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리브 더 데블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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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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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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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1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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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DUMMY

오스먼드는 마왕성의 홀에 뚫어놓은 아공간에 제물들을 몰아넣었다. 그 후, 아공간의 문을 닫고 마법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기다리며 성을 지키는 일이었다.


마왕성 안은 적막했다. 그가 마법진으로 결계를 쳐둔 덕분에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이가 아니라면 침입할 인물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평범한 사람들에겐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성의 홀에는 마왕이 앉는 왕좌가 있었다. 오비디언과 실크가 앉았고, 레오나도 그 자리에 앉았었다. 지금 그 왕좌가 오스먼드 앞에 있었지만, 그는 앉지 않았다.


대신 오스먼드는 곧 세상을 구하기 위해 들이닥칠 용사들을 기다리며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생각을 마친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조리실이었다. 조리실은 예전에도 들러봤지만, 오랫동안 비어있던 탓에 먼지가 딱딱하게 굳어 앉아있었다. 청소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어느 가정집 부엌의 주방 도구를 빌리기로 했다. 그는 화로에 불을 지피고, 그 위에 깊이가 있는 팬을 올렸다.


아크리치는 오랜만에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몸이 된 김에, 따듯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만든 요리를 먹기로 했다.


팬의 바닥에 토마토 페이스트를 깔고, 가지와 주키니 호박과 피망, 그리고 양파 등을 썰고 향신료에 버무려 졸이듯 볶았다. 그 정도로도 충분했지만, 오스먼드는 만족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처음 맛보는 음식이었기에 조금 더 정성을 쏟기로 했다.


그는 팬을 치우고 물을 채운 냄비를 올렸다. 그 안에는 흙을 씻어낸 감자가 들어있었는데, 오스먼드는 삶아진 감자를 무심코 맨손으로 집었다가 화상을 입을 뻔했다.


“아차차, 오랫동안 해골로 살아서 잊어버릴 뻔했어. 손가락은 원래 화상을 입는 거였지.”


그는 찬물에 감자를 식히고, 껍질을 벗겨내었다. 그래도 아직 속은 뜨거웠다. 포슬포슬한 감자를 으깨니 열기가 올라왔다.


오스먼드는 으깬 감자에 우유를 섞었다. 이제 완성이었다. 라따뚜이와 매쉬 포테이토. 그가 옛날 옛적에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었다.


요리를 한동안 보고만 있던 그가 첫술을 떴다.


와장창!


“세상에! 마왕성을 통째로 인간 마을에 날려버리다니! 도대체 제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그 뻔뻔한 낯짝이 있다면, 당장 내밀어 보라고요! 아주 으스러트려버릴 테니까!”


크리스티안이었다. 그녀는 탄성 있는 몸으로 시비스터까지 날아왔는데, 느닷없이 마왕성이 떡하니 서 있으니 믿을 수 없어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그녀가 육중한 무게로 성안을 울려대니, 애써 만든 오스먼드의 요리 위에 천장에 쌓여있던 먼지가 내려앉아 버렸다.


결국, 오스먼드는 들었던 수저를 도로 다시 놓았다.





오스먼드가 불만에 차서 머리를 긁으며 홀에 다시 돌아오자마자, 크리스티안이 그를 공격했다. 모든 관절을 꺾어버리고 뼈를 부술 것처럼 조여오는 슬라임은 설리반의 덩굴과 비슷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하나는 슬라임은 덩굴보다 벗어나기 힘든 것이었다. 덩굴은 비틀면 틈이라도 생길 텐데, 슬라임은 그런 틈새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오스먼드를 죽일 생각은 아니었는지,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버리는 정도에 그쳤다.


“크리스티안, 포옹이 과한 것 같지 않아? 우리 헤어진 지도 얼마 되지 않았잖아.”


“당신 눈에는 아직도 장난으로 보이나요? 벨라, 시작해요!”


