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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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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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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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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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당신을 떨어뜨리려고(2)

DUMMY

여러 음유시인들이 말하기를 불 구경과 싸움 구경이 구경들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다 하던가.

자기 자신에게 피해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 넘실거리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광경을 바라보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감과 동세하며, 예로부터 불꽃은 생명의 태동과도 관련이 깊은지라 어쩌면 생명체라면 응당 가지고 있을 동경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한 어둡게 보자면 아직도 대도시의 뒷골목 등지에 남아있을 노예 투기장부터 양지로 나와서는 교류제의 대련에 이르기까지.

끓어오르는 감정의 열기와 상대방을 제압하고자 펼쳐지는 투지의 맞부딪힘은 하나같이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리기 충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결선까지 아득바득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한 번 거하게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눠봄은 어떠십니까."


현우의 발언이 수정구로 투영되어 지지연설을 지켜보는 마법사들에게 다다랐을 때, 일부는 어처구니 없다는 평을 내렸지만 또 다른 이들은 조금 마음이 동하며 기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현우가 원래 그런 애였나? 아니 뭐, 미네바에서 걔가 보여준 저돌성이나, 어디서 갑자기 말 타다가 넘어졌다면서 다리에 금이 가버렸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긴 했어도 말이지."

"...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긴 해. 진짜 나를 친구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는 일종의 회의감이 들고 있어."


미아는 그러면서도 손바닥에 무언가를 그려가며 셈에 열중이었다. 무엇을 하려는지 물어보려 했던 벤이지만, 지금 건드렸다간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걸 반년에 넘게 걸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벤 역시도 최근의 약독화 마법의 수식을 정리하는 가운데 저런 머릿속 연산을 여간 해본 것이 아니라서, 그는 미아를 내버려둔 채로 현우가 이야기하는 것을 계속 지켜보았다.


그 밖에는 지지연설의 마무리까지 평이한 내용의 것들이었다. 마무리까지 미친 듯이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이 날개의 마법사의 계획이었으나, 그의 스승이라 불리는 자가 눈치를 준 것도 있는 데다가 더 이상 꺼낼 카드가 없던 탓이다.

마지막 지지연설을 다른 마법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잠시 수정구가 제 일을 마치고 쉬는 사이, 마법사들의 이성에 또 다시 몰아친 두 번의 폭풍은 적잖은 동요를 불러왔다.


"루크, 그 녀석의 언동에 맞지 않게 거친 방법을 쓰는구나. 이럴 때를 위해서 그 동안 숨겨온 것일까. 결선에서 보는 것은 메트리 교수가 아니라 오히려 이쪽일 지도 모르겠구나."

"걱정 마세요, 니암 선생님."


조금은 진지한 얼굴로, 사실은 진지하지 아니할 때가 오히려 드문 니암과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스승을 달래는 슈테판은 다른 이들이 본다면 재미있는 대비를 이루고 있다 생각하리라.

하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차피 다 지나갈 일입니다. 이 시류가 잠잠해졌을 때, 선생님께서는 저기 있는 마드라드에서 가장 높은 층에서 다른 이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우리는 충분한 준비를 오래 전부터 해왔었지. 그것을 굳게 믿고 가는 수 밖에 없구나."


저쪽의 폭풍은 슈테판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칠었다. 그건 인정했다.

슈테판은 스승에게 양보한 자신의 자리 대신에 손님이 머무는 의자에 앉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

으레 다른 마법사들이 그런 것처럼 그는 찬찬히 지금의 폭풍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고민했다.


몰려오는 파도는 많은 수의 마법사들을 휩쓸 것이 분명했다.

시작은 루아 메트리, 그녀로부터 비롯되었다. 먼저 자극적인 소재를 꺼냈으니 도리어 루크와 현우 측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


'애초에 정말 커다란 공약이긴 하지만 하나 만을 가지고 올 줄은 몰랐어. 물론 말로드가 보조 공약을 꺼내긴 했지만 마음을 자극하는 어조는 아니었지.'


'더군다나 지금의 삼파전 양상에서 소수파는 오히려 루아 메트리 쪽이 아니라 루크 부탑주의 무리. 순서도 순서겠지만, 훨씬 보여진 것이 많은 루크 부탑주 쪽 연설이 더 눈길을 끈 것은 사실이다.'


또한 마법사들은 멍청하지 않다. 왕국의 각지에서 선발된 이들에 애초에 마드라드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아옴(AoM)과 같은 하위 교육기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들.

그들의 머리로 판단하건대, 니암을 제외하고 결선에 나가게 될 후보를 꼽으라 하면.


"이번 판은 루크 부탑주의 승리겠군."

"..."


큰 폭탄, 허나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은 공약과 이를 보조하는 안전에 대한 보장 약속.

그리고 그 상대는 이미 계획을 이루어낸 추진력을 직접 보여주며 적극적으로 마법사들에게 달려드는 저돌적인 공약들과, 제 살을 베어가며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고 마지막으로 직접 니암과 그에게 붙어보자며 점을 찍은 연설.


양쪽 다 일장일단이 있었다.

