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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밥먹고하죠
작품등록일 :
2019.06.24 17:52
최근연재일 :
2019.09.29 10:05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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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7,282
글자수 :
603,111

작성
19.07.0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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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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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글자
11쪽

#25 첫 전투

DUMMY

사방이 탁한 회색이었던 서울대공원과 달리, 균열 안은 주황빛 모래가 가득했다.


정말 그것만 가득했다. 저 멀리 선인장 하나가 눈에 띄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황량한 모래벌판과 모래언덕이 전부였다.


단, 한 걸음 차이로 세상이 밥상 뒤집 듯 달라지다니.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광경이었지만, 그보다 날 묘한 기분으로 빠뜨린 것은 기후였다.


‘그다지...덥지 않네?’


보이는 배경은 분명 사막이고, 위에서는 해도 쨍쨍하게 빛난다. 그럼에도 그다지 덥지 않았다. 아니, 표현을 바로잡자면, 너무 매섭지 않은 가을 날씨 같았다.


두꺼운 옷에 슈트까지 걸치고도 몸이 약간 따뜻한 정도였으니까.


‘모래도 차가울까?’


호기심이 동한 나는 걸으면서 모래를 슬며시 쥐다가 더욱 놀랐다.


퍼 올린 모래는 엄지로 위를 만질 땐 약간 따스했고, 아래를 받치는 네 손가락 쪽에서는 진짜 사막 모래처럼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과학자들이 왜 균열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건지 알겠다.’


나는 슬그머니 모래를 버리며 엑스트라 아이템에 5000만원,1억씩 퍽퍽 내놓는 연구단체들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았다. 균열 안은 기존의 상식과 워낙 위배 되는 게 많으니, 어떻게든 알아보지 않고는 도저히 배기질 못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도.


‘후우.’


난 숨을 길게 들이 마쉬고, 내뱉으며 잡생각도 함께 배출했다.


과학자들이 균열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그들에게 자료를 팔아넘기는 사람이다.


기나긴 2주동안, 한 푼이라도 더 건지려면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


‘양옆, 앞뒤가 다 경쟁자란 말이지.’


난 나처럼 눈동자가 뒤룩뒤룩 굴러가는 이들을 살피며 전의를 불태웠다.


‘엑스트라 아이템, 보물은 다 내 꺼다!’


내가 대박에 정신 팔려 있을 때였다.


옆에 솟아있던 야트막한 모래언덕이 스르르 무너져 내리더니, 곧 수 미터에 이르는 구덩이가 생겼다. 마치 원뿔을 뒤집어 놓은 듯한 구덩이였는데, 정말 순식간에 생겨서 대부분의 헌터들은 별 반응도 못하고 멍때리며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전방 라인 뒤로! 몬스터입니다!”


이중현이 급히 명령을 내려서야, 탱커와 나를 포함한 근접 딜러들이 분분히 물러섰다.


그렇게 물러선 직후. 구덩이 중심에서 사슴벌레 마냥 대가리 양옆에 거대한 뿔을 지닌 개미귀신이 나타났다.


놈은 벌어진 뿔을 모으더니, 모래더미에 쑥 집어넣은 다음 확 들어올려 원정대를 향해 모래를 흩뿌렸다.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뿌려지는 모래의 양이 무슨 동네 뒷산 하나를 집어 던진 것 같았다.


“방패!”


탱커 중 누군가가 소리치자, 모래에 대항해 방패들이 줄지어 세워졌다.

모래는 거기에 맞아 티팅 거리며 수없이 튕겨 나갔다.


“원거리 딜러들은 준비하라!”


이중현의 지휘 아래, 높이 치켜세워진 방패들이 아래로 내려가고, 우리는 사전에 협의한 대로 옆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사이를 총을 든 원거리들이 채우고, 방패 사이사이로 총이 대가리를 내밀었다.


그렇게 자세가 갖춰지자 이중현이 팔을 내리며 명령했다.


“발사!”


명령과 동시에 총들이 불을 뿜고, 뒤에 있던 궁사들도 시위를 놓았다.

직선과 곡선으로 날아가는 총알과 화살이 어지러이 뒤섞이며 구덩이 속 괴물에게로 쏘아졌다.


-키이익!


공격받은 놈이 괴로워하면서도 연이어 모래를 뿌리는 와중에, 근접 딜러들에게도 할 일이 생겼다.


퍼석! 퍼석! 퍼석!


내 허리께 정도 크기의 괴물 전갈들이 사방에서 모래를 파고 튀어나온 것이다.


놈들은 녹빛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3개의 꼬리와, 황소 머리뼈만한 집게를 딱딱거리며 원정대를 위협해왔다.


