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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달
작품등록일 :
2019.06.2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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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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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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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에서 - 2

DUMMY

“알레한드로.” 존이 말했다.

“예, 병장님.” 알레한드로가 대답했다.

“사실 어퍼덱은 우릴 지루하게 만들어서 죽이려는 거 아닐까?”


알레한드로는 대답 대신 웃어버렸다. 존은 짧고 굵게 혀를 찼다.


기대하던 모험의 기회는 전혀 찾아오지 않았다. 미 해병대 숙소 근처의 2층짜리 전망대만이 바깥 세상을 구경할 수 있는 통로였다. 철조망과 초소를 주로 지키는 재단 보안팀이 더 보고 듣는 것이 많을 것이다. 존은 대형 쌍안경으로 활주로 바깥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세워진 접근금지 표지판 하나. 그리고 가끔 어른거리는 그림자들.


“일 없으면 좋죠.” 알레한드로가 뒤늦게 대답했다.

“너 내가 위스키 따냈다고 삐졌냐?”

“안 삐졌어요.”

“삐졌잖아.”

“원래 제 것도 아니었는데요 뭐.”

“지금 생각해보니 미니 술병이라도 유리구슬 10개는 너무 싸게 쳤다 싶지?”

“글쎄요. 방문판매 영업원 같은 말빨이셨죠. 바깥엔 증류주가 뭔지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릴지도 모르는데 그 수상한 액체가 통할 것 같냐던 말씀은 사실 설득력이 굉장했어요. 조금씩 맛 보여주다 다 없어질 거란 이야기도요.”

“내가 상상력이 좀 좋아.”

“어렸을 때 외계인 많이 그리셨겠어요. 표지판 옆에 외계인 둘요.”


알레한드로의 말에 존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의 말대로였다. 표지판 옆에 남녀 어린애 둘이 돌 하나씩을 들고 얼씬거리고 있었다.


“어린이네. 둘 다.”

“애가 아니라 쌔끈한 미녀 하나 와서 스트립 댄스 추면 볼 만할 텐데 말이죠.”

“쟤들은 지겹지도 않나 몰라.”


어린애들은 표지판 뒤에 돌을 놓았다. 이미 그곳에 놓인 돌은 하나가 아니었다. 작은 돌탑 정도의 양이었다.


“이번에도 보안팀이 치우러 가겠죠?”

“그렇겠지. 저번엔 표지판보다 높아지기 직전까지 갔는데.”

“무슨 주술적 의미인가 관찰하느라 못 치우게 했다던데요 그거.”

“D급 연구원들이?”

“D급 연구원들이.”

“별 걸 다 연구하네.”

“사실은 이 동네 애들의 담력 시험이었다더군요. 그걸 알자마자 다 치워버렸다나.”

“장담하는데 그거 역효과였을 거야. 오히려 쌓이게 냅뒀으면 꼬맹이들이 흥미를 잃어버렸을걸. 꾸준히 치우니까 장난치는 거지.”

“애들 싫어하세요?”

“더울 땐 천사도 싫어져. 그 날개 때문에 더 덥거든.”


그때 하늘 저편에서 굉음이 울렸다. 표지판 주변의 꼬맹이들은 잽싸게 도망쳐버렸다. 알레한드로와 존은 쌍안경을 서쪽 하늘로 돌렸다.


“헬기네.”

“헬기네요.”


하늘을 가득 메운 건 하얗게 칠한 헬리콥터들이었다. 기종은 각양각색이었다. 선두와 후미는 전투헬기였고 중간은 수송헬기들이었다.


“병장님의 천사가 저기 있을까요?”

“누구?”

“전에 들렀던 프랑스인 학자요.”

“아, 그 여자? 잊고 있었는데.”


존은 지난번에 수도행 헬기들이 급유하는 동안 잠시 내렸던 프랑스인 학자를 떠올렸다. 이름은 클라라였는데 성은 발음하기 어려워서 기억이 안 났다. 그 여자도 자신을 그냥 클라라로 불러 달라 했었다. 좋은 분위기였는데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귀환헬기에 타지 않았다. 동료 학자들이 말하길 그녀를 포함한 몇몇은 제국 수도에 좀 더 머문다고 했다. 존은 다음편 귀환헬기를 기다려보았지만 그때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게 2번쯤 더 반복되자 존도 그녀를 잊었다.


“이번엔 올지도 모르죠.” 알레한드로가 말했다.

“그렇지. 만나면 메일주소라도 따볼까.”

“여기선 폰 안 터지잖아요.”

“돌아가면 되겠지.”


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갔다 와 볼게.”

“건승을 빕니다, 병장님.”


알레한드로가 웃으면서 배웅했다.


존은 활주로로 뛰어가 보았다. 이미 첫 헬기가 착륙했다. 그 주변에는 지상요원들과 보안팀, 미 해병대 등이 잡다하게 몰려 있었다. 오아시스 베이스에 묶인 사람들의 관심은 항상 다양했다. 제국 수도에서 무엇을 봤죠? 그곳은 살기 어떻던가요? 나쁜 놈들이 위협하지는 않던가요? 드래곤 봤어요? 무슨 선물을 받았죠? 그때만큼은 다들 어린애로 돌아간 듯했다.


