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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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19.06.26 04:57
최근연재일 :
2020.05.2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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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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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화 시간이 약이다 - 7

DUMMY

- 탁탁탁탁.


아직 해가 뜨기도 전,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아오는 연병장을 서지터 홀로 뛰고 있었다. 겨우내 카이스터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그가 두 가지 꼭 지키라는 명령 같은 부탁을 한 것들이 있었다.


첫째는 술을 끊으라는 것, 둘째는 게으름 피우지 말고 아침마다 꼭 운동하라는 당부였다. 이 두 가지 모두 서지터는 철저하게 지키는 중이었다.


“후우! 후우! 으아아! 조금만 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지난 미궁 토벌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 정도로 숨이 찼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발끝이 무뎌져 마이키에게 따라잡혔었고, 항상 그날을 되뇌며 이렇게 아침마다 달리는 것이다.


“후우! 후우! 후우!”


서지터는 허리를 숙이고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멈췄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른 그는 고개를 들었다. 정면에는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자신이 지낼 숙소인 예비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서 씻어야겠네.”


서지터는 1예비대 건물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울타리 위에 누군가 걸터앉아 서지터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 이런 시간부터 체력훈련인 거야? 대단한데?”


가까이 다가가자 누구인지 얼굴이 명확히 보였다. 그는 옆 침대의 동료 롭이라는 사람이었다. 버트는 2층, 롭은 1층을 썼고, 롭은 전날 저녁 식사시간에 땀에 흠뻑 젖어 들어와 서지터, 카데스와 인사를 나눈 뒤 이런저런 도움 될 만한 것을 조언해주었다.


서지터가 그의 말에 가장 인상적으로 들은 조언은 몬스터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절대 겁에 질려 전투에 임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이미 겁에 질리면 죽을 확률이 절반 이상이라는 말이 퍽 서지터의 마음에 꽂혔다.


“신삥이기는 해도 뭔가 느낌이 다르다 했어. 이런 시간에는 늑대들조차도 자고 있을 시간이라고.”


“그런가요? 근데 롭은 왜 이 시간에 일어나 있어요?”


“나는 아침잠이 없달까? 습관이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롭은 손에 들고 있던 땅콩을 다 까먹었는지 손을 탁탁 털고 울타리에서 폴짝 뛰어 내려갔다.


“아침부터 너무 기운 빼지는 마. 이상하게 여기서 배식 나오는 밥은 금방 배가 꺼지거든. 맨날 배고파. 게다가 몬스터들과 싸우려면 힘도 좀 아껴두고.”


“고마워요. 그런데 롭은 버트랑 그······.”


“뭐? 애인이냐고? 왜 안 물어보나 했다. 푸흡!”


“물어보기가 조금 민망해서요.”


“미안하지만 버트랑은 그냥 친구야. 그놈 애인은 따로 있단다.”


“그렇구나.”


“아마 전투가 생기면 버트 애인이 누군지 볼 수 있을 거다. 십년지기 친구인 나보다 더 챙긴다니깐?”


-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


롭과의 대화 도중 멀리서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하게 3번의 소리가 들리더니 롭은 쏜살같이 안으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갑옷 입어! 전투야!”


“어? 네.”


“이 자식들아, 일어나! 전투다. 전투!”


롭은 숙소의 통로를 가로지르며 큰소리로 외쳤다. 다들 깊은 잠에 빠져있긴 했지만 롭의 외침에 반응들이 엄청나게 빨랐다. 이미 나팔소리에 일어나 갑옷을 챙겨 입는 대원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잠이 들어있는 대원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서지터 역시 다급히 롭의 뒤를 따라 들어와 서둘러 갑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카데스는 반쯤 눈이 감긴 채 갑옷을 챙겨 입으며 서지터에게 말했다.


“어디 갔다 와.”


“운동! 이거 여기 온 지 하루 만에 전투네. 설렌다. 히히!”


옆에 있던 롭이 욕을 하며 몇 마디 던졌다.


“미친놈아! 설레? 저거 제정신 아니구만? 내가 겁먹지 말라 했지 설레이랬냐? 근데 웬일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전투야. 아침도 못 먹었는데. 돌겠네!”


다들 정신없이 방어구를 챙겨 입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서지터와 한스도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1예비대 대장 에이든과 마주쳤다.


“뭐야, 너희! 투구 없어?”


“시야 때문에 잘 안 쓰는데요.”


“그래도 써! 야! 롭! 이 녀석들 남는 투구 챙겨서 빨리 튀어나와!”


“알았어! 알았다고! 이거 신삥들 옆자리라 손이 많이 가는구나. 크흐흑.”


롭은 입구 근처에 주인 없는 방어구들이나 무기들이 쌓여 있던 곳을 뒤져 아무 투구나 2개를 골라 둘에게 던져주었다. 서지터가 받아 든 투구는 경량화 시킨 클로즈 헬멧(Close Helmet)이었고, 카데스가 받은 투구는 코, 입부분이 T자형인 바부타(Barbuta) 투구였다.


