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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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19.06.26 04:57
최근연재일 :
2020.05.2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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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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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누구나 아픔을 느낀다 - 10

DUMMY

바다 이끼가 잔뜩 끼어 있고,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작은 폐선(廢船). 폐선은 해안가 구석에서 무덤처럼 을씨년스럽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드레더(Hard Leather)를 입은 한 사내가 폐선을 향해 다가오자, 폐선 주변에 있던 작은 게들이 갑작스레 등장한 사내를 피해 구멍으로 재빨리 숨어 들어갔다.


“제프대장. 다녀왔습니다.”


사내는 폐선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 어두침침한 폐선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사내가 마치 문처럼 보이는 낡아빠진 천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폐선 안에는 방금 안으로 들어온 사내와 옷차림이 비슷한 사내 다섯이 앉아있었다. 아직 대낮임에도 안은 어두웠지만, 폐선의 부서진 틈으로 햇살이 새어 들어와 안을 밝혔다.


앉아있던 자 중 가운데 앉아있던 자가 고개를 들어 멀뚱히 서 있는 자에게 말했다.


“상황보고 해봐. 베일은 찾았나?”


“네, 인적이 뜸한 근처 창고에 숨어 있습니다.”


“후후. 그런가? 존경하는 쉐도우문 마스터께서 이젠 더는 도망칠 곳이 없겠구만. 자네와 같이 나간 필이 그럼 그곳을 감시하고 있는 건가?”


“네, 제프대장이 시키신 대로 지시했습니다. 그곳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로 오기 직전에 창고로 누군가가 들어섰습니다.”


이들의 우두머리인 제프라는 자가 그 말에 눈을 번뜩이며 인상을 썼다.


“누가 말인가?”


보고하기 위해 온 사내는 행여나 자신이 실수는 하지 않았나 싶어 대답하지 못하고 몸을 움찔거렸다.


“그, 그게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가 창고로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여자와 남자? 자세히 알아보진 않았나?”


“그러니까 여자는 금발 머리였습니다. 그 외엔 별다른 것이 없었고, 같이 온 남자는 옷차림으로 보아 마법사인 거 같았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던 상황이라······.”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보겠다는 건가? 그러기에 그때 내 말을 들었어야지. 쯧쯧.”


이들의 우두머리인 제프라는 자는 원래 쉐도우문 소속 중간보스였다. 길드 해체 당시 맞서 싸우자고 주장을 하던 자 중 하나였다. 길드 해체 후 상황을 살피다 빌리, 윌리 형제의 밑으로 들어가 이전 자신의 마스터에게 칼을 겨누는 중이다.


제프는 베일을 죽이게 되면 새로운 길드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기에 자청해서 추격에 나섰다. 몇 달 동안 추격을 거듭한 끝에 베일을 마지막 구석까지 몰아넣기에 성공을 했다. 이제 죽이기만 하면 상황이 종료될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추격자라는 사실을 알면 제법 놀라겠군. 후훗.”


제프는 베일을 추격하는 동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항상 배후에서 움직이며 끈질기게 그를 추적해 왔다.


제프 옆자리에 앉아있던 자가 충성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대장! 어디 숨어 있는지 알아냈으니 지금 치러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우리 숫자는 일곱, 그쪽은 넷이야. 이것만 보면 지금 쳐도 무방하지만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 지원 병력이 올 테니 그때 치러가도 늦진 않아.”


“하지만······!”


“해가 저물 때까지 기다려 본다. 그 시간 안에 오는 병력과 합세해서 치러가면 돼. 오늘 오지 않으면 그때 우리 일곱으로 쳐도 충분하다.”


“알겠습니다.”


#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창고에서는 셋이 무사히 오기만을 기다렸다. 폐선에 있는 제프 무리도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라피앤즈의 외곽 대로변. 서지터와 카데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벌써 라피앤즈로 향하는 적들을 세 번이나 상대하며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쓰러뜨린 적들만 해도 벌써 10명.


