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마왕군 제 1 군단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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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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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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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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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2 - 먼 옛날의 이야기

DUMMY

* * *



약 10여분이 지났다.

전혀 길지않은 그 짧은 시간동안, 알현실은 이제 방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버린지 오래였다.

매끈한 거울처럼 윤기나게 닦여져있던 반질반질한 바닥은 이제 쓰레기장처럼 흙먼지와 돌 파편, 그리고 반쯤 굳어가는 핏물 웅덩이에는 수프 건더기처럼 둥둥 떠있는 루비 같은 보석 알갱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늘 하나 안들어갈 것처럼 완벽했던 벽면과 기둥은 이제 없었다.

곳곳이 뜯겨지고 분쇄되어 균열과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려버렸고, 그에 따라 벽면에 그려져 있던 그림들 역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서 몹시도 추하고 처참한 몰골이 되어버렸다.


기둥은 마치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서 한입 크게 베어물고 사라진 것마냥 옆면이 아무렇게나 들쭉날쭉하게 뜯겨져 나갔고, 어째서 아직까지 기우뚱거리며 무너지지 않았는지가 의아할 정도로, 톡 치면 당장이라도 무너질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최고급 중의 최고급이었을 바닥 깔개와 제국의 문양이 그려진 휘장들이 하나같이 다 낡고 흙먼지가 두껍게 쌓인 볼품없는 넝마조각이 되버린 채로 땅바닥에 험하게 굴러다녔다.


그뿐만이 아니라, 절대불가침 영역쯤으로 여겨지는 황제가 앉는 드높은 옥좌와 그곳으로 올라가는 계단마저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이곳에 그런 것이 있었다는 흔적만 남겨진채 이미 절반 이상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린 상태로, 단지 그것만으로도 이 혈투가 얼마나 격렬하고도 처절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똑...



불현듯,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핏물이 한가득 고여있는 어느 웅덩이에서부터 작게나마 파문이 일렁였다.



주륵- 스르르...



웅덩이의 핏물이 서서히 한 곳으로 뭉치듯 모이더니, 이내 기둥 모양으로 높게 솟아올랐다.

비단 그것 뿐만이 아닌, 주변에 널려있는 크고 작은 피웅덩이에서도 같이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촤아아-!



위협적인 거센 물보라 소리와 함께, 핏물 기둥들이 일제히 데이안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핏빛으로 된 화살들이 핏물보라를 튀기며 사방에서 쇄도했다.



"흡!"



데이안은 잠시 눈알을 굴리다가 피할 곳이 없음을 깨닫고는, 그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합을 내뱉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부터 치솟고 있던 보랏빛의 에너지가 마치 울타리처럼 데이안의 몸을 중심으로 빙 두르듯 감싸안았다.

피로 이루어진 길쭉한 화살들은 그 방어막에 필히 가로막힐 수 밖에 없었다.



티잉- 파사삭..



소름끼치는 진동소리와 함께 익은 과일이 부서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졌다.

잘 익은 석류가 으깨지듯, 피로 이루어진 화살들은 방어막에 부딪힌 반동으로 인해 일제히 산산히 부숴지고 말았다.

방울지며 사방에 투둑투둑 떨어지는 핏방울이 마치 석류 알갱이가 흩뿌려지는 것만 같았다.



투두둑- 투둑-

치이이익...



땅바닥에 떨어진 핏방울들은 이내 지글지글 끓어오르며 산화되었다.

데이안의 주변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핏자국들에서부터 기묘한 느낌의 보랏빛 연기가 폴폴 피어올랐다.



"하아...이...지긋지긋한...크흐...새끼...!"



행한 공격이 너무도 허무하게 막히는 모습을 보며, 라디미르 황제는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연거푸 숨을 내쉬며 욕을 읆조리는 그의 모습은 몹시도 위태로워 보였다.

