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의 땅(2)-
명 림
-신의 나라-
156화
-요괴의 땅(2)-
“요괴의 땅?”
“이제 북부는 요괴의 땅이 되었습니다. 산 자들은 더 이상 살지 못하는...밤이면...요괴들이 들끓는....죽은 땅이 되었습니다.”
“...”
답부는 무슨 소린가 싶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만 벌린 채 그대로 서서 사람들을 쳐다만 볼 뿐이었다.
“낮이면...나가있다가...밤이 되면 우리는 이 안에 숨어 있습죠~젊은이도 낮에만 이동하고, 밤에는 적당한 곳에 숨어야 할 게요~”
노인의 말은 이어졌다.
“저런것들이 갑자기 왜 생긴거야?”
“연이어 땅이 갈라지면서 산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죠~살기 위한 사람들은 북부의 대성으로 가서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했지만, 고추대가는....그들을 모두 죽여버렸죠. 죽은 사람들을 산에다 마구 버렸고...그때부터....저것들이 생겨나 밤마다 돌아다니며.........살아 남은 사람들은 이 땅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동부로 황부로 내려갔지만, 밤이 되면 나타나는 저것들에게 또 죽고...여기 남은 사람들은 어차피 움직여 봐야 멀리 못 갈것이고...하는 수 없이 이렇게 밤이면...숨어 살아야 할 처지가 되고 만 것이지요.”
“.....살려달라는 사람들을....죽여?”
답부는 기가 찼다. 자신이라면 도와주지는 않겠지만, 굳이 죽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국내성의 대왕은 이 와중에 부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젊은 사내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가니...힘없는 우리들은 이제 먹고 살 걱정에...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도 같습니다.”
부여와의 전쟁을 한다는 소문은 남부에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 일반 백성들까지 쥐어 짜면서 까지 일 줄은 답부는 생각지 못했다.
“지금의 왕을 없애버리는 되잖아.”
답부의 꿈같은 말에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죽여줄게. 조금만 참아.”
“...”
‘아무래도 밖에서 저것들에게 당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그러게요~안됐어요~’
‘좀 안정되면 됀찮아 지겠지요~’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때 서서히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잦아 드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날이 밝았나 봅니다. 날이 밝으면 저것들은 사라지니, 이제 우리도 밖으로 나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답부는 사람들과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오두막에 걸어 두었던 통나무는 반쯤 부러지긴 했지만, 완전히 열리지 않았고, 오두막도 여기저기 부서지긴 했지만, 무너지진 않았다.
이른 새벽이라 밖은 어슴푸레 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천마와 답부가 어정쩡하게 서 있자 족장이 다시 다가왔다.
“먹을 것은 없습니다만...풀죽이라도 드실거면 이 늙은이의 집으로 가시지요.”
“아...그래.”
족장의 집은 반쯤 부서져 있었고, 그 곳을 나무로 대충 얼기설기 막아 놓은 상태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부서지지 않은 구석에 침상을 놓고, 작은 탁자 앞에 불을 지펴 지내는 듯 했다.
녹이 한 가득 쓴 쇠로 된 솥을 올려놓고, 그 아래 타다만 장작에 쇳돌을 부딪쳐 불을 지폈다.
솥 안에는 족장이 말한 풀죽이 들어 있었다.
말 그대로 풀죽이었다. 나무 뿌리와 마른 잎을 가져다 물과 함께 그냥 끓인 것으로 답부는 한 입 먹고, 토할 뻔 한 것을 겨우 삼켜야 했다. 배가 몹시 고팠으므로 뭐라도 먹어야 했다.
“아들놈이 다섯이나 있었지요. 마누라는 막내놈을 낳다 죽고~혼자 다섯 놈을 키웠는데...이제 장성해 이 작은 부족의 족장자리를 물려주려 했으나....모두 끌려갔소. 한 놈이라도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지만.....”
“살아남더라도 여기로 돌아오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데?”
“허허..그럴까요? 그렇습니다. 차라리 돌아오지 말고, 다른 좋은 곳에서 잘 살아도 좋지요. 다만...살아있다는 것 정도는 이 늙은 아비에게 알려만 준다면....그것으로도....”
노인은 구겨진 주름 사이에 박혀 있는 두 눈을 가늘게 내리 깔았다. 눈물이 살짝 비쳤으나 곧 닦아 낸 것을 답부는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
“목책은 무너졌고, 요괴가 아니라도 짐승들이 공격할 수도 있을텐데...”
“예, 사실 어제...옆집 아이가 늑대에게 물려 갔습죠~장정들이 없으니 여자 몇 명과 함께 찾아봤지만....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길 떠나”
답부는 어떤 무게도 실리지 않는 가볍게 말을 던졌다.
“떠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얼마 가지도 못하고, 곧 밤이 올 것이고, 그리되면 우리 모두...죽겠지요.”
“여기 있어도 머잖아 죽을 것 같은데? 부서진 목책하나 고칠 사람도 없어?”
“매일 여자들이 조금씩 고치고는 있지만, 곰이나 늑대들이 어김없이 나타나는 바람에 일에 진척이 나질 않습죠.”
답부는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어째...오늘 밤까지 머물다 가시려고?”
족장이 물었다.
“아니, 지금 가야지.”
“타고 다니는 말이 참 좋아 보입니다. 그래도 짐승들은 조심하십시오. 짐승들도 굶주려 매우 사납습니다.”
“토래가 있었다면, 저런 목책쯤이야 금방 고칠텐데...”
답부는 중얼거렸다.
“아악”
느닷없이 밖에서 여자비명소리가 들렸다.
얼른 내다 보니 건너 집으로 곰 한 마리가 작은 창에 얼굴을 쳐 박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집안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함께 들렸다.