존은 신나서 떠드는 학자들, 그리고 그들의 발언 일부를 검열하기 바쁜 D급 연구원들 사이에서 클라라를 발견했다. 존은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클라라!”


다행히 그녀는 존을 알아보았다. 존과 그녀는 서로 눈을 마주친 채 인파 옆으로 살짝 빠져나와 조금 넉넉한 공간을 얻었다.


“오랜만이네요, 병장님.” 클라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존은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못했지만 그녀가 찬 자동번역기가 통역을 대신했다. ‘저거 꼭 사야겠어.’ 존은 속으로 생각했다.


“기억해주시네요. 그쪽도. 여행은 즐거웠어요? 굉장히 오래 머문 것 같은데.”


클라라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유쾌하지만은 않았어요. 사실 소득도 별로 없었고. 제국 사람들은 굉장히 속물적이고 근시안적이더군요. 학문 수준도 실망스럽고.”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세 수준이니까요.”

“그때보다 심각해요.”


그때 한 D급 연구원이 둘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말 없이 클라라와 존을 쳐다보기만 했지만 손에는 공책과 연필을 들고 있었다. 클라라는 그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역사도 짧고 체계도 없고 파편만 한가득이에요. 실망스러웠죠.”

“전에 어떤 학자분이 제국 역사만 2천 년이라 하시던데요?”

“2천 년 맞아요. 피지배민족은 크게 잡아도 5개에, 분열기만 11번이고, 지금 왕조가 37번째인데다, 교단만 50개가 넘는 제국이라 문제지.”

“워우.”


존은 상상 이상의 숫자에 속된 감탄사를 뱉었다.


“그리고 신전들은 도서관보다 와인창고가 더 크더군요.”

“그건 마음에 드네요.”


클라라는 웃어버렸다.


“네. 술은 정말 질리게 마셨죠. 지금 왕조의 주신인 태양신이 와인도 관장한다더군요. 한 병 드려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클라라는 D급 연구원을 눈짓했다.


“저 친구들이 꼼꼼하게 다 검사했거든요. 이미 기지로 보낸 와인도 많아요.”


클라라는 캐리어를 열더니 출렁거리는 가죽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존은 건빵주머니에서 카드게임의 전리품인 미니 위스키 술병을 꺼냈다.


"이걸로 답례가 되면 좋겠네요. 양이 너무 차이 나는데."

"괜찮아요. 때로는 독한 술이 그립더라고요. 혹시 담배 아직 있나요?"


존은 잽싸게 가슴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아끼고 아낀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클라라는 반갑게 담배를 받았다.


"거긴 증류주가 없어요. 담배도 없고. 와인마저 없었다면 정말 지옥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근무 중에 술 마셔도 되나요?”

“안 되죠. 나중에 마셔야죠.” 존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실 할 짓도 없지만요.”

“저런.”

“경비는 재단 보안팀이 다 하지, 출장은 저 연구원 친구들만 나가지, 우리가 여기 왜 있는지 가끔 헷갈려요. 분명 처음에는 비상사태 대비니 외교관 경호니 그랬는데. 비상사태는 없고 경호대상은 먼저 돌아가버리고.”


존의 말에 클라라의 얼굴이 기묘해졌다.


“소식 못 들으셨어요?”

“무슨 소식요?”

“러시아가 이곳에 파견한 항공전력의 지휘권을 전부 코어에 넘겼대요.”


존은 진심으로 놀랐다.


“러시아가요?”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요. 그저 한시적인 것인지, 어떤 투자로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지, 지구에 정말 큰일이 벌어진 건지.”

“신문 좀 봤으면 좋겠네요. 지구는 여기 오기 전에도 개판이었는데. 여기서 가장 최신 신문이 4개월 전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뉴스 못 본 지가 오래죠.”

“지구는 정말 괜찮은 건지······.”

“그건 우리가 걱정할 게 아닙니다.” 듣기만 하던 연구원이 끼어들었다.


존과 클라라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하지만 연구원은 더 말하지 않았다. 존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당신 직장이 내 직장을 삼킬지도 모른다는데 걱정이 안 되겠어?”

“전체 인류에 충성을 맹세했다면 그건 사소한 일입니다. 그리고 제 직장은 코어가 아니라 도로시아 재단입니다.”

“아, 그래?”

“됐어요. 신경 꺼요.”


클라라가 격해지기 전에 둘의 말다툼을 끊었다. 연구원은 다시 말 없이 연필로 공책을 끄적거렸다.


“저 친구들, 수도서도 저랬어요?” 존은 클라라에게 질문했다.

“왜 아니겠어요?” 클라라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도 말은 외교관들이 다 했죠. 저들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네요. 외교도 저렇게 했다면 벌써 전쟁 시작하고도 남았을 테니.”


클라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건 좀 진지하게 걱정해야 할지도 몰라요.”


존은 놀란 표정으로 연구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연구원은 클라라를 바라보았다. 둘의 눈빛은 처음으로 비슷한 의미를 담았고 그 때문에 그녀는 급하게 정정해야 했다.


“도로시아 재단 때문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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