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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밥먹고하죠
작품등록일 :
2019.06.24 17:52
최근연재일 :
2019.09.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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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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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8 변화

DUMMY

원정대에 첫날 밤이 찾아왔다.


우리는 ‘1일차, 3.6km’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채 야영을 할 준비를 했다.


헌터들은 가져온 텐트를 폈다. 유감스럽게도 불을 피우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꼬이는 걸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서다.


“짜잔. 다 됐다.”


은시령은 재빠르게 텐트를 설치했다. 다른 헌터들보다는 확연히 다른 속도였는데, 어째선지는 짐작이 됐다. 나도 군대에서 2년을 썩다보니 지금이라도 왼발! 왼발! 소리만 들으면 바로 구령에 맞추어 완벽하게 제식을 해낼 자신이 있다.


은시령이야 뭐, 균열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텐트까는거야 몸에 아예 익었었으리라.


“잠은 편히 자겠네.”

“일부로 넉넉한걸로 구했으니까. 2명이 들어가도 쾌적할거야!”


종잡을 수 없는 균열도 해가 들어가면 달이 떴다. 어스름히 비치는 달빛에 의존해 나와 은시령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침낭도 있어서 밤새 추위를 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길드에서 제공하는 저녁도 먹고 달리 할 일도 없었던 우리는 곧바로 침낭 안으로 스며들었다.


입구를 닫고, 달빛도 침투하지 못하는 짙은 남색 텐트 안에서 은시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있잖아.”

“없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얼레. 난 이렇게 훅 들어오는 개그 좋아하는데.

나와는 취향이 많이 다른듯한 은시령이 조금 진지하게 물었다.


“저기, 어째서 서혜지인지 물어도 돼?”

“응?”

“별동대의 원거리 딜러로 서혜지를 택한 거 말이야.”

“그야, 개척자 길드 원거리 딜러중에 그나마 제일 나은 녀석이 걔라고 하니까. 그리고 본인이 하겠다고 헌터들 중에 혼자 나서기도 했고. 그리고 말했잖아. 다른 헌터들은 내가 미끼인줄로 알고 있어야 해.”


서혜지와 내가 얽힌 연유는 그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개미귀신을 단신으로 처치하는 능력자임을 밝히기 싫고, 이중현도 그걸 바라지 않는다. 명색이 원정대장인 자신보다 일개 대원인 나에게 관심이 쏠리는 건 원하는 그림이 아닐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합의 하에 면접으로 뽑힌 헌터들에겐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내가 개미귀신들의 자폭공격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서혜지, 그리고 개척자 길드의...어, 이름은 생각이 안나지만...어쨌든 듬직한 탱커와 함께.


이런 어설픈 촌극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와 이중현은 이렇게 뜻을 맞췄다.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 그 또라이 밖에 없으니까.”

“나는?”

“...?”

“나도 조건에 맞잖아. 원거리 딜러고, 비밀도 알고 있고.”

“그거야...그렇긴 한데......괜찮겠어?”

“뭐야. 신경써주는 거야?”


은시령이 배시시 웃었다. 아니, 어두워서 웃은건지 울은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느꼈다.


“신경 써준다기 보다는 위험하니까...”

“응. 고마워. 하지만 나도 헌터야. 죽거나 다칠 수도 있다는 거 알면서 여기에 온 거야. 그러니까...”


난 은시령의 말을 끊어먹고 급히 입을 열었다.


“알아. 아는데, 그렇다고 네가 훨씬 더 위험한 역할을 맡을 필요는 없어. 난 돈을 받았고, 그 또라이는 길드 소속이니까 그렇다쳐도, 넌 아니잖아?”

“도움이 되고 싶어. 너에게.”


예고없이 들어오는 솔직담백한 대답에 난 얼떨떨했다.


“도...움?”

“난 늘 너한테 신세만 졌잖아. 빚도 집도, 그리고 지금도. 그래서 나도 널 도와주고 싶어. 설령 그게 무척 위험한 임무라고 해도.”

“......별 것도 아닌 일에 뭔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냐.”

“별 것도 아닌 일도, 부채의식 때문도 아냐.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 그게 이상해?”

“이상해.”

“왜?”