“아이고, 저걸 어째~”
족장은 덜덜 떨며, 발을 굴렸고, 답부는 고개를 저으며, 길게 한숨 지었다.
그때 밖에 있던 천마가 곰에게로 휘적휘적 걸어갔고, 앞발을 들어 대가리를 창안으로 쳐박고 있는 곰의 엉덩이를 걷어 찼다.
엉덩이를 걷어 차인 곰은 내동댕이 쳐지다가 천마를 보고 으르렁 거리며 일어섰다.
“아이고, 저 말이 미친게요? 저더라 당하겠소.”
족장이 답부를 흔들었다.
“그러게, 말 주제에 미쳤네~”
답부는 문을 열고 걸어 나갔다.
곰이 상체를 들어 세우니 천마와 거의 눈높이가 같을 만큼 컸다.
그럼에도 천마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더 으르렁 거리며, 곰의 머리채를 이빨로 물어 뜯었고, 곰은 더욱 화가 나 앞 발로 천마의 목을 잡아 들어 던져 버렸다.
내동댕이 쳐진 천마는 벌떡 일어나 날아 올랐고, 그대로 두 발로 곰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머리에 구멍이 뚫린 곰의 머리에서 피가 터졌고, 천마는 머리를 숙여 등으로 곰의 복부를 쳐 올렸다.
허공에서 한 바퀴 돌다가 땅바닥에 거꾸로 쳐박혔던 곰은 다시 일어나 앞 발을 휘저으며 천마를 향해 달려 들었다.
“빠악!!”
답부가 천마 앞으로 달려 들어 철적으로 곰의 정수리를 냅다 후려쳤고, 곰은 그 상태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고 말았다.
“이봐~고기 생겼다. 이 놈 먹자!”
답부는 쓰러진 곰을 발로 툭툭 차며,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집안에서 보고 있던 여자들과 아이들이 얼굴만 밖으로 내밀고 내다봤고, 족장이 달려왔다.
“이...이 큰..곰을...한방에...대..대단하시오~말도...대단하고~와하하하하”
“가죽은 벗겨 입거나 덮고, 고기는 먹자! 당장!”
“예예예~”
여자들이 그제야 나와 곰의 몸에 칼을 들이 대며 가죽을 벗기고, 살을 잘라냈다.
그 자리에서 불을 지펴, 고기를 구웠고, 남은 고기는 얇게 저며 말리려고 꼬챙이에 꽂기바빴다.
얼마나 굶었던지 여자들의 손은 매우 빨랐다. 순식간의 거대한 곰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풀죽을 먹다가 고기를 먹으니 답부도 살 것 같았다.
여기서 답부와 사람들은 매우 놀랐는데, 천마가 곰 고기를 먹는 것에서 였다.
“이 놈, 고기를 먹냐? 말이? 말은 풀만 먹는 거 아냐?”
그러나 천마는 곰고기를 너무도 잘 먹고 있었다.
‘어째 내 주변에는 짐승이나 인간들이나 정상인 것이 없냐~’
답부는 천마를 한 껏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정오가 다 되어 갔다.
“밤은 금방 찾아옵니다. 세시진이면 주변이 어두워 지니..오늘밤은 예서 머물다 내일 아침일찍 떠나시지요.”
“...”
답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희들은 여기 있을거야? 정말?”
“예, 달리 갈 곳도 없고...우리들은 느립니다. 움직여봐야 얼마가지도 못합니다.”
아이들은 매우 어렸다. 갓난아기도 있었고, 많아 봐야 예닐곱 살이었다.
‘저런 애들을 데리고 정말 빨리 가지는 못하겠네.’
“그럼 기다려. 내가 북부로 들어가서 일 보고 돌아가는 길에 너희들을 데리고 동부로 가 주지!”
“예?”
“나는 동부의 조의 명림이다. 기억해라.”
“아...예~”
여자들과 아이들이 답부를 마치 은인 보듯 보자 답부는 은근 기분이 좋았다.
뿌듯함까지 들었고, 이런 기분은 또 처음이었다.
“그럼, 내가 돌아올때까지 살아있어!”
답부는 일어섰다.
“지금 가시게요?”
족장이 말렸지만, 답부는 천마의 등위에 이미 타고 있었다.
“빨리 가면, 오늘 밤이 되기 전에 대성에 도착할 것 같아서.”
“예, 그렇게 가깝지 않습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나흘은 되어야 도착할 거립니다.”
“이 놈이, 겁나 빨라!”
답부는 천마의 목덜미를 툭툭 쳤고, 천마는 화답이라도 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범상치 않은 말 같긴 하지만...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럼, 꼭 살아있어라! 알겠지?”
“예, 행자님을...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족장과 여자들, 아이들이 크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답부는 누군가에게 듬직한 존재가 된 것 같아 알 수 없는 책임감에 묘하고 신기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들을 멀리 하고, 천마는 다시 달렸고, 금방 산 하나를 훌쩍 넘을 수 있었다.
산을 세 개쯤 넘었을때야 정말로 답부의 생각대로 해가 완전히 지기도 전에 북부의 대성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처참한 광경에 넋을 잃고 서 있기만 했다.
대성의 주변으로는 나무들이 모조리 쓰러져 있었고, 군데군데 쌓여있는 사람들이 사체가 있었다.
그것들을 태우기 위해 대성에서 나온 말객들이 횃불을 들고 말 위에서 뛰어 다니는 모습이 보였고, 이미 불에 타고 있거나 이제 막 불을 붙이려는 사체들이 엄청났다.
“저게...국내성 다음으로 큰....성의 모습이냐?”
답부는 기가 막혔다.
그리고 수라가 이 부근에 있을 것이라 생각해 바로 대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시 밤이 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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