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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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19.06.26 04:57
최근연재일 :
2020.05.2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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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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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3

DUMMY

3개의 예비대까지 포함해도 400명이 채 되지 않는 켈베로스 용병단은 낮에 잠깐 쉬면서 주로 밤을 이용해 빠르게 트리스미스로 내달렸다. 말을 타고 쉬지 않고 가면 3일 정도 걸리는 거리를 대부분 말도 없이 4일 만에 돌파했다. 누구 하나 낙오되는 대원이 없을 정도로 모두 비스크 평야까지 도착했다.


용병단의 계획은 그레임튼으로 달려가 검은 늑대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구해내는 것이었지만, 만약 그들이 모두 전멸했을 경우 곧바로 트리스미스로 진격해 다크 스컬을 죽이려 했다.


무모하고 불가능한 이 계획에 그 누구도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미 출발할 때 죽기를 각오했고 죽더라도 먼저 간 검은 늑대들을 따라나서겠다는 의지였다.


용병단은 숲으로 들어섰다. 길 안내는 애런과 하얀 늑대들 몫이었기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는 검은 늑대 대원 다섯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얀 늑대의 콜리언은 제대로 수습조차 해주지 못하고 떠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들을 서둘러 묻어주었다. 다들 죽어있는 다섯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죄책감에 용병단 분위기는 어두웠다.


그리고 얼마 후 먼저 상황을 살피러 움직인 1척후대가 동굴에서 나와 케인즈 단장에게 보고했다. 1척후대장 고로드의 얼굴 역시 어두웠다.


“어찌 되었나. 늑대들은?”


“죄송합니다. 그레임튼이란 곳에 도착하자마자 죽어있는 열 명의 검은 늑대 대원들을 확인했습니다. 애런의 말처럼 죽은 지 1주일 정도 된 거 같습니다. 그리고 남은 검은 늑대들의 생사는 아직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리가 끊어져 더는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곳에 몬스터들은 없었나.”


“그것 역시 확인 불가능했습니다. 저희가 살펴본 곳까지는 살아있는 검은 늑대들의 흔적도 몬스터들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척후대원 레일라 말에 의하면 다리를 건너야 트리스미스로 향한다고 합니다. 지금 상태로는 건널 방법이······.”


“그건 걱정하지 말게. 우리 성직자 중에서 식물을 이용하고 성장시켜 다리를 만들 수 있는 마법이 있네.”


아그나달린 상징의 갑옷을 입은 루터 사제가 고로드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플랜트 그로스(Plant Growth) 주문으로 주변의 나무나 넝쿨들을 이용해 건널 수 있을 정도의 다리를 만들 계획이었다.


“사제님, 부탁드립니다. 어서 서두르세. 켈베로스 용병단 진격한다!”


케인즈 단장이 지시를 내리자 용병단은 동굴로 향했다. 동굴 내부는 4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지나가기에도 아주 넓었다. 물이 가득 찬 곳까지 도착했을 땐 마법사들이 물을 얼려버리면서 쉽게 지나갈 수 있게 손을 썼다.


아무래도 마법사들의 역할은 이정도밖에 못 할 거라 여겼다. 트리스미스에 가까워질 때마다 마법사들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쓸 수 있는 마법도 분명 제한적일 테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들의 걱정이 깊어질수록 그레임튼 마을과 점점 가까워졌다.


용병단이 입구를 발견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 그레임튼 마을에 도착했을 땐 또다시 죽어있는 검은 늑대 대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흔적을 보아 처절하게 싸웠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죽은 모습들이었다. 그들의 죽음에 관여한 애런은 고개를 돌려버리고 눈물을 흘렸다. 애런의 곁으로 하얀 늑대의 콜리언이 다가와 그를 위로해 주었다.


“너 때문 아니다. 저들에게 정말 사죄하고 싶다면 살아있을 다른 검은 늑대들을 구해라. 그러고 나서 사죄하고 빌어.”


“죄송합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할 줄은······.”


“됐어. 잘못을 알고 반성하고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해.”


콜리언은 전장에서 함께 생사고락을 나누며 싸웠던 그들을 바라보았다. 절대적으로 강한 그들의 싸늘한 시신은 낯설었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졌다. 다른 용병단 대원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허무하게 죽어버린 그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분명히 아직 살아있을 검은 늑대 대원들을 구해내고 싶었다.


한스는 구석으로 향해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를 위로하려 파시비엔이 다가와 등을 쓸어주자 한스가 울면서 말했다.