“너, 잘난 듯이 떠들지만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네가 죽는다는 건, 네 엄마를 영원히 혼자 두게 하는 거야. 나야 부모가 어찌되든 상관없지만, 너는 엄마가 소중할거 아냐. 게다가 넌 살면서 해보고 싶은 일도 없냐? 해외여행을 한다던가 잘생긴 남친을 사귄다던가.”

“...밥팅.”


은시령이 작게 읊조렸다. 나는 못 들은 척 ‘뭐?’라고 물으려다, 침낭에 들어온 침입자에 깜짝 놀랐다.


“야, 왜 손을...!”

“잔말 말구 손 좀 줘봐.”


은시령은 억지로 내 손을 밖으로 끌어내 꼭 쥐더니 힘을 주었다. 그리고 막무가내 억지를 부렸다.


“하고 싶어. 껴줘.”

“그러니까...”

“하고 싶어. 정말로.”


은시령의 손이 내 손을 더 강하게 압박했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녀의 체온과 살결은 온화했고 악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여성면역이 떨어지는 나에게 계속 공격했다. 내 손을 조이고 풀고 조이고 풀고...


처음엔 이게 무슨 장난인가 했는데. 나는 어느새 백기를 들고 있었다.


아, 하든지 말든지!


사춘기 여고생 같은 내 대답에 은시령은 웃었다. 소리내서, 고맙다고 웃었다.


***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나는 이 진리를 가장 깨닫고 싶지 않은 장소에서 깨닫게 됐다.


원정 탐험 12일째, 우리는 여전히 균열 내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모래고 지겨운 모래고, 산더미같은 모래뿐이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건 이거 하나뿐이었다.


원정대 50명은 48명으로 줄었고, 헌터들이 나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으며, 별동대에는 은시령이 추가됐다.


나도 물론 변했다. 개척자 길드가 제공하는 보급식량 a,b,c 무한 3로테이션 때문에 입맛이 무뎌졌으며, 가뜩이나 볼품없는 몰골은 비정기적인 전투들 때문에 피골이 상접했다.


변한 건 주로 이런 안 좋은 쪽이었지만, 위안이 되는 변화도 없지 않았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거! 나는 더이상 서혜지의 똥고집에 끌려다니지 않았다!

그 여자의 윗입술, 아랫입술을 바늘로 24번 반복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다루는 법을 알아냈다. 내가 아니고 은시령이.


가령 예를 들면,


“나랑 가까이 있는 거부터 쏘라고 했잖아! 이 머저리야!”

“내 맘이야 이 F급아!”

라고 싸우면, 후에 은시령이 이중현에게 은근히 보고를 했다.


서혜지의 단독 행동 때문에 별동대가 위기에 빠질 뻔했다느니, 그녀 때문에 협공의 흐름이 틀어졌다느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흘리듯 말하고 나면 이중현은 별동대의 탱커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미 나와 은시령에게 간식과 약간의 뇌물로 포섭된 탱커를.


졸지에 스파이가 된 탱커는 평소 서혜지에게 품었던 악감정과, 그녀를 엿먹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우리가 했던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반복했다. 서순과 단어만 좀 바꿔서, 핵심 내용은 한치의 틀림도 없이.


그런 탱커에게서 신뢰를 얻은 이중현은 우리가 보고를 할 때마다 서혜지를 따로 불렀다. 그러면 서혜지는 30분, 1시간 정도 그와 같이 있다가 돌아왔는데, 어떨 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그러나 울든 웃든 이중현과 면담을 하고 온 서혜지는 신기하게도 내 명령에 잘 따랐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진 몰라도 그 덕에 난 아직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다. 서혜지와 첫날 같은 관계를 쭉 유지했으면 난 이미 홧병으로 쓰러졌을테니까.


...대략 이런 식으로, 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어떻게든 바꿔나가며 적응해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거, 대부분 균열이랑은 상관 없는거 아닌가?


“놈들이다!”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이동하는데,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개미귀신은 아니었다. 그건 외곽 쪽으로 15km쯤 나아가니 거의 사라졌고, 이제는 웬 잠자리처럼 생긴 놈들이 나타났다.


20m가 넘는 투명한 날개에, 기차의 3분의 1을 뚝 떼어 놓은 듯한 몸통이 인상적인 괴물 잠자리 2마리였다.


