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걸음-
명 림
-신의 나라-
33화
-새로운 걸음-
“토래님과 아차님은 이미 떠났습니다.”
바위가 얼빠진 얼굴로 서 있는 부야를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
“어디로?”
“모르겠습니다...만...잘 살라는 말씀을 전하라고만 하셨습니다.”
“젠장!”
부야는 말을 매어둔 곳으로 달려가 고삐를 하나 풀어 올라타고 이내 달려 나가버렸다.
정말 아차와 겨루어 다시 그런 꿈을 꾼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태 꿨던 꿈들과는 달리 신농계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내가....스승님을?”
부야는 말을 몰아가며 꿈을 다시 되짚어 생각하고 있었다.
‘스승님은 분명 동부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렇다면....스승님을 먼저 만나보고, 북부로 가야겠다.’
부야는 달리던 말을 세웠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배...고프다....”
말머리를 돌려 바위족으로 다시 들어갔다.
바위가 가장 먼저 놀랐고, 이어 다른 아이들도 놀라 쳐다보았지만,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말에서 내린 부야가 걸어가 불 위에 굽고 있는 고기 덩어리를 뜯어 입에 물고, 다시 말에 올라 가버렸다.
얼빠진 얼굴로 아이들은 부야를 보고 있었다.
알유를 찾으려면 북부로 가야했다. 북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중부를 지나가는 길이 가장 빨랐다.
갈림길에서 다시 말을 세웠다.
오른편으로 가면 동부로 가는 길이고, 왼편은 남부로 가는 길이었다.
중부로 가려면 남부의 성을 지나서 가야했기 때문에 부야는 신농계를 만나러 동부로 갈 것인지, 아니면 곧바로 알유를 잡으러 갈 것인지를 두고 반시진이나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차피 스승님은 또 말씀해주시지 않겠지!’
부야는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
“우리도 떠날 준비를 하자!”
백고의 말에 아이들 모두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떠나? 어딜? 왜?”
초리가 물었다.
“노비상 벽개창이 달아났어. 놈들은 또 올거야. 여긴 이제 위험하니 북부로 간다!”
“북부는 왜?”
“북부의 국경 너머에는 선비족이 있어. 선비족은 우리 고구려와 가까운 사이니 그들로 인해 위험한 일은 없을거야.”
“사실 우리가 다른 나라 때문에 힘들었다기 보다 다른 부족의 침입 때문에 더 힘들었잖아.”
날새가 말했다.
“솔직히...여차하면....고구려를 완전히 떠나 선비로 가서 살까 해!”
백고의 말에 아이들은 모두 또 놀랐다.
“이 나라에 혹시 미련이라도 있는거야?”
백고가 아이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럴 리가..우린 고형이 가자는 대로 갈거야.”
거벙이의 말에 백고는 환하게 웃었다.
결정이 난 상황에서 더 지체할 필요는 없었다. 필요한 물건들을 남는 말 등위에 나눠 실었다.
“짐이 왜 이렇게 많아? 다 버리자!”
바위가 타박을 하자 초리가 성질을 냈다.
“뭐야? 다 필요해! 밥 먹을 때 그릇 필요하지~잘 때는 이불도 필요하지~비오고 하면 움막 지을 거적때기도 필요하잖아! 이것들 모두 우리가 어떻게 마련한 살림들이야? 이런 산중에서는 구하기도 힘들단 말야!”
바위는 머리를 긁적이며,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가는 길에 동부를 거쳐 가는 것은 어때? 거기서 필요한 것들을 더 사도되잖아.”
돌이 말했다.
하지만 백고는 동부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돌의 말도 일리는 있어서 딱 잘라 거절 할 수도 없었다.
“동부로 가면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바위가 말하자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다 컸는데! 설마...”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특히...고형님은...”
바위가 조금이라도 생길 위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침묵했다.
“그럼...북부성으로 가지 뭐~”
풀이 말하자 아이들은 그러면 되겠다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백고는 씁쓸하게 웃었지만,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에 별 말 하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야 아이들과 사람들은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처음 노비상인들에게 구출한 사람들 육십 명에서 작은 부족에 들렀을 때 일곱 명만 따라왔기에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 나마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 중 가장 나이가 어린아이는 열셋의 여자아이였다. 부모들이 모두 죽고 혼자 남았는데, 초리와 풀이 잘해주어 따라온 것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진타’였다.
그 외 사람들은 남자 넷, 여자 둘이었는데, 삼십대 남자 박기, 질태 와 사십 대 남자 방기, 여자는 이십대의 지려, 삼십대 말년이었다.
지려는 하얀 조약돌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한 번씩 떨구었는데, 말년이 뭐하는 것이냐고 묻자 그냥 버릇이라고만 말했다.
가는 동안 조금씩 쉴 때마다 백고는 사람들에게 활쏘기와 탄궁, 검술을 가르치라고 바위와 날새에게 시켰다.