둘은 마지막 싸움에서 크게 상처를 입어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파시비엔을 데려온 터라 치료를 받아 크게 걱정할 것은 없었지만 몸 여기저기 작은 상처들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하아, 하아. 다리가 다 후들거리네.”


“지금 놈들이 또 몰려온다 해도 난 더는 못 싸워. 그냥 이 자리에서 하직하련다.”


셋 중에 그나마 양호한 파시비엔이 둘을 챙겨 나무 아래로 데려가 자리에 앉혔다. 다들 표정이 가관이다. 서지터는 단내를 풍기며 여전히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고, 카데스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상을 지었다. 파시비엔은 나무 뒤편에 모아 놓은 시체들을 보며 여전히 울먹이듯 둘을 바라보았다.


“저기요. 서지터님, 카데스님. 저 너무 무섭습니다. 날도 어두워졌고, 시체들이 벌떡 일어나 절 죽일 것만 같습니다. 흐흑.”


그나마 셋 중엔 카데스가 죽인 적들에 대해 가장 침착한 반응을 보였다. 죄책감과 겁에 질려버린 파시비엔을 다독였다.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너무 자책하지 마. 벌을 받는다면 서지터와 내가 받아. 넌 그냥 우리가 시킨 대로 했을 뿐이니까 괴로워하지 마. 부탁이야.”


“그래도요. 으흐흑. 제힘으로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서지터가 힘겹게 나무에 의지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주검들을 바라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조용히 훔쳤다. 울컥 울음이 터질 뻔했으나 간신히 참고 삽을 챙겨 그들을 묻기 시작했다. 카데스와 파시비엔도 어느새 다가와 묵묵히 자신들의 손에 죽어 간 자들을 묻어 주었다.


서지터는 대충 시체들을 묻고 난 후에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들었다. 어제 보았던 아름다운 석양이 지는 바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미 태양은 지고 짙은 어둠만이 깔린 암흑천지의 바다였다.


“후우, 가자. 다들 기다리겠다. 카데스 네가 그 창고 위치 안다고 했지? 앞장서.”


“그래. 서두르자.”


셋은 말에 올랐다. 자신들이 죽였던 자들의 말들은 베일과 잭이 필요할지 몰라 두 마리만 남기고 모두 다 풀어준 상태였다. 두 마리의 말을 데리고, 셋은 그렇게 피비린내 나는 장소에서 급히 떠났다. 누구 하나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은 듯 그렇게 라피앤즈를 향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한편, 같은 시각 폐선에 있던 제프 일당은 점점 초조해졌다. 이미 당도해야 할 다른 자들이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낮에 결정했던 대로 어쩔 수 없이 이 인원으로 베일을 치러 가기로 했다.


폐선에 모여 있는 6명, 그리고 창고 감시를 하는 1명. 이 7명이라면 한스가 끼어 있는 넷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다. 단 한스를 가장 먼저 처리를 해야 나머지 뒤처리가 더 쉬워진다.


여섯은 폐선을 빠져나와 베일이 숨어 있는 창고로 향했다. 어두운 밤과 아주 잘 어울리는 자들답게 조용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제프 일당이 창고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 창고를 감시하고 있던 필이라는 자가 그들을 맞았다. 필은 제프에게 가볍게 눈인사한 뒤 틈을 보이지 않고 상황보고를 했다.


“현재 창고 앞에 잭이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에는 베일과 낮에 이곳으로 온 두 녀석이 있습니다. 둘 중의 하나는 낮에 보고에 전해드렸다시피 마법사로 보입니다.”


“창고 안에서 문 이외에 다른 쪽으로 빠져나갈 곳은 없나?”


“창고 주변을 살펴본 결과 창문이 하나 있습니다. 여차하면 그쪽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을 듯 보입니다.”


