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시스의 삼엽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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걓디
작품등록일 :
2019.06.1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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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6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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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9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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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엽충이 되었다, 짠!

DUMMY

일단 충격은 받았지만 뇌가 삼엽충이라 그런지 금세 수긍하고는 일단 몸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그, 이세계 가는 이야기들 보면 어쩌면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그러던데 내 경우는 잘 모르겠다.


이왕 보낼 거면 하렘 판타지로 보내주지. 고생대 판타지는 좀 그렇지 않나?


젠장, 평생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삼엽충이 되다니. 정말 공룡을 연구했어야 했어.


하지만 그런 생각들도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았다.


생각한다고 된다면 자신은 이미 교수가 되어 있어야 하니까.


어쨌든 삼엽충이 되었다면 먼저 해야할 일은 정해져있다.


삼엽충의 몸을 관찰하는 것이다!



물론 고생대의 바다에 거울 같은 것이 있을 리는 없으니 일단 동료 삼엽충을 통해 관찰하기로 했다.


"삼엽! 삼엽!"


와, 몸 전체에 가시 같은 돌기가 나있는 삼엽충이다!


크,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저걸 학계에 발표해서······.


그렇게 멍하니 생각을 하는 중에 그 멋진 삼엽충이 다가와 몸통을 콱콱 밟았다.


"삼엽! 삼엽!"


뭔가 화가 많이 난 느낌으로 가시 돌기의 삼엽충이 자신을 밟더니 모래를 입으로 끌어모아 퉷하고 뱉고는 갔다.


아, 기분 나빴다는 의미겠지.



그래도 목표는 이뤘다. 꿈에도 그리던 삼엽충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화가 난 삼엽충은 상대를 발로 밟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굉장한 수익이잖아!


그 다음 지나는 삼엽충은 평범하고 밋밋한 생김새였다. 저런 녀석은 전혀 관심이 없다.


내가 살던 시대에는 널린 게 네놈이거든.


하지만 그 밋밋한 녀석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더니


"삼엽, 삼엽."


하고 말을 붙였다.


인사겠거니······. 하며 빙글 돌아 그를 피하려 했다.


"삼엽, 삼엽!"


그 밋밋한 삼엽충이 자신을 다시 불렀다.


설마 삼엽충 세상에도 포교가 있나? 아니, 종교는 있을 리가 없고.


"삼엽, 삼엽. 삼엽, 삼엽 삼엽!"


어째 조금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친근함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의미를 알기는 무리가 있었지만 나름대로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고.


"삼엽, 삼엽."


일단 아무렇게나 말을 해봤다. 내가 말을 했지만 난 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삼엽······. 삼엽?"


밋밋한 삼엽충의 표정이 보인 것 같았다.


아, 못 알아듣겠다고?


"삼엽, 삼엽."


그럼 이건 어떠냐?의 의미를 담아 조금 심한 욕을 했다.


그러자 의외로 밋밋한 녀석이 다시 대답했다.


"삼엽?"


아, 그렇지. 이 시대에 개는 없구나. 그 전에 포유동물도 없다. 현대의 욕이 통할 리가 없지.


"삼엽."


아무 것도 아니야. 라는 의미를 담아 그의 의문을 해소시켰다.


"삼엽, 삼엽."


싱거운 녀석이군. 이라는 의미라는 것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곤란하게도 이 삼엽충과는 친하게 지낼 것 같은 느낌이 드니 이 녀석은 「밋밋이」라고 불러야겠다.


"삼엽? 삼엽, 삼엽."


밋밋이라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라는 의미였다.


뭐야, 나도 밋밋한 녀석이야?


조금 실망이었다.


"삼엽······."


한숨을 내쉬자 밋밋이 녀석이 내 옆으로 와 돌기를 비볐다.


오호, 이것이 나름대로의 위로로군.


"쳇, 뿔 달린 녀석들 거만하기는 아노말로카리스만 등장해도 먼저 먹힐 녀석들이 말이야."


어째 익숙해졌는지 삼엽, 삼엽, 삼엽이라고 소리만 났지만 이상하게 뜻이 완전히 전달됐다.


익숙해지면 모든 것이 쉬운 법이지.


아니, 근데 아노말로카리스? 그거 학명이잖아!


"와, 아노말로카리스도 알아? 우리 밋밋이 되게 똑똑하네."


"너도 밋밋한 녀석이 자꾸 밋밋이라고 부르지 마. 그리고 아노말로카리스를 모르는 삼엽충이 어디 있어?"


하긴 이 시대 최고의 포식자를 모르면 생존은 어렵지.


"그 아노말로카리스를 한 번 보고 싶은데."


"와, 너 뿔 달린 녀석에게 말을 거는 걸 넘어서 이제 그 무서운 녀석들을 직접 보겠다고? 어지간히 미친 삼엽충이 아니었네."


"후후, 난 사실 고생물학 박사거든."


이세계물을 보면서 내가 간다면 꼭 이 말은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회심의 대사였다.


"고······ 뭐라고? 너 미친 걸 넘어서 이상한 녀석이었구나."


밋밋이가 조금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그래서 밋밋아 너는 오늘 밥은 먹었니?"


"네가 밋밋이라니까."


"너도 밋밋하잖아."