바위족이 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한다고 했다.
특히 진타가 매우 적극적이었다.
부모님을 죽인 원수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이유였는데, 백고가 보기에는 복수는 안했음 싶었다.
유달리 눈이 큰 진타는 하루 종일 바위를 비롯한 날새와 돌, 초리를 쫓아다니며 무예를 가르쳐 달라고 졸라댔다.
그래서 인지 다른 사람들보다 실력 향상이 빨랐다.
***
선선히 부는 바람이 상쾌했다. 토래와 아차는 광통을 나온 이후 이렇듯 자유로운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다만 걱정인 것은 두 거구를 태운 말들이 얼마나 버텨줄 까였다.
예상대로 얼마 못가 말들은 휘청거렸고, 하는 수 없이 말에서 내려 끌고 걸어가야 했다.
그렇게 타고 달리다 말이 지치면 내려서 걸어가길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지긋지긋한 부야도 없고, 한 동안 말없이 두 사람은 바람을 느끼며,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가고 있었다.
‘인창’에 닿았지만, 들르지 않았다.
그대로 지나쳐 곧장 남부의 성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달붕을 고발한다고 남부성의 고추대가가 들어줄까요?”
아차가 물었다.
“모르지...그래도 가서 만나봐야지~”
“만약 들어주지 않으면 어쩝니까?”
“음....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우리를 도와줄 다른 부족을 찾아보든지 아니면...우리 둘이 광통을 쳐들어가든지...”
“예? 우리 둘이요? 광통의 전사들을 상대로요?”
토래는 농담을 했지만, 아차는 진지하게 받아쳤다. 그 모습이 웃겨 토래는 입 꼬리를 올렸다.
“노비상인들을 보니 용병들을 고용해서 다니던데, 우리도 용병을 살까요?”
아차가 말하자 토래는 장난스럽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광통의 대 전사를 상대할 만한 용병을 사려면 못 사도 오만 명은 사야한다. 돈은 있느냐?”
“아...”
아차가 머리를 긁적였다.
“......남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다른 큰 부족에 가서 도움을 청해볼 까 싶다. 몇 군데 다녀보면 의로운 부족하나쯤은 있지 않겠느냐?”
“예....만약 없으면요?”
아차의 말에 토래는 눈을 감고 입술을 오므렸다.
“없으면....가장 어렵고 쉬운 방법이 하나 있지.”
“무엇입니까?”
“내가 신의 힘을 완전히 회복해! 혼자 가서 광통으로 가서 달붕을 잡는다!”
“아....신의 힘....그때 보았던 백골부대를 끌고 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음, 그렇지! 그런데...”
“예?”
“어찌 불러내는지 모르겠다. 신의 힘을 어찌해야 회복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
토래는 피식 웃었다.
방법은 모르지만, 알 만한 사람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전에 만났던 이부에게 물어볼 걸 후회도 했지만, 그땐 부야도 옆에 있고 해서 경황이 없었다.
토래는 호현에 대한 응징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우선 광통을 먼저 찾은 후에야 가능 할 것 같았다.
지금은 다른 생각하지 않고, 광통을 되찾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인창을 지났으니 이제 곧 남부였다.
“부..부야는요?”
아차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부야는 잊어라.”
토래가 단호히 말하자 아차는 더 묻지 못했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보고 가는데, 멀리 매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저건...”
“왜 그러십니까?”
아차가 물었다.
“전서준?(傳書隼)”
토래는 시력이 매우 좋아 매의 다리에 묶인 작은 천조각이 보였다.
“저런 게 왜 근방을 날아다니는 것인가?....”
***
‘둥둥둥둥둥’
호현의 밤은 늘 시끄러웠다. 잡아온 사람들을 불에 넣는 의식은 매일 이루어졌고,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사람들은 광적인 몸놀림으로 흐느적거렸다.
대붕의 등 위에 올라탄 모가리는 두 팔 벌려 불에 타는 사람들을 향해 크게 심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열 두어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마지막으로 불 속으로 던져지자 모가리는 흡족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벌린 두 팔을 저었다.
힘없이 늘어났던 피부가 다시 탱탱해지며, 두 손에 붉은 기 덩어리가 스멀스멀 맺혔다.
“후아~이 느낌....”
“준(隼)이 도착했습니다.”
부족장 퉁차가 모가리의 뒤에서 납작 엎드려 있었다. 모가리는 돌아보지 않고, 이제 막 숨이 넘어가는 아이의 생기를 흡수하는데 만 집중하고 있었다.
“후아~그래~내용은?”
“찾았답니다.”
퉁차의 말에 모가리는 큰 소리가 웃어 제겼다.
“크하하하하하하하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지금 당장 국내성으로 가자!”
수십의 붕조들이 호현의 하늘을 빼곡히 날아올랐다.
<계속>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