벨라는 잠재우는 포션의 마개를 열었다. 그녀는 오스먼드의 꿈속으로 넘어가, 마법을 취소시킬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포션이 그의 코밑에 다가오자 오스먼드가 경고했다.


“내 머릿속을 함부로 보려 하지 마. 종족 마법을 취소시킬 방법도 없으니까.”


하지만 오스먼드는 곧 약에 취해 잠에 빠져 버렸고, 벨라는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꿈 포탈을 열었다. 벌써 꿈 포탈의 반대편에서 풀과 피가 섞인 냄새가 진득하게 풍겨왔다. 게일이 호기롭게 말했다.


“준비됐어. 들어가자구.”


스탕달은 멀미로 반실신한 상태라, 꿈속으로 들어가는 건 벨라와 게일 둘뿐이었다. 벨라가 게일에게 주의를 주었다.


“절대로 보이는 어떠한 것도 공격하거나 만져선 안 돼요. 꿈속이니만큼 변화무쌍한 곳이니까요. 현실의 관념과 상관관계가 어긋나있는 곳이에요.”


“그럼 내가 따라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내가 걸림돌이 될 텐데 말이지.”


“······가보면 알아요.”


벨라는 게일의 질문에 대충 얼버무렸다.





벨라와 게일이 넘어간 곳은 퀘퀘한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 동굴이었다. 풀과 피 냄새가 났던 것이 무색하게, 동굴 안은 간간이 박쥐 우는 소리가 났을 뿐이었고 매우 캄캄했다.


벨라가 꿈의 주인공인 오스먼드를 찾으려 움직였을 때, 게일이 그녀를 저지했다.


“잠깐, 소리가 들려.”


분명 희미하게 돌을 긁는 소리와 함께 훌쩍이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이는 동요를 부르는 듯했지만, 갈라진 목소리 탓인지 음정은 무시하고 박자만 남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쉬어버린 목소리 탓에 가사도 뭉개져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가볼까?”


“안돼요. 아까 제가 말했잖아요. 현실의 관념으로 생각하면 안된다구요. 저런 건 십중팔구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일 텐데, 보통은 저게 가장 강력한 악몽이니까요. 아니지, 잠시만요. 흠.”


벨라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게일의 등을 두들겼다.


“생각해보니 군단장님께서 먼저 가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아무쪼록 잘 부탁드려요.”


“오히려 그렇게 말하니까 수상한데. 나에게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러자 아이의 읊조림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고, 돌을 긁던 소리도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내려찍는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그 탓에 게일이 한껏 투정 부렸다.


“무서워! 무섭다고! 내가 아무리 죽음을 끌고 다니는 듀라한이라고 해도 말이지! 저렇게 광기 넘치는 걸 내가 무슨 수로 감당하라는 거야?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야? 벨라!”


“서큐버스라고 해도 감당할 수 있는 꿈이 있고, 없는 꿈이 있는 법이에요. 뒤틀린 아크리치의 악몽보다 단순무식한 듀라한의 꿈이 쉬운 게 당연하잖아요? 잠깐 군단장님은 악몽을 보게 되겠지만, 제가 곁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동안 저는 마법을 취소시킬 방법을 찾을게요.”


아이의 소리가 들리는 쪽의 지반이 점점 밑으로 꺼져가고 있었다. 발을 잘못 디뎠다간 그대로 암흑 속으로 미끄러져 버릴 것 같았다. 마치 개미지옥 같은 모양새에 벨라가 게일의 허리를 살짝 밀자, 듀라한이 그 가운데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내려갔다.


“벨라! 으악! 으아악!”


게일의 비명은 뒤로하고 벨라는 오스먼드의 정보를 허공에서 끄집어 올렸다. 아크리치라는 이름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정보량이었다. 벨라는 그 중 마법에 관련된 자료만 추리기 시작했다.