실제로 지금 그의 다리는 보는 사람이 불안할 정도로 휘청였고,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가늘게 떨려오고 있었다.



"이건...흐으...말도 안되는 일이야...내 선조께서는 분명히...이 힘으로 초월자를 죽였단 말이다...!

그런데...그런데 어째서 네놈은!"



황제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내뱉으면서 데이안을 향해 빠른 속도로 중얼거렸다.

분노와 의아함마저 함께 담긴 중얼거림의 밑바닥에는, 그가 의아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전제가 깔려있었다.



"..."



데이안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멸해가는 황제를 보면서 잠깐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아직 승패가 확정나기도 전에 친절하게 지는 이유를 입으로 떠벌리며 설명할만큼 그는 안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 역시 연이은 공격들을 막아내느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몹시 지쳐있는 상태였기에 굳이 대답을 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데이안은 라디미르 황제가 어째서 지는지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능력이 가진 한계점을 일찍 깨달은 것이었다.



피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그것이 불을 마음대로 다루고, 물을 수족처럼 쓰는 것과 비견될 정도로 아주 엄청난 능력임에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 부정할래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피는 어떤 생물체라도 살아있는한 결코 메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생성되고, 끊임없이 체내에 흐르니까 말이다.



주변에 피를 흘릴 수 있는 생물체가 있기만 한다면 한없이 무한에 가까운 힘을 휘두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 능력의 한계점이라는 소리였다.

한없이 무한에 가깝다는 소리는 결국 유한이라는 뜻과 귀결되는 즉, 언젠가는 그 힘도 밑바닥을 드러내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엇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안은 자신을 제외한 모두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 것이었다.

주변에 피를 흘릴 수 있는 생물체가 있다면 분명 라디미르 황제의 능력은 감히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지만, 가장 중요한 자원인 피가 없다면 그 힘은 크게 제한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막 결투가 시작되었을때는 처음에 달려들다 죽어버린 병사들의 몸에서 뽑아낸 피로 인해서 분명 수세에 몰리기도 했었다.

그에게 넘치는 자원이, 충분한 양의 피가 있다는 것은 할 수 있는 공격의 폭이 넘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제 아무리 수비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틈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인데, 사방에서, 더욱이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매섭게 날아오는 선혈들은 몹시도 위협적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황제가 다룰 수 있는 피의 양이 한정적인데다가, 능력을 쓸 정신력과 기력들을 상당량 고갈시켜둔 상태였기에 단순히 방어막을 두른 것만으로도 손쉽게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었지, 온전한 상태였다면 그건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운 행동이었을 터였다.

방어 태세에 들어간 데이안의 방어를 뚫어내기 위해, 만전 상태였던 라디미르 황제가 날려댔던 공격들은 단지 비껴나가기만 했음에도 여러가지 마감처리와 마법이 걸린 이 알현실을 전부 초토화시켜버릴 정도로 위협적이고 강력했으니 말이다.



"...잠깐..."



문득, 숨을 고르던 라디미르 황제의 시선이 옅게나마 보랏빛 연기가 피어오르는 핏자국을 향했다.

이내 얼어붙은 듯이 딱, 멈춰버리고만 움직임.

넋이 나간듯이 가만히 그 광경을 응시하던 황제는 이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웃음기 하나 없는 모순된 웃음을 짓는, 기운없이 창백한 얼굴에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래...그렇군, 그런거였어..."



파들파들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황제는 시선을 돌려 데이안을 바라보았다.

말라붙은듯한 핏빛이 그의 두 눈에 맺혀있었다.

데이안을 바라보는 황제의 핏발선 눈동자에는 이제 어떠한 적의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메말라 있었다.

번들거리던 광기가 연못 깊은 곳에 가라앉은 것 마냥, 가시처럼 날카롭게 돋아난 적개심은 이미 부러진 칼날처럼 꺾인듯 했다.

라디미르는 그에게 물었다.



