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마왕군 제 1 군단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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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K
작품등록일 :
2019.06.2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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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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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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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3 It's our war now

DUMMY

2/4


검은색 천 위에 도마를 놓고, 옆의 뜨거운 불길 위에 간이 솥을 걸어놓았다. 솥단지에는 식용 가능한 물이 절반쯤 차있었다. 아마 식재료를 전부 준비할때쯤이면, 물이 끓어오를테니 미리 채워둔 것이었다.



식료품이 가득 든 상자에서 신선한 채소들을 꺼내었다. 갓 캐와서 흙투성이 상태는 아니고, 그저 수확한지 3일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 싱싱한 채소다. 그런 채소를 한가득 꺼내어 나름 청결하게 관리한 흔적이 돋보이는 도마에 올려놓았다. 진한 주황빛의 캐러아이트, 하얗지만 조금씩 옅은 연두빛이 섞여있는 어니, 너무 신선해서 붉은 광택마저 감도는 토마이트. 이것들을 도마에다 가지런하게 놓고.



타다다다다닥-!

몇번이고 모래를 문지르고 물로 꼼꼼하게 씻어낸 단검으로 난잡하게 썰어제꼈다.

너무 난폭했던가, 붉은 피...가 아니라, 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과즙과 투명한 물방울이 눈에 튀었다.



"윽."



점점 느껴지는 화끈한 열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빌어먹을, 어느새 과즙에도 어니의 매운기가 배어있었다. 안구에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화끈함에 눈을 연신 끔뻑거렸다. 눈을 쥐어짜는듯이 염분을 머금은 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려왔다.



이래서 어니를 딱히 쓰려고 하지 않은건데,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이 요리의 주체되는 이는 하고있는 내가 아닌, 뒤에서 책을 읽고 계시는 분이니까. 뭘 읽고 계신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분의 취향과 음식 선호도를 면밀하게 잘 아는 나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맞춰드리는게 옳은 일이었다. 어찌되었든지, 재료에 원수라도 진듯이 계속해서 단검으로 과육을 썰었다.



평범하거나 그다지 숙련되지 않은 검술사가 보기엔 그저 난잡한 검놀림이겠지만, 그들도 검이 아닌 과육의 상태에 눈을 집중하고 있었다면 아마 놀라서 까무러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모든 채소들을 정확히 통상적으로 생산되는 각설탕의 100분의 1만치 되는 간격에 맞춰서 썰고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면 그냥 일정한 크기의 네모 모양으로 썰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 잘라봤자 요리에 무슨 소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싹다 솥에 처넣고 뭉근하게 끓일 예정이니 덕에 아마 조리시간은 크게 단축될 것이 틀림없었다. 도마에 올려진 마지막 한 조각마저 그렇게 자른 후, 흘러나온 과즙들이 되도록 흘려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도마를 들어 불 위에 올려진 솥에 전부 투하했다.



풍덩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조금씩 바깥으로 튀었다. 하지만 아직 조리법 (내 생각) 대로 다 하지 못했다. 식재료 상자를 뒤져서 잘 보관해놓은 고깃덩이를 하나 집어들었다. 채소에 비해 상당히 신선도가 일찍 떨어지는 편인 육류는 빠르게 소비하는게 정석 중의 정석이다.



도마에 고깃덩이를 올려놓았다. 지방질이 여기저기 거미줄처럼 퍼져있고, 시뻘건 것이 정말로 좋은 품질의 고기가 분명해보였다.

그러니 조심스럽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칼로 고기를 채소를 썰때처럼 잘랐다. 이정도면 거의 다지는 수준이긴 했지만, 알갱이가 있는 것하고 알갱이가 뭉쳐서 덩어리가 된 것하고 차이는 극심하다.



그러고보니 이거 핏물을 빼야한다고 들은 것도 같은데, 어떻게 빼야하는지 모르니 일단 물을 받아놓은 그릇에 고기를 살포시 내려놓고, 그대로 쥐어짰다. 마른 생선도 짜면 기름이 나오든 물이 나오든 한다니까 고기라고 다를건 없겠지. 그런 생각으로 팔에 힘줄이 잔뜩 돋아날 정도로 강하게 쥐어짰다. 덕에 진짜로 물에 핏기가 조금씩 배어나오고 있기는 했다.



"이정도 뺐다면...나름 된 것도 같은데."



한 3분을 그렇게 쥐어짰지만, 핏기는 이제 더는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 충분히 되었다는 생각에 이제 뭉개져서 형체만 간신히 남아있는 고기를 물에서 빼낸 후, 개인적인 용도로 갖고 있던 소금만 전체적으로 뿌려서 간을 맞춘후에 죄다 솥단지에 투하했다. 부글부글 끓어서 마치 용암과도 같이 변해버린 국물에 녹아내린 바위처럼 생겨먹은 건더기들이 떨어졌다.



"그리고...어...조리법에 뭘 넣으라고 되어있었더라."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일단 기억나는대로 어떻게든 해보기는 했지만, 고작 이게 과정의 끝일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분명히 이쯤에서 몇가지의 일련의 과정들이 더 있었는데, 그게 어렴풋해서 생각나지 않았다. 마왕성 요리사가 몇가지 일러준게 있었다는 사실만이 분명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타지 않도록 긴 숟가락으로 솥을 저으면서, 인상을 있는대로 찌푸리며 계속 그 몇가지 일러준게 뭐였는지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요리를 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향신료와 맛을 더 깊이있게 해주는 첨가물입니다.



성과는 틀림없이 있었기에, 문득 귓가에 한마디의 말이 들려와 맴돌았다.