둘은 투구를 쓰면서 롭을 쫓아갔다.


“아씨! 투구가 너무 큰 거 같은데? 자꾸 눈 덮어.”


“난 너무 꽉 끼는데. 서지터 네 투구랑 내 투구랑 바꿔써야 할 거 같다.”


둘은 잠시 멈춰 서서 이미 힘껏 눌러쓴 카데스의 헬멧을 벗기기 시작했다.


“으갸갸갸갸! 안 벗겨지잖아! 도대체 너 어떻게 쓴 거냐?”


“아, 나도 모르겠어.”


에이든이 뒤에서 소리쳤다.


“이놈들아! 당장 안 쫓아가? 여기서 멈춰 설 시간이 어딨어!”


“알았다고요!”


이미 예비대 대원들은 목책 성벽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가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지터는 헬멧을 잡고 카데스와 뛰기 시작했다. 이미 능선 위쪽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북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확실히 젊은 피라 두 사람은 단숨에 예비대 대원들을 따라잡았다.


#

-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


“전투다!”


나팔 소리와 1층에서 들려온 단 한 마디에 잠을 자고 있던 레일라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야가 긴장을 하며 잠을 자라고 했던 이유도 있었고, 원래 잠귀가 밝은 레일라였기에 재빠르게 일어나 하드레더를 챙겨 입기 시작했다.


옆 침대에서는 부스스한 머리를 한 카야가 툴툴거리며 자신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아, 뭔데! 왜 이렇게 일찍 전투인 거야!”


좀비처럼 느릿느릿 갑옷을 입던 에이리타가 카야에게 한 마디 던졌다.


“흐아아암! 간만에 새벽부터 전투네.”


- 저벅저벅.


“어이, 신참! 으히히. 레일라라고 했었지? 우리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대기야. 에이리타랑 카야 따라서 행동해. 걱정하지 말고!”


1척후대 대장 고로드였다. 그는 벌써 갑옷을 챙겨 입고 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는 어제저녁이 돼서야 잠깐 잠에서 깨어 레일라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다시 잠을 잤다가 지금에서야 일어난 것이다.


“난 내려가서 본대 좀 보고 먹을 것도 챙겨 올 테니까 너희 둘이 좀 알려줘.”


서둘러 갑옷을 다 챙겨 입은 카야가 가죽 신발을 마저 신으며 레일라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헤헤, 이렇게 아침 일찍 전투가 벌어지는 경우는 드문 편이야. 짜증 난다고 도망가면 안 된다. 알았지?”


“안 도망가.”


“알았어. 어쨌든 우리는 만발의 준비를 다 하고 전투가 끝날 때까지 대기할 거야.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서 오른쪽을 보면 언덕이 하나 있어. 거기서 전투 상황을 지켜보다가 전투가 끝나면 그놈들을 따라서 몬스터들 주둔지까지 올라갈 거야. 그리고 약속된 장소에서 2척후대랑 교대를 하고 다음 전투까지 정찰하는 거지. 주둔지에 몬스터들의 수가 줄어들면 더 깊숙한 곳까지 정찰하러 갈 때도 있어. 몬스터들 후속 병력이 꽤 많이 그리고 자주 오니 그 숫자도 파악해둬야 해.”


“어제 자면서 생각을 해봤는데······.”


“왜? 도망갈 거야?”


“진짜! 아니라고! 안 도망간다고!”


카야는 어제부터 계속 레일라에게 도망가지 말라는 말을 수십 번이나 해댔다. 잠꼬대까지 해가며 가지 말라던 카야는 일어나자마자 계속 또 그 얘기뿐이었다. 보다 못한 에이리타 카야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인마! 듣기 좋은 소리도 많이 하면 싫은 법이야. 그만 좀 해라. 옆에서 듣는 내가 다 짜증이 난다. 그리고 레일라 너는 부싯기통부터 침낭이랑 좀 두꺼운 옷도 챙겨. 아직 밤 되면 쌀쌀하니까. 돌아다니면서 야영 많이 해봤지? 그냥 야영한다 생각하고 필요한 것들 챙기면 될 거야.”


“알겠어요.”


“피잇! 언니는 맨날 나한테만 뭐라 그래. 내가 오죽하면 이러겠어?”


“시끄러워. 일찍 일어나서 짜증 나니까 건드리면 죽인다?”


카야가 심통이 난 얼굴로 혀를 빼꼼 내밀었다.


“가끔 언니가 죽인다고 말할 때 있거든? 그럴 땐 진짜 죽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특히 누가 자는 거 깨우거나 잠 못 자면 예민해져. 그것만 조심하면 돼. 그런데 자면서 생각한 건 뭔데?”


“아니, 뭐 별거는 아냐. 겨울에는 추울 거 같다고.”


“추울 때는 또 방법이 있지! 나중에 겨울 되면 내가 알려줄게. 걱정하지 마.”


