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이라고, 너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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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6.21 11:33
최근연재일 :
2019.11.2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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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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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13)

DUMMY

조명이 반쯤 꺼진 병원 어떤 사람의 출입도 반기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것에 어울리려는 듯, 홀로 책상에 앉아 경비 근무를 서는 아저씨의 인상이 대단히 험악했다. 솔직히 인상보다도 어마어마하게 큰 덩치가 더욱 눈에 들어왔지만.


“무슨 일이니? 면회 시간은 끝났는데.”


처음부터 몰래 숨어들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말만 잘하면 너를 만나게 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계획이라고는 ‘들어간다. 그리고 너를 만난다.’가 전부였다.


“그....”


전해줄 물건이 있다고 말할까? 아니면 까먹고 병실에 두고 온 물건이 있다고? 아예 사실대로 ‘곧 죽을 운명인 친구를 살려낼 방법을 찾았어요!’라고 소리치는 것만 제외하면, 어떤 방법이든 들여보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내가 이후에 취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무계획을 넘어 아예 막무가내로 돌진해버렸다, 라고 일기장에 적힐 나의 돌발 행동 말이다.


경비원은 굳게 입을 다물고만 있는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얼마 뒤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학생? 무슨 일 있니?”


나는 끈질기게 바닥만 내려다봤다. 머릿속의 두뇌 녀석은 끈질기게 ‘어떻게 할 건데?’라며 나를 재촉하기만 했고, 나는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대답을 아직 준비하지 못한 채였다.


그래서 경비원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걸어왔을 때, 나는 조명을 비춘 야생 동물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야 말았다.


그저 잡히지 않기를 바라면서, 경비원의 옆구리 쪽 빈 곳을 향해 몸을 던졌다.


“학생! 어이! 야!”


“죄송합니다!”


바닥이 미끄러운 탓에 모퉁이에서는 미끄러지기도 하고, 비상구의 조명뿐인 계단에서는 엎어지기도 했지만 ‘잡히면 끝!’이라는 생각 하나로 다시 일어났다. 일어나서는 또다시 달리고 넘어지고의 반복이었지만, 너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친절하고도 무서운 귀신처럼 내 발을 재촉했다.


.


“하악...404...404호....”


병동의 복도는 로비보다 밝은 편이었다. 그래서 네가 입원해있는 병실을 찾는 일은 쉬웠고, 드디어 찾아낸 ‘404’라는 글씨 앞에서는 운동화 밑창의 고무가 끼긱거릴 정도로 세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때 계단실에서 경비원의 거친 발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살짝 다리가 풀려버렸다.


이대로 넘어지기 전에, 너의 병실 문을 양손으로 밀어 열었다. 손목 인대가 늘어났던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체중을 실어서 있는 힘껏 밀었다.


“나 왔어!”


딱히, 반기는 인사말이라던가, 반가움의 손짓이라던가, 살면서 그런 것을 바란 적은 없다. 그래서 네가 매번 보여준 반가움이 나는 부담스러웠고, 그것을 배워나가면서 부끄러웠고, 이제는 필요로 하게 되었다.


나는 너에게 배운 목소리로, 내 생에 가장 큰 소리로 너에게 인사를 했고,


나의 인사는 닿지 않았다.


불이 꺼진 병실 전등 아래, 네가 보이지 않았다.


나를 반겨주는 건 머리맡에서 외롭게 방을 지키고 있던 너의 휴대전화뿐이었다.






혹시 말이야. 정말 재수 없는 소리일 수도 있고, 정말 쓸데없는 망상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네가 서둘러서 끝을 준비하려고 했던 일 말이야.


리셋을 소중 ‘했던’ 것이라고 불렀던 이유라던가.




너는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이야기의 결말을.


너의 이야기는, 이제 몇 페이지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돼....”






이후 나는 뒤따라온 경비원에게 덮쳐져, 두 팔을 잡힌 채로 바닥에 짓눌러졌다.


.


계속 입을 다물고 있으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재촉에, 나는 끝내 입을 열고 말았다.


너를 꼭 만나야만 했다고, 만나서 전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고.


“이해가 안 가는데.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을 왜 도망친 건데?”


“그건 저도 잘....”


딱히 당신이 내게 다가오던 모습에서 위협을 느꼈다던가,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전해야 하는 말이라...애매하네. 급한 일이었다면 전화를 해도 되는 문제였잖아.”


“그건...상대방이 전화를 안 받아서요. 정말이에요.”