“흐흑.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죽일 수가 있어. 생사를 같이 한 동료들을······. 흐흑. 나 너무 이기적인 놈이야. 이 와중에 여기에 서지터가 없다는 게 또 안심돼. 흐흐흑. 제발 살아있어야 해.”


“한스님, 사람이니까 당연한 겁니다. 저 역시도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서지터님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기운 내십쇼. 반드시 구해낼 겁니다.”


남은 몇 명의 대원들이 그들의 시신을 수습했고, 용병단은 슬픔을 뒤로한 채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끊어진 흔들다리 앞까지 도착한 용병단은 성직자들의 마법으로 엉성하지만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 놓고, 조심스럽게 건너갔다.


그리고 얼마 못 가 좁은 협곡에 도착했을 땐 처참한 전투를 치른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산을 쌓아도 될 만큼 셀 수도 없는 몬스터들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한쪽 구석엔 반듯하게 눕혀놓고 모포로 덮어놓은 다섯의 검은 늑대 대원들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1척후대 대원들은 모포를 치우며 대원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했다. 한스나 파시비엔과 마찬가지로 레일라 역시 서지터의 모습이 없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살아있다는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고로드는 조용히 단장에게 다가가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아무래도 좁은 여기서 몰려드는 적들을 막은 거 같습니다. 저 앞쪽까지 몬스터 시체들이 즐비한 걸 봐서는.”


“늑대들답게 돌격해 나갔겠지. 방법이 없었을 거야. 뒤로는 절벽이고 앞에는 몬스터들이 끝없이 달려드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야. 조금만 더 여기서 버텨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케인즈 단장은 침통한 심정이었다.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이곳에서 살아남은 검은 늑대 대원들을 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왔다. 용병단 대원 모두 그에게는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특히나 검은 늑대는 케인즈 단장에게 각별했다. 가장 아끼고 자랑스러운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사지로 달려나갔을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전군! 진격한다!”


케인즈 단장은 나지막이 힘을 주어 말했다. 용병단 전원은 검은 늑대들을 따라 트리스미스로 향해 나아갔다.


#

“대장! 어쩔 생각이야.”


“모르겠네. 내가 어쩌면 좋겠나?”


“난 못해. 다크 스컬 밑으로 들어가자고? 차라리 그냥 여기서 죽자. 어차피 죽기를 각오하고 돌격한 거잖아.”


“다른 대원들은?”


아더 대장의 말에 벨크가 힘주어 말했다.


“비굴하게 삶을 구걸할 바엔 죽는 게 낫지. 죽더라도 싸우고 죽자고!”


루시와 다른 살아남은 대원인 데미스턴까지 자신들의 뜻을 전했다.


“난 여기서 죽어도 좋아. 아트랑 같이 죽는 걸 택할래. 대장.”


“대장님! 여기까지 와서 하찮은 목숨 따위 중요하지 않습니다! 싸우게 해주십시오!”


아더 대장은 고개를 숙였다. 다크 스컬이 제시한 시간까지 반나절 남은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에 있는 대원들을 살리고 싶었다. 자신이 아닌 대원 중 누구라도, 단 한 명이라도 살리고픈 마음이었다.


“베어! 정신 차려! 일어나봐. 응?”


서지터가 두꺼운 베어의 손을 주무르며 그를 깨웠다.


“쿨럭, 하아, 하아.”


베어는 말할 기운도 없었고, 힘없이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젠장! 베어! 안 죽는다며!”


루시가 달려가 베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울먹거렸다. 치명상을 입으면서도 지금까지 버텨낸 것이 대단할 정도였다.


“하아, 지터 안 죽었쥬?”


“으응! 나 여기 있어! 옆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미안해유. 앞이 안 보여유.”


베어는 큰 눈을 끔뻑거렸지만,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지터는 베어의 손을 꼭 잡아주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트는유.”


“여기, 여기 있어.”


“미안해유. 끝까지 같이 있어 줘야 하는데······.”


“닥쳐, 인마! 그럼 살라고!”


“껄껄······. 내가 형이라니께유.”


베어는 힘없이 웃었다. 이제 베어에게는 남은 시간이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며 간신히 울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대자앙. 나 대장 만나서······. 그래서 좋았어유. 날 여기로 데려와 준 거······. 고마워유.”


슬픔을 참아내던 아더 대장도 베어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


“루시는······. 우리 아트 잘 보살펴줘유. 센 척해도······. 아직 애기에유.”