“너도 척후대에서 겨울 지내본 적 없잖냐. 고로드한테 들어놓고선 잘난 척하기는?”


“그래도 내가 레일라한테는 언니에다 더 오래 있던 고참인데 그 정도 생색을 낼 수 있는 거 아냐?”


“됐고, 챙겼으면 내려가자.”


“피잇!”


셋은 서둘러 짐을 챙겨 가방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섰다. 밖은 제법 어수선했지만, 본대의 인원들이 분대별로 칼같이 줄 맞춰 선 채 서로의 사기를 북돋우고 있었다.


“1분대!!”


“우아아!!”


“켈베로스의 심장 1분대!!”


“우아아!!”


“출발한다!!”


“우아아!!”


“2분대 준비해라!!”


“악!!”


“준비됐나!!”


“악!!”


“가자아!!”


“악!!”


본대의 모습을 본 레일라가 엄청난 기세에 놀랐다. 이렇게 소름이 끼칠 정도의 기세는 처음이었다. 불과 20명도 채 안 되는 분대의 외침이라기엔 주둔지 사방에 울려 퍼질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3분대장의 외침에 레일라는 다시 한번 놀랐다.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3분대!!”


- 캉! 캉!


“켈베로스 최강의 3분대!!”


- 캉! 캉!


“붉은 늑대 3분대!!”


- 캉! 캉!


“싹 다 쓸어버려라!!”


- 캉! 캉!


각자의 무기와 방패를 부딪치며 대답하고 3분대 역시 줄지어 전장으로 향했다. 이 모습을 보며 카야가 부러운 듯 중얼거렸다.


“하아, 그립다, 그리워. 나도 저기에 있어야 했는데······.”


“3분대장은 여자네?”


“응! 원래 내가 있던 곳이 3분대였거든. 대장이랑 에이리타는 2분대였고. 우리 3분대장 에일리 언니는 진짜 세. 우리 용병단 여자 중에서는 제일 강하고 검술 천재라는 별명에다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야.”


“대단하네.”


어느샌가 조용히 나타난 고로드가 음식들이 담긴 커다란 자루를 레일라에게 던져주며 3분대장 에일리에 관해 설명을 계속해주었다.


“29살 먹은 여자치고는 말도 안 되게 강하지. 참고로 7분대장도 지나 콜이라는 여자인데 에일리한테는 상대도 안 돼. 게다가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리더십만큼은 차기 단장감이지.”


1척후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4분대, 5분대가 각자의 구호를 외치며 출발했다.


“크하하! 6분대 이 쓰레기들아!!”


- 흐하하하!!


“조지러 가보자!!”


- 대장 만세!!


6분대의 구호를 듣자 고로드와 카야는 혀를 끌끌 차며 한숨을 내쉬었다.


“블레이크 저놈은 언제 정신 차리려나? 어찌 된 게 6분대 놈들도 다 저 녀석 닮아가네.”


“누군데?”


레일라의 질문에 카야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우리 용병단 내에서 최고의 문제아야. 6분대장 블레이크 그리핀! 아트록스 이기고 나서 더 기고만장해졌어. 에휴!”


“그래도 저 꼴통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아트록스라고 검은 늑대들 부대장 녀석을 꺾고 랭킹 5위로 올라선 놈이니까. 7분대도 출발했다. 우리도 슬슬 움직이자.”


본대의 인원이 물밀 듯이 빠져나가는 것을 본 고로드가 마구간으로 앞장섰다. 이미 넷의 말은 준비가 된 상태였다. 가볍게 말 위로 올라탄 1척후대는 빠르게 주둔지 밖으로 빠져나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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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4 20.05.20 56 2 15쪽
283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3 20.05.19 53 2 12쪽
282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2 20.05.18 52 2 15쪽
281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1 20.05.16 56 2 11쪽
280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0 20.05.15 58 2 13쪽
279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9 20.05.14 54 3 11쪽
278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8 20.05.13 56 2 12쪽
277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7 20.05.12 56 2 11쪽
276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6 20.05.11 55 2 14쪽
275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5 20.05.09 68 1 11쪽
274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4 20.05.08 60 3 11쪽
273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3 20.05.07 58 2 12쪽
272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2 20.05.06 66 2 11쪽
271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1 20.05.05 57 1 12쪽
270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0 20.05.04 57 2 12쪽
269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9 20.05.02 64 1 13쪽
268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8 20.05.01 56 1 12쪽
267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7 20.04.30 60 1 11쪽
266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6 20.04.29 57 2 14쪽
265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5 20.04.28 64 2 11쪽
264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4 20.04.27 64 2 12쪽
263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3 20.04.25 68 1 19쪽
262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 20.04.24 78 2 11쪽
261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 20.04.23 74 2 14쪽
260 13화 거짓된 역사 - 21 20.04.22 58 2 14쪽
259 13화 거짓된 역사 - 20 20.04.21 6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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