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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밥먹고하죠
작품등록일 :
2019.06.24 17:52
최근연재일 :
2019.09.29 10: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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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111

작성
19.06.3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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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글자
13쪽

#15 동거

DUMMY

은시령의 상식을 벗어난 대답을 듣자마자, 난 어떻게든 그녀를 구슬려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녀가 털어놓은 사연은 이랬다.


헌터아카데미를 집안의 빵빵한 조력을 받으며 졸업했을 쯤, 가장인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가 부도가 나버렸다.


이게 그냥 망한 거면 차라리 나은데, 자금을 끌어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던 도중 망한 탓에 은시령의 집은 깊은 빚더미의 늪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늪의 깊이는 무려 40억.


한 명도 아니고 수십의 채권자에게서 빌린 터라 액수가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 게다가 원금을 전혀 갚지 못한 탓에 이자도 쌓여가고 있고.


“근데 왜 여기에 너 혼자 있어? 돈 갚아야 할 아빠는?”

“돌아가셨어.”


답답해서 그냥 물어본 건데, 담담한 어조로 돌아오는 답은 더욱 숨통을 조여왔다.


‘돌겠네.’


나는 담배 한 대가 간절했지만, 호수에서 대충 던져둔지라 그마저도 없었다.


결국 난 침이나 몇 번 삼키고 물었다.


“그간 생활은 어떻게 한 거야?”

“...그건.”


은시령의 대답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훔친 코어석을 중간 유통업자 노릇을 하는 헌터에게 넘겨 30%의 수수료를 떼이고 그를 통해 생필품이나 옷 따위를 샀고, 혼자 사는 엄마한테 돈을 약간씩 보내기도 했단다.


넘기지 않은 코어석은 빚을 갚으려고 모으고 있고.


“너 뭐 유니세프 같은 데서 돈 안 들어와?”


속이 다 먹먹해져서 헛소리를 해봤지만, 은시령은 맥락 없이 사과를 할 뿐이었다.


“미안해. 계약할 때 이런 말 하지 않아서. 하지만 괜찮을거야. 넌 능력이 있고, 다른 데서도 나만큼 해체를 할 수 있는 헌터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거야. 뭐...”


은시령이 애처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8대2 같은 비율은 힘들겠지만...”


‘아 시발...’


난 그 미소에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기서 손절해야 해. 이건 아니야. 40억은 너무 커.’


이성은 당연히 이렇게 판단한다.


나도 경험해봤기에 안다. 사채업자들은 집요하다.


그들은 은시령을 털어서 돈이 안 나오면 그녀와 인간관계를 맺는 이들에게 틀림없이 불똥이 튀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인간관계에 내가 낄 수도 있다.


...남의 일에 괜히 피해를 받는다니, 그런 건 절대 사양이었다.


은시령의 빚을 대신 갚아준다거나, 다 갚을 때까지 여기서 같이 사냥하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고.


‘일어나자. 없었던 일로 하면 돼. 정식으로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잖아.’


그게 머리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그대로 따르기가 쉽지 않았다.


저 빌어먹을 은시령의 미소와, 나보고 도망치라고 소리치던 그 처절함과, 나를 업고 뛰던 그 간절함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나는 머리를 마구 긁다가...은시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넌 이제 어쩔거야?”


“갚아야지...어떻게든.”


“5만원 짜리 모아서 언제? 어느 세월에? 훔치다가 나 같은 놈한테 한 번도 안 걸릴 자신은 있고?”


“...코어석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야. 균열 안에는 특이한 식물이나...”


“그건 헌터 앱에서 나도 봤어. 균열 안에서 여태껏 발견되지 않은 식물이나 광석 같은 것들을 가져가면 쏠쏠하게 벌 수도 있는 거. 그리고 그런 걸 발견할 확률이 로또당첨이랑 비슷한 것도.”


“......”


침묵하는 그녀에게 난 일생일대의 제안을 던졌다.


“있잖아. 들어 봐. 난 오늘 그 비대한 돼지랑 싸우면서 파티의 필요성을 좀 느꼈어. 그래서..음, 그러니까..하여튼! 까놓고 말해서 너와 그 파티를 짜고 싶어. 실력이나 능력, 이런 걸 떠나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말이야. 그래. 넌 말이 많고 괜히 떽떽거리고 잘난 척도 좀 하지만...믿을 만한...그러니까 동료로 삼을만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처음 만난 나를...파티 동료로 삼고 싶다고?”


은시령이 의혹 가득한 목소리로 묻기에 난 단호하고, 확실하게 응. 이라고 대답했다.