“흐흑. 야! 유언 같잖아. 하지 마! 하지 말라구!”


루시는 고개를 흔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서지터는 무릎을 꿇고 베어 앞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베어는 간신히 팔을 들어 투박한 손으로 천천히 서지터의 손을 잡아주었다.


“있자나유. 나도······. 나도 편지 써준 사람처럼······. 지터 형이쥬?”


“흐윽! 응! 베어도······, 내 형이야. 흐윽.”


“고마웠어유. 지터를 만나고······. 너무 행복했어유. 그리고······. 벨크랑 그만 싸우구유. 죽지 마유. 남몰래······. 힘들어하지도. 아파하지도······. 말아유. 살아서······. 꼭 살아서······. 내 몫까지 행복하게······. 쿨럭쿨럭. 흐으으.”


“베어!”


베어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서지터를 잡았던 손도 힘없이 축 늘어지고 말았다. 베어의 죽음에 다들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는 언제나 대원들의 든든한 형 같은 존재였고, 서지터에겐 항상 버팀목처럼 지켜주고 아껴주던 사람이었다.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주던 사람이었다. 이제 더는 그의 웃음소리도, 친숙하던 느린 말투도 들을 수 없었다. 서지터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눈물만 가득 쏟아낼 뿐이었다.


아트록스는 눈물을 닦으며 아더 대장 앞에 섰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마주했다. 베어를 위한 최소한의 애도였고, 강하디강했던 두 남자는 입술을 깨물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냈다.


이윽고 아트록스가 울음을 삼키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아아. 대장. 성으로 가자.”


아더 대장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딴 놈한테 굽히고 싶지도 않고, 굽히는 척도 하고 싶지 않아. 죽여 버릴 거야.”


얼굴에 눈물범벅을 한 서지터는 웅크린 채 서럽게 울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휘청거리며 걷는 그를 벨크가 부축해 주었다. 두 사람 역시 아더 대장 앞으로 다가갔다.


“대장님. 베어의 죽음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성까지, 다크 스컬 앞까지 가고 싶습니다. 대장님이 막더라도 가겠습니다.”


단호했다. 완벽하게 적들에게 둘러싸여 고립된 상태지만 성까지 갈 수 있다 믿었다. 마지막 베어가 죽어가며 심어준 투지를 이대로 묻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다들 서 있기조차 힘들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가보자.”


어렵사리 내린 결정이었다. 그가 결정하자 아트록스가 힘차게 외쳤다.


“검은 늑대! 돌격 준비!”


열 명의 마지막 검은 늑대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투구를 쓰고 각자의 무기를 챙겨 자신의 말의 고삐를 잡아 2열로 늘어섰다.


“가자!”


아더 대장의 짧은 지시에 모두 말에 올라탔다. 준비가 끝나자 아더 대장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켈베로스 용병단! 최강의 검은 늑대! 돌격한다!”


- 콰직!


검은 늑대들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왼편에 보이는 손만 뻗으면 닿을 거 같은 트리스미스 성을 향해 돌격해 나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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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5 20.05.21 80 2 15쪽
284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4 20.05.20 56 2 15쪽
283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3 20.05.19 53 2 12쪽
282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2 20.05.18 52 2 15쪽
281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1 20.05.16 56 2 11쪽
280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0 20.05.15 58 2 13쪽
279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9 20.05.14 54 3 11쪽
278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8 20.05.13 56 2 12쪽
277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7 20.05.12 56 2 11쪽
276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6 20.05.11 55 2 14쪽
275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5 20.05.09 68 1 11쪽
274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4 20.05.08 60 3 11쪽
»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3 20.05.07 58 2 12쪽
272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2 20.05.06 66 2 11쪽
271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1 20.05.05 57 1 12쪽
270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0 20.05.04 57 2 12쪽
269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9 20.05.02 64 1 13쪽
268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8 20.05.01 56 1 12쪽
267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7 20.04.30 60 1 11쪽
266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6 20.04.29 57 2 14쪽
265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5 20.04.28 64 2 11쪽
264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4 20.04.27 63 2 12쪽
263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3 20.04.25 67 1 19쪽
262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2 20.04.24 78 2 11쪽
261 14화 슬픔은 가슴에 묻고 - 1 20.04.23 74 2 14쪽
260 13화 거짓된 역사 - 21 20.04.22 58 2 14쪽
259 13화 거짓된 역사 - 20 20.04.21 6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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