 몬스터도 용병이 적지 않으니 그들이 해치워 줄 건데 걱정할 게 뭐가 있겠어?”


이야기를 듣던 거츠도 나서서 네드를 달랬다.


“네드. 예술가연합이 현실감각은 떨어져도, 상황을 읽는 능력은 우수해. 이래 봬도 정보 길드니까. 그러니 그들의 충고를 새겨 들어야 해.”


거츠에게 호되게 혼이 났었던 벽화공이 아직도 꽁해있는지 빈정거렸다.


“······칭찬해주신 거죠? 고맙네요.”


하지만 네드는 사람들의 환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거츠 아저씨. 아저씨도 어제까지 사과나 따던 농부였잖아요? 가끔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지 않겠어요? 왕이니까 후궁들을 물색하는 것도 좋을 테죠. 이번에 죽었다던 바크만 국왕도 후사가 없어서 멀리멀리 돌아 아저씨한테까지 왕관이 왔다잖아요.”


소파에 누워서 포도알을 집어 먹으려던 네드는 집었던 과일을 도로 떨어트려 버렸다. 거츠가 네드를 소파 채로 뒤집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거츠의 핏줄에 흐르는 수은이 빠르게 요동쳤다. 아직도 거츠는 엘라이자를 잊지 못했는데, 다른 여자를 찾으라는 말이 그를 화나게 했다. 그는 새파래진 낯빛으로 한 글자씩 또박 말했다.


“제가 왕으로 있는 한, 모든 국민이 수치심을 아는 국가가 될 겁니다. 그런데 저런 녀석이 용사라구요? 웃기는 일이죠. 그러니 저런 망나니는 두고 가겠습니다.”


예술가협회들은 그런 네드를 두고 거츠를 따라 저택 밖으로 나가 버렸다. 네드는 입술을 샐쭉 내밀어 불만을 표시했지만, 어차피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정신을 차린 실크는 오스먼드가 누워있는 자신의 몸 위에 올라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일어나셨나요, 달링?”


“······.”


오스먼드는 메이드 복을 입고 있었다. 실크가 뭐라고 말할까 단어를 고르고 있을 때, 오스먼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포탈을 열었다.


“정말, 내가 설산에서 죽어가는 달링을 찾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고맙지만, 달링이라니······. 그만두었으면 한다. 나는 그런 농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튼 말이죠,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마왕님께서 마나홀을 되찾는 거로 부족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거죠. 실례의 말이지만, 마왕님은 역대 다른 마왕님과 비교해서 턱없이 약하십니다.”


“그 말인즉슨······.”


“예, 마왕의 검을 쥐셔야 합니다.”


실크는 겨우 상체를 일으켜 고쳐앉았다. 방금까지 얼어있던 몸이라 뭉쳐있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실크는 자신이 약하단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슈네트가 만들어준 대검이 얼마나 무겁고 예리한들, 마왕의 검과 견줄 수 없었다. 마왕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검에는 역대 마왕의 힘이 깃들어있어, 세대를 더해갈수록 강한 마력이 쌓이는 마검이었기 때문이었다.


실크는 그 거대한 마력을 다룰 수 없었다. 오비디언을 쫓아내고 마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오비디언이 바닥에 꽂은 마왕의 검을 쥐는 일이었다. 손잡이를 쥔 실크는 그대로 이성을 잃어버렸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오스먼드가 겨우 실크를 제압하고 검을 봉인시켜둔 뒤였다.


“더는 뒤로 미룰 수 없습니다. 실은 마계 전쟁 때 진즉에 드렸어야 하는 검이었는데, 그때는 아군이 다칠까 봐 드리지 못했지요.”


“그대의 말이 맞다. 내가 약했기에 내 주변의 동료들을 지키지 못했지. 더는 도망칠 수도 없다.”


“그럼 각오가 된 거로 알겠습니다.”


오스먼드가 메이드복을 벗고 포탈 너머로 보이는 결계를 가리켰다. 포탈의 너머는 마왕성의 지하였다. 실크는 누워있던 온천 위에서 일어나 포탈을 넘어갔고, 결계 앞에 섰다.


결계는 복잡한 마법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스먼드가 손가락으로 휘휘 젓더니 봉인이 허물어졌고, 마왕의 검의 모습이 나타났다.


검은 박혀있던 바닥에서 뽑지 못해 벽돌 채로 봉인되어 있었는데, 오랫동안 실크를 기다린 듯 케케묵은 흙먼지만 쌓여있었다.


오스먼드는 몇 걸음 뒤로 빠지며 마나홀을 쥐고 실크가 검을 집길 기다렸다. 그가 검의 마력에 잡아먹히거나 검을 제어하는 데 성공해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것이다.


실크는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순식간에 물밀 듯이 넘쳐흐르는 마력 탓에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는 걸 간신히 붙잡았다. 눈동자가 하얗게 타버리기 시작한 실크는 조금씩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강하게 박혀있던 마왕의 검도 차츰 헐거워지며 뽑히기 시작했다.


스르릉.


콰광!


그때 마왕성의 벽면을 부수고 레오나가 난입했다. 레오나는 오랫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탓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앞의 마왕의 검을 보고 의지를 불태웠다.


“그으, 으으.”


실크는 넘쳐나는 마력 탓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각자의 검을 쥔 마왕과 용사 사이에 말은 필요 없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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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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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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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7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4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0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6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4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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