“나도 내가 좀 제정신 아닌 제안을 하는 건 알아. 그래도 충동적으로 정한 건 아니야. 나는 말이지 이 헌터 일을 좀 오래 해먹을 생각이거든? 등급도 적어도 A급까지는 갈 거고. 근데 그러다 보면 파티가 필요해질 거야. C급부터는 파티가 기본이라고들 하니까. 그래서 이래저래 사람을 모집할테지만, 내가 좀 의심병이 있어서 아마 다 믿을만한 사람으로 구하지는 못해. 그래서 네가 내 파티에 있었으면 좋겠어. 적어도 한 명쯤은 마음 놓고 믿을 만한 의지처로서.”


“...진심이야?”


“진심이야. 그래서 제안이야. 내 파티에 들어오겠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나랑 꽤 오래 일을 해야 해. 물론, 그걸 위한 지원은 모든 할 거야. 돈이든 뭐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웬만하면 전부. 아,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는 건 아니야. 그럴 여건이 되도록 돕는다는 거지. 이게 내가 걸 수 있는 최고의 제안이야. 받아들이겠어?”


“그런 건 무리야. 채권자들이랑 사채업자들이...”


“만약 들어온다고 하면, 빚을 갚는 동안은 독촉 같은데 시달리지 않게 해주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난 진지하게 은시령을 응시했다.


할말은 다했다. 그녀에게 말했던 그대로, 이게 내가 걸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다.


은시령이 받아들이면 진짜 롱런하는 동업자가 되는 거고, 거절하면 여기서 빠이빠이다.


은시령은 내가 들이민 선택지 앞에서 눈물을 또르륵 흘렸다.

그녀는 작은 어깨를 떨며, 나를 망연히 보았다.


“미친놈. 미친놈아. 왜?”

“왜 그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건데?”


그녀의 울음 섞인 물음에 난 씨익 웃었다.


“나도 모르겠어 이 미친년아.”


***


은시령이 내 파티에 들어왔다.


그리고 난 약속대로 그녀에게 빚쟁이가 꼬이지 않을 방법을 연구했다.


첫 번째로 떠오른 방법은 정신조작이었다.


은시령에게 들러붙는 놈들에게 정신조작으로 접근하지 말라 명령을 내려 놓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조금만 생각해도 곧 한계가 드러났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많은 채무자들에게 일일이 스킬을 쓴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정신조작은 유지력이 너무 짧다.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해결해야 하는 대책으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난 새로운 스킬을 짜내보기로 했다. 그에 무슨 스킬이 좋을까 싶어, 살아온 기억은 물론,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등 모든 상상력의 산물을 수없이 되새김했다.


그러다가 내 머릿속을 한 줄기 빛처럼 스친 건 ‘해리포터’에 나오는 투명 망토였다.


‘투명 인간이 되면, 어디서 발각될 일도 없고 좋지 않을까.’


설사 발각되어 채권자의 추격을 받더라도 다시 뿅하고 투명해지면 그만이다.


상상해보니 나는 그게 참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서, 3시간 가량을 투명해져라! 투명해져라 얍! 투명해져라 좀 시발! 이 지랄을 떨고 별에 별 똥꼬쇼를 해가며 스킬을 얻어냈다.


-스킬 ‘투명화’를 생성하였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RPG 게임 캐릭을 만들 때, 주사위를 지겹도록 돌리다 원하는 능력치가 떴을 때처럼, 나는 스킬을 얻자마자 환호성을 내질렀고, 즉시 시험해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충분히 활용할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번 사용하는데 드는 마나는 무려 35나 되지만, 투명화 스킬은 대상을 3시간 동안이나 투명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주위를 살펴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은시령에게 투명화(나에게는 반투명하게 보였다)를 걸었다.


그리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균열과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의 경계에서, 은시령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한 발자국을 떼었다.


석양 아래, 주황빛으로 물드는 공원과 그 너머의 도시가 그녀를 반겼다.


안개로 가려져 흐릿한 균열이 아닌, 모든 것이 정확히 드러나는 사람이 사는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투명화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선지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조금 오래, 그 광경을 눈에 담으려는 듯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게 오크들의 버려진 번식장을 벗어났다.


***


“들어와.”


일단 균열에서 데리고 나오기는 했는데, 은시령은 갈 곳이 딱히 없었다.


빚더미에 오르고, 3개월 동안 두문분출 한 탓에 인맥이란 인맥은 다 끊긴 탓이다.

그렇다고 은시령의 어머니가 있는 쪽으로 갈 수도 없었다.


밖에서 생활하려면 3시간마다 투명화 스킬을 걸어줘야 하는데, 은시령의 어머니가 사는 거처이자 은신처는 지방의 잘 알려지지도 않은 시골 쪽이라 매번 스킬 갱신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말 내 사심 하나 없이 좁아터진 단칸방에 다 큰 성인 남녀가 틀어박히게 됐다.