아차, 생긴 걸로 이름을 정한 것은 조금 실수였다.


"좋아, 그럼 넌 나를 선호라고 불러."


"선호?"


"내 이름이야."


"이름이 뭔데?"


"선호."


"아니, 이름이 뭐냐고."


"이름이 선호지."


"그렇구나 네가 이름이고 선호구나. 그럼 난 널 뭐라고 부르면 되는데?"


하, 불편하다. 고생대.


§


"뭐? 뿔 달린 녀석들이 뿔 없는 삼엽충을 지배한다고?"


"몇 번을 얘기하니? 우리 같은 뿔 없는 녀석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고."


아, 너무나도 슬프다. 현실에서도······. 아, 지금도 현실인가?


아무튼 나기를 잘 나면 높은 자리에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삼엽충들 사이에서도 거창한 뿔이 있으면 귀족 취급이군.


"어느 시대에나 귀족은 다 있구만."


"귀족은 무슨 말이야?"


"뿔 달린 녀석들."


"짧고 알아듣기 편하군."


밋밋이는 스스로를 그냥 밋밋이 아닌 잘 생긴 밋밋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지만 삼엽충이 잘 생기고 뭐고가 어디 있나.


그냥 밋밋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 귀족 녀석들 말이야. 아무 것도 없으면서 우리같은 뿔 없는 삼엽충들에게서 먹을 것을 빼앗아가고 그러는 건 정말 못 참아!"


"그럼 싸우면 되잖아?"


"뭐? 어떻게 나같은 일반 삼엽충이 귀족들을 상대로 싸울 수가 있겠어?"


밋밋이는 귀족이라는 말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금방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못 할 건 뭐야? 그깟 뿔이 뭐가 대수라고."


사실은 이 녀석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싶은 속셈이 조금 있었다.


삼엽충의 싸움은 과연 어떤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릴. 나 같은 뿔도 없는 녀석이 싸움이 될 리가 없잖아?"


"안 해보면 모르잖아."


밋밋이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럼 어떻게 되는지 보여줘?"


기다렸던 대답이다. 만세!


§


"와하하하. 이런 못 생긴 삼엽충이 이런 잘 생긴 삼엽충에게 결투를 신청하였군요!"


삼엽충이 잔뜩 모여 있는 벌판······. 아니면 아마도 연안인 것 같긴 한데.


어쨌든 모인 청중들은 밋밋이처럼 생긴 삼엽충 하나를 보고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뭐야? 싸우고 있는 거야?"


"너 여태 싸움을 본적이 없는 거야?"


두 삼엽충이 서로 가까이 붙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마치 자신이 더욱 멋지다는 듯이 멋져 보이는 자세를 취했다.


아, 둥글게 마는 거 말이다.


"겨우 저게 싸움이야?"


"겨우라니? 저런 멋진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에게 실례잖아!"


어디가 싸움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기 보라고. 저 삼엽충, 뿔도 없이 저런 멋진 뿔을 가진 상대에게 도전했어. 불쌍하게도······."


뿔을 가진 쪽은 마치 피노키오, 혹은 일본 요괴 텐구와도 같은 꼴의 뿔이 있었다.


그리고 양 옆에는 소의 뿔처럼 괴이하게 대각 앞으로 뻗은 뿔도 있었다.


"저런 뿔이 가장 멋진 뿔인가?"


"당연히 아니지. 삼엽충왕의 뿔에 비하면 저건 상대도 안 되는 걸?"


삼엽충도 왕이 있다니 오오, 세상에 이럴 수가.


"삼엽충왕의 뿔은 뭐랄까······.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느낌이야."


오호, 삼엽충도 꿈을 꾸나보다. 그런 고등한 뇌를 갖고 있다고는 생각 못 했는데.


"게다가 거대하기도 장난이 아니지. 그 무서운 아노말로카리스를 무려 세 마리나 잡은 위대한 분이라고."


싸움이 저렇게 둥글게 마는 것인데 아노말로카리스를 삼엽충이 잡는다는 것은 싸움과 생존 경쟁의 차이는 뭔가 다른 존재인 것 같다.


저렇게 둥글게 마는 것으로 아노말로카리스를 잡는다?


하하. 상상도 할 수 없지.


"네, 그럼 승부도 거의 기운 것 같으니 이제 다들 플랑크톤이나 몇 마리 하러 가시죠?"


제법 멋진 세 갈래의 뿔을 가진 삼엽충이 건들거리며 주변의 삼엽충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밝은 연안에 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그나저나 두번째 쓰면서 생각난 건데 아노말로카리스는 삼엽충의 멸종보다 먼저 멸종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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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삼엽충 이야기는 더 진행되기 어려울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19.11.25 33 0 -
공지 일하다 생각났습니다. 19.06.19 60 0 -
5 위기가 지나면 폭풍이 오는 법 19.09.16 38 3 9쪽
4 삼엽충 회의, 그리고 의지의 삼엽충. 19.08.03 64 2 8쪽
3 진정한 지배자의 등장 +2 19.06.28 56 2 8쪽
» 삼엽충이 되었다, 짠! 19.06.19 68 2 8쪽
1 시베리아로 간 고생물학자 +1 19.06.19 121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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