“원거리 딜러, 날개를 조준하라!”


여태 본 녀석들 중 최강인 놈들이 나타나자 이중현이 바짝 긴장한 채 소리쳤다.


그리고 나도 긴장했다. 원정대원이 50명에서 48명으로 줄어버린 원인이 바로 저 괴물 잠자리들이었다. 둔할 것 같은 몸집과 다르게 저것들은 굉장히 빨리 허공을 유영하며, 아차 하는 순간 사람을 낚아채 드높은 공중으로 끌고 가 버린다.


일이 그렇게 되면 다음은 없다.


활이나 총의 사정거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잠자리는 인간의 머리 위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긴다. 머리통을 두꺼운 턱으로 부순다음, 흘러내리는 피와 온갖 체액을 빨아먹은 뒤 쓰레기 버리듯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좆같은 참극을 두 번이나 봐왔고, 그래서 빡시게 집중했다.

오늘만큼은 기필코, 저 벌레새끼들의 날개를 끊어 땅에 처박히게 해야 했다.


“더 가까이 있는 놈들부터 노려라! 발사!”


잔뜩 당겨진 시위가 퉁기는 소리와 총성이 동시에 울리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놈을 요격했다. 아무리 몸집이 크더라도 잠자리 따위는 금세 걸레짝이 될 만한 화력이었다.


그래 화력만.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화력만 말이다.


파라...락!


잠자리는 날개를 낮추고 몸을 회까닥 뒤집어 거의 대부분의 공격을 피해 냈다. 서혜지와 은시령이 발사한 화살 2개만 빼고 말이다.


-끼이이!


몸을 뒤집자마자 커다란 눈덩이에 화살이 꽂힌 놈은 괴랄한 비행을 시작했다.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치솟다가 바닥에 처박힐듯 내려가면서도 느닷없이 돌진을 해대기도 했다.


“탱커들은 뭉쳐라! 놈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막아!”


이중현의 명령에 탱커들은 뭉쳤지만, 잠자리의 진입로가 워낙 예측불허였다.


잠자리는 뭉친 탱커들과 떨어진 곳에서 원정대 진형을 한번 긁고 날아가고 한번 부딪히고 날아가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되자 원정대의 포메이션이 완전히 와해 되어 버렸다.


원거리 딜러든 근접 딜러든 제대로 된 연계가 안 되니, 다들 어떻게든 잠자리의 공격을 피해내기 바쁜 것이다.


“시령! 엎드려!”


난 아수라장이 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시령을 낚아채려는 또다른 잠자리를 보며 악을 질러댔다. 그리고 다행히 시령은 재빨리 몸을 낮춰 낚아채려는 잠자리의 다리를 피했다.


파르르륵-!


닭살이 확 돋아나는 날개짓 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어온다. 은시령을 낚아채려다 실패한 잠자리가 선회해 재차 습격해오고 있었다. 놈의 이번 목표는 나인 듯 했다. 고도를 땅에 기듯 낮춘 놈이 나를 향해 날아온다.


벌레 컨셉으로 꾸민 기차가 나를 치러 들어오는 듯한 광경. 식은 땀이 절로 나고 두려움이 돋아났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지배한 것은 분노였다.


이 시발 새끼가 방금 누구를 처먹으려고 든 거지?


“밀치기!”


나는 땅을 박차고 뛰었다. 뒤늦게 알아낸 밀치기의 응용법으로, 발로 땅을 때리며 쓰면 높게 점프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상태로 잠자리 위로 뛰어, 놈이 빠져나가기 전에 꼬리 끝에 착지할 수 있었다. 착지후 즉시 검을 뽑아든다.


-검술 스킬이 발동됩니다. 마나가 158 소모되었습니다.

-마나를 추가로 소모하여, 흐름의 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보다 높은 레벨의 적과 전투하고 있습니다. 투지 스텟만큼 모든 스텟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마나 회복속도와 최대마나량이 15% 늘어납니다.


일주일 하고 5일간, 이중현의 창술을 참고하고 연구하며 비슷한 방식으로 검을 휘둘러보며 얻은 성과.


C급 검술과 흐름의 검.

이 두 개를 제대로 써먹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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