"...향신료, 향신료라..."



시선이 절로 식재료 상자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조그맣게 향신료 통이라고 써붙여놓은 상자가 있었다.



"말보다는 행동이지."



그대로 숟가락을 비스듬히 기대어놓고는,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 * *


사락- 책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부드러웠다.



[아득하게 먼 옛날이었다.]



대개 신화나 설화에서 나오는 흔하디 흔한 내용, 하지만 그렇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는 시작부분이 첫번째 페이지부터 나를 반겨주었다. 한 페이지를 저거 한마디로 떼우는건 조금 저자가 날로 먹는것을 좋아할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떠안겨주기도 했다.

다시 책장을 넘겼다.


사락-

[세상이 창조되기 훨씬 이전에, 그러니까 세상을 넘어 생명조차 탄생하기 전에는 혼돈이라는 하나의 씨앗만이 존재했다.]



이것봐라, 또 한 페이지를 문장 하나로 떼워먹었다. 사람들이 많이 봤을것만 같은 낡디낡은 표지를 한 주제에 이토록 날로 먹다니, 혹시 나는 종이를 이렇게나 낭비한다는 보여주기식 사치의 일환으로 책을 적어낸 것일까, 짜게 식은 눈으로 계속 책장을 넘겼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어서 보면 나름 제대로 된 신화의 초반부임은 틀림없었으니까.



사락-

[혼돈이라는 씨앗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공간에 혼자 남아있었다. 그것도 수억년을 넘어선, 이해 불가능한 영역에 도달한 세월을 줄곧 혼자 남아있었던 것이다.]



"혼돈?"



문장을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말마디, 그건 왠지 모르게 입안이 가득차는듯한 친숙한 울림을 주었다. 약간 시들던 호기심의 싹이 다시 싱싱해지는듯 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 페이지를 넘겼다.



사락-

[그러다가 어느 순간, 혼돈이라는 씨앗은 수많은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특이점이라고 불리우는 균열이 일어나자 혼돈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특이점으로 인한 싹을 틔운 혼돈은 급속도로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공간을 자신으로 온통 채워나갔다.]



이해하기 난해한 말들의 향연과 여백의 향연, 대강 훑은후에 페이지를 다시 넘겼다.



사락-

[그렇게 채우고 채우고 채우고- 그러다가 단 한 톨의 먼지마저 내려앉을 공간이 없을 만큼 꽉 채우고 난 뒤에서야 혼돈은 팽창을 멈추었다.]



"답답하겠네."



왠지 잔뜩 부푼 빵반죽이 방안을 꽉 채운 광경이 상상되었다. 아마 그정도까지 부풀면 문과 창문에 끼어서 터져나가지 않을까, 짧막한 감상평과 함께 곧바로 책장을 넘겼다.



사락-

[팽창을 멈춘 혼돈은 곧바로 폭발했다, 폭발해버린 혼돈은 자신에게서 두 가지를 분리해내었다.]




"진짜네."



빵 반죽이 펑, 하고 터져버리는 광경이 연상되었다. 치우는건 둘째치고 엄청 요란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웃음이 조금 비어져나왔다. 그나저나 두가지를 분리해내었다니, 혹시 흔하디 흔한 선과 악이나 어둠이나 빛은 아니겠지. 설마하는 생각과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사락-

[아무렇게나 뒤섞여있던 자신을 불순물 하나 없이 각기 다른 두 가지로 분리해 낸 것이다.]



그래서 그게 무엇일까, 같은 내용의 반복과 이어지는 노골적인 날먹의 현장에 재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사락-

[분리된 그 두 가지는 그때 당시엔 이름이 없었으나, 이 사실을 탐구하고 파헤쳐 낸 시대의 모든 이들이, 특히 '인류의 천칭'이라 불리우는 집단에서는, 그 두 가지는 틀림없이 이것이었을거라고 주장하고, 명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여백의 미가 없이 해골 모양 위에 덧그려진 천칭그림이 떡하니 페이지 한 면을 채우고 있었지만, 이어지는 내용의 반복은 저자의 양심 유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가에 충분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대충 면면을 훑고는 그대로 책장을 넘겼다.

문제가 있다면.



파라라라락-

그뒤는 페이지가 전부 여백이었다. 글자 하나 없는 순수한 종이조각.



"...."



너무도 마음에 안드는 광경이었기에, 그대로 입술을 비틀었다. 아니, 그냥 저절로 비틀어졌다.

이런 식으로 내용을 끊어먹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짓이기에 감히 하려는 생각을 해서도 안되는 금기이거늘,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날먹만 하다가 나름 흥미로워지려고 할때, 책 내용이 끊겨있단 말인가.



"고서라기에 엄청 기대했는데...!"



배반당한 기대에 의해 생겨난 분노로 인해, 한가득 떨리는 손으로 책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괜히 읽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어서 심통이 났다. 이걸 쓴게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문지방 넘나들다가 새끼 발가락이나 짓찧으라고 마음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그때, 마침 월영이 요리를 다 마쳤는지 내게로 그릇을 들고 다가와 말을 걸었다.



"기분이 조금 언짢아보이십니다. 사벨레인님."



"고마워 월영. 어...그게, 아무래도 고서가 좀 이상한거 같아서."



나는 그가 내미는 그릇을 받아들면서 대답했다. 월영이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고, 나 또한 월영을 믿기로 했으니, 당연히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전히 조심스러웠긴 매한가지였지만, 나름 벽은 조금 허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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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Story. 3 It's our war now +2 19.07.25 184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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