레오나가 어린 루가루들을 데리고 리저드맨의 마을에 다다랐을 때, 마을은 어수선해 바빠 보였다. 괜히 그 상황에 용사가 나타났다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예상되어, 레오나는 멀리 떨어져서 손을 흔드는 두 아이를 보고만 있었다. 호세도 따라 손을 흔들며 아이들을 배웅했고, 아쉬운 듯 말을 꺼냈다.


“투스라는 분은 명망이 깊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저렇게 어린아이들도 그를 걱정하는 걸 보면요.”


레오나는 피가 배어 나와 붉게 물든 투스의 피부를 기억했다. 그의 눈은 오로지 마왕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물론 보호막이 쉽게 허물어졌을지언정, 그가 절대 나약한 인물이란 뜻은 아니었다.


레오나는 무감각하게 말했다.


“적어도 신념은 있던 인물이었지.”


호세는 답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꾸준히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루가루의 모습으로 변하신 거예요?”


“······가 싫어서.”


레오나가 말을 흐리자 호세가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레오나가 짜증 섞인 말로 대꾸했다.


“따라올 거야? 말 거야? 허튼소리만 늘어놓을 거면 떼놓고 갈 거야.”


“알았어요. 따라갈게요, 따라갈 거라고요.”


호세는 잰걸음을 뛰어 앞서간 레오나의 곁으로 갔다.





겨울 항구에선 레오나에게 익숙한 냄새가 풍겼다. 가죽과 기름, 어느 창고에서 묵어있던 먼지 냄새. 그리고 구석에 방치되어 썩어가는 해초 비린내. 후각이 예민해지면서 일부러 코를 들이밀지 않아도 맡을 수 있었다. 레오나는 그것들의 냄새뿐만이 아니라 맛도 알고 있었다.


다소 찝찝한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시비스터는 그녀가 알고 있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일단 시비스터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하지만 상인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온통 난민들뿐이었다. 그들의 억양이 각자 다른 걸 보니, 물 건너 외국에서 온 사람들인 게 분명했다.


레오나는 길쭉한 주둥이를 가리기 위해 커다란 넝마를 둘러썼는데,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비슷비슷한 차림새였다. 다만 그녀와 다르게 난민은 불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서로 악을 쓰며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걸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특히 남자 둘이 마른 짚을 사이에 두고 서로 주먹다짐하다가, 인파 틈에서 나타난 도둑이 짚을 훔쳐 가는 꼴이 가장 기관이었다.


‘이래서 마족들이 인간 마을로 내려오지 않고 불쾌해하는구나.’ 레오나는 생각했다. 레오나가 인파 속에 섞여 상념에 빠져있을 때, 그녀의 곁에 있던 호세가 그녀의 넝마를 가볍게 잡아당기고 손가락으로 바다 쪽을 가리켰다.


“저, 저게 왜 여기에 있죠?”


호세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레오나도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계의 한복판에 있는 마왕성의 개척지에서 출발했는데, 미겔의 흔적을 뒤쫓아 시비스터에 도착하니 똑같은 마왕성이 세워져 있는 것이었다. 인간들이 무언가에 홀려서 새로 지은 것도 아니었다. 마왕성의 꼭대기엔 설리반이 피웠던 식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스먼드······.”


그녀가 아는 한, 이런 일을 벌일 자는 오스먼드 이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골리아투스 화산에서 홀로 떠나버렸을 때, 내심 그의 말에 공감한 바가 없지는 않았다. 그의 발언대로라면, 더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 이 마왕성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마왕성 안에 들어가 봐야겠어.”


“잠시만요, 우리의 목적은 미겔이란 분을 찾는 것이잖아요? 저 마왕성은 충분히 수상해 보이지만······.”


호세가 레오나를 말리자,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경고를 했다.


“이 얼치기가 하는 말이 옳아. 몸을 사리는 게 좋아.”


설리반이었다. 초록과 황금빛의 눈이 서로를 쏘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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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29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2 1 11쪽
»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3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0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4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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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7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4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0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6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4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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