“근접 딜러들은 원거리 딜러들을 보호하라! 탱커들은 양 사이드 각 2명을 제외하고 자리를 지켜라!”


단체 행동을 서로 많이 해본 듯, 명령하는 자와 받는 자 모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근접 딜러들은 무기를 쳐들고 재빨리 원정대를 둥글게 둘러쌌고, 어쩔 수 없이 구멍이 생기는 부분은 차출된 4명의 탱커가 메웠다.


나 또한 눈치껏 알아서 자리를 잡고, 전갈이 다가오면 일단 쏘아져 오는 꼬리를 막은 다음, 검으로 놈들을 토막 쳤다. 껍질이 워낙 단단해 검 손잡이를 쥔 손이 다 얼얼했지만, 불평할 새가 없었다. 위기에 몰린 근접 헌터들이 있었다. 난 그들을 공격하는 전갈 뒤로 돌아가, 꼬리와 몸통을 쪼개고 재빠르게 전장을 살폈다.


'젠장.'


근접 헌터와 탱커들이 펼친 방어선은 아직 건재했으나, 얼마나 더 유지될지는 알 수 없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전갈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게다가...


“구덩이가 또 생깁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 중심의 모래가 쑤욱 빠지더니, 밑으로 깔대기를 꽂아 넣은 것처럼 빨려 들어갔다. 그 탓에 원정대 전체가 휘청거렸고, 원래 잡고 있던 놈은 견제가 사라지자 미친 듯이 모래를 퍼올려 우리 머리 위로 던져댔다.


“으악!”

“뜨거워!”


놈이 뿌리는 모래는 아주 깊은 곳에 파묻혀 있던 것인지 지닌 열기가 남달랐다. 모래가 살에 닿을 때마다 불판 위에 있는 기름이 튀는 것 같은 따가움에 자꾸만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키이이!


비처럼 내리는 모래랑 전갈만으로도 정신없는데, 두 번째 구덩이 괴물이 대가리 양 옆에 돋아난 뿔을 벌리고 그 안에 있던 큰 주둥이를 활짝 열었다. 그러자 놈에게로 흘러드는 사류의 흐름이 더 빨라져 사람들이 더욱 깊숙이 빨려들어갔다. 이대로 가다간 다 놈의 주둥이로 빨려들어갈 판이다.


“썅!”


난 은시령도 다른 궁사들과 함께 말려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판사판으로 검을 놈의 면상으로 집어던졌다.


쐐액! 퍽!


-키이이이이이이익!


검이 괴물의 입에 꽂히자, 놈은 대가리를 마구 뒤틀며 괴성을 질렀다.

그 탓에 날카로운 뿔이 탱커들이 앞세운 방패를 긁어대며 불똥이 튀었고 몇몇은 사지를 깊게 베이기도 했다.


“아윽!”

“뭐해! 원거리딜러들은 공격해! 눈을 쏴!”


사람들이 마구 아우성을 지르는 와중에, 난 괴물에게 달렸다. 놈이 주둥이를 닫아 사류가 멈춘 지금이 기회였다. 난 모래 속에 파묻힌 발을 빼내어 급격한 경사를 달려 내려갔다.


놈이 휘두르는 3미터가 넘는 뿔은 몸을 낮추거나 높이 점프해 피해내고 계속 접근했다.


그렇게 놈만 보고 질주하는데, 팍! 하고 바로 왼쪽에서 전갈이 튀어나왔다. 놈은 튀어나오자마자 작정이라도 한듯 슈트로 보호받지 못하는 발을 노리고 꼬리를 뻗었다.


“...!”


허를 찌르는 기습에 난 반응할 수 없었다. 자세가 너무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검은 반대편인 오른 손에 들려있었다. 그렇다고 허리를 숙여 왼팔로 꼬리를 막기엔 많이 늦었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고, 바로 떴다.


찔러오던 꼬리가 쾌속하게 쏘아진 화살에 꿰인 채, 전갈이 옆으로 나자빠져 있었다.


나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 있는 은시령에게 잘했다는 눈빛을 보내고, 전갈을 부숴놓았다. 그리고 다시 달려 개미귀신에게 가까이 접근해 끝끝내 달라붙었다.


“넌 뒤졌다.”


주둥이에 박힌 검을 뽑고, 뽑힌 자리에 손을 넣어 강하게 움켜쥔 채 스킬을 발동했다.


“내부폭발! 내부폭발!”


연이어 스킬을 쑤셔넣자, 놈의 거체가 기형적으로 뒤틀리며 커졌다.