나는 휴대전화 화면 속, 너와 겨우 0분 0초밖에 연결되지 않았다는 발신 기록을 간절하게 들이밀었다. 조금의 억울함이라던가, 울먹거림이 섞였던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허어...이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원칙상 보호자도 아닌 사람과 환자를 만나게 해줄 수는 없어.”


네, 그렇겠죠. 내 머리는 한층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대신 메모장이랑 펜을 빌려줄 테니 쪽지라도 남기려면 남겨라. 그건 어떻게든 전해줄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까.”


솔직히 이게 어디야. 너의 얼굴을 마주한 채로 말하는 것이 최상의 상황이라면, 이렇게 쪽지를 남기는 건 차선책에 속하는 ‘꽤 괜찮은’ 상황에 속한다.


하지만, 그 전에.


“혹시...오늘 응급 환자가 있었나요? 갑자기 실려 나갔다던가...아니면 급하게....”


“미안한데, 나는 야간 근무라서 오후에 있었던 일은 잘 모르겠네. 일단은 빨리 쪽지를 남기고 돌아가. 외부인이 이 시간까지 병원 안을 돌아다닌다는 말이 돌아다니면, 그땐 정말 나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


“아하...네.”


나는 지금 너에게 전해야 할 기쁜 소식이 있다. 그것에 집중하고, 펜을 움직이면 되는 일이다. 그다음에는 집에 돌아가서 씻고, 너의 연락을 기다린다.


우리는 평소처럼 전화를 주고받고, 그게 안 된다면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얘기를 나눈다. 우울하고 어두운 작별인사에 관한 이야기는, 전부 나의 밝은 소식으로 덮어버리는 거야. 그거면 되는 거야.


그거면 되는 거야.


그거면 되는 거라고.




그렇지만,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최악의 상황이 사라지질 않는다. 눈을 질끈 감아도 보이는 생지옥이 나의 마음을 갉아먹고 불태운다.


나는 손을 떨고, 겨우 몇 분간 참고 있던 눈물을 떨어트렸다.


경비원이 전해준 종이 위로 한 방울, 아직 볼펜의 잉크조차 묻지 않은 종이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나는 첫 번째 단어를, 조금 뒤에는 두 번째 단어까지.


두 단어로, 가장 친절한 말로 너를 깨웠다.




[친애하는 너에게.]




그다음 단어를, 나는 적지 못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종이를 누르던 왼손이, 그만 종이를 움켜쥐어 구겨버렸다.




“어...여기서 뭐해? 아직 안 갔어?”




또 한 번의 돌발 행동이 있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옷가지가 담긴 커다란 상자를 안고 있는 너에게 달려들었다.


“야! 잠깐! 박스 떨어져! 진짜 떨어진다니까?”


“...지마.”


“응? 뭐라고?”


“죽지 말라고....”




“아니.”




“죽어도...내가 옆에 있을 때 죽어.”




지금이라면 진심으로 말할 수 있어.




“나는...네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너의 곁에 나를 둘 거야.


시답잖은 얘기를 할 거야. 먼 우주까지 날아가서, 웃기만 해도 벅찬 농담을 주고받을 거야.


먼저 우는 사람이 지는 게임에 슬픈 얘기를 늘어놓고, 그러다 네가 울어버리면 너를 놀릴 거야. 나도 따라 울고 있을 거야. 그러니, 너는 나를 놀려줘.


우리 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게 누구의 이야기인지 퀴즈를 낼게. 이제는 나도 여러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네가 봐줄 필요는 없어.


주머니 속의 동전으로 홀수 짝수를 맞히는 게임을 하자. 대신 네가 너무 쉽게 맞혀버리면, 그때는 나도 속임수를 쓸 거야. 일부러 동전을 옷 속에 숨겨놓고 시치미를 뗄 거야. 그때, 너는 반드시 속아줘야만 해.


그러다가 조금 지루해지면, 그때는 서로 금칙어 게임을 하자. 말하면 안 되는 단어로 너를 끌어당기고, 너도 나를 끌어당기면 돼. 나는 너무 머리를 굴려서 문제니까, 그때는 나도 네가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가 볼게.


설렘이 필요해지면, 그때는 부처님 게임을 할 거야. 이 게임은 네가 압도적으로 유리해. 너는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간지러운 말들을 속삭여줘.


그때는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소리에도 가로막히지 않을 목소리로, 너에게 ‘고마워’라고 말할게.


밤에는 릴레이 소설 게임을 하자. 여름의 손님을 반년이나 밖에 세워둬도 괜찮아. 긴 밤을 한 문장씩 채우다 보면, 분명 여름의 손님과 집주인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조금 졸려지면 잠을 깨울만한 게임이 필요하겠지. 그때는 진실 게임 만한 것도 없어. 서로 숨겨왔던 말을 꺼내자. 새벽의 도움을 받아서 마음껏 털어놓자. 대신 절대로 진지해지지 않기야.