말로드가 좀 더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쪽으로 대중을 이끌어낸다면 메트리 교수 쪽도 강세를 잃지 않을 것이며, 이미 화끈하게 질러버린 루크 쪽은 그 불길을, 몰아치는 폭풍을 꺼트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메트리 교수 쪽으로 쏠릴 뻔했던 표들을 상당수 끌어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슈테판은 단호하게 루크의 승리를 점쳤고, 이에 대해 니암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애초에 메트리 교수는 결선을 위해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장현우와 루크 부탑주 쪽은 비전까지 공개를 해가면서 사활을 걸었는지 미치도록 따라오고 있으니까요."

"...이게 뭐라고 나까지 긴장이 되는구나. 두통이 조금 더 심해졌어."


그 말에 슈테판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니암을 부축하며 말했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차라도 한 잔 드시는 건 어떠실까요? 제가 마침 좋은 차를 가지고 있어서요."

"그거 좋지. 얼른 위원회의 이들이 오기 전에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좋겠군."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오르는 잔에는 말간 적갈색의 액체가 쪼르르 따라졌다. 그 내용물이 니암의 목으로 넘어가며 잔이 비워질 수록, 슈테판의 눈에 비치는 희열은 점점 채워져 간다.


"이제는 이 정도까지."


자칫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었으나 그 말에 지적을 거는 인간은 없었다.

애초에 장소가 13층에 위치한 자신의 공방일 뿐더러, 방과 방 사이의 벽은 마법적 처리에 힘입어 저쪽의 소리를 이쪽에서 쉽게 듣지 못하듯 안의 소리를 바깥으로 끌고 나가지 못하게 했으니까.


슬슬 바깥이 분주한 모양이니 시간을 벌기 위한 작은 꼼수가 제 역할은 톡톡히 한 듯 싶은 슈테판은 인기척에 따라 방문을 먼저 열었다.


"어, 여기에 계셨군요. 니암 탑주 대리님이 연설하실 때에는 분명히 연구실이 있는 14층에 계셨던 걸로 기억을 해서, 이번에도 14층을 들렸었는데 계시지 않더군요."

"못난 제자를 격려해주기 위해 내려오셨답니다. 다 제가 부족한 탓이죠. 어찌나 긴장되는지, 직접 선생님께서 차도 끓여주셨는걸요. 그래도 결국엔 선생님께서 먼저 긴장을 하셨나 봅니다."


어느새 탁자 위에 놓여진 두 개의 잔을 바라본 위원회의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정구를 내려놓았다.

니암 쪽의 잔이 거의 비워진 것으로 봐서는 슈테판의 말이 맞는 듯 보였고, 그의 스승 또한 냉철한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띠며 위원회가 준비를 할 수 있게 자리를 비키는 모습이었다.


"준비는 되셨나요? 지지연설이 후보연설과는 반대 순이라 아무래도 긴장이 많이 되셨을 텐데."

"물론입니다. 저와 선생님이야 마탑에서 준비 하나는 철저한 편으로 이미 유명하니까요."


자신의 이명에 어울리게, 슈테판은 잠깐의 준비만으로도 고상한 기품을 풍기며 투영 마법으로 진행되는 지지연설의 포문이 될 자신의 입을 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 * *


"그래서 슈테판의 지지연설에 대한 네 소감을 듣고 싶구나. 입은 일단 다물었다가 대답하도록."


물밀듯이 몰려든 다른 마법사들의 접견 요청을 전부 거절하는데 성공한 루크는 식은땀을 훔치며, 아직도 수정구를 바라본 채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현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확실히 준비한 태도가 돋보이네요. 시간의 차이는 어쩔 수 없네요."

"결속력도 훨씬 단단한 마당에, 지지연설까지 저렇게 진행되면 니암 쪽은 예정대로 얻을 표는 전부 얻을 모양이다. 결국 우리가 결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마법공학부 학부장인 메트리 교수님의 지지표를 흡수해서, 그쪽보다는 더 많은 양의 표를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겠죠."


슈테판의 지지연설은 앞서 말한 두 사람의 것들에 비하면 조금 더 수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강했다. 본질적으로 강함에는 여러 미사여구를 붙일 이유가 없나니, 그 자체만으로도 여러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때문이리라.

그의 지지연설의 골자는 단순했다.


'이미 니암 콜 부탑주가 탑주 대리로 있으면서, 그 동안의 마탑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는 전혀 잡음이 나지 않았다.'


현우의 지지연설에서 보여준 그 행동력과 결과를 이미 콜 후보 또한 갖췄다는 것.


'마탑의 근본, 마법학부의 수장으로서 마법학부를 비롯한 마탑에 거주하는 마법사들이 그간 받았던 혜택들은 절대로 취소되지 않을 예정이다.'


이미 그들이 받고 있는 이익은 결코 침해되지 않으리란 보장.


'이대로 니암 선생님이 마드라드 총장과 마탑주에 오른다면, 결코 마드라드에 허점이 뚫리거나 공백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올 봄에 있었던 테러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허점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주장.

승계작업에서 필시 벌어질 마탑 운영의 공백이 결단코 없으리란 이야기까지 마쳐낸 슈테판 리의 지지연설은 모두를 노리고 있었다.