-마나침투율이 84...마나침투율이 100%가 되었습니다. 스킬이 발동됩니다.


나는 알림을 확인하고 뒤로 튀었다. 대원들에게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엎드려!”


내 경고 때문인지, 개미귀신 몬스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것을 봐서인지 원정대원들이 일제히 엎드린 순간.


뻐엉!


구덩이의 중심에서 귀가 먹먹해지는 대폭발이 일어나며 몬스터가 터졌다.

모래가 푸스스스 진동하고, 헌터들을 괴롭히던 전갈들은 아래쪽으로 우르르 굴러 떨어졌다.


마나를 아래로 향해 집어넣었음에도 불과하고, 단단한 각질로 된 개미귀신의 머리통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압력 때문에 수미터가 넘게 솟아오르기도 했다.


후드드득.


대가리와 함께, 놈의 살점과 검은 체액이 소나기처럼 내렸다.


그러나 가만히 서서 역겨워할 틈이 없었다.


죽은 놈이 지 가족이라도 되는 것인지, 원래 상대하고 있던 개미귀신이 광분해서는 원정대원이 빠진 구덩이의 옆구리로 돌진해 들어온 것이다.


-키이이이익!


총탄에 벌집이 되고, 몸에 덜렁거리는 화살들을 잔뜩 꽂은 놈은 우리를 발견하자 대뜸 몸을 빙글 돌렸다. 그리고 난 개미귀신이 폭발할 때, 왜 그렇게 소리가 요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놈은 머리통도 컸지만, 그뒤 모래에 가려진 몸통은 진짜 집 한 채 이상으로 비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뭐하려는 거지?’


개미귀신은 거미처럼, 몸통 아래에 달린 똥구멍처럼 보이는 것을 우리에게 들이대더니, 가만히 있었다.


그냥 그뿐이었다. 그 무지막지한 몸으로 깔아뭉개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있었다.


의도를 가늠할 수 없는 짓에 달려들기를 약간 주저하는 사이, 코를 찌르는 냄새가 확 퍼졌다.


‘이게 무슨 냄새지...?’


코를 움켜쥔 나는, 냄새를 맡자마자 자연스럽게 주유소, 그리고 차를 연상했다.

역하고 미끌거리는 인상의, 주유소와 차를 연상시키는 냄새...


‘....휘발유!’


이중현도 감을 잡은 것인지 급히 소리쳤다.


“탱커라인, 방패를 앞세워 개미귀신 앞으로! 그 외 모든 라인은 탱커들을 엄호하라!”


이중현에 명령에 탱커들이 일렬로 늘어서 방패를 켜켜이 겹친 채 개미귀신 앞에 굳건히 섰다.


간혹 계속 나타난 전갈들이 발목을 붙잡기도 했지만, 그때는 모든 딜러들이 집중포화를 갈겨 놈들의 방해를 저지했다. 그렇게 원정대원들의 도움으로 모든 탱커가 방패를 치켜든 순간.


개미귀신의 구멍이 몇배로 확장되며 시뻘건 불길을 뿜어냈다.


화르륵!


화염방사기 네 다섯 대를 동시에 방사한 것마냥 두터운 화염이 원정대를 덮친다.


“으윽!”


불은 다행히 방패전선에 가로막혔지만, 탱커들이 많이 괴로워해서 오래 버틸 수는 없다.


그에 나와 이중현을 비롯한 근접 딜러들은, 화염기둥의 양 옆으로 빠져 달렸다.

그들의 손에서는 햇빛에 광휘가 맺힌 날붙이들이 저마다 섬뜩한 예기를 드러냈다.


“찌르고 베어라!”


둥지를 침입당한 벌떼처럼, 우르르 몰려간 우리는 개미귀신의 몸통에 수없이 병장기를 꼽아넣고 헤집고 찢었다. 다행히 이 부분은 대가리 부분만큼 단단하지 않아서,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병장기가 쑥쑥 잘 들어갔다.


-키이이...


근접 딜러들이 괴물의 몸통을 사정없이 후벼판지 30초쯤 되었을까.

체액을 모래가 다 적셔들 정도로 흘리던 개미귀신이 축 늘어졌다.


한계까지 확장되었던 불을 뿜는 구멍도 수축되고, 화염도 멎었다.

개미귀신들은 모두 죽었다.


“허억 허억.”


개미 귀신들의 숨통을 끊은 헌터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은 이제 없었다. 개미귀신들이 모두 죽자, 전갈들은 일제히 모래를 파고들어 사라졌고, 구덩이도 더는 생기지 않았다.


“...올라갑시다.”


전투가 끝났음을 알리는, 지친 말 한마디가 반가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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