해가 뜨면 모두 잊은 척하면서 지내기야.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게 있다면, 그건 말 속에 숨겨서 전했던 서로의 마음일 거야.


아침이 밝으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자. 케이크도 한 조각 먹으면서, 가볍게 스무고개라도 즐기자.


또 서로 져주려고 노력하겠지만, 그것도 나름 봐주는 재미가 있어. 만약 게임이 너무 빨리 끝나버릴 때를 대비해서 보드 게임도 준비할게. 경찰과 도둑 정도면 괜찮겠지?


점심에는 맛있는 토스트를 먹고, 바다를 보러 가자. 바다가 갈라지는 길을 따라서 걷자.


해가 지는 모습을 보자. 누군가의 장례 행렬일 수도 있는 인파를 따라서 걷자.




다시 밤이 오면, 그때는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나씩 하자.


작별인사 게임을 하자.


사실 작별인사 게임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어’라는 말로 서로를 속이는 놀이가 아니야.


우리의 작별인사 게임은 ‘잘 있어’라는 거짓말로, 언젠가 다시 만날 우리를 속이는 놀이야.




이건 전부 우리가 같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


끝까지 손이 닿는 거리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


그러니 떨어지지 말자.


잠시 떨어져도, 끝이 오기 전에는 다시 만나자.


추울지도 모르는 끝을 따뜻하게 데워주자.




정리할게.


나는 네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어.


죽는 순간까지 너의 옆에 있고 싶어.


그래서, 해내고 말 거야.




.




“응.”




.




아무래도, 나는 조금이라도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끄러운 말을 하는 내내,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사람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나는 그 사람이 너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너의 이목구비를 손쉽게 찾아낼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환자의 보호자임을 증명하는 출입증을 목에 걸고 계셨으니까.


“끝났니?”


그리고 너의 성격은 아버지를 닮았을 거란 생각까지, 아니, 확신까지 마쳤다.


만약 아버지 쪽의 성격을 닮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어머니 쪽의 성격은 절대로. 단 0.1%도 물려받지 않았을 거라고.


“안 끝났으면 올라가서 마저 얘기하고.”


조금 전까지 뜨거웠던 눈두덩이가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지금 막, 분위기의 온도가 5도, 어쩌면 10도 가까이 내려갔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많이 춥습니다. 근데 낮엔 또 덥습니다.

날씨가 많이 이상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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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80회 - '응'이라고, 너는 대답했다.(완) 19.11.24 36 1 21쪽
80 79회 - 어느 소설(10) 19.11.22 21 0 11쪽
79 78회 - 어느 소설(9) 19.11.19 16 0 13쪽
78 77회 - 어느 소설(8) 19.11.16 22 0 11쪽
77 76회 - 어느 소설(7) 19.11.14 27 0 10쪽
76 75회 - 어느 소설(6) 19.11.13 22 0 8쪽
75 74회 - 어느 소설(5) 19.11.11 33 0 11쪽
74 73회 - 어느 소설(4) 19.11.08 22 0 8쪽
73 72회 - 어느 소설(3) 19.11.05 39 0 14쪽
72 71회 - 어느 소설(2) 19.11.02 21 0 11쪽
71 70회 - 어느 소설(1) 19.10.29 23 0 12쪽
» 69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13) 19.10.26 38 0 11쪽
69 68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12) 19.10.24 19 0 9쪽
68 67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11) 19.10.21 22 0 8쪽
67 66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10) 19.10.19 31 0 13쪽
66 65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9) 19.10.16 26 0 11쪽
65 64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8) 19.10.12 22 0 10쪽
64 63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7) 19.10.10 25 0 11쪽
63 62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6) 19.10.09 16 0 9쪽
62 61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5) 19.10.07 34 0 17쪽
61 60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4) 19.10.05 75 0 10쪽
60 59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3) 19.10.02 29 0 18쪽
59 58회 - 마지막 게임, 작별인사 게임(2) 19.09.30 26 0 12쪽
58 57회 - 작별인사 게임(1) 19.09.28 72 0 14쪽
57 56회 - 친애하는 너에게(완) +2 19.09.21 67 1 14쪽
56 55회 - 친애하는 너에게(12) 19.09.18 39 0 15쪽
55 54회 - 친애하는 너에게(11) 19.09.15 21 0 9쪽
54 53회 - 친애하는 너에게(10) 19.09.12 30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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