“.....”


난 어색해져서 괜히 턱을 긁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게, 그...뭐라고 해야 하나...좀 달랐다.


밖에서 일 때문에 만나고 같이 다닌 거랑 내 집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은시령이랑 단둘이 있는 것은 뭔가 많이 달랐다. 묘하게 긴장되기도 하고, 먼저 말을 걸려 해도 목에서 탁 걸린다고나 할까.


아무튼 균열에서처럼 아무 생각 없이 대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살랑거리듯 풍기는 그녀의 채취도 상당히 신경 쓰였다.


묘하게 가슴께를 답답하게 하는 풋풋하고 고혹적인 향기는 꿉꿉한 원룸의 냄새까지 정화하는 것만 같았다.


‘제기랄 찐따도 아니고...’


정신을 약간이나마 차리고 나니 자신이 한심했다. 여자를 집안에 들이자마자 이런 꼴이라니. 이거야 원 연애경험은 아예 없는 찐따나 할 행동이 아닌가. 사실 제대로 된 연애경험이 없는 것은 맞다만...


나는 그렇게 침묵을 지킨 채 은시령을 몇 번 훔쳐봤다.

그리고 새삼 감탄했다.


부실하게 먹은 탓인지 몸매는 약간 슬림했지만, 가슴만은 볼록 나와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했고 얼굴은 전체적으로 귀여운 상에 눈이 컸다.


다른 건 몰라도 균열에서 봤던 것과 달리, 반짝이는 그녀의 밤색 눈은 무척..사람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왜 그렇게 봐?”


“어?...아니 뭐. 그...너 부터 샤워하라고. 거기선 제대로 씻지도 못했을 거 아니야?”


“흐응, 먼저 샤워하라구? 달리 별 뜻이 있는 건 아니고?”


“벼...별 뜻 뭐? 무슨 별 뜻?”


“됐다. 쑥맥인건지. 쑥맥 연기를 하는 건지....그보다 저기, 핸드폰 좀 빌려줄 수 있어?”


난 순순히 핸드폰을 건넸고, 은시령을 받아들자마자 어디로 전화를 걸었다.

9번 정도 신호음이 울릴 즈음, 갈라지고 꺼끌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엄마, 나야! 시령이!”


“...시령이? 시령이! 정말 시령이니?!”


낮고, 심지어 불안하게 떨리기까지 하던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는 내게도 잘 들릴 만큼 커졌다.


“응... 맞아.”


“세상에! 난 너가 어딨는지도 모르고...그렇다고 실종신고도 할 수 없어서...”


“걱정 끼쳐서 미안해. 저기 있잖아. 아, 엄마 울지 말고. 그간 돈 가끔 간 거 있지? 그거 사실은...”


모녀의 대화는 10분이 넘게 이어졌고, 난 침대에 드러누워 관심 없는 척을 했다.

은시령은 처음에는 엄마를 달래면서 통화하더니만, 끊을 때 쯤엔 자신도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응.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일은 정말 좋은데 구했어. 고용해주신 분도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받아. 빚도...금방 갚을 수 있을 거야. 뭐라고? 아! 아, 그럼~ 이제 인생 피는 거지. 아빠보다 돈 더 잘 벌테니까 두고 봐. 그럼 엄마 나 이제 끊을게? 이거 남의 꺼 빌린 거라서 오래 쓰면 안 되거든. 응. 알았어. 잘자. 그래 엄마도 잘 지내고 아프지 말고.”


통화를 마친 은시령은 내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잘 썼어. 그리고 샤워는...나 먼저 할게.”

“그래.”


먹먹하게 닫히는 화장실문 사이로, 은시령의 장난스러우나 물기가 묻어난 음성이 들려왔다.


“엿보고 싶으면 엿 봐도 돼!”

“하겠냐!”

“아하하하하핳!”


발끈한 외침에 은실령이 통쾌하게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번갈아가며 샤워를 끝냈고, 저녁을 시켜 먹은 다음, 잠자리에 누웠다.

나는 침대에, 그리고 은시령은 여분의 이불을 깐 그 옆 바닥에.


자리는 그녀가 더 불편할텐데도, 잠에는 먼저 빠져들었다.


‘배고파...’ 나 ‘아빠 어딨어?’같이 잠꼬대를 하던 은시령은 마지막으로 ‘고마워.’라고 읊조리고는 꿈을 꾸지 않는, 더욱 깊은 잠에 빠졌다.


난 그녀의 잠꼬대를 들으며, 뻑뻑한 눈에 눈꺼풀을 덮었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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