"데이안, 나는...네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었던 거로군. 광대는 너도, 네 동료들도 아니었어..."



그의 목소리는 끝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잘게 쪼개지면서 쩌적쩌적 갈라져만 갔다.

목소리의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것들은, 떨쳐내기 힘들 정도로 짙은 모멸감과 자조에 찬 서글픔이었다.

늦게나마 그도 깨달은 것이다.

이 싸움의 승패는 자신이 힘에 취한 그 순간부터 이미 결정 지어진 후 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내가 광대였군...하.."



라디미르 황제는 자신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 무대의 주연인줄로만 알고 날뛰었다.

황가의 고귀한 혈통,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위대한 선조의 역사, 광활한 영토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밑에 있었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귀족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앞에 선 순간 뒷골목의 거렁뱅이와 별반 다를 것도 없는 한낱 인간이 되었다.


제국의 모든 것이 그의 것이었다.

설령 사람의 목숨이라고 할지라도 죽고 사는 것 또한 그의 의지였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연극의 주인공이 틀림없다고 확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나,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



연극의 주인공은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를 쟁취한다.

그리고 그 장본인은 바로 눈앞에 있었고, 자신은 그저 주인공의 칼날 앞에 비루하게 쓰러질 운명을 가진 악역일 뿐이라는 것을...



"...아니, 이대로...이렇게 볼품없이 죽을 수는 없지...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단 말이다...!"



스스로를 막다른 벽까지 몰고 간 황제에게 남은 것은 이제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 뿐이었다.

이대로 남은 힘까지 끌어모아 죽기살기로 데이안에게 맞서는 것.

그것을 익히 알고 있는 데이안은 황제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게 바뀌자, 미리 전투 태세를 취하였다.

허나, 잠시지만 그조차도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함께...함께 죽는거다...데이안...! 주군이 죽음문턱을 넘어선다고 할지라도, 신하된자는 그곳까지 마땅히 함께 따라와야만 하는 법이 아니겠느냐...!"



황제는 진정으로 미친 놈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의 말을 들은 데이안은 순간 이해하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ㅁ, 뭐?"



"크흐흐...흐흐흐흐..."



허나, 황제는 대답을 빙자한 소름끼치는 비웃음을 선사할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입은 갑옷 틈새 사이로 뜨거운 선혈들이 샘물처럼 솟아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데이안은 황급히 황제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선대의 힘은 지금 라디미르 황제라는 그릇에 담긴채 갇혀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라디미르 황제가 자결을 택한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나 다름없을 것이었다.

힘을 담은 그릇이 부숴지며 안에 잠재된 그 엄청난 힘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올터, 그리한다면 개인의 안위는 둘째 치고서라도 수많은 피해가 발생할 것이었다.


황제는 데이안을 향해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치켜 뜬 두 눈에서부터 핏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네가 나와 함께 죽던지, 아니면 살아남던지...사실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아, 확실한건 너는 이 세상에 혼란을 불러일으킨 시발점으로 기록될거라는거다."



이내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을 잇었다.



"황제가 여기서 죽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목숨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폭군이 죽었다...그게 무엇을 의미할 것 같나? 응?"



작은 동네의 구역을 싸고 도는 양아치 집단이라도, 구심점이 있기에 유지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구심점이 사라지고 만다면? 혼란이 초래됨은 당연한 이치였다.

황제는 당황하여 멈칫한 데이안을 향해 나즈막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다...앞으로 벌어질 모든것이, 미래의 전부가, 단 한명에 의해 벌어지게 될테지...네가, 자초한 일이다."



황제의 마지막 말은 목구멍에서부터 왈칵 쏟아져나오는 핏물에 의해 조금 뭉개져서 들리기는 했지만, 데이안에게는 그보다 더 선명하게 들려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내, 데이안의 보랏빛 동공에 진정한 의미로 붉은 불꽃이 거울처럼 비추어 보였다.

홍염이 황제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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