“아니, 아니. 막다른 길인데 베일이 또 달아나진 않을 거야. 낮부터 계속 여기에 있다는 건 우리와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생각일 테지. 그래야지. 쉐도우문의 마지막 길드 마스터로서 자존심을 지켜야지. 후훗.”


“제프대장. 그럼 어떻게 할까요?”


“지금 친다.”


제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섯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창고 쪽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하지만 창고에 있는 베일과 레일라, 한스는 이런 상황을 아직 모른 채 셋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한스는 적들과 싸우다 크게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창고 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엄지손톱을 깨물어댔다.


“한스. 너무 초조해하지 마. 아직 전투엔 부족한 게 많은 녀석들이라 분명 여기저기 다치겠지만, 파시비엔이 같이 갔잖아.”


“그래도 걱정되잖아.”


“한스군. 걱정 말게. 날이 저물었으니 친구들도 이쪽으로 움직였을 거야.”


레일라와 베일이 한스보다는 여유로운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둘은 곧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 쾅!


밖에 있던 잭이 제프 일당에게 기습을 당해 어깨에 단검을 꽂힌 채 문에 부딪혔다. 그 소리에 셋은 다급히 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젖혔다. 잭이 어깨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으윽. 마, 마스터! 기습입니다. 이미 완전히 포위된 상태입니다.”


베일은 몸을 일으켜 문밖을 바라보았다. 잭의 말대로 적이 사방에서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 떼처럼 창고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어두운 맞은편 길 끝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여! 마스터. 그동안 잘 지냈나?”


베일은 아직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베일은 미소를 지었다.


“제프. 자넨가? 의외로군.”


베일의 입 밖으로 나온 이름을 들은 레일라가 깜짝 놀라 숏소드를 뽑아 들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제프! 이 개자식! 네가 어떻게!”


제프는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베일과 그 옆에 있는 레일라를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난 또 누군가 했어. 레일라였군. 오래간만이야. 레일라?”


“네가 어떻게 배신을······!”


“얘기하자면 길어. 상황에 맞게 행동했을 뿐이야. 날 너무 비난하진 말라고. 흐흐흐.”


제프의 야비한 웃음소리에 레일라는 소름이 돋았다. 마지막으로 제프를 봤을 때, 그의 태도는 도적 길드가 똘똘 뭉쳐 왕국 측에 대항하자고 소리쳤었다. 그랬던 자가 이젠 빌리, 윌리 형제의 개가 되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의 길드 마스터를 죽이기 위해.


한스는 가장 가까운 자들을 향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적어도 둘 이상은 무력화시켜야 했기에 한스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을 택한 것이다. 정신 집중을 하며 나지막하게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하자 상황을 파악한 제프 일당이 한스를 향해 단검을 날렸다. 레일라의 그것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갔다.


“한스! 피해!”


레일라의 외침에 한스가 움찔하여 몸을 옆으로 피했다. 그에게로 날아간 단검 3개 중 둘은 나무로 된 창고 벽에 꽂혔지만 남은 하나의 단검은 한스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흑······!”


한스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앞의 적들을 바라보았다. 허리를 살짝 숙인 채 단검을 들고 당장에라도 던질 듯한 모습으로 한스를 매섭게 째려보고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땅을 박차고 달려들 기세였다. 어떤 마법 주문이 되었든 캐스팅을 끝낼 수 없는 상황이다. 한스가 다시 캐스팅하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분명 목이 날아갈 거라 생각되었다.


“이봐, 마법사.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다시 한번 캐스팅을 시도한다면 그땐 단검이 다리만 스치고 지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럼 도적들끼리 본격적으로 한번 놀아볼까?”


제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일라 일행을 둘러싸고 있던 6명이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히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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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3 20.04.25 67 1 19쪽
262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 20.04.24 78 2 11쪽
261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 20.04.23 74 2 14쪽
260 13화 거짓된 역사 - 21 20.04.22 58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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