말로드가 끌어 모으고자 했던 '안전을 중시하는 이들'과 현우와 루크가 집중한 '행동력 있는 리더를 중시하는 이들', 마지막으로 '지금의 자리가 보전되기를 바라는 이들'까지.


메트리 교수와 루크의 공약이 새로운 것을 마법사들에게 주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면, 슈테판의 약속은 니암의 공약을 보듬어주며 지금의 위치와 권리를 보장해주겠노라 속삭였다.

당연히 더 효과는 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제가 마탑주 선거의 규약집에서 본 내용이 맞는다고 치면."

"그건 사실이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자신의 공방이 위치해있는 층수에 따라, 마탑주를 뽑을 수 있는 표의 숫자가 다르니까."


높은 층에 위치해있는 장로급의 마법사일수록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표의 숫자가 많아진다.

사실 베른 장로의 반응처럼 현우의 비전 마법 등에 관심을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대개 나이가 들게 되면 좀 더 선택이 안정적으로 쏠리지 않던가.

지금 취하고 있는 권한과 이익에 해가 가지 않는 방식을 더 선호하게 되는 법. 급진적인 메트리와 루크의 공약은 필시 그것에 반하는 다른 개정을 몰고 올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노린 슈테판의 약속은 마탑 상층에 있을 마법사들의 표를 분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메트리 후보보다 더 많은 표심을 끌어 모을 수 있을지 현우가 고민하던 때였다.


똑똑똑.


루크의 연구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문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문이 열리고, 많이 들어본 듯한 목소리의 주인인 여성이 현우와 루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야."

"아, 안녕하세요, 메를린 님."


시어도어의 두 번째 제자이자 마탑의 재무를 총괄하는 위대한 마법사들 중 한 명.

그러나 현우와 루크를 찾아온 이는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은 처음으로 들려봅니다. 안녕하세요, 루크 부탑주님."

"...저도 당신을 직접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군요, 루아 메트리 교수님."


수정구의 투영 마법으로만 보았던 모습, 이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녀가 발걸음을 내디뎌 루크의 연구실로 들어왔다.

그녀를 보좌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다른 마법사들은 없이, 오직 혼자서만 메를린의 도움을 받으며.


"여, 여긴 어쩐 일로..."

"내가 이번 마탑주 선거 위원회의 장을 맡고 있으니까. 시어도어 님의 아래에 있는 4명의 중축 중, 오직 나만이 이번 선거에 발을 담그지 않았거든."


현우의 물음을 간단하게 논파한 그녀는 루크에게 슬쩍 허락을 맡은 뒤, 탁자와 의자를 끌어와 자리를 정돈했다.

다른 한쪽엔 루크가, 그리고 다른 한 쪽엔 메트리 교수가 차례로 앉은 가운데, 아직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는 한 사람만이 다시 질문을 던져 침묵을 끊어냈다.


"혹시 메트리 교수님, 메트리 후보님께서는 어쩐 일로 스승님께 오신 건가요?"

"...지지연설을 한 이라 해도, 이것까지 제자에게 공개하실 건가요?"


메트리의 차가운 물음에 루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한숨을 쉬는 마법공학부의 학부장은 은색 안경을 곧추세우며 바로 용건으로 들어갔다.


"거래하죠, 우리. 어차피 둘 다 이대로는 사이 좋게 망하고 말 겁니다. 어떻게, 후보 단일화라도 하시겠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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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1부 후기 20.08.12 81 3 5쪽
275 275화. 또다시 바람은 다가오나니[1부 완] 20.08.11 42 1 14쪽
274 274화. 폭풍이 지나간 이후(3) 20.08.10 42 0 14쪽
273 273화. 폭풍이 지나간 이후(2) 20.08.07 69 0 14쪽
272 272화. 폭풍이 지나간 이후(1) 20.08.07 41 0 14쪽
271 271화. 시간이라는 바람(4) 20.08.06 32 0 13쪽
270 270화. 시간이라는 바람(3) +4 20.08.05 65 0 14쪽
269 269화. 시간이라는 바람(2) 20.08.03 41 0 13쪽
268 268화. 시간이라는 바람(1) 20.07.30 27 0 14쪽
267 267화. 구원자의 의미(4) +1 20.07.29 32 1 13쪽
266 266화. 구원자의 의미(3) 20.07.28 34 0 13쪽
265 265화. 구원자의 의미(2) 20.07.27 32 0 14쪽
264 264화. 구원자의 의미(1) 20.07.23 53 0 15쪽
263 263화. 해와 달이 지고 뜨는(5) 20.07.14 52 0 13쪽
262 262화. 해와 달이 지고 뜨는(4) 20.07.10 52 0 14쪽
261 261화. 해와 달이 지고 뜨는(3) 20.07.09 52 0 14쪽
260 260화. 해와 달이 지고 뜨는(2) 20.07.07 74 0 13쪽
259 259화. 해와 달이 지고 뜨는(1) 20.07.06 39 0 14쪽
258 258화. 이스윈 공방전(4